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수원역 로데오거리 뒤편, 매산로1가에 자리하고 있던 그 길. 사라져야 하나 잊어선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이 길이다. 여성을 성 착취 하는 공간으로 존재하며 닫혀 있던 수원역성매매집결지와 그 속에 있던 여성들의 삶. 있으나 세상에 드러나지 말아야 할, 존재하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을 기억하고 폭력의 역사를 예술로 기록한 전시가 열렸다. 수원시와 ㈔수원여성인권돋움 성매매피해상담소 ‘오늘’이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여기-잇다> 기획전시다.
곽예인·곽지수·봄로야·윤나리·이충열·자청·황예지 등 7명의 작가는 상담소 ‘오늘’과 함께 성매매집결지 현장을 보고 듣고 느끼며 고민했다. 성매매집결지 내 여성이 겪은 인권 침해와 고립의 시간을 사진과 미디어, 공예, 설치예술작품 10여 점으로 풀어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곳곳에 놓인 투명 의자가 눈에 띈다. 7개의 의자에는 ‘주인이 있는 자리오니 앉지 말아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이충열 작가의 작품 ‘우리’다. 아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이 여성들의 자리가 분명히 있고, 모두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이 작품은 작가가 여성들에게 건네는 선물이기도 하다. 작가와 여성들 간의 암호로 만들어진 이름이 의자마다 수놓아져 있고, 전시 후 여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우리나라’는 남성의 시선에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입어야 하는 브래지어를 해체해 러그로 표현한 작품이다. 성매매에 처음 유입되는 평균 나이가 만 15세인 점에서 착안해 중3 여학생의 평균키 160㎝의 크기로 만들어 여성의 성을 밟고서 일어난 우리, 나라를 성찰하게 한다.
곽예인 작가는 3점의 디지털 프린팅으로 표현한 작품 ‘어디에도, 어느 곳에도(2021)’를 통해 성매매집결지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있는 여성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그곳에서 발견한 물건을 일상 속에 자리 잡게 한 프린팅을 통해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윤나리 작가의 ‘테이블’은 성매매 이슈에 대해 논하는 사회적 테이블(토론회, 공론장)을 작품으로 옮겼다. 투명 유리컵엔 성매매 여성들을 향하는 사회의 언어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성매매 이슈에 관해 말할 때 팽팽하게 감도는 긴장감을 42개의 질문을 통해 드러낸다. 이 외 성매매경험당사자들의 물건을 기록한 사진, 성매매집결지 안과 밖을 다중적으로 관찰한 풍경으로 구성한 설치예술 작품, 지도 상에 존재하지 않는 성매매집결지를 시각화한 작품 등은 우리 사회에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힘과 용기를 부여하는 듯하다. 지난 5월 31일 밤 자진 폐쇄된 수원역 성매매집결지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성매매피해상담소 ‘오늘’ 정미경 소장은 “변화는 기억과 기록이라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며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일으킬 한 걸음이 될 이번 전시회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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