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도심 속 흉물로 방치돼 있던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기일보는 올해 1월 경찰의 느슨한 단속 행태를 지적했다. 그 결과, 경기남부경찰청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고, 올 초 113곳에 달했던 업소는 3개월 새 절반 이상 문을 닫았다. 그러나 여전히 홍등가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포주의 배를 불리던 거리를 어떻게 시민에게 돌려줄지에 대한 대책도 묘연하다. 경기도의 관문, 수원역에 60년 넘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지난 8일 오후 10시께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는 ‘곧 떠나겠다’는 포주들의 새빨간 거짓말로 붉게 물들었다. 올해 초와 비교해 문을 닫은 업소가 확연히 늘긴 했지만, 대로변에서 진입하는 ‘메인 골목’은 명절을 맞은 시장처럼 북새통을 이뤘다.
수요는 여전했고 성매매는 계속됐다. 거나하게 취한 남성들이 업소 주변을 서성였고 가격을 흥정하는 대화가 오고 갔다. 한 중년 남성은 친구들을 이끌고 “내가 가던 집이 잘해준다니까. 없어지기 전에 가자”며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남성 예닐곱명이 몰려오더니 “군바리 되기 전에 딱지를 떼주겠다”며 한 사람을 업소로 밀어넣기도 했다.
속을 들춰봐도 순조로운 폐쇄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오를 대로 오른 땅값을 받아내고 떠나면 그만인 토지주는 걱정이 없다. 집결지 일대 땅값이 지난해 말 3.3㎡당 1천600만원에서 이달 기준 2천500만원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 700만원선에서 거래되던 땅들이다.
반면 보상 받을 게 없는 포주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경찰이 오면 잠잠한 척 하다가 ‘만만한’ 지자체나 시민단체에서 나오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는 성매매 종사자를 협박, 통장 거래내역을 비롯한 범행 증거를 인멸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들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30대 중반 신지영씨(가명)는 과거 서울 어딘가에서 성매매를 하다 도망쳤지만, 결국 ‘돈’ 때문에 다시 집창촌에 발을 들였다. 집안 사정으로 의도치 않게 빚더미에 오른 그는 한 포주에게 500만원을 빌렸으나 갚지 못했다. 이자를 멈추는 조건으로 성매매를 강요 당했고, 한때 포주에게 ‘빚을 줄여준다’는 억지와 함께 성폭행까지 당했다. 같이 잡혀갈까 두려워 신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문제의 포주가 떠나면서 채무와 함께 업소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다. 신씨의 몸이 ‘채권’이라도 된 듯 사람이 사람을 팔아넘긴 것이다.
신씨는 “나름대로 여러 일을 해봤지만 이미 잔뜩 쌓인 빚을 해결하긴 어려웠고, 당장 돈을 빌릴 곳이 여기(성매매 업소) 밖에 없었다”며 “떠나고 싶지만 갈 곳도 받아줄 사람도 없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제대로 된 취업은 꿈도 꿔본 적 없다”고 털어놨다.
정선영 수원여성인권 돋음 대표는 “성매매 집결지는 피해 여성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구조로 형성된 범죄 공간”이라며 “그간 손을 놓고 있던 정부와 지자체, 경찰 어느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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