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정부의 외환관리나 기업들의 유동성 관리 등에 대해서는, 비록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 위기를 극복했고, 상당한 개선과 발전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온 뒤 땅이 더 튼튼히 다져지듯이, 지금쯤 우리는 외환위기 이전보다는 좀 더 활기차고 튼튼한 성장기반 위에서 희망을 가꾸며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더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일자리는 더 불안해졌고, 그래서 가게를 차렸더니 문 닫은 가게가 늘어났고, 자식들이라도 잘 가르쳐서 부모들 보다는 더 나아지게 하고 싶어도 당장의 생계가 어려우니, 로또라도 매주 거르지 않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더 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즉 우리의 다수가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다.
일자리는 본래 ‘일거리’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리고 ‘일거리’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사회변화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이나 개발제한이나 환경규제 때문에 투자가 안된다는 지적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아이템’이 없으면 그러한 규제들이 없더라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연구개발은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금방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멀리보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 역량을 가진 기업과 선진국들은 비록 경제성장률이 높지는 않더라도, 선진국 지위를 꾸준히 유지해가고 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바로 선진국 유지의 핵심요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새로운 것’을 연구·개발하고 있던 연구소와 연구인력을 먼저 없앴고, 빚을 갚느라고 연구개발비를 줄였으며, 새로운 투자도 할 수 없었다.
그 대가가 지금 ‘새로운 아이템’이 없고, 그래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며, 다소나마 앞섰던 기술도 차츰 바닥을 드러내 중국과 같은 나라들로부터 바짝 추격을 받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앞선 제품이 끊임없이 나오지 못하면 곧장 후발국과의 가격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연구개발에 기반한 품질경쟁에서 밀리면 재료비나 인건비 등의 생산비에 기반한 가격경쟁, 즉 레드오션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낮은 인건비로 승부를 걸어야 했던 70~8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비정규직은 인건비 절감으로 당장은 유리할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기술축적과 숙련도, 회사에 대한 신뢰와 근로의욕 등의 중요한 성장원천들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아주 어려울 때 잠시는 몰라도 지속적, 혹은 아예 꾸준히 늘려간다는 것은 기업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전국적으로 그 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생산을 위축시키게 되고, 생산위축으로 일자리가 더 줄어들면 구매력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한번 만들어진 악순환을 되돌리는 것은 훨씬 지난하고 어렵다.
기업들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서 일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기업의 생명을 이어가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다. 다만 기업의 일거리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의 성과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부는 당장 사회적 일자리를 보다 과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 안에는 문화나 역사분야 등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경제적 효율성에 밀려서 뒤로 밀쳐둔 일들이 적지 않고, 많은 손길이 필요한 노약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직접 돈을 나눠주는 복지지출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는 이들을 돌보는 손길을 늘려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의 지출부담을 줄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일자리를 늘려서, 기업이 연구성과를 거두어 일거리와 일자리를 스스로 늘릴 수 있을 때까지는 정부가 경기를 지탱해주어야 한다.
/이 영 석 한국농업전문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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