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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경제력을 보자. 관광 인프라가 세계 최고다. 매린랜드, 케이프커내버럴, 세인트 오거스틴, 마이애미, 템파 등이 다 플로리다에 있다. 원래 농목축업이 주 산업이다. 오렌지와 포도 생산량이 미국 최대다. 언제부턴가는 공업 인프라도 집중됐다. 식품가공에서 화학, 제지, 인쇄제본, 기계 금속까지 다 몰려 있다. 국립 박물관과 케네디 우주센터도 여기 있다. 플로리다는 미국 남부의 ‘잘 사는 서열’ 1위다.
우리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정도로만 알고 있는 플로리다州. 그곳은 대통령 선거를 쥐락펴락한 대가로 미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무서운 동네였다.
무너지는 ‘플로리다’의 꿈
한국 대선이 13일 남았다. 몇 달 전부터 이런 얘기를 썼다. ‘경기도가 중심이 돼야 한다’ ‘경기도에서 몰표가 나와야 한다’ ‘경기도에 도움 줄 후보를 찾자’. 때론 이쪽에서 욕 듣고, 때론 저쪽에서 욕 듣고, 때론 양쪽에서 욕 들었다. 그런데도 고집을 펴온 데는 이유가 있다. 경기도를 한국의 플로리다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경기도가 한국의 스윙 스테이트가 되길 바라서였다. 그러면 규제도 풀리고, 실업자도 줄고, 음식점도 잘 될 거라고 믿어서였다. 근데 바뀌지 않았다.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여론 조사는 여전히 두부 모판 자르듯 황금분할 되고 있다. 머리 좋은 후보자들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수도권은 이번에도 영양가 없다. 충청도로 가고 부산으로 가자.’
박근혜 후보가 그랬다. 수도권부터 훑으며 공약을 내놨다. “고덕산업단지를 활성화시키겠습니다”(평택). “젊은 도시로 만들겠습니다”(오산). “명품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겠습니다”(수원). “지하철을 연장하겠습니다”(김포). “아시안 게임 지원하겠습니다”(인천). 누구는 이런 약속들을 ‘지역 맞춤형의 깨알 같은 공약’이라고 추켜 세웠다. 뭐가 지역 맞춤형이고 뭐가 깨알 같다는 건가. 정작 나올 게 안 나왔다. ‘수도권 규제를 확 풀겠습니다’라는 딱 한마디, 그걸 안 했다. 고덕 산단 활성화? 젊은 도시 건설? 명품 관광 도시 발전? 규제만 풀면 절로 되는 일들이다.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안 한 거다. 충청도 눈치 보고 부산ㆍ경남 눈치 보느라 부러 빠뜨린 거다.
문재인 후보도 그렇다. 충청도에 가고, 광주에 가고, 부산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했다는 말들이 이상하다. “수도권의 나 홀로 공화국은 정의롭지도 못하다”(부산 유세). “수도권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새누리당의 DNA다”(충북 유세). 경기도민들 속 뒤집어 질 소리다. 몇 달 전만 해도 경제수도론을 얘기했던 그다. 애매모호하던 박 후보와 달랐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돌변했다. 수도이전 냄새 물씬 풍기는 2002년의 톤으로 다시 돌아갔다. 지난 10년간 정부청사 뺏기고 공기업 뺏겼다. 더 뺏길 것도 없는 경기도다. 그런데도 또 이런다. 아마 문 후보도 박 후보처럼 ‘아랫녘’에 승부를 건 모양이다.
수도권 규제는 계속될 듯
억장이 무너진다. 누구 하나라도“ 다 풀겠습니다”라고 해주면 고마울 텐데. “일부라도 풀겠습니다”라고라도 해주면 고마울텐데. 그런 후보는 없다. 그저 세종시를 챙겨간 2002년의 충청도가 부럽고, 신공항과 해수부 청사를 챙겨갈 2012년의 부산ㆍ경남이 부러울 뿐이다. 이러는 사이 어영부영 다 왔다. 이제 받아들여야 할 때다. 2012 대선에도 경기도는 없었고, 2017년까지 수도권 규제는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달랑 남은 열사흘 가지고 어찌해 볼 도리도 없다.
경기도가 한국의 플로리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힘없는 글쟁이의 황당한 망상이었던 듯 싶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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