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 가운데 하나였다. 임창열 도지사가 시를 초도 순시했다. 여느 시처럼 시정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그런데 형식이 많이 달랐다. 업무 보고자가 부시장이었다. 심재덕 시장은 지사 옆에 나란히 앉았다. 도지사를 맞는 통상의 예와 달랐다. 결국 심 시장의 무례함에 임 지사가 노(怒)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목격자가 전하는 장면이다. 다만 그 일뿐이었는지 또 다른 일도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 사람은 확인해 주지 않고 있고, 다른 사람은 확인해 줄 수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즈음부터 수원행정의 고난은 시작됐다. 시에 내려주는 도비(道費)가 과(科)마다 막히기 시작했다. 교통지옥이란 원성이 높았지만 공사를 시작할 돈은 내려가지 않았다. 신규 프로젝트 시작은 아예 꿈도 못 꿨다. ‘컨벤션시티 21’ 사업 요청서가 매번 백성운 부지사실에서 멈췄다. 덜컥 기공식부터 치렀던 수원시만 모양이 우습게 됐다. ‘주라 마라’로 공개된 임 지사의 ‘워딩’(Wording)은 없었다. 그런데도 도 공직자들은 ‘지사님 뜻’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했다.
시-도 충돌 피해는 시민
그로부터 15년. 경기도와 수원시가 또 아슬아슬하다. 정도는 다르지만 흐름이 비슷하다.
김문수 지사를 찾은 염태영 시장이 ‘부탁’을 한 보따리 꺼냈다. 컨벤션 21 해결ㆍ월드컵 경기장 이관ㆍ서울 농대 부지 개방이다. 컨벤션 21은 ‘소유권은 관여 않겠다. 지어만 달라’였고, 월드컵 경기장은 ‘전체 운영권을 삼성에 넘겨주자’였고, 서울 농대 부지는 ‘시민에게 완전 개방시켜 달라’였다. 이날 면담의 결과는 다음날 조간신문 속 사진으로 다 설명됐다. 두 사람의 눈길은 다른 곳을 향했고 입 꼬리도 올라가다가 말았다.
결렬-거부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이었다. 컨벤션 21 요구는 ‘광교 개발이익금이 많지 않다. 지어준다고 할 때는 싫다더니 왜 지금에 와서 요구하느냐’며 거부했고, 월드컵 경기장은 ‘삼성에 넘기면 삼성전용구장이 된다. 공익시설을 너무 수익성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거부했고, 서울 농대 부지는 ‘농업 기술원 등 도의 구상이 있다. 지금 정도의 개방이면 충분하다’며 거부했다. 둘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알 만하다.
언제나 부아가 치미는 건 당하는 쪽이다. 5일 밤, 수원천 옆 무슨 카페에서 본 염 시장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경기도라는 갑(甲) 앞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중이네. (컨벤션 21은) 소송이 진행 중이던 과거와 소송에 진 지금은 다른데 안된다고만 하고…KT 야구단과의 형평성을 위해 삼성 축구팬에게도 뭔가 해줘야 맞는 거고…경기도가 농대부지 개방한다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으니 다 개방하면 좋겠는데…모두 안 된다고만 하지 않는가.’
노기(怒氣)를 봐선 당장에라도 15년 전으로 되돌아갈 듯 보였다. 하지만 얘기의 끝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경기도는 갑이야.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계속 설득해봐야지’.
옳다. 상대는 도지사다. 그리고 김문수다. SOC 사업 때마다 도비에 손을 벌려야 하는 시의 현실이 있다.
싸움이 무섭다고 피해가려 할 김문수도 아니다. ‘시민의 자존심’만으로 들이대기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피해가 너무 많다. 110만 시민 입장도 그렇다. 김 지사와 염 시장으로 구분되고 편 지어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김 지사가 도민이라 부르는 110만이 곧 시민이고, 염 시장이 시민이라고 부르는 110만이 곧 도민이다.
부(副)들의 노력에 기대
충돌도 하면서 가다듬어 가는 게 협상이라 했던가. 때마침 이 고역(苦役)을 위해 두 기관의 ‘부’(副ㆍVice)들이 뛰어들었다. 부지사실을 찾은 이재준 수원부시장의 손엔 설명을 위한 자료가 들려 있었고, 부시장을 맞은 박수영 경기도부지사의 마음엔 해결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박 부지사는 이 작업을 ‘마사지’라고 설명하던데…. ‘어느 것’에 대한 합의가 곧 나올 거라 본다. 그때는 마주 보며 활짝 웃는 ‘김-염’의 사진도 나올 거다.
염 시장이 지면 되고, 김 지사가 주면 된다. 안 지고 안 주던 15년 전의 실험. 그 실험에서 90만 시민은 무수한 것을 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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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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