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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경제] 법안에 발의자의 이름을 붙이자

미국은 국회에서 발의되는 법안(Bill)에 발의자의 이름을 붙인다. 이후 이 법안이 통과돼 법률(Act)이 되어도 많은 경우 법안에 붙였던 이름을 따서 그 법안을 부르고 있다.

멀리는 예컨대 1933년에 발효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내용의 법안인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라든가, 가깝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등이 그 작은 예이다.

이처럼 발의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워낙 수많은 법안이 발의되기 때문에 쉽게 구분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발의된 법안의 내용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책임소재 규명의 성격이 있다는 점이다.

실적쌓기용 발의 법안, 통과후 방치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많은 법안들이 발의되지만 그때그때의 정치적상황이나 여론에 편승해 별다른 내용 검토없이 즉흥적으로 발의하고, 그렇게 실적쌓기용으로 발의된 법안을 서로 안면이 있는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밀어주기식으로 통과시킨 후에는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안을 발의할 때도 대표발의자 xxx외 몇 명 등 집단으로 발의해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누구하나 나서서 책임지는 경우가 없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특히나 국민경제나 금융시장 등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일 잘못된 법안이 통과돼 뒷날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는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파생상품시장에는 거래세 부과문제가 핫이슈화돼 있다. 파생상품시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투기’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등 좋지 못한 이미지로 일반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 여론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치더라도, 과거부터 ‘파생상품 거래세’를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내심은 시끄러운 파생상품시장규모를 거래세를 부과해 조금 축소시켜 보자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음이 사실인데, 현정부 들어서는 세입규모를 늘리려는 정부시책과 맞물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정부정책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파생상품시장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 10% 내지는 20%정도 축소되는 등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일 네이버가 국내포털 독점력이 강해서 약간의 세금, 예컨대 검색당 1원의 세금을 부과해 이를 조절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거의 전체 이용자들이 미국 검색엔진인 구글이나 야후로 옮겨가 버릴 것이다. 파생상품시장이 이와 동일한 경우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 주가지수 선물시장의 절반이상이 싱가포르로 넘어가 버렸고, 그제서야 대만은 거래세율을 내리고 있지만 이미 넘어가버린 시장은 되돌아오기 힘든 현실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6년간 많은 시행착오 및 비용을 들여가며 애써 키워온 시장이 잘못된 법안의 시행에 의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콩 및 싱가포르 등 경쟁국가의 거래소들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이러한 법안의 시행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작년 및 금년도 이런저런 규제책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의 위상은 이미 세계순위상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이름 붙이기는 의미있는 ‘정치개혁’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면 누구에겐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에는 지자체주민들이 지자체 예산을 방만히 사용한 전직 지자체 단체장및 공무원, 지자체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배상소송의 움직임까지도 일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의원이라고 이러한 책임추궁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들은 법안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가 꺼려진다면 더 열심히 연구를 하시라. 그 후, 법안의 추진에 대한 확신이 들 때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그 법안을 추진하자. 이것이 비록 작지만 또 하나의 의미있는 정치개혁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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