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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프리즘] ‘문화영토’ 넓히는 BTS

진정한 권력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고 충고하였다. 사랑을 받아서 만만하고 우스워질 바에야, 세상을 공포로 벌벌 떨게 하는 것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4년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 전문가인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석좌교수는 군사력, 경제력 등의 물리적인 힘을 지칭하는 ‘하드파워(Hard Power, 경성권력)’에 대응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또는 연성 권력(軟性權力)이 설득 수단으로서 중요해진 시대가 왔다고 주장했다. 돈이나 권력으로 강요하는 것보다 매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프트 파워는 나이가 ‘소프트 파워’(Soft Power :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를 발표한 후 외교 현장과 언론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국제 관계에서 나이의 소프트 파워 자원들은 강제력 등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매력 즉 어떤 나라의 문화 양상이나 가치관(민주주의, 인권, 종교, 사회 규범 등), 정치적 목표 등으로 인해 발현되는 ‘매력’이 파워풀하다는 것이다. 나이는 소프트파워의 단적인 예가 문화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도 원하도록 하는 힘’인 문화, 이데올로기 등 무형자원을 ‘소프트파워(Soft Power, 연성권력)’라 정의했다. 단, 패권안정론을 주장하는 학자 중에는 나이와는 달리 경제력을 소프트파워에 넣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미 국제관계에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간파한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은 1980년 지리적 경계를 뛰어 넘은 새로운 영토 개념으로 ‘문화영토론’ 을 학계 최초로 발표했다. “문화 앞에는 적(敵)이 없다”면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계승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영토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홍총장의 주장은 오늘날 한류(韓流) 확산과 위력을 이해하는 선구적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됐다. 나이의 소프트 파워와 궤(軌)를 같이하는 문화영토론은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화를 기반으로 인류 평화·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화영토론’은 물리적 영토를 넘어 상호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문화영토론’이란 문화가 향유되는 곳의 강역(疆域)은 그 문화주체자의 영토라는 논리다. 지정학적 국제관계나 주권 등을 전제로 한 국경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영토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자신들의 문화의 꽃을 피우며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엄밀한 의미로 그 영토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이다. 문화의 주인이 영토 주인이라는 것은 영토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보다는 그 영토에 꽃피운 문화의 주인이 실질적으로 영토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다분히 추상적인 영토 개념으로 이해 될 수 있다.

히잡 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방탄소년단 노래를 한글로 따라 부르고 이란의 소녀들이 ‘대장금’ 드라마에 열광해 한국 방문을 소원하며 여행비 마련을 위해 애쓴다는 얘기는 이제 뉴스가 아니다. 지난해 문화 도시 파리에서 블랙핑크의 파리 공연이 성황을 이룬 가운데 프랑스 팬들은 오프닝곡 ‘뚜두뚜두’부터 앙코르 엔딩곡 ‘아니길’까지 한국어 가사로 떼창하며 블랙핑크와 호흡을 맞췄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뚜두뚜두’(DDU-DU DDU-DU) 뮤직비디오가 K팝 그룹 최초로 유튜브 10억 뷰를 돌파하는 기록은 우리 문화의 세계화로서 ‘문화영토의 확장’이며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CNN은 작년 12월29일(현지시각) 최근 k팝을 비롯해 한류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한국 현대경제연구원을 인용해 “그룹 BTS는 2017년에 방문한 관광객 13명 중 1명에게 영향을 줬다”며 “BTS가 현재 인기를 유지한다면 2023년까지 56조 이상의 경제 기여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블랙핑크, 싸이 등 케이팝 스타들의 인기를 소개하고, 한국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봉준호 감독이 지미 펄론 토크쇼에 출연한 사실 등을 거론하며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쓰는 현상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어 “10년 전 만해도 사람들은 레이디 가가나 아바타 등 미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했지만 지금은 ‘한류’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만큼 한국의 대중문화가 확산했다“고 전했다. 작년 10월 고려대 편주현 경영대학 교수팀은 ‘방탄소년단 이벤트의 경제적 효과: 2019 서울 파이널 공연’ 보고서를 발표하며 BTS가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3일간 개최한 콘서트의 직간접 경제효과가 약 9229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3년 평균 매출이 1500억 원 이상이면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국내 기준상 방탄소년단이 3일간 콘서트로 창출한 경제효과는 중견기업 6개의 연매출인 셈이다. 각종 한류 문화산업을 글로벌 콘텐츠산업으로 육성한다면 문화영토의 확장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브랜드 강화와 국부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박종렬 가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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