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가 지난 5월 4일 경기도 광주에서 나물을 캐던 중 유명 연예인의 반려견 두 마리에 물려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치료를 받다가 최근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할머니를 문 반려견은 양치기 개로 알려진 벨지안 쉽도그라는 대형견으로 목줄과 입마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라니를 보고 담장을 뛰어넘어 나갔다가 만난 할머니의 허벅지, 양팔 등 세 군데를 물어 이와 같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위 할머니 사건에 대한 뉴스를 듣는 순간 사건 발생과정과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10여 년 전 필자가 경험한 사건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현재 대학생인 필자의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적에 필자가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위 벨지안 쉽도그만큼 큰 반려견이 목줄과 입마개도 하지 아니한 채로 거리를 따라 두리번거리면서 오고 있었고 그 반려견의 주인은 그 뒤에 다소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상황에서 그 반려견이 필자의 아들에게 접근하자 겁을 먹은 아들이 필자에게 밀착하여 혹시 그 반려견이 아들을 물거나 원치 아니한 접촉을 하려고 하면 바로 방어하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반려견의 주인이 적반하장격으로 왜 자기의 반려견을 향하여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느냐고 묻길래 당신의 반려견이 혹시라도 내 아들을 물거나 원치 아니한 접촉을 하려고 하는 순간 바로 아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대답하니 반려견 주인의 씁쓰레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필자는 대학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담은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반려견의 주인의 자기 ‘반려견’이 필자의 ‘아들’보다 더 소중하다고 하는 것 같은 묘한 표정이었다.
독일은 헌법이라는 용어 대신 기본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한 후 다시는 이와 유사한 대학살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1949년 독일 기본법 제1조에서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다가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으로 독일 기본법 제1조를 “인간과 ‘동물’의 존엄은 불가침이다”라고 개정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반대가 많아 결국 실패하였다. 그 대신 2002년 제50차 기본법 개정에서 기본법 제20a조를 “국가는…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라고 개정하여 ‘동물보호’를 추가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동물’은 ‘인간’만큼 존엄하지 않다고 하겠다.
반려견 1천만 시대인 오늘날 거리를 나가보면 필자의 아들같이 반려견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줄이나 입마개도 없이 맹견같이 생긴 반려견을 동반하고 외출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어 제2, 제3의 할머니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무인도에 사는 것이 아닌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나의 반려견도 소중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남을 배려하여 반려견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 때에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반드시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고문현 제24대 한국헌법학회 회장·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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