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가 불가능하고, 나와 남의 사과(謝過)를 보고 듣기는 참 어렵다. 잘못의 지속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며, 갈등과 ‘원념(怨念)’이 발생한다. 인간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자기기속(自己羈束)의 취지에서도 법을 제정했나 보다. 근년 들어 우리 사회에서 법치의 비중이 늘어나고, ‘정치의 사법화’란 시사용어가 그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 공화체제를 지탱하는 기초인 ‘법치’가 공격받거나 ‘사법의 정치화’도 운위되면서 우리를 무척 불편하게 한다.
사과가 드문 부조리는 이해와 체면에 우리가 민감하고,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자위하거나,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기만으로 죄책을 희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잘못’을 규정하며, “잘못이 있다면 즉시 바로잡기를 조금도 꺼리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고 당부했다. 인간의 한계를 양해하고 나아가 도덕의지를 신뢰하며 잘못 시정은 물론 삶의 진정성까지 회복하라는 위대한 통찰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권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1일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 재발방지대책 질문에 답변하였는데 정쟁이라 하기 어려운 심상찮은 논란이 일어났다.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하에 관례로 활용하고 있는 ‘사전위탁보호’ 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해당 대책은 대체로 입양 이후를 조건으로 하였기에 논란이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국정 관련 최고 공인의 발언에 그런 물의가 빚어지면 즉각 사과하고 바로 잡는 조치가 뒤따랐어야 마땅하였다. 사과가 없었기에 아무리 ‘취지’를 강조해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며 불신을 증폭시켰다고 하겠다. 지난 22일 한 유명한 여권 인사가 작년에 제기했던 검찰의 계좌 사찰 주장을 사과했다. 그 발언은 수차 반복됐고 채널 A 기자사건에도 의혹을 가중했으며, 여당의 수석대변인이 기정사실화해 검찰을 비난하여 파문이 컸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이 기회에 사법과 무관한 작년의 다른 잘못들도 거론하며 사과한다면, 사과 관련 여러 의문과 불만을 불식하는 진정성이 부각되며 우리의 소통과 통합에 작은 계기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당을 대표하여 발언한 그 당직자도 국민에게 마땅히 사과하여야 적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과 발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는 회오(悔悟)도 두루 주목했으면 한다. 사과에는 관조의 정서가 필요하다. 임란 시기 구국 영웅 서애 유성룡 선생의 성찰 시 「차회암선생운(次晦庵先生韻)」 기삼(其三)을 읽고 싶다. “달이 뜨자 뭇 움직임 그치고/ 밤바람 쐰 샘은 찬 기운 어린 우물/ 내 마음 마침 아무 일 없어/ 청명한 이 야경 못내 사랑하고/ 거문고 타니 도 닦는 뜻 깊어지는데/ 벗 그리니 산하가 멀리 막혀있구나/ 오래 전부터 부끄러워하였던 공명/ 구차히 얻기는 내 바람이 아니라네(月出群動息/ 風泉落寒井/ 吾心適無事/ 愛此淸夜景/ 彈琴道意長/ 憶友山河永/ 功名久已慙/ 苟得非吾幸)”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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