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미국 시카고 예술대(SAIC) 미대 교수이자 비평가인 마리 제인이 나에게 물었다.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 ‘자연하다’다.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와 요시밀로 갤러리의 동시 개인전과 뉴욕타임스 리뷰에 이은 빌 게이츠의 컬렉션은 뉴욕의 화두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더 깊은 곳으로 갔다. 2007년 인도의 올드델리를 촬영한 만 컷의 사진을 포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잿빛이 됐다. 수백 편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듯 카오스의 상징처럼 느껴지던 델리는 선정에 들었다. 장엄해서 울었다. 허망해서 웃었다. 뉴욕을 촬영한 만 컷의 사진을 포갰다. 당당해서 오만하던 뉴욕은 사라졌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로마, 파리, 프라하, 베를린, 도쿄, 아테네, 런던, 모스크바, 워싱턴DC, 베네치아 등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따라 12개 도시를 주유했다. 도시마다 만 컷의 사진을 포개 단 한 점의 작품을 생산했다. 수많은 정체가 엄존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회색의 모노톤이 됐다. 긴 여정 끝에 자연이 있었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왔다. 2010년 숲속에 하얀 캔버스를 세웠다. 세계시장이 형성된 작업을 계속하지 않고 새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 했지만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지 않았다. 내 파격과 내 혁명과 내 의지를 우선해온 나의 자연을 따랐다. 숲의 캔버스는 선 채로 두 해 동안 두 번의 장마와 여섯 번의 태풍과 마주했다. 캔버스는 한 치도 비켜 가지 않고 자연의 절기 따라 때로는 비통하고 때로는 서정적으로 자연과 교감했다. 인도 부다가야에 2년을 서 있었던 캔버스를 만나는 순간, 청년 싯다르타가 붓다가 된 이유를 알았다. 참혹했다. 캔버스의 겉과 속은 가혹한 환경에 노출돼 큰 상처를 입었다. 뉴멕시코, 인디언들이 살았던 땅에 선 캔버스는 미니멀의 극치였다. 맑고 깨끗했다. 늑대와 함께 춤을 출 줄 알았던 인디언, 그들의 영혼이 맑은 이유다. 아타카마사막, 티베트, 시베리아, 야생화가 지천인 곳, 인류 문명이 시작된 곳, 카르마가 산처럼 쌓인 곳, 땅속, 바닷속에 생캔버스를 세웠다. 그곳에서 붓다가 되고, 생명이 되고, 문명이 태동했다면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철학과 사상, 문명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환경이다. 스스로 그러해서 자연이라 하지만 자연은 기운이 생동하는 동사로 실존한다. 모든 존재를 경외하고 경배해야 할 이유다. 숲의 캔버스는 감동이다. 하지만 제 살 속 깊이 죽음을 새겨야 한다. 이는 미술사에서 산 채로 색을 받는 캔버스의 존재 이유와 차별된다. 아서 단토는 ‘무엇이 예술인가?’에서 “캔버스는 그림을 받쳐 주기만 한다. 사물의 일부이지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다. 이는 서양 미학과 동양 미학의 변별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에 대한 사유의 부재다. 수묵화에서 발묵은 사물인 종이의 철학이다. 종이를 소외시키고 의미를 생산할 수 없다. 인간의 몸에서 뼈와 살을 분리할 수 없고,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다. 캔버스는 사물과 의미를 동시(同時)한다. 포 사격장의 타깃에 캔버스를 세웠다. 허가 과정에서부터 실행하기까지 몇 해를 넘겼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 절절했지만 폭력으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를 제외하고 자연을 완성할 수 없었다. 비산하는 포탄 파편에 산산조각 난 캔버스 조각을 수습해 패치워크했다. 세상을 덮을 현(玄)의 산을 만들었다. 예술사에 없었던 일, 포가 그린 그림이다. 썩은 물은 생명이 될 수 없지만 배를 띄우는 부력은 같듯이 갈등과 야만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다. “눈물이 난다. 아타 선생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계시다.” 이어령 선생의 덕담은 태산 같은 죽비가 돼 양 어깨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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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3-03-23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