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인천해양국립공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덕적도엘 다녀왔다. 세계 여느 유명 휴양지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하는 인천의 섬이다. 이번엔 2018년 개통된 다리로 소야도까지 둘러봤다. 바로 이웃한 섬이지만 둘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소야도는 신비롭고 몽환적이다. 이런 아름다운 대자연을 목전에 두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든다. 하나는 몰래 숨겨두고 나 혼자만 알고 싶다는 욕심, 다른 하나는 모두와 함께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른바 보전과 개발, 역사가 꽤 깊은 인류의 딜레마다. 원론적으론 전자에 한 표 던지지만 주민들을 생각하면 후자에도 슬그머니 눈길이 간다. 이럴 때 그 둘을 절묘하게 묶는 대안이 있다. ‘국립공원 제도’다. 우리는 1967년 1호 지리산 이후 지금까지 22개의 국립공원을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 산재하는데 유독 인천엔 아직 없다. 인천 앞바다를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목소리는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현 유정복 인천시장이 민선 6기 시정부 시절 인천가치재창조사업의 일환으로 인천해상국립공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적도 있긴 했다. 백령-대청권역 270㎢를 국립공원으로, 강화 남단과 장봉도 등을 갯벌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와 시정부 교체 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사이 2019년 백령-대청권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2021년 유네스코는 충남과 전남북 일대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면서 2025년까지 강화 등 인천 갯벌을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지금까지 오롯이 남은 곳은 덕적, 자월 등이다. 50여개의 유·무인도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그곳 섬들은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다.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릴 만큼 태초의 자연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선갑도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국내 최대의 무인도다. 자월도는 섬 전체에 평화와 상서로운 기운이 넘친다. 모두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가꿔야 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침해를 우려하겠지만 국립공원이라해서 무조건 안 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골프장, 스키장처럼 자연훼손이 심한 시설이 아니라면 웬만한 건 다 된다. 운영의 묘를 살린 상생의 방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해상국립공원을 논의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이 일대에 풍력발전시설이 몰려들고 있다. 벌써 11기의 풍황계측기가 설치됐고 허가를 기다리는 사업자들이 줄을 서 있다. 이대로라면 그 아름다운 바다가 거대한 인공날개의 숲으로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 바다난개발 우려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국립공원이 되면 그런 걱정은 일단 던다. 한 해 200억원 가까운 국고를 지원 받고, 탐방객이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차고 넘친다. 인천해양국립공원,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

[인천시론] 홍콩에서 배울 점, 드러날 뉴홍콩시티의 모습

인천에서 펼쳐질 ‘뉴홍콩시티’는 어떤 모습일까?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의 핵심사업인 ‘뉴홍콩시티’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궁금증이 만발하는 상황이다. 일단 유 시장은 ‘기업 하기 좋은 인천’을 기치로 홍콩을 모델로 삼았다. 인천이 포스트 홍콩의 최적지로 판단,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금융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며 국제자본과 해외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에 나서고 있다. 보통의 경우 홍콩은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가 풍부한 ‘최애’ 관광지 중 하나다. 홍콩이라고 하면 해야 할 말, 하고픈 말이 많은 것이다. 한데 우리가 홍콩을 말할 때, 또 좀 안다고 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 대표적인 고밀도 개발도시 홍콩은 면적의 40% 정도를 공원이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 어디로 가든 30분 이내에 산 또는 해변을 접할 수 있는 곳이 홍콩이다. 사이쿵이라는 곳에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해안 주상절리가 있다. 사이쿵은 아름다운 풍경, 하이킹 코스, 조용한 해변과 청정한 섬 등으로 ‘홍콩의 뒷마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이포습지는 도심지와 맞붙은 생태습지공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생태학습과 교류를 위해 연중 방문하는 필수 코스다. 그곳에서 수많은 철새들은 물론, 수백종의 생물다양성을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개발을 병행하면서 고유 생태자원과 전체적인 도시공간에 대한 깊은 고려가 돋보이는 사례다. 국제적인 생태도시, 친환경도시의 전형을 홍콩에서 발견하게 된다. 홍콩의 이러한 노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홍콩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가 홍콩을 치밀한 도시개발에 집중한 전형, 혹은 국제적 비즈니스와 금융산업의 허브로만 규정한다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는 홍콩을 통해 어떻게 개발과 보존, 경제와 환경적 측면이 조화하고 공존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갯벌이나 철새, 숲, 습지 등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개발 자체를 배제하거나 낙후, 불이익으로 직결된다는 식의 주장에 대한 근거, 실체를 다시금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유 시장의 뉴홍콩시티 프로젝트에서 홍콩의 전체적인 특성 가운데 어떤 우수성들을 인천에 접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유정복 시장의 공약으로 인천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 소래습지 국가도시공원 지정 등의 대표적인 환경공약이 있다. 핵심 환경정책과 고유한 생태자원, 홍콩이 한데 어우러진 인천의 미래 모습을 조만간 가늠해볼 수 있을까? 부디 홍콩의 다양한 이면, 선진적 사례를 통해 환경과 경제를 아우른 지속가능한 인천이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그래서 ‘북산고’가 어느 팀한테 진거야?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만화 슬램덩크 속 주인공 강백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뱉는 외마디다. 당대 최강 산왕공고와의 일전 중 큰 부상을 당해, 벤치에 머물던 강백호가 출전을 강행하며 남긴 레전드 명대사로, 작품 서사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다. 감히 감독님을 영감님이라 호칭하는 패기도 기특하지만, 무엇보다 강백호라는 캐릭터에게 부여된 성장 스토리의 마무리를 이토록 훌륭하게 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표할 뿐이다. ‘슬램덩크’는 첫눈에 반한 짝사랑 소녀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마법같은 한마디에, 농구를 시작한 풋내기 강백호와 오직 농구를 위해 죽고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농구라곤 관심도 없던 강백호가, 결국에는 농구에 진심인 바스켓맨이 된다는 이야기다. 비겁한 반칙이나 요행수로 승리를 가져오는 클리셰는 없다. 연애를 다루느라 괜한 시간낭비도 하지 않는다. 오직 10대 고등학생들의 농구에 대한 열정만 존재할 뿐이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일자리조차 사라져 버린 암울한 현실, 그럼에도 부모찬스라는 미명하에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슬램덩크’, 이 네 글자가 주는 감동은 묵직하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돼버린 지금,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26년 만에 돌아온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매섭다. 지난 1월 초 개봉했음에도, 아직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누적관객수 3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30, 40 아재들의 추억팔이가 아닌 10, 20대 MZ세대들조차 “엄마아빠가 내 나이 때는 이렇게 재밌는걸 봤구나”면서 극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문득, 만화 슬램덩크의 엔딩이 떠오른다. 북산고는 전국대회 2차전에서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희대의 명대사와 함께 강백호의 마지막 슛으로, 산왕공고를 간신히 꺾고 3차전에 오른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는 단 2쪽 분량으로 북산고의 전국 제패 여정은 급히 마무리된다. 어떤 팀한테 왜 졌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하지만 이토록 불친절한 엔딩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기에, 여기까지 온 그들에게 열광할 뿐, 그깟 패배따위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렇게 헤어진 그들을 26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뿐, 더는 바랄 게 없다.

[인천시론] 둘레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

근로현장에서 안전보건관리(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다. 동시에 사업장별 근로자들의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또는 예방 등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근골격계질환은 물리적인 원인으로 근육·뼈·관절·신경 등의 조직이 손상돼 신체에 나타나는 건강장해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리적 요인과 함께 ‘사회심리적 요인’도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질환의 범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실제로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은 다요인적(multi-factorial)이다.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은 △개인적 요인(연령, 키, 몸무게) △인간공학적 요인(고정적 작업 자세, 중량물 취급, 반복작업) △정신사회적 요인(직무 스트레스, 노동강도, 고용불안)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적용된 근골격계 질환자 및 잠재적 질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국민 3명 중 1명이 근골격계 질환 혹은 질환 의심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정신사회적 요인,특히 ‘스트레스’는 근긴장을 높여 근골격계 증상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질환의 예방적 차원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의학·사회과학 분야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명상, 호흡, 휴식, 근육이완 등의 방법으로 유형화하고 있다. 이 중 필자는 주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 방안으로 둘레길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넓게 말하면 일종의 산림치유요법이다. 사실 산림치유요법은 의학적인 치료법은 아니지만 자연요법 혹은 대체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필자는 최근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새로 설계해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효과와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동안 산림치유요법이 단순 스트레스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고는 있었으나, 근골격계 질환과 스트레스를 요인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자는 장시간 컴퓨터로 작업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근로자였다. 이들은 일정 기간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필자는 참여 전후 대상자의 스트레스 척도와 잠재적 근골격계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신체화 증상 점수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대상자의 스트레스와 신체적 스트레스를 각각 약 30%, 25%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물론 둘레길 걷기는 전문적인 산림치유 프로그램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닐까 싶다. 특히 최근에는 지자체별로 둘레길 마련에 힘쓰고 있어 접근성은 더욱 강화됐다. 강추위와 코로나19가 주춤하고 있다. 완연한 봄이 오면 밖으로 나가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둘레길 걷기 또는 등산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인천시론] 인천이 이산의 도시? 이의 있습니다

인천경제청이 새 슬로건을 내놨다. ‘미래가 찾아오는 눈부신 도시(Brilliant Future, Luminous IFEZ)’다. 다소 길고 일면 진부하게 들리지만 전반적으로 역동적이고 희망적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자부심도 엿보인다. 이처럼 구호와 상징물, 디자인 따위를 특정 장소나 도시의 홍보에 활용하는 것은 도시브랜딩 전략의 일환이다. 도시브랜딩의 가장 큰 목적은 정체성(Identity) 구축이다. 그 도시만의 고유한 실체, 존재론적 본질을 의미한다. 그것은 축적된 역사와 경험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것이지만 기존의 것을 대체할 필요가 생기거나 아예 그런 존재감이 없는 도시라면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분야의 효시이자 하나의 전형이 된 ‘I ♥ NY’는 당시 뉴욕이 처한 최악의 실업률과 범죄율의 타개책이었다. 네오 나치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베를린이 ‘Be-Berlin(베를린이 되자)’이라는 일체감과 화합을 강조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도시 정체성은 일관성, 독특함, 차별성 등을 포괄하며, 이를 통해 시민들은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고 관광객이나 투자자 등의 외부 고객들에게는 도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도시 브랜드가 밝고 긍정적이며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유다. 드디어 인천에도 시립미술관이 생긴다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시 정부에 의하면 이 미술관의 특화 콘셉트를 유대인들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로 잠정 결정했다고 한다. 인천이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문화적 혼종성의 도시라는 점에 착안한 결과라고 한다. 이곳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선이 떠났고, 전쟁 통의 실향민과 산업화 시절 상경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사실 인천과 디아스포라를 접목하려는 역사는 꽤 길다. 올해로 11회째 맞는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시립미술관의 정체성도 그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의 산물이니만큼 그 가치는 인정한다. 다만 일부 마니아들이 즐기는 영화제까지는 몰라도 미술관의 주인이 누구냐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시립미술관이니 그 주인은 의당 인천시민이 아닐까. 집도 거기에 살 주인의 철학과 이상을 담아 지어야지, 건축가가 살 집을 짓는 건 아니다. ‘이산’은 인천 역사의 일부일지언정 전부는 아니다. 배 떠난 연안부두가 인천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인천은 초일류 미래도시를 지향한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현재를 옥죄고 그래서 미래의 걸림돌이 돼서도 안 된다. 다시 인천을 이야기하자.

[인천시론] 제도와 실행, 정책∙현장 이을 협치의 중요성

지속가능발전과 관련해 지난해와 올해, 여러 면에서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광역 차원에서 보면 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의 제정과 함께 인천시 환경부서에 속했던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정책기획부서로 업무 이관된다. 기초지자체도 관련한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지속가능발전, 그리고 협치(거버넌스)의 높아진 중요성만큼 실체화가 관건이겠다. 지난해 7월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시행 이후 환경·사회·경제를 통합한 지속가능발전이 정부정책을 넘어 지역으로까지 확산하는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기대가 컸다. 각 지역에서 조례를 만들고 관련조직 신설·정비, 계획수립 등의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인천시는 2022년 말 ‘인천광역시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지속가능발전 업무부서 재편도 추진했다. 이는 오늘날, 지속가능발전이 세계적 주류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계기였다. 국가적으로, 지역적으로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를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내재화하고 정책과 제도, 그리고 조직과 활동으로 환류하는 과정은 필수가 됐다. 더욱이 시민참여, 민·관협치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제도화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컸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극명한 이해의 차이와 더불어 실행력 차이마저 큰 경우를 지역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기본 예산마저 확보하지 못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지역 협치기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두도록 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두고 기존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무용론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무척 우려스럽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에 의한 행정 내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실천조직이면서 시민참여체계인 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차별되고 보완관계로 판단해야 더 적절하다. 기능중복, 대체수단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원칙적으로 각각 다른 방식과 기능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추동한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지역 차원에서 탄탄한 조직화와 사업·활동의 전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을 표방한 기관이나 기구의 역할 제고라든가 행정과의 파트너십, 시민사회와의 접점 확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환경·사회·경제가 균형을 이룬 지속가능발전, 행정을 포함한 지역사회 주체들의 협치를 지켜가려는 노력이 견지되어야 한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민·관이 손을 맞잡아야 할 충분한 이유다.

[인천시론] 개정 교육과정의 고갱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리터러시)’ 수준은 어떨까? 가장 최근 조사인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보고서에 따르면, ‘IT 강국 키즈’들의 디지털 문해력 수준은 OECD 최하위권이다. 회원국들의 만 15세(중3, 고1) 학생의 순위를 공개했는데 한국은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헝가리 등과 함께 최하위 집단에 포함됐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실과 의견 식별률’도 최하위(25.6%)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학생의 평균 식별률은 47%. 튀르키예는 63.3%, 미국은 69%를 기록했다.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교육 경험’도 모든 영역에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성인의 경우도 디지털 미디어 활용 능력이 임금격차를 발생한다는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활용 능력을 0에서 3단계로 설정할 때, 0단계는 1단계보다 18% 임금을 적게 받고 2, 3단계는 1단계보다 26%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2015년). 한국의 미디어교육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요구해왔다.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이용능력은 높아지고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므로 초등학생 때부터 정보 검색 및 진위 판별, 콘텐츠 제작과 소통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런 점에서 무척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초소양의 모든 영역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총론에서 ‘언어 소양’ ‘수리 소양’ ‘디지털 소양’을 기초소양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수리 소양’에서조차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을 포함하고 있어 ‘미래 핵심 역량’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3,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지금까지의 미디어교육은 학교 밖 전문기관과 학교 내 일부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금씩 확장돼 왔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고, 학교 안과 학교 밖의 협업을 통한 실천만이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인천 지역의 미디어교육과 관련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 조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유아, 청장년, 노인들에 대한 교육도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도록 모든 자원을 모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칭 ‘인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협의체’ 같은 기구를 통해 지역 내 우수한 자원을 활용할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론] 소년법 개정 논란, ‘야드 바쉠’의 한 남자

1942년 8월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역의 한 고아원에 독일 나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60대의 원장은 병사들에게 잠시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한 후, 192명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히고는, 맨 앞줄에 서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르샤바 기차역을 향해 소풍 가듯 행진을 했다. 하지만 기차의 종착지는 가스실이 있는 수용소, 한 독일군 장교가 “원장님은 풀어주라는 사령관의 명령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장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고, 차디찬 가스실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나치의 광기 어린 폭력 속에서도 유대인 전쟁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소아과 의사인 야누슈 코르작의 이야기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큰 구덩이에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넣고는 ‘약 1천명’, ‘약 500명’ 이런 식으로 팻말을 세웠던 야만의 시대, 코르작은 ‘모든 어린이는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숭고한 사명을 실천하고자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이에 1989년 코르작의 조국 폴란드가 발의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어린이와 함께한 코르작의 일생이 세계를 감동시킨 결과다. 이렇게 탄생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형법 위반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최저연령을 설정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했고, 2019년 아동권리위원회는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세’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소년법 역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촉법소년으로 분류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도록 규정한 것 역시 그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부가 발의한 ‘촉법소년 기준 나이를 만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지켜보는 여론은 복잡하다. 나날이 흉포해지는 소년들의 범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지지 의견도 있지만, 다른 한편 단순 엄벌보다는 교화가 우선이라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하지만 소년범죄의 상당수가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가정환경과 열악한 사회안전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미성숙한 인격체인 소년에게 그 책임을 온전히 부담토록 했다는 비판은 뼈를 때린다. 이스라엘에는 죽어간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관 ‘야드 바쉠’이 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 그곳을 벗어나면, 슬픈 표정의 아이들을 가득 안고 있는 야누슈 코르작의 청동 조형물이 나온다. 작금의 소년법 개정 논란이 숭고한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닌지 문득 서글프다.

[인천시론] 건강한 명절을 보내려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날이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명절증후군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관성 탓인지 의외로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줄어든 것 같다. 그럼에도 명절증후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명절증후군은 ‘증후군’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정확한 질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정신적·신체적 ‘증상’이다. 이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 고된 가사노동, 장거리 이동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의학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명절증후군 증상에는 △비만 △근골격계 증상 △정서장애 △소화불량 등이 있다. 비만의 경우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지만 평소 건강하다면 이러한 증상들은 명절 전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중에는 질병과 연관돼 의학적으로 연구된 증상도 있다. 바로 휴일심장증후군(Holyday Heart Syndrome·HHS)이다. 이 증후군은 ‘음주(술)’와 연관된 것으로 필립 에팅거 박사에 의해 1978년 미국심장학회저널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주말이나 공휴일 이후 병원에 부정맥으로 입원하는 환자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건강한 사람도 단기간에 폭음을 하게 되면 부정맥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특히 평소 과음을 했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명절 기간에 갑자기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보는 가족, 친지라도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다. 명절증후군은 긴 연휴 탓에 평소와는 다른 생활·행동양식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고된 노동, 식습관 또는 수면 패턴의 변화 등에 우리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휴 기간에는 나만의 생체리듬을 유지하거나 행복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과음을 하거나 잠을 몰아서 자거나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받는 등의 행동은 지양하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또 건강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는 설날을 보내는 지역의 응급실, 약국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안 되지만 만에 하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설날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설’이라고 한다. 그동안 명절 분위기가 다소 간소화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이 명절증후군 없는 명절이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인천시론] 마스터 플랜부터 마스터하자

여행을 떠나 보자. 길에 나서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머니 사정을 따져보는 것이다. 욕심이야 하와이를 마다할까만 자칫 분수를 넘으면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어서다. 예산에 맞춰 목적지와 일정을 정하고 이동수단, 숙박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예약한다. 이럴 땐 정보가 힘이다. 책자와 인터넷 지인들과의 통화 등을 총동원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여행계획표가 완성된다. 세부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큰 틀은 그렇게 미리 만들어 둔 기본 계획서대로 움직인다. 그게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의 마스터 플랜은 충분히 예상되는 난관을 극복하고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계획을 말한다. 도시개발에도 마스터 플랜은 필수요소다. 지구 전체에 대한 토지이용계획과 각종 시설물의 도입을 구상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다. 마스터 플랜의 첫 단계는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왜 하는가, 달성해야 할 근본의 가치는 무엇인가 등이다. 그 다음은 환경분석이다. 해당 사업을 둘러싼 내부의 강점과 약점, 외부의 기회와 위협요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전략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마스터 플랜은 시행하고자 하는 사업을 둘러싼 모든 정보의 총합이다. 사업 성공을 위한 우선순위이며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의 다른 이름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중 한곳인 부평에 경사가 있었다. 80여년간 시민들의 접근을 막아 왔던 미군부대 캠프 마켓 부지가 시민 품으로 돌아온 거다. 그 면적이 물경 60만4천938㎡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금싸리기 땅이다. 여길 어떻게 쓸 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지역 내에선 호수공원이나 역사문화공원 등 저마다의 희망사항이 쏟아지고 있다. 시는 지난해 4월 이와 관련한 마스터 플랜 수립용역을 발주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22개월의 시한을 줬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터다. 그런데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 조병창(일제강점기 당시 무기제조공장) 건물을 뜯네 마네, 제2시립병원을 들이네 아니네 연일 시끄럽다.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선물인 만큼 함부로 무엇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꿈을 담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향유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그걸 오롯이 담은 결과물이 마스터 플랜이다. 무엇보다 그 마스터 플랜부터 마스터하고 볼 일이다.

[인천시론]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어른 책임과 청소년 역할

‘지금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것이 청소년들의 외침이다. 관교여자중학교 1, 3학년생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관련해 성평등과 환경보전, 기후변화대응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들은 해양오염과 생물자원의 고갈을 염려했다. 육상생태계를 포함해 해양생태계 보전과 더불어 생물다양성의 확보를 요구했다. 철저한 쓰레기 분리배출과 함께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강조했다. 기후변화 완화와 탄소중립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2022년 세밑, 청소년원탁토론을 위해 관교여중 강당을 메운 그들을 보니 이국의 한 소녀가 떠올랐다. 당시 15세의 고등학생이던 툰베리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의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쳐 가고 있다.”며 당찬 목소리로 정치 지도자들과 기성세대를 질타했던 툰베리. 툰베리는 이듬해인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에서 깊은 통찰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우리 미래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깃발을 들고 나섰다. 작은 모임에서 시작했던 ‘청소년기후행동’은 2020년 3월에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대응이 청소년의 생존권,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요지의 기후 헌법소원을 청구,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를 요구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5세 이하의 아기들이 주된 청구인이 된 기후소송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성인이 된 후면 너무 늦는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 일갈했다. 지금 세대가 누려왔던 생활의 편리를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포기할 수밖에 없고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야 한다.” 2023년 새해, 지금에 대해 결정할 수 있고 힘을 발휘해야 할 이들의 무거운 책임이다.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사용종료, 영흥화력발전소 조기폐쇄, 갯벌보존과 도시숲 확충 등 탄소흡수원 강화 그리고 ‘탄소중립 미래도시’를 내건 인천시의 비전에 쏠린 청소년들의 시선이 매서운 이유다.

[인천시론] 용서할 수 있는 권리

“이제 그 소녀를 백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의 딸이, 당신의 부인이, 당신의 어머니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주십시오.” 존 그리셤 원작의 영화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속 대사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한 소도시, 술과 마약에 찌든 백인 남성 두 명이 식료품을 사들고 가던 한 흑인 소녀를 무참히 성폭행해 강에 던져버린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곧바로 범인들이 체포되지만, 백인 우월주의가 극심한 미시시피에서 이 극악무도한 인간들에게 중형이 내려지기는커녕 당장 석방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조금의 반성의 기미도 없이 형식적인 재판에 들어서는 순간, 피해자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총을 쏴 범인들을 현장에서 즉사시킨다. 영화는 현장에서 체포된 아버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제이크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사법제도가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할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영화는 진지하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정 공탁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형사공탁금을 걸 수 있도록 개선(?)됐다. 피해자의 성명·주소·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특정해야 가능했던 기존 공탁 방식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유리한 형량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하거나 적어도 피해금원을 공탁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웠기에 일부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고자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거나 아예 합의를 종용하며 2차 가해 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에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피해 회복을 위하는 동시에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에도 공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형사공탁제도가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개정 취지와는 별개로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해자의 형량 줄이기를 위한 방편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 역시 유효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엄벌을 탄원할 경우 내지 가해자에게 진지한 반성이 없는 경우에 있어서도, 단지 형사공탁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선처하는 것이 과연 정의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용서는 국회도 법원도 아닌 오직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국회의 손을 떠난 개정 공탁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이제 법원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 속 소녀의 아버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들이 눈을 감고 피해자를 백인이라 상상했던 결과다. 법원 역시 부디 자신이 심판받고 싶은 그대로, 다른 이를 심판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인천시론] 치매, 모두의 관심 필요

인천시론에 글을 연재하기로 하면서 1년에 한 번은 쓰기로 마음 먹었던 주제가 있다. 바로 ‘치매’다. 치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질환이다. 중앙치매센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환자수는 88만명을 넘어섰다. 858만명의 노인 중 약 10%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라는 의미다. 치매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1인당 치매관리비용은 연간 2천112만원이며, 국내 치매관리비용은 약 18조 7천억원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오는 2050년에는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치매는 여러 원인으로 발병한다. 치매의 원인은 굉장히 다양한데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이 주요 원인으로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치매는 보통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젊은 시절 정상적으로 분해·배출되던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고 축적돼 정상적인 뇌기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방법도 딱히 없다. 완치 약물도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에 사용하는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이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질환의 특성 탓에 가족들이 겪는 고통까지 포함해 치매로 인한 직간접적인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별로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며 치매에 대해 적극 알리고 있다. 인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인천 치매안심센터’만 검색해도 치매 예방과 극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 서구 치매안심마을, 계양구 치매 예방·인지강화교실, 미추홀구 치매극복 캠페인, 강화군 치매통합관리 서비스 등 지역구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기에, 이번 시론을 통해 인천의 치매안심센터에 대해서도 알려본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표현처럼 치매도 알아야 한다. 치매의 전조증상, 진단, 치료법, 발병 시 대책 등 미리 알고 있으면 도움될 것이다. 학습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 치매는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다가오는 미래에는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 치매에 대해 어제보다 오늘 더 관심을 가지면 된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지속가능발전 조례, 인천의 환경•사회•경제적 잣대다

법에 ‘기본’이 제목으로 붙으면 총론격의 위상을 갖는다고 본다.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방향 혹은 맥락을 제시하는 법체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련한 법들은 기본법에 비춰 이해, 해석하고 제시된 방향에 따라 공적으로 계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 시민들이 잘 모를 수 있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2022년 9월 25일), ‘지속가능발전 기본법’(2022년 7월 5일)과 같은 법률이 얼마 전부터 시행되었다. 시대상황과 세계적 조류를 반영한 이 법률들은 탄소중립에 대해, 지속가능발전에 대해 각각 중요한 방향이나 지침을 담고 있다. 해마다 일일이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제정된다. 그 가운데는 캐비닛 속 문서와 다름없는 법률들도 있다.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이겠다. 하지만 위의 두 기본법은 기후위기 앞에 선 우리가 어떻게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현 위기에서 벗어나는 한편 미래세대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잘 지켜져야 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법률이다. 법률 시행에 뒤이어 현재 인천광역시의회에서는 민과 행정(관) 협의를 거쳐 제안되고 시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인천광역시 지속가능발전 기본조례안’을 입법예고 중이다. 이들은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에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함이다. 원칙적으로 중앙정부 상위법과 지방정부 자치법규로 환경·사회·경제의 균형과 조화는 물론 현세대를 포함, 미래세대까지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처럼 환경분야의 이념으로 이해됐던 ‘지속가능발전’이 이제는 환경·사회·경제를 아우른 정책의 수립과 추진 원리로 보편화한 형국인 것이다. 이리되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었고 광범위한 공감대 형성과 시민적 합의가 전제되었다. 이번 조례 제정의 의미가 그래서 여타와 다르고 이후의 전개가 또한 달라야 한다. 이제부터 지속가능 관점에서 지속불가능한 방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지속가능발전을 인천시민이 일상에서 느끼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도 한다. 민·관협력기구(조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겠다. 특히 민·관협치(거버넌스)기구이면서 지속가능발전을 표방한 광역·기초지속가능발전협의회들의 책무가 막중하다. 도구가 마련되었으니 날을 벼려 잘 사용하는 것이 숙제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이란, 국가(國歌) 침묵의 용기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그간 축구의 변방으로 불려온 아시아의 저력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고 있다.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에게 패한 것을 비롯, 우리 태극전사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접전 끝에 무승부를 이룬 것이 그 좋은 예다. ‘공은 둥글다’는 축구계의 오랜 격언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언더독(Underdog) 아시아의 거센 돌풍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팀이 있다. 바로 ‘이란 대표팀’이다. 유럽의 복병 웨일스를 꺾으며 16강행 티켓에 바짝 다가섰음에도, 고국 이란에 돌아가면 반정부행위자로 분류돼 징역 등 각종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영국 매체 더선(The Sun)은 사형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란 대표팀은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과 2차전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하거나 ‘부르는 척’ 시늉만 하며 자국의 반정부시위에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드러냈다. 대표팀 주장인 에산 하지사피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아달라”며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라는 22세 여대생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하면서, 두 달 내내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과정에서 현재까지 460명이 숨졌고 1160여명이 다쳤다고 한다. 히잡이 상징하고 있는 여성인권에 대한 억압을 이 기회에 타파하고자 하는 이란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아스팔트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히잡법’을 제정했다. 국적과 종교 불문,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해야 하고, 여성들의 대외활동 역시 크게 제한됐다. 반발이 커질 때면, 채찍형을 내리거나 최대 60일까지 구금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히잡 의문사 사건’이 터졌고, 이를 계기로 소위 ‘테헤하쉬터디’로 불리는 이란의 2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연일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이란 내 반(反)인권 실태를 알리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축구공이 둥글듯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둥글다. 오버독(Overdog)의 위세를 뚫고 기적을 만들어내는 언더독처럼, 이란 역시 더는 히잡을 강제하기 어려운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까지 필자는 태극전사들만큼이나 이란 대표팀을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환절기 건강관리

가을이라는 날씨가 무색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환절기의 큰 일교차는 신체의 자율신경계에 부담을 주고 불균형을 일으킨다. 이 시기에는 심뇌혈관 질환·호흡기질환 등의 발병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혈압·당뇨·천식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고 만성질환자일 확률이 높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도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일교차가 1도 증가할 때 노인 사망률이 0.5%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날씨에는 무엇보다 체온조절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교차가 커질수록 외출을 할 때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좋다. 또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우리는 면역력 강화를 위해 특정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그런 음식이 좋을 수는 있지만 채소, 과일, 고기, 생선 등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운동이다. 면역력이나 근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온이 낮은 아침에는 운동을 삼가는 것이 좋고, 기저질환(심뇌혈관계· 관절질환·당뇨 등)이 있을 경우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을 할 때는 낮은 강도에서 시행하고, 평소보다 스트레칭을 길게 해야 한다. 또한 이제는 ‘단풍놀이’로 등산객도 많아지는 시기다. 등산은 건강관리에 좋은 방법이지만 실족, 조난, 추락 등 사고가 항상 도사리고 있어 매사 안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이다.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고열, 두통, 근육통 등의 전반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의 우려가 있어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후 6개월부터 만 13세 이하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어르신은 국가예방접종 대상으로 무료로 접종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올해의 환절기는 팬데믹(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이 없는 시기라고 한다. 트윈데믹의 우려가 높은 만큼, 적극적인 건강관리로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길 바란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인천시론] 그래도 믿는다, 송도니까

송도국제도시(이하 ‘송도’)는 바다 위로 우뚝 솟은 하나의 ‘경이(驚異)’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집약된 문명의 총아다. 필자는 한 칼럼을 통해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송도로 오라고까지 했다. 그저 과장이 아니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송도는 애초에 그렇게 기획됐고 차근차근 그 꿈을 실현해 왔다. 송도는 태생부터 친환경 자족도시를 지향한데다가 2003년 청라, 영종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날개를 달고 비상했다. 당시 인천시정부는 세 곳의 경제자유구역에 IT, BT 등의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집적화한다는 트라이포트(Tri Port) 전략을 추진했다. 송도는 아예 도시 이름에 ‘국제도시’를 붙이고 글로벌 기업과 외자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일찍이 보지 못한 최첨단 도시를 구현하겠다는 목표 하에 도시계획과 경관 등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유수의 글로벌 호텔이 간판 때문에 시정부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을 정도다. 공공건축물들의 외관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태백산맥을 형상화한 송도 컨벤시아, 빗살무늬 토기를 겹쳐 세워놓은 듯한 트라이 보울 등은 이 도시의 디자인 철학을 상징한다. 민간기업도 적극 동참했다. 인천 앞 바다의 너울과 굳센 나무줄기를 연상케 하는 센트럴 파크Ⅰ, Ⅱ 아파트, 과감하게 고층을 포기하고 수로를 들인 커넬워크 등은 지금 봐도 새롭다. 인천의 초고층 주상복합 시대를 연 퍼스트 월드는 2010년 건축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나같이 실험적이고 작가주의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런 송도가 최근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외곽지역 이야기다. 그곳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반듯한 사각형 외형에 각 동은 다소 촘촘하게 서있다. 얼핏 여느 신도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건축비를 아끼고 수익을 극대화 하려는 민간기업의 계산법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높이는 30층 이내로 낮추고 건폐율, 용적률을 최대한 쓰려다 보니 저층부의 오픈 스페이스가 줄어들고 상부의 스카이라인을 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니 외관 디자인 따위는 그저 형식이고 낭비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아쉬운 심정을 가눌 수 없다. 개발 초기의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송도정신’이 못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도시의 미래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여기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충만한 「송도사람」들이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버나드 쇼의 말처럼 ‘원하는 환경이 없다면 스스로 창조해 내는 사람’들이다. 송도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도시라 일컫는 이유다. 이상구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겸임교수

[인천시론] 한강 하구가 갖는 의미와 가치에 집중해야

국내 유일의 열린 하구인 한강 하구는 원시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항습지, 산남습지, 시암리습지 등 대규모 습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태계가 발달하고 저어새 산란지인 유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생태적 가치가 높을뿐더러 관광자원으로서도 잘 보전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게다가 남북 접경지역으로 남북 평화협력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민사회와 지자체가 수년에 걸쳐 지속적이고 다양한 논의는 물론 현장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례로 인천시가 지난 2019년부터 매년 한강 하구 관련 토론회를 개최해 왔다. 올해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전문가의 제안을 모아 보는 ‘인천 한강 하구 시민공감 토론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경우 최근 ‘인천시 한강 하구의 생태·환경 보전과 관리 방향 제안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지난 6월 이후 한강 하구지역 현장견학과 간담회에 이어서다.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는 2005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18년째를 맞는다. 매해 한강하구평화의 배띄우기조직위원회가 꾸려져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한강 하구를 실마리로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고 중립수역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목적과 방법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한강 하구가 갖는 의미와 가치에 집중한 경우들이다. 그런데 한강 하구 문제와 관련해 인천지역 외에 정작 해양수산부나 환경부, 국방부, 통일부 등 정부 부처와 관련 지자체들의 적극적 협력이나 연대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한강 하구가 인천시, 경기도(김포, 파주, 고양), 서울시 등 다양한 지자체가 연관돼 있어서다. 특히나 북한과 남북 공동이용수역을 공유하고 있어서다. 한강 하구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맞물려 관리 주체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강 하구가 ‘망각의 지대’라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더하다. 지난 2020년 경기연구원의 ‘DMZ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강 하구에 대한 인지율이 39.8%에 불과해 국토 분단이 인식의 분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강해 인식의 분단이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통합적 관리방안 마련을 통해 수생태 환경·수질 확보, 그리고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체계 수립, 국민인식 증진이 날로 절실해지고 있다. 한강 하구의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우선 시급하다. 한강 하구의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하려면 그 근거가 되는 법률적 토대와 기반이 규정돼야 한다.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한강 하구 문제를 공론화해 정치권과 행정의 움직임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울러 생태환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이 추진돼야 한다. 공공의 정책화와 예산 수립이 필요한 대목이다. 인천시의 정책 견인력과 정치력, 거기에 지역 시민사회의 공조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지영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인천시론]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골목’

이태원 거리엔 골목이 넘친다. 경리단길, 퀴논길, 엔틱가구의 거리, 우사단길, 회나무길, 해방촌길까지 이태원 골목 곳곳에는 청춘이 가득하다. 특히 세계 각국의 외국인이 모여드는 이태원만의 특징은, 이태원을 대한민국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소로 만들어줬다. 그래서인가, 2000년대 초반 외국 유학생과 외국인 강사 등을 통해 전파된 핼러윈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정착한 곳도 바로 이태원이었다. 핼러윈은 10월의 마지막 날 유령이 찾아온다고 믿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풍습에서 비롯된 서양 명절이다. 나쁜 유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유령으로 착각하게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면서, 이는 곧 핼러윈 축제의 상징이 됐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괴물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을 얻는 모습이 핼러윈의 가장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의 경우 20대 젊은층이 독특한 코스프레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대표적인 청년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인지 매년 10월 말이 되면, 이태원 골목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청년들로 가득 찬다. 핼러윈 축제가 청년층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대형참사가 남긴 상처는, 골목 곳곳에 남아 쉽게 아물지 않을 듯하다. 좁은 골목에 가득한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그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왔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의 그 골목을 지나가려 했을 뿐이다. 오히려 청년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끔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인 것이다. 주최 측이 없어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거나, 갑자기 사람이 몰려드는 돌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변명은 구차하다. 오히려 사고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애쓴 경찰과 의료진, 그리고 직접 심폐소생에 나선 시민들의 진심 어린 용기에서 희망을 본다. 하지만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이 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나온다했던가?. 시신 바로 옆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사진을 찍어 이를 자랑하듯 SNS에 올린 빌런들이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순간이다. 영웅과 빌런이 혼재했던 아비규환의 골목에서, 우린 154명의 소중한 청년들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핼러윈이 주는 어감에 서글픔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태원의 골목은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골목을 스치는 바람마저 울음소리인 듯, 골목 속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환절기 건강관리

가을이라는 날씨가 무색할 만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환절기의 큰 일교차는 신체의 자율신경계에 부담을 주고 불균형을 일으킨다. 이 시기에는 심뇌혈관질환·호흡기질환 등의 발병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혈압·당뇨·천식 등의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고 만성질환자일 확률이 높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도 한 연구결과를 보면 일교차가 1도 증가할 때 노인 사망률이 0.5%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날씨에는 무엇보다 체온조절이 중요하다. 따라서 일교차가 커질수록 외출할 때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좋다. 또한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우리는 면역력 강화를 위해 특정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물론 그런 음식이 좋을 수는 있지만 채소, 과일, 고기, 생선 등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운동이다. 면역력이나 근력 증진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온이 낮은 아침에는 운동을 삼가는 것이 좋고, 기저질환(심뇌혈관계·관절질환·당뇨 등)이 있을 경우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운동을 할 때는 낮은 강도에서 시행하고, 평소보다 스트레칭을 길게 해야 한다. 또한 이제는 ‘단풍놀이’로 등산객도 많아지는 시기다. 등산은 건강관리에 좋은 방법이지만 실족, 조난, 추락 등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 매사 안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이다.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 고열, 두통, 근육통 등의 전반적인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의 우려가 있어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후 6개월부터 만 13세 이하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어르신은 국가예방접종 대상으로 무료로 접종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올해의 환절기는 팬데믹(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이 없는 시기라고 한다. 트윈데믹의 우려가 높은 만큼, 적극적인 건강관리로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길 바란다. 안상준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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