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로고
2025.07.01 (화) 메뉴 메뉴
위로가기 버튼

[인천시론] 시를 잊은 그대에게 권하는 시 낭송

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image

지나간 시절 ‘라디오키즈’가 있었다. 라디오를 끼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 를 들으며 울고 웃었다. 잠 못 드는 한밤중, 하얗게 지새우는 밤을 채우는 건 노래였다. 흥얼대며 따라 부를 노래가 없다면 제 아무리 그리운 이가 새벽길을 건너온다 해도 어둡고 길기만 한 게 밤이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밤을 선생으로 삼았지만 범인들이 날로 새우는 밤은 허적하다. 밤을 선생으로 떠받드는 데는 광막한 시공과 침묵만으로도 족하다. 밤을 벗 삼아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에겐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별빛조차 없는 밤길에선 휘파람과 콧노래가 길을 인도한다. 외로이 밤을 건너야 하는 청춘들 곁에 달랑 라디오만 있던 시절, 밤을 잊은 사연들이 모여 별빛이 되고 달빛이 돼 줬다. 낭만이 밤과 라디오를 타고 흐르던 시절이었다.

 

라디오키즈로 자라서였을까. 정재찬 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최고” 시 선생이 됐다. 숫자와 수학기호만 알아도 생은 충분하다 여겼던 공대생들이 시 강좌에 열광했다. 시를 소개하고 시인을 알린 강좌를 에세이로 엮은 책은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시를 잊어도 무방한 게 삶이지만 밤이 사람에게 깊이를 안기듯 시야말로 사람을 흔들어 존재를 일깨운다. 저자가 소개한 여러 시편들 중, 소월이 남긴 ‘부모’를 따라 읊는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이야기 들어라//나는 어쩌면 생겨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소월이 어머니를 통해 듣는 애닯은 사연이 몸에 와 박힌다. 이미 부모가 돼버린 이들은 섧게 따라 부르며 소주잔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를 잊은 삶일지라도 노랫가락에 얹힌 시구는 밤과 함께 찾아든다.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 부르던 시절, 뒷골목마다 노랫말이 흥건했다. 가락에 시를 얹은 노래로 그날 시름을 달랬다. 시를 잊은 게 아니라 시만으로 족하지 않아서 고래고래 시를 읊었다. 노래방이거나 단란주점이거나 노랫말로 신분을 바꾼 시들이 밤을 채웠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할수록 시가 고팠다. 시를 낭송하는 이들이 ‘생겨나왔고’ 자연스레 시 낭송 모임으로 뭉쳤다. 낭송자들을 만나면서 시는 제대로 시가 됐다. 인천에는 ‘섬섬옥수커뮤니티’가 시 낭송회를 열어 박제된 글자들을 소리로 살려냈다. 눈으로 훑어 내려가는 감상에선 맛볼 수 없던 가락이 입말로 되살아났다.

 

지난주, 섬섬옥수커뮤니티가 아홉 번째 시낭송회를 가졌다. 소월 시집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스무 명 낭송자가 소월 시를 읽었다. 노래가 된 소월의 시들 몇 편은 가객 목소리에 실려 객석으로 퍼져나갔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는 다 함께, ‘개여울’은 가수가 홀로 불렀다. 신포동 소극장 ‘떼아뜨르 다락’에 밤이 깊어 가면서 시를 잊었던 이들은 귀와 입으로 소월을 다시 만났다. 고재봉 교수는 소월 시를 낭송하는 의미를 “저마다 느낌과 해석이 다르므로 상대방 의견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면서 “노래와 같이 유려한 리듬감을 함께 읊으며 즐기는 사이에 어느덧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긴다”고 해제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노래가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됐듯 ‘우리’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 낭송을 권한다. 소월이 100년 전 남긴 시집은 여전히 낭송자를 기다리고 있다. 시를 비롯해 문화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스스로 해 보는 일이라면 시낭송은 참 만만한 문화 향유법이다.

댓글(0)

댓글운영규칙

-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해될 수 있습니다. 공공기기에서는 사용 후 로그아웃 해주세요.

0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