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우리 국민은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위헌·위법한 내란 사태는 독재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 사회가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를 되돌아보게 했다. 불법 계엄 일주일 후, 한강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을 통해 폭력과 불평등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성찰할 계기를 만들어 줬다. 마치 밤도둑처럼 들이닥친 이번 위기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회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확대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했다. 소득과 자산, 기회의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생활고에 절망한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잇따랐다. 2014년,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의 위험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이런 비극을 끝낼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또 우리나라는 디지털·AI 혁명, 국제질서 재편, 저출생·고령화, 저성장, 기후 위기 등 전례 없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초과학기술이 몰고 올 새로운 불평등과 불안에 우리는 어떤 가치와 정책을 바탕으로 대응해야 할까. ‘기본사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기본사회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함으로써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고 실질적 자유를 달성하는 사회를 뜻한다. 기본사회는 ‘기본소득’의 범위를 뛰어넘어 주거·금융·교육·의료·공공서비스 등 삶의 필수 영역을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서비스’, 그리고 경제적 가치를 폭넓게 순환시키는 ‘사회적 경제’를 아우른다. 필자의 정치적 비전인 ‘모두를 위한 나라’ ― 사는 곳, 세대, 성별,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와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3월12일, 민주당이 기본사회위원회 2기 발대식을 열면서 정책 논의가 본격화됐다. 필자는 경기도 기본사회위원장으로서 도내 31개 시·군의 다양한 여건과 필요를 반영한 ‘경기도형 기본사회’ 모델을 숙성하고 있다. 이미 경기도가 시행한 ‘청년기본소득’은 청년들의 정신건강과 행복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전남 신안의 ‘햇빛 연금’은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이익을 주민과 공유해 지역 인구 증가에 한몫했다. 전국 지방정부가 추진해 온 많은 정책의 성과들은 기본사회의 가치와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기본사회를 현실화하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사회안전망 강화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정책을 입체적으로 설계해 더는 경제적 약자가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산층을 보호하고 양극화를 예방하는 일석삼조의 정책이다. 우선 과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경기도가 앞장서겠다. 경기도가 하면 대한민국이 할 수 있다. 시민 참여형 정책으로 공감대를 넓히고 증거 기반 정책 추진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 지역 실험의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small betting, scale up’의 방식으로 모범 사례를 만들겠다. 기본사회로의 이행을 통해 더욱 튼튼한 민주주의와 민생 회복을 함께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트라우마를 조속히 치유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드라마 ‘오징어게임’처럼 서로를 해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극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를 넘어 협력과 공존의 정신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본사회의 여정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오피니언
경기일보
2025-03-27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