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서울 어린이대공원까지 출퇴근을 하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에서 서울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정류장과 플랫폼에서 간격을 유지하고, 공간을 만들며, 질서정연함을 유지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 재학할 때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 등하교를 했다. 당시 대중교통은 콩나물시루, 지옥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먼저 타려 했고,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찬 공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일명 ‘푸쉬맨’이라고 하는 요원까지 배치했던 기억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발전하면서 시민의식의 향상과 인파가 몰려 발생한 각종 사고도 질서정연함을 만들어냈지만 스마트폰의 보급과 사용도 한몫하는 것 같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아무리 인파가 몰려들어 복잡해도 필사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 간격이 좁아져 타의적으로 폰 화면을 힐끗 보게 될 때가 있는데 화면에는 게임, 쇼핑, 웹툰, 드라마, 영화, 예능, 카톡, 인터넷 강의 등 지금 시청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집중하면서 폰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사수한다. 심지어 ‘걸으면서 폰을 하지 말라’는 캠페인까지 벌이는 형국이다. 심리학자들은 유물론자 포이에르바하의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다(I am what I eats)’라는 말을 차용해 ‘내가 보는 것이 곧 나다(I am what I see)’라고 말하면서, 보는 것들과의 관계가 세상에 대한 관점과 마음가짐을 결정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차창 밖 자연을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탑승자 대부분이 폰을 본다. 봄이 왔다. 겨우내 자기를 비워낸 나무들에서 새순이 움트고 잎과 꽃이 푸르고 화사하게 피어난다. 코로나 이후 일상을 회복하고 마스크도 벗게 돼 적막했던 회색빛 도시의 풍경이 역동적인 사람들의 움직임과 화려한 꽃과 나무로 채워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청명한 부활의 계절에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로 자신을 채우며,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한다(갈 2:20). 이 좋은 계절에 ‘폰을 보다, 봄을 보다’를 의도적으로 기억하면서, 폰을 보던 고개를 들어 꽃과 나무, 자연을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말을 걸어 보자. 관점과 내면이 봄의 생명력과 유의미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오피니언
경기일보
2023-04-14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