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맨드라미 서정

8월 중순에도 소낙비가 내렸다. 어른들은 비가 내리면 과일들이 여물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그래도 개구쟁이들은 빗줄기 속에서 마냥 즐거웠다. 철 없던 시절의 추억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비를 맞으며 뛰놀다 출출해지면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꼬락서니 하고는”이라며 타박했다. 빨래 거리를 만들어 온다는 이유에서다. 장독대 옆에서 그렇게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노라면 함초롬히 웃어주는 식물이 있었다. 맨드라미였다. “괜찮아”라고 속삭여 주는 누님 같았다. ▶여름 끝 무렵이었지만 후텁지근했다. 맨드라미는 그럴 즈음 장독대 옆에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장독대 옆은 어머니의 화단이었다. 어머니는 매년 봄 장독대 옆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소년의 눈에는 닭볏처럼 생긴 모습이 꽃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머니는 맨드라미를 액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식물로 믿었다. 지네가 맨드라미 때문에 장독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녀석, 아니 그녀의 키는 다 자라면 90㎝ 정도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난상 피침형으로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8월 원줄기 끝에 닭볏처럼 생긴 꽃이 흰색, 홍색, 황색 등의 색깔로 핀다. 대개는 붉은색으로 피지만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 색과 모양 등이 있다. 꽃받침은 다섯갈래로 갈라지고 갈래 조각은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화단에 직접 심기 전에 파종상자에 뿌려 잎이 2~3장 될 때 한번 작은 분에 옮겨 심었다 꽃이 핀 상태로 화단에 30㎝ 간격으로 심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꽃색은 더욱 화려해진다. 20도 이하 14시간 이내 햇볕을 받아야 꽃눈의 분화가 촉진되고 아담한 형태의 꽃이 핀다. 14시간 이상이 되면 개화도 늦어지고 키도 커진다. ▶꽃 모양이 닭볏을 닮았다고 한자로는 계관화(鷄冠花)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그녀의 친정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인도라는 사실이다. ‘뜨거운 사랑’이란 꽃말까지 있다. ▶우리 꽃으로 알고 누님처럼 대했던 맨드라미가 먼 나라에서 한반도로 시집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하긴 원래부터 우리 것들인 식물들이 얼마나 될까. 아침저녁으로 풋내기 감성에 푹 빠지고 있다. 얼떨결에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반지하 주택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영화 ‘기생충’에 나온 주인공 가족의 집은 반지하였다.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폭우로 물을 퍼내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당시 외신은 한국의 ‘반지하(Banjiha)’를 집중 조명했다. 반지하 거주자들을 인터뷰하고, 실상을 보여줬다. 영국 BBC는 ‘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은 허구의 작품이지만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 산다”고 했다. 최근 반지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많은 피해가 있었고, 서울에서 반지하가 물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한 일가족이 사망했다. 외신들은 ‘반지하(banjiha)’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 예방 대책의 부재가 키운 인재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들어선 반지하는 아직까지 도시 저소득층 주거를 대변한다. 반지하 공간은 환기가 안 되고 습기 제거를 못해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 거주자들에게 호흡기와 피부 계통 질환이 많다. 침수 시에는 물이, 화재 시에는 연기가 빠지지 않아 안전사고에도 위험하다. 이에 정부가 거주지로서 반지하를 지양하겠다는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다. 반지하 가구수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총 32만7천가구가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에 거주한다. 2005년 58만7천가구, 2010년 51만8천가구, 2015년 36만4천가구에서 감소했지만 아직도 많다. 남아 있는 반지하는 노후화도 심각하다. 이번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하자 경기도와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나온 정책으로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반지하 거주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반지하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면서도 살 만한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 도심에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 “반지하에 살면 안 좋은 건 알지만, 갈 곳이 없다”는 거주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만정책법

대만의 수교 국가는 19개국이다. 국명(國名)도 낯설다. 바티칸과 파라과이, 니카라과 등을 빼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는 실질적인 동맹국이다. 대단한 반전이다. ▶미국은 정식 수교국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특별법까지 만들어 이 나라와 교류 중이다. 지난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 그렇다. 그해 미국은 대만과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고 해당 법을 제정했다. 대만에 대해 (중국에 맞서)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할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이것으로는 부족했을까. 미국은 최근 또 다른 대만 관련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상원에 계류 중인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이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발의했다. 대만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국가 중 주요 동맹국 지정과 향후 4년 동안 35억달러(5조9천억원) 안보지원 등이 골자다. ▶해당 법안에는 대만이 각종 국제기구와 다자무역협정에 참여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 증진 조항도 담겼다. 메넨데스 위원장은 “이 법안의 취지는 1979년 대만관계법 제정 이후 가장 포괄적으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 재정립”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어정쩡한 대만과의 관계는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미국의 원칙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만은 미국의 실질적인 동맹국이 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충돌한다. ▶변수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 오는 10월 인도와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훈련 장소는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의 아우리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지대인 실질 통제선(LAC)으로부터 95㎞ 떨어졌다. ▶중국은 오는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 봉쇄 군사훈련이 대표적이다. ▶대만에 대한 경제적 압박 강도를 높여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정권 교체를 기도하고 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전략적 모호성이자, 교묘한 외교술이다. 그런데 대만정책법과 대만관계법과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게 궁금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온난화 기상이변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듯하다. 기후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는 7월 중순. 이른바 장마였다. 장마만 지나면 무더위 속에 한두 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을 맞았다.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기상예보도 현재는 달라졌다. 올해 기상청은 지난달 27일 장마 종료를 발표했다. 이후 폭염과 열대야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했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것까지는 과거와 동일하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기상현상이 있다. 국지성 집중호우다. 장마 뒤 집중호우는 최근 매년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일부터 경기도, 인천, 서울 등 수도권을 강타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우로 인구가 집중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은 큰 피해를 입었다. 집중호우는 기상이변으로 분류된다. 단기간 국지적으로 쏟아붓는 집중호우는 예측하기 어렵고 당해내기도 힘들다. 기상이변 이야기는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수십년 전부터 기상학자들이 경고한 문제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남극의 빙하가 녹는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이 같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인간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차별 화석연료 사용, 환경 파괴로 온난화를 가속시켰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기상이변 발생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기록적인 홍수와 한파, 가뭄 등은 인간의 환경 파괴의 대가다. 그동안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 문제는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누군가 준비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이미 우리 옆에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가 보여줬다. 그동안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안일했던 태도를 반성하며 정부는 물론 개인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채솟값 고공행진

심술도 이런 심술이 없다. 장맛비에 밤에는 바람도 한 줌 안 분다. 땀은 비오듯 흘러내린다. 누가 열대지방에서 이런 무더위를 밀수했을까. 피부에 와닿는 불쾌지수도 그렇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도 역대급이다. ▶폭염 말고도 서민들을 괴롭히는 게 또 있다. 하루가 다르게 고공행진 중인 채솟값이 그렇다. 시장에 나가 보면 어제 써놓은 값이 무색하다. 상인들조차 손사래를 칠 정도다. 서민들도 서민들이지만 음식점 업주들의 시름도 깊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상추는 63.1%, 배추는 무려 80.1% 뛰었다. 특히 배추 김치가 필수인 식당들은 김치 담그는 비용이 체감상 3배 올랐다고 호소한다. 수도권에서 15년 동안 보쌈집을 운영해온 한 업주는 “원래 여름 배추가 비싸긴 하지만 이렇게 비쌌던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배추 3포기가 들어 있는 한 망 가격이 낮을 때는 6천~7천원 정도지만 올여름은 4만원대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상인들의 한숨 소리에 땅이 꺼질까 걱정된다. ▶보쌈은 배추에 싸 먹기도 하고 배추김치를 곁들여 먹기도 해 꼭 필요한데, 이미 올해 초 1천원 올려 추가로 올리기에는 손님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전체적인 단가가 30~40% 뛰었지만 가격에는 그만큼 반영할 수 없다. 수도권의 또 다른 보쌈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틀에 한 번 3~4포기씩 겉절이를 담그는데 시장에 나가 직접 배추를 살 때마다 하루하루 배춧값이 오르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채솟값 폭등에 집 안에 텃밭이나 화분 등을 두고 직접 키워 먹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관련 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텃밭 가꾸기 관련 상품 판매도 큰 폭으로 늘었다. 씨앗과 모종 판매량 등은 41% 증가했다. 특히 값이 뛴 대파(77%)와 쪽파(420%), 상추(42%), 배추(13%) 등이 잘 팔렸다. ▶미니 화분은 35%, 삽이나 호미 등은 13% 판매량이 늘었고 전지가위(21%)와 식물 영양제·비료(8%), 식물 지지대(14%) 판매도 증가했다. 채솟값이 치솟다 보니 이처럼 텃밭 가꾸기 관련 상품이 인기라는 기이한 현상까지 이어진다. 끝 모를 물가 인상은 도대체 언제 멈출까. 고유가·고금리에 이래저래 서민들만 힘든 요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청년의 기준

청년(靑年). ‘푸른 나이’라는 뜻이다. 젊은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면서 성인이라는 의미에서 청소년과 구별된다. 청년의 범주는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일까? 유엔은 2015년 새로운 연령기준을 제안했다.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 등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5단계로 나눴다.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으로 분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만 65세까지 청년이다. 한국인들을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맨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중위연령)는 ‘만 41세’이다. 1974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에 속한다는 의미다. 1950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만 19세였고, 1980년대에는 만 21.5세였다. 2040년에는 52.6세가 중위연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가 연령의 개념을 바꿔 놓고 있다. 흔히 20대를 청년으로 규정했지만 사회정책과 인구 구성의 변화 등을 고려해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 차원에서 일고 있다. 유엔이 새로운 연령기준을 제안한 것도 그런 의미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었다 해도 65세까지를 청년으로 분류한 유엔 기준이 와닿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청년 기준은 제각각이다. 법마다, 규정마다 들쭉날쭉하다. 통계청은 청년을 15~29세로 정의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나 각종 청년 고용지표는 이 기준을 따른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도 15~29세까지를 청년으로 본다. 청년 실업자 지원책을 담은 고용보험법·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은 15~34세를 청년으로 했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상에선 39세까지가 ‘청년 상인’이다. 농어촌에선 40대도 청년으로 본다. 세법상 청년 기준은 만 15~34세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그동안 조세특례제한법에 15~29세, 19~34세가 혼재돼 있었는데 15~34세로 못 박았다. 하나의 법에 각기 다른 청년 기준으로 혼란스러웠는데 적절한 조치다. 효율적 행정을 위해 청년의 나이 기준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경제난·취업난에 팍팍해진 청년의 삶을 챙기는 다양한 정책도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달 탐사선 ‘다누리’

태극기를 단 대한민국의 첫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가 지난 5일 오전 8시8분(한국 시간) 우주로 발사됐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사된 다누리는 발사체로부터 정상 분리돼 목표한 궤도에 진입, 오전 9시40분쯤 지상국과 첫 교신에 성공했다. 발사 시간이 8시8분, 8월8일 창간 34주년을 맞은 경기일보의 감회가 남다르다. ‘다누리’는 순우리말 ‘달’과 ‘누리다’의 ‘누리’가 더해진 이름이다. 달을 남김없이 모두 누리고 오길 바라는 마음과 최초의 달 탐사가 성공하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지구와 달은 38만km 떨어져 있다. 다누리는 달로 곧장 가지 않고 태양 쪽의 먼 우주로 가서 최대 156만km까지 거리를 벌렸다가 나비 모양의 궤적을 그리면서 돌아와 달에 접근할 예정이다. 다누리는 4.5개월 항행을 거쳐 12월16일쯤 달 궤도에 진입하고 12월31일 달 상공 100㎞에 안착하게 된다. 내년에 관측을 개시하면 한국은 달 탐사에 성공하는 세계 7번째 나라가 된다. 21세기 우주 강국으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것이다. 다누리는 1년간 하루 12번씩 궤도를 돌면서 달 관련 정보를 수집해 지구로 보내게 된다. 고해상도 카메라가 찍어 보내는 달 표면 영상은 달 착륙선 후보지 탐색에 활용된다. 정부는 2030년 초까지 1.5t급 달 착륙선을 개발해 발사하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6월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성공적 발사에 이어 다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2022년은 한국의 우주탐사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주는 무한대로 펼쳐진 기회의 땅이다. 모건스탠리는 2020년 3천870억 달러였던 우주시장이 2040년에 1조1천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발사될 위성은 1만7천여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 우주 강국에 다가서고 있지만, 세계 우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못 미친다. 성공적인 우주 개발과 우주 영토 확장을 위해 정부의 과감한 예산 투자와 인력 육성 등 첨단 우주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탈라스 전투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資源富國)이다. 페르시아어로 땅을 뜻하는 ‘스탄(Stan)’이 붙은 나라들을 대표한다. ▶이 나라의 ‘탈라스’라는 도시에서 남서쪽으로 190㎞ 떨어진 곳에 탈라스 강이 흐른다. 주변에선 잎담배 재배와 양·산양 방목이 이뤄진다. 이곳에서 8세기 중반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탈라스 전투’가 펼쳐졌다. ▶아랍 군대와 당나라 군대가 회전(會戰)했다. 당시 탈라스 강변에서 당나라 군대 3만여명과 이슬람 압바스 왕조와 티베트 연합군 8만여명이 맞붙었다. 당나라 군대는 병력 열세에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일방적인 패배였다. ▶닷새 동안 이어진 전투의 초반 양상은 대등했지만 당나라 군대가 무너졌다. 동맹군으로 참전했던 카를루크가 압바스 측에 붙으면서 당나라 군대는 전멸했다. 장수와 병사 수천명만 가까스로 도망쳤다. 751년 오늘의 일이다. ▶이 전투에 대한 중국의 기록은 짧다. 동원된 병력이 많지 않은 데다 진 싸움이어서 그렇겠다. 승자인 이슬람의 기록도 많진 않다. 승장인 아부 무슬림이 견제받다 암살당한 뒤 기록도 함께 지워진 탓이다. 양쪽에서 기억하기 싫거나, 지우고 싶었을 터이다. ▶하지만 세계사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다. 중원을 차지했던 당나라와 압바스 왕조라는 두 제국의 충돌로 중국의 서진(西進)이 막혔다. 오늘날까지 유지되는 이슬람과 유교세계 경계선도 이 전투의 결과다. 불교·힌두교·조로아스터교·기독교를 신봉하던 중앙아시아도 모두 이슬람교로 바뀌었다. ▶이들 지역 나라들의 국명이 ‘스탄’으로 끝나는 점도 이 전투의 소산물이다. 무엇보다 큰 영향은 제지술의 전파다. 당나라 군대 포로들을 통해 제지술이 서역에 알려졌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스페인 발렌시아에도 제지술이 도입됐고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역사는 이처럼 결코 한곳에만, 한 시대에만 머물지 않고 계속된다. 역사가 일깨워주는 명쾌한 이치(理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정치에 묻힌 지역화폐

인천은 서울·경기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많다. 당연히 이들의 주요 소비도 편의점은 물론 식당 등까지 서울·경기 등에 쏠려있다. 게다가 문화인프라 등도 서울 등에 몰려 있어 타 지역 소비가 높은 편이다. 이를 역외소비, 즉 인천시민이 다른 지역에서 돈을 쓰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역외소비를 줄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시켜보자는 취지로 생긴 것이 지역사랑상품권, 바로 지역화폐다. 초기에는 대형마트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영세한 소상공인들을 돕자는 것이다. 다만 종이상품권이 태생적으로 가진 높은 발행비용, 휴대의 불편함, 소위 ‘깡’이라 불리는 불법 환전의 문제 등이 발생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한 것이 바로 전자지역화폐다. 지난 2018년 유정복 시장이 영세 소상공인 지원 취지로 도입한 인처너(INCHEONer) 카드로 시작해 이제는 인천e음으로 불린다. 이젠 대부분 시민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지역화폐가 정치권에서 이슈화하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할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는 아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일부 정치인들과 정당이 인천e음의 성공을 성과물로 부각시킨 탓이다. 정치역학상 상대 정치인들과 정당은 당연히 부정적인 부분을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화폐 발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시민은 사라져갔다. 지역화폐가 정치에 묻힌 것이다. 지역화폐는 곧 시민들의 살림, 즉 씀씀이와 직결돼 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소상공인의 매출을 끌어올려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희망이다. 그리고 가입자수 234만6천여명의 인천e음은 인천시민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라도 지역화폐가 정치적 이슈에서 빠져나와 시민들의 품, 그리고 영세 상인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요란법석이다. 미국 내 의전서열 4위 정치인의 방문을 놓고 말이다. 해당 인사의 동선을 따라 항공모함도 이동했다. 외신들도 분주하다. 이 인사의 첫 도착지는 싱가포르다. 총리가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 얘기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를 지역구로 둔 다선 의원이다. 미국 내 대통령과 부통령, 주지사(해당 주에서) 다음으로 의전서열이 높다. 연방 대법원장보다도 한 단계 위다. 우리 나이로 여든 세살이다. ▶첫 도착지인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부터 위상이 입증됐다. 국가원수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트랩을 내렸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리셴룽 총리가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맞았다. 매우 이례적이다. ▶리셴룽 총리는 펠로시 의장에게 “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등에 미중(美中)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외교부도 “미국과 싱가포르 양국 간의 훌륭하고 오랜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외교적인 수사(修辭)이지만, 싱가포르 방문을 전적으로 반긴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리셴룽총리도 거들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참여를 심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 미국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자진해 발표한 셈이다. 펠로시 의장의 다음 행선지는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등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맹방(盟邦)이라고 추켜세우는 한국과 일본 방문이 맨 마지막에 잡혀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이들 나라 순방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만을 방문해서다. 중국이 눈에 띌 정도로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간다면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다. 중미관계를 심각하게 파괴해 매우 심각한 사태와 후과(後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양국 사이의 긴장 고조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자체가 지닌 정치적 폭발성 때문이다.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새로운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겉보기에 3대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은 언제 어떻게 모였는지 모르지만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생계와 생존을 위해 뭉쳐 가족이 됐고, 할머니 하츠에의 연금을 기반으로 각자 생활비를 근근히 벌어 쓴다. 필요한 물건을 훔쳐서 조달하기도 한다. 이들은 혼인이나 혈연, 입양 등 제도가 인정하는 가족은 아니다. 대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돼 있다. ‘사랑’이 이들의 관계를 지탱해준다. 이 영화는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가족은 전통적인 개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생물학적 가족과 살지 않는 다양한 형태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친구나 애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수와 가구원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2천660가구로 나타났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가구 가운데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같이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친족 가구에 속한 가구원 수도 늘어 지난해 비친족 가구원은 101만5천100명으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2만6천3가구로 가장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 이상(62.7%)은 가족 범위를 사실혼, 비혼·동거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같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엔 각각 87.0%, 82.0%가 동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지원은 여전히 가족 단위에 맞춰져 있다.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공제 가능하며,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도 신혼부부 등을 상정해 지원한다. ‘새로운 가족’ 형태에 걸맞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통령 지지율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취임 80일 만에 30% 선 아래로 추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직무 수행에 긍정 평가는 28%, 부정 평가는 62%로 나타났다.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세대별로 보면 70대 이상(긍정 48%·부정 34%)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 특히 30대와 40대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17%에 불과했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에서도 긍정 평가가 40%, 부정 평가가 47%였다. 부정 평가 이유는 인사 문제가 21%로 가장 높았다. 경험·자질 부족(8%), 경제·민생을 살리지 않음(8%), 독단적·일방적(8%), 경찰국 신설(4%), ‘내부 총질’ 문자 공개로 인한 여당 내 갈등(3%) 등도 이유였다. 지지율이 추락한 외국 국가지도자들이 회자되고 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고 2018년 3월 취임 후 경제회생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현실은 빈부격차와 공안정치, 이에 따른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지율은 2020년 1월 6%까지 하락했고, 줄곧 한 자릿수였다. 그는 가까스로 임기를 마쳤으나 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지지율이 20%대까지 내려앉았다. 2021년 11월 지지율이 24%였다.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부패, 가난과 불평등, 인플레이션, 실업 등이 꼽혔다. 올해 12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지만 야당 후보에 밀리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지율 하락은 정권 발목을 잡았다. 스가 전 총리의 내각 지지율은 지난해 5월 31%까지 떨어졌다. 2020년 9월 취임 이후 최저였다. 결국 1년 만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자리를 내줬다. 취임 3개월도 안 된 윤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으로 국정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통상 30%는 레임덕의 마지노선이다. 취임 2년차와 5년차에 20%대 지지율을 기록한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에 비해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통령실은 “일희일비 않겠다”고 하는데,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한다. 국민들의 불안과 걱정이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팽나무에 대한 단상

잎은 어긋 난다.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다. 꽃은 5월에 핀다. 새로 자란 가지 밑부분에선 수꽃이 취산꽃차례로 달린다. 윗부분 잎겨드랑이에 암꽃이 1~3개 핀다. 꽃받침 조각은 4개다. 수꽃에는 수술 4개와 퇴화한 암술 1개가 있다. 암꽃에는 짧은 수술과 암술대가 2개로 갈라져 핀다. ▶무슨 유명한 식물이길래 서두가 길까. 팽나무의 이력서다. 그런데 낯설다. 그동안 팽나무라는 본명 대신 달주나무나 매태나무, 평나무 등으로 불려온 탓이다. 이를 테면 할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할 때는 집안 돌림자를 써 한자 이름으로 점잖게 짓지만, 어렸을 때부터 개똥이라는 편한 이름으로 불린 격이다. ▶이 나무의 삶을 더 들여다 보자. 열매는 둥글고 둘레는 7㎜ 남짓하다. 색깔은 등황색으로 10월에 익는다. 맛도 제법 달다. 표면에는 그물 같은 주름이 있다. 옛날부터 방풍림이나 녹음 등을 위해 심었다. 목재는 가구재·운동기구재로 이용되고, 도마 재료로 가장 좋다. 친정은 동북아시아다. ▶요즘 이 나무가 드라마에 깜짝 출연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녀석은 소덕동 마을 정자나무로 나온다. 출연료는 받았을까.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보호수로도 지정된다고 한다. 어지간한 배우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계에서 식물을 도구화하면 안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멸종위기식물 보전을 연구하는 허태임 박사다.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어요.”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땅에서 생존하는 것들은 다 존중받아야 한다. 주말을 맞이하면서 불현듯 엄습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뇌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지방의회의 가치

1952년 4월25일 우리나라 최초로 시·읍·면의회 의원선거가 시행됐다. 다음 달 10일에는 제1차 시·도의회 의원선거가 진행됐다. 1994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서다.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벌어진 6·25 전쟁 중에서도 민의는 존중 받았다. 하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지방의회는 해산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관선제(임명제)로 바뀐다. 군사정권은 유신헌법에 규정했다.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 전쟁통에서도 시행했던 지방자치제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혔다. 대한민국을 민주화 열기로 뜨겁게 달궜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지방자치 부활의 모티브가 된다. 당해 시행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은 지방자치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1990년 12월15일 국회에서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자치법, 지방의회의원선거법, 지방자치단체장선거법 등 3개 법안 통과됐다. 이를 근거로 기초·광역의회 의원선거(1991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5년)를 치른다. 비로소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완성됐다. 제11대 경기도의회가 올스톱했다. 여야(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동석으로 의회출범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양당간 주도권 싸움으로 의장 선출, 원 구성도 못한 채 개점휴업이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가운데 유일하다. 민생경제 회복, 비상경제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1조4천387억원도 책상 서랍 안에 있다. 실타래가 풀릴 기미가 없자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민생이 우선입니다’라며 예산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도민의 대변자다. 집행부를 감시·견제하고 주민을 위한 법제정과 지역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 일 하라고 도민들이 권한을 줬다. 도의원은 지방국회의원이다. 중앙 정치의 당리당략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도민을 위해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가치는 의원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김창학 정치부 국장

[지지대] 하이마스

폭탄 여러 발이 한꺼번에 발사된다. 소름 끼친다. 저 폭탄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을 인명이나 시설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무기의 명칭은 다연장 로켓(MRL:Multiple Rocket Launcher)이다. 북한의 방사포가 대표적이다. ▶단점은 무겁고 크다는 점이다. 운반하고 가동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덩치만 큰 무용지물이다. 다연장 로켓은 이처럼 기동력에 한계가 있었다. 수송기를 통한 수송과 전개가 불가능했다. 배치에도 제한이 있었다. 뭔 뜬금 없는 무기 타령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해당 무기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제작된 시스템이 바로 하이마스(HIMARS:High Mobility Artillery Rocket System)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고속기동 포병로켓시스템이다. 다연장 로켓의 빠른 기동과 배치 등을 위해 부피를 줄였다. 발사대도 절반으로 줄였고, 구동 중형 전술트럭에 탑재한다.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하이마스가 등장했다. 주로 우크라이나군이 운용 중이다. 최근 한달 동안 러시아 탄약고 50곳을 파괴했다고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이 발표했다. 미국이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군이 점령한 헤르손주와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을 잇는 교량 3곳이 최근 하이마스로 공격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시스템으로 한번에 정밀 유도 로켓 6발을 발사할 수 있다. 사거리는 80㎞ 안팎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하이마스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노바 카호우카 마을 러시아 탄약고를 공격해 러시아군 52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도 하이마스가 주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반응도 민감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으로부터 하이마스를 제공받는다면 그동안 공격하지 않았던 목표물을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누가 먼저 도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전쟁은 분명 잘못된 ‘불행’이다. 무기는 갈수록 진화한다. 거기에 가공할만한 파괴력까지 계속 갖춰 나간다면, 결말은 결국 인류 공멸일뿐이다. 지구촌 반대편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화(禍)가 언제 우리에게로 덮칠지 모른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삼청교육대 피해자 보상

1979년 12·12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 5월31일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설치했다. 국보위는 사회정화를 빌미로 군부대 내에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다. 8월4일 계엄포고 13호(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를 발표, 영장도 없이 6만여명을 체포했고 4만여명을 전방 부대로 보냈다. ‘삼청교육(三淸敎育)’은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기 위한 명분이었지만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이뤄졌다. 순화교육이란 미명하에 길거리에서 싸우거나 통행금지 위반자, 술에 취한 무직자, 군부정권 비판자, 노동조합 간부 등이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1981년 1월까지 6만755명을 체포해 보안사령부·중앙정보부·헌병대 요원과 검찰·경찰서·지역정화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A·B·C·D 4등급으로 분류했다. 심사위는 A급 3천252명은 군법회의에 회부했고 B·C급 3만9천786명은 4주 교육 후 6개월 복역케 한 다음 2주 교육을 하고 훈계방면했다. D급만 경찰이 훈계하고 놓아줬다. 삼청교육대 훈련은 총을 든 헌병이 감시하는 가운데 가혹하게 진행됐다. 불법 구금과 구타, 강제노역이 있었다. 1988년 국방부 국정감사 발표에 의하면 삼청교육대 관련 모두 421명이 사망했다. 정신장애 등 상해자도 2천678명에 이른다. ‘삼청교육 수료자’ 낙인이 찍혀 취업·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피해자가 부지기수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삼청교육은 전두환 정권 초기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 삼청교육대에서 벌어진 실태를 조사했다. 위원회는 2010년 활동기한 종료로 해산됐고, 밝혀내지 못한 과거사 진상조사를 위해 2020년 재출범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미해결 과제에 집중했고, 이번에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법 개정을 통해 포괄 보상해야 한다는 특별권고를 내렸다. 생존한 입소 피해자들의 치유·명예회복·보상이 필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전염되는 자살

‘베르테르 효과’라는 게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여겨 모방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18세기 괴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을 하면서 책을 읽은 독자 중 수십명이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한데서 유래됐다. 실제 1962년 배우 마릴린 먼로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이후 같은 달에만 300여명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 2003년 홍콩 배우 장국영의 투신 자살 후에도 일반인의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같은 인간이기에 비슷한 갈등과 고통을 갖고 있다. 유명인이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고 자살하면, 자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같은 방법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른다. 자살은 전염된다. 보건복지부가 며칠전 발표한 ‘2015~2021년 심리부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심리부검 대상자 10명 중 4명(42.8%)은 자살 사건으로 가족 또는 친구·지인을 잃은 유족이었다. 심리부검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것이다. 조사 결과 자살 유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는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 2020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천195명에 달했다. 학계는 가장 가까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년 7만명 이상의 자살 유족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족의 사망 위험은 남성 8.3배, 여성 9배로 높다. 특히 자살자가 남편인 경우 16배, 아내인 경우 46배 증가한다. 국내연구에서도 유족의 자살계획 경험이 일반인보다 8.6배 높았다. 자살한 사람이 주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하게, 더 오래 받는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악화, 실패 또는 상실 등 취약한 상황이면 영향이 더 크다. 한 사람의 자살을 가볍게 봐선 안된다.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 자살 사망자 주변인에 대한 심리 상담·치료 등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다크 패턴

가격 비교 차단하기, 바구니에 몰래 제품 넣기.... 온라인 쇼핑시 공정한 선택을 가로 막는 걸림돌들이다. 비대면시대의 차분한 인터넷 구매를 가로 막는 적(敵)들은 또 있다. 비용 숨기기, 해지 어렵게 하기, 주의·집중 분산하기, 감정적으로 선택 강요하기 등이 그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장된 광고와 강제 연속 결제 등을 거쳐 친구로 위장한 스팸 메일까지 등장한다. 충동 구매를 이끌어 내는 끝판왕인 셈이다. 비용 숨기기와 데이터 착취하기 등도 결국 이에 해당된다. 영국의 경제사회학자 해리 브링널(Harry Brignull)이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이 같은 악행에 대해 경고했다. ▶앞에서 언급된 사항들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눈속임이다. 의도적으로 선한 소비자를 속여 구매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이 같은 행위를 경제사회학에선 다크패턴(Dark Pattern)이라고 부른다. ‘어두운 형태의 나쁜 소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착한 소비자들에게는 몹쓸 친구이고, 비겁한 악당이다. ▶EU는 지난 2015년 다크패턴 단속법안를 통해 몇 가지 방식을 아예 불법으로 규정했다. 우리 정부도 나섰다. 개인정보 보호위원회가 소비자의 비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비대면 눈속임 구매사례를 분석, 공개했다. ▶전자상거래법도 명쾌하게 경고하고 있다.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인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표시·광고법도 거짓·과장이거나 기만적인 표시·광고법을 금지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 앱 중 97%에서 1건 이상의 다크패턴 사례가 발견됐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세했다. “눈속임 마케팅은 내용과 정도 등에 따라 정상적인 마케팅과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유형도 있다”. 구체적인 규제 대상과 방법 등에 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섣불리 금지·규제하면 기업의 정상적인 마케팅활동까지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곳곳에 매복한 적들이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청년농부, 어디로 갔나

최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년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보면 청년 귀농 가구가 역대 최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통계를 보면 지난해 30대 이하 귀농 가구는 1천507가구로 전년 1천362가구보다 145가구(10.6%) 늘어 역대 최대로 집계됐고, 전체 귀농 가구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5%에 달했다. 특히 30대 이하의 귀농 가구 증가율은 40대(3.3%)와 50대(8.5%)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 농업에 종사하려는 청년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고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수치만 보면 농촌에 청년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마을에 청년 농부를 찾아 볼 수 있나. 매년 귀농했다고 발표되고 있는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농림축산식품부는 매년 귀농인 수를 발표하고 있고, 지역·규모·연령·성별 등 다양하게 귀농인들을 분석해 자료를 발표한다. 그러나 역귀농 통계는 찾아 볼 수 없다. 가장 최근 조사된 것이 4년 전 조사인데, 역귀농률은 8.6%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90%가 넘는 나머지 청년 귀농인들은 모두 농촌에서 자리 잡고 농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인가. 현장에서 이 결과를 신뢰하는 이는 없다. 청년농부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한 숨을 쉰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부지를 구해야 농사로 수익을 낼 수 있는데, 경기도는 땅값이 비싸 애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부지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농촌 물정을 모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사기(?!) 행위를 통해 수익을 얻는 이들도 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피해 유형을 정리해 예방 활동까지 나설까. 귀농귀촌하는 인구 중 청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젊은 인구가 얼마나 귀농귀촌 하느냐에 농촌의, 마을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농업에 진심이라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농촌에 꿈을 갖고 들어간 청년들이 왜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는지 모를리 없다. 청년농부들이 더이상 농촌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경기도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호준 경제부장

[지지대] 왕따 국가

유래(由來)가 복잡하다. 원래는 북(Drum)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남인도 지방 토속어였다. 요즘은 따돌림 받는 사람을 뜻한다. 북 제조업자와 따돌림 쟁이와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좀 생뚱맞겠지만, ‘Pariah’란 단어에 대한 얘기다. 인도 남부지방의 이른바 불가촉(Untouchable) 천민이나 미얀마의 최하층민 등을 보통 ‘Pariah’라고 부른다. 인도 등지에서 반야생 상태로 분포하는 들개의 호칭도 ‘Pariah Dog’이다. 해당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가 짙다. 꽤 공교롭다. ▶외교무대에서 이 표현이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에서다. 기자가 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왕따입니까(Is Saudi Arabia still a pariah)”. 바이든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부 외신은 이를 비웃음(Smirk)이라고 썼다. ▶이런 질문이 나온 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미 정보국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2019년 당시 대선 경선 민주당 토론회에서 바이든 후보가 “그들을 국제적으로 왕따(Pariah)로 만들겠다며 압박했다. ▶이 같은 표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하노이담판(2차 북미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인터뷰에서 북한을 ‘A Pariah State’라고 직격했다. 2019년 2월25일이었다. ‘왕따 국가’라는 뜻이다. 진행자가 “북한으로부터 더는 핵 위협은 없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트윗을 언급하자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왕따 국가’로 남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이보다 더 속된 워딩들은 다반사다. 정상과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격렬한 어휘들도 곧잘 사용된다. 다만 회담 등이 끝나면 언론은 “외교적인 언사였다”고 마무리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A Pariah State’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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