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복합재해 기후 리스크

더위에 가뭄까지 겹치고 산불까지 난다면 어떨까.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사태가 실제로 현실로 나타났다. 2010년 러시아에서였다. 그해 6월 초순부터 7개월여 동안 이어졌다. 5만5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제 피해는 17억4천만달러(약 2조3천477억원) 규모였다. 당시로 더 들어가 보자. 매일 수은주가 3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졌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농작물은 타 들어 간다. 대기가 고온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산불 연기는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 유입돼 폭염과 함께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폭염은 지면에서 높이 2m의 기온인 하루 평균 기온이 상위 10%에 드는 날이 사흘 이상 연속되는 경우다. 가뭄은 물순환을 반영해 하루 증발산 부족량 지수가 하위 10%에 드는 날이 사흘 이상 연속되는 경우다. 폭염에 가뭄을 동반하는 현상을 복합재해라고 부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상협회의 분석 결과다. 한국기상협회는 전국을 100㎢ 격자로 나눈 뒤 1979년부터 2023년까지 기상자료를 활용해 5~10월 폭염과 가뭄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분석했다. 한 격자에 6월10~15일 폭염, 같은 달 12~20일 가뭄 등이 나타났다면 폭염이 시작한 10일부터 가뭄이 끝난 20일까지 복합재해 한 건이 발생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 결과 복합재해 발생 횟수는 연평균 446.3건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2014~2023년)만 놓고 연평균을 계산하면 951.5건에 달했다. 복합재해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일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가장 많이 발생한 해는 1994년으로 4천113건이었다. 2018년(2천194건)과 2016년(1천670건)이 뒤를 이었다.복합재해 지속 기간은 평균 11.4일이었다. 복합재해는 자연 훼손과 환경 파괴 등이 불러 온 후유증이다. 명백한 기후 리스크다. 마땅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지대] 새로운 깃발

예부터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깃발 이야기다. 특히 병영에서 그랬다. 부대의 존재를 과시했다. 장군의 지휘권도 상징했다. 전투 중에는 위치도 알렸다. 그래서 기수는 적이 최우선으로 노리는 타깃인데도 늠름하게 위치를 특정했다. 이 때문에 담대하고 용맹한 병사들이 맡는 명예로운 직책이었다. 영토나 영역의 표시이기도 했다. 적군이 점유하던 곳을 점령한 후에는 아군의 깃발로 바꿔 달았다. 이때 노획한 적군의 깃발은 아군의 빛나는 전공을 상징하는 증거 중 하나로 보관됐다. 전후 적군과의 화친이 성립돼도 반환을 꺼렸다. 19세기 말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빼앗긴 장수를 뜻하는 수(帥)자가 적힌 깃발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파병 당시 노획한 금성홍기가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이다. 해병대 제2사단(청룡부대)이 노획한 베트콩기도 보관하고 있다. 동티모르 파병 당시 상록수부대가 인도네시아 국기를 노획한 사례도 그렇다.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프랑스 ‘삼색기’는 혁명의 불꽃 상징으로 세계 곳곳의 계급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영제국의 상징인 ‘유니언 잭’은 제국주의의 확장을 촉발했다. 공산권 국가의 상징인 ‘오각별’은 거대한 이념집합체를 의미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광화문과 여의도 등지에서도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몸짓이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떠올랐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며칠 후면 우리 마음에 새로운 깃발이 걸린다. 어떤 형태와 내용일까.

[지지대] 푸른 제복의 공직자

흉기를 든 범인을 만났을 때 효과적인 호신술로 소개되는 기술이 있다. ‘기회를 포착해 신속히 도망가는 것’. 이런 돌발적이고 경악할 만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위에서 제시한 호신술(?)과 정반대로 날카로운 흉기와 맞서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푸른 제복의 공직자 ‘경찰’이다. 지난 22일 오후 9시50분께 파주시 한 아파트에서 가정폭력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3명이 40대 남성으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했다. 조사 결과 중상을 입은 경찰관 2명이 방검복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현장으로 출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이들 경찰관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인식하고 상황을 회피했다면? 2021년 인천 남동구 빌라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현장. 혈흔이 낭자한 범행 장면을 목격한 여경이 도망쳐 계단 아래로 피신했다. 현장으로 향하던 남경도 여경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함께 빌라를 빠져나갔다. 이후 이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은 뒤 해임됐고 형사재판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다시 파주 흉기 사건과 관련, 경찰 고위 관계자의 “출동 지령에 안전장구 착용 지시가 있었으나 출동 경찰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발언이 보도되면서 경찰 내부에선 지휘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위급한 신고 상황에 방검복을 다 챙겨가지 못한 현장 경찰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등에선 “권한은 지휘부에 있고, 책임은 현장에만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본인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위해와 불법과 불의에 대결하며....’ 경찰의 복무선서 중 일부 내용이다. 심각한 인력난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명시된 매뉴얼 규정조차 지키지 못한 채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경찰들. 이들이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다짐하고 외쳤던 선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

[지지대] ‘나홀로’ 니트족 증가

‘니트(NEET)족’이라는 용어가 있다. 취업 경쟁에서 밀려나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영어의 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첫 글자를 땄다. 맨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한 나라는 1999년 영국이었다. 이후 유럽 전역과 미국, 캐나다 등에 이어 일본과 국내에도 상륙했다. 이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니트족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11개국 중 유일하게 2014년에 비해 증가했다는 지적(본보 26일자 8면)이 나왔다. 나 홀로 증가인 셈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 결과다. 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니트족은 2022년 기준으로 11개국 중 3위인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통계를 산출한 결과 국내 니트족의 비중은 2014년 17.5%를 기록한 후 증가세를 보이다 2020년 20.9%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21년 20%, 2022년 18.3% 등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2014년보다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1위인 이탈리아와 2위 멕시코 등 다른 주요 OECD 국가는 2014년에 비해 2022년 니트족 비중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도 15.7%에서 12.6%로 3.1%포인트 줄었다. 성별로는 2018년에 비해 지난해 남성은 13.5%에서 15.7%로 상승한 반면 여성은 18%에서 15%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 후반 비중(20.2%)이 가장 높았고 20대 후반에서도 남성의 비중은 늘었고 여성의 비중은 하락했다. 젊은이들의 진로 심리 역량을 어떻게 증진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회복 탄력성을 높여줄 맞춤형 통합정책 설계도 시급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처럼 청년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인천 찾지 않는 대선 주자

인천은 선거 때마다 ‘전국 선거 바로미터’, ‘전국 민심의 풍향계’ 등으로 불린다. 역대 선거 결과 인천의 표심이 전국 득표율 등과 거의 같은 것은 물론이고 정치 지형과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인천의 유권자는 261만8천461명이다. 전국 유권자 4천436만3천148명의 5.9%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인천은 매번 전국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선거 때마다 주요 정당의 지도부 등은 인천을 자주 찾아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인천이 외면받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인천을 찾는 유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후보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아쉬워하고 서운하다는 속내를 종종 내비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번 대선 기간 인천을 딱 한 번 찾아 선거 유세를 했다. 인천 계양을 선거구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인 만큼 이 같은 인천 유세 일정이 적은 것은 인천시민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아직 인천 유세를 하지도 않았다. 오는 29일 새얼아침대화에 참석하는 일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유세 일정은 미정이다. 지도부에서도 나경원 의원이 한 차례 지원 유세를 왔을 뿐이다. 반면 이 후보와 김 후보 모두 경기도지사 경력을 내세우며 인천과 인접한 경기 고양, 김포, 부천, 시흥 등은 찾아 유세를 하기도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최근 인하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학식을 먹은 뒤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일반 시민을 만나 소통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선 후보들이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전국 17개 시·도 곳곳을 모두 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인천이라는 대도시에 얼굴 한번 제대로 비치지 않는 것은 한 인천시민의 입장에선 조금 섭섭하긴 하다.

[지지대] 안산갈대습지와 붉은발말똥게

이 도시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촉촉한 대지에서 갈대들이 바람에 따라 눕고 일어선다.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 인근에 위치한 안산갈대습지 얘기다. 2005년 말 완공됐다. 당시 관할 주체는 한국수자원공사였고 ‘시화호 습지공원’으로 불렸다. 당초 명칭에 시화호가 들어간 연유는 인근에 시화호가 있어서였다. 이후 2014년 관할 주체가 안산시와 화성시 등으로 나뉘었고 안산 쪽 이름은 안산갈대습지가 됐다. 이 대목을 좀 더 들여다보자. 1994년 1월 시흥 오이도와 안산 대부도를 잇는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시화호라는 인공호수가 형성됐다. 그런데 물이 가둬지자 공장 오폐수 등으로 수질이 악화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습지 조성에 나섰다. 안산갈대습지가 탄생된 배경이다. 이후 이곳에는 야생동물들이 쉴 수 있는 인공섬과 수중식물 및 야생동물 활동공간 등이 마련됐다. 전시장과 전망대를 갖춘 환경생태관도 들어섰다. 습지에서 정화된 물이 빠져나가는 생태 연못도 있다. 2014년부터는 람사르 습지 등재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붉은발말똥게’의 대규모 서식지가 국내 최초로 발견(본보 23일자 8면)됐다. 녀석은 잡식성으로 진딧물, 지렁이, 죽은 물고기, 식물 잎 등을 먹는다. 그동안 주로 서해 일부 지역과 제주도 등지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안산갈대습지에는 500여개체가 분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안산환경재단은 안산갈대습지 입구부터 장전보까지 약 600m 구간에 걸쳐 이 녀석들의 집단 서식을 확인했다. 내시경 조사기를 활용한 현장 관찰과 서울대 연구팀과의 공동 조사 등을 통해서다. 시화호 최상류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염분 농도가 낮은 진흙 지형과 넓은 갈대 군락이 형성됐다. 그래서 먹이활동과 은신에 적합한 최적의 서식환경을 갖췄다. 후손들에게 빌린 자연은 온전하게 물려줘야 한다. 환경 보전을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여서다.

[지지대] ‘성별 지우기’ 대선

18년 만에 여성 후보가 0명인 제21대 대통령선거다. 18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7대 대선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 등 남성만 후보로 등록했다. 5년 후인 2012년 18대 대선은 여성의 진출이 가장 활발했다. 후보 등록 마감일 기준 총 7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김소연·김순자 무소속 후보 등이 출마했다. 선거일 직전 이정희 후보가 사퇴해 3 대 3으로 성비가 동등해졌다. 19대 대선에선 15명의 후보 중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유일했다. 이어 2022년 치러진 20대 대선에선 심상정 전 대표,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이름을 올렸다. 공약에서도 여성이 사라졌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제외하곤 10대 공약 등 정책의 전면에 ‘성평등’이나 ‘여성’의 키워드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번 대선은 사실상 젠더 이슈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각 대선 후보 캠프는 부랴부랴 여성 공약을 펴냈다. 여성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구호에선 남성 표를 의식한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젠더 이슈가 봇물 터지 듯 나왔던 2022년 대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득표를 위해 성평등 의제를 ‘성별 갈라치기’ 전략으로 활용했던 당시 대선의 후유증 탓이다. 사회적 함의가 사라지고 ‘남’과 ‘여’만 남은 자리에 성평등은 정치권에서 다루기 불편한 담론으로 변질됐다. 여성 학자들은 이번 대선 후보들이 ‘성별 지우기 전략’을 세웠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성평등 정책이 다른 성별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선명성을 흐릴 만큼 젠더 갈등은 여전하다. 저출생, 돌봄 문제, 사회 갈등은 성평등을 갈등이 아닌 통합 영역으로 바라볼 때 해결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사회의 지속성과도 맞물려 있다. 몇 년 전 젊은 유권자들이 짊어진 아픔에 올라타 생존하려 했던 정치권이 이제 정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지지대] 드론의 역사

최초의 형태는 오스트리아에서 나왔다. 1849년이었다. 열기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가동됐다. 미국에선 남북전쟁이 한창인 1863년 등장했다. 1918년 공중에서 수평으로 비행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폭탄 300파운드를 싣고 비행에 성공했다. 1930년대 영국서 최초로 왕복이 가능한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400대 이상 양산됐다. 1950~1960년대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적진 감시 목적으로도 이용됐다. 2000년대 들어선 군사 목적 이외에도 촬영, 배송, 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로 뻗어 나갔다. 하늘 위의 만능 재주꾼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농업은 물론이고 영상 촬영부터 배송, 시설 점검, 교통 관측까지 일상에서 쓰임새를 늘려 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전쟁 등에선 다시 숱한 인명을 해치는 공포스러운 무기로 둔갑하고 있다. 초경량 비행기구인 드론의 간단찮은 역사다. 드론이 최근 5년 새 국내에서 7배 정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의 분석 결과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6만7천902대가 등록됐다. 지난해 말 6만4천863대에서 3천여대 증가했다. 2016년 2천226대에서 2019년 9천848대로 늘었다가 2020년대 들어 증가폭을 키웠다. 이후 2020년 1만6천159대에서 2021년 3만1천314대, 2022년 4만1천694대, 2023년 5만2천387대로 늘었다. 지난 3년간 한 달에 1천대씩 증가한 셈이다. 유형별로는 무인멀티콥터(프로펠러 여러 개를 사용하는 비행체)가 5만9천여대로 전체의 89.7%를 차지했다. 무인비행기 7.4%, 무인헬리콥터 2.8%, 무인비행선 0.1% 등으로 나타났다. 4만2천627대(62.8%)는 사업용, 나머지는 취미·레저용 등 비사업용이었다. 과학의 발달로 기구들도 첨단화되고 있다. 하지만 인류를 살상하는 흉기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지대] 소만과 씀바귀<小滿>

매년 이맘때 들녘에 나가면 발목에 채이는 풀이 있었다. 씀바귀다.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초다. 예부터 뿌리와 줄기, 잎 등은 식용으로 널리 쓰였다.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었다. 소만(小滿)이라는 절기 즈음의 풍광이다. 5월21일이 음력으로 딱 그렇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다. 서해안과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이 무렵부터 거의 여름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절기의 분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천인 쑥과 냉이 등이 씀바귀에게 자리를 내준다. 보리도 고개를 숙이면서 익어간다. 야산에선 땅거미가 지면 부엉이가 울어댄다. 이 무렵부터 보릿고개라 불렀다. 지난해 수확한 양식들은 바닥이 나고 올해 농사 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다. 신록은 우거져 푸르게 변한다. ‘농가월령가’에 “4월이라 맹하(孟夏·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해서다. 농부들은 모내기 준비로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 보리 먼저 베기,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 등이 줄을 잇는다.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보리 싹이 성장하고 산야의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모판을 만들면 모내기까지 모의 성장 기간이 예전에는 40~50일 걸렸으나 지금의 비닐 모판에선 40일 이내에 충분히 자란다.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무쳐 먹는 것도 이때의 별미였다. 냉잇국도 많이 먹었다. 모든 산야가 푸른데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줘서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라 불렀다. 옛 성현들이 들려주는 소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지지대] 1만원 점심 시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어요. 요즘 밖에서 먹으면 하루 1만원은 기본이어서 부담스럽죠.” 20대 후배의 푸념이다. 최근 점심값,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냉면 한 그릇이 1만6천원, 칼국수가 1만원을 훌쩍 넘는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증가한다는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란 말이 납득이 간다. 몇 년 전만 해도 점심에 1만원을 내면 ‘고급 식사’ 축에 속했지만 이제는 그저 기본 식사가 돼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MZ세대 사이에서 ‘가성비 점심’이 뜨고 있다. 직장인들은 구내식당을 찾기 시작했고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 컵라면이 점심 메뉴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편의점 꿀조합’, ‘가성비 최고 도시락 리뷰’ 같은 게시글이 인기를 끌 정도다. 점심시간은 짧지만 하루를 견디는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잠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덜고 기운을 차리는 시간이 돼야 한다. 그 소중한 점심이 점점 팍팍해지는 현실이 씁쓸하다. 매일 반복되는 점심 고민은 단지 메뉴 선택이 아니라 비용과의 싸움이 돼 버렸다. 고물가 시대에 점심값은 월급쟁이에게는 큰 압박이다. 특히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층에겐 점심 한 끼 비용의 부담이 무겁게 다가온다. 차기 대통령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물가 안정이다. 소소한 행복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물가를 잡아 줬으면 한다. 청년들이 점심 한 끼만큼은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기 바란다.

[지지대] ‘치매 머니’ 154조원

치매 머니라는 용어가 있다.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보유한 동결 자산을 가리킨다. 나이가 들어 뜻하지 않게 치매에 걸리면서 이들이 모아 놓은 재산은 사회·법률적으로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현행 법률적인 체계에선 후견·신탁제도로 활용하는 통로도 있지만 쉽진 않다. 이들이 소비와 투자에 나서지 못해 돈이 돌지 못하고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서다. 이러한 돈을 노리는 사기나 무단 사용 위험도 늘 수 있다. 국내 치매 머니가 15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분석 결과다. 2023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치매환자가 보유한 자산이 그렇다. 2050년에는 GDP의 15.6%인 48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 때문에 현행 법률상 후견제도와 가족신탁을 결합해 고령자가 건강할 때 재산 보존과 활용, 승계까지 미리 계획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족신탁 가입자에게 보험료 중 일부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 등도 제시됐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은 2022년 기준 치매 고령자가 보유한 자산액 총액이 2020년 252조엔(약2천400조원), 2030년 314조엔(약 3천조원), 2040년에는 345조엔(약 3천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2040년 추정 전체 가계 자산의 12.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에 일본 증권사들은 투자자가 치매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거래를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부모가 갑자기 치매 진단을 받으면 자녀 등 가족이 동행해도 예금을 인출하거나 금융상품을 해지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법정 대리인인 후견인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대목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비교 연구해 우리 현실에도 접목해야 한다. 당국의 혜안이 시급하다.

[지지대] 차부둬 이야기

‘차부둬(差不多)’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심심찮게 듣는다. 굳이 따진다면 우리말의 추임새에 해당하는 군더더기다. 물건을 사면서 흥정할 때도 나온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 등을 묻는 질문에도 영락없이 돌아오는 답변이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차이가 많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대충대충 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딱히 세상 사람들이 깔아놓을 복잡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지극히 계산된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 표현이 중국인의 문화 코드를 해독하는 키워드라는 점이다. 호사가들은 이 단어만 잘 활용해도 중국어는 거저먹는다고도 호들갑을 떤다. 과연 그럴까. 차부둬는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의 소설 ‘阿Q正傳’에도 나온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阿Q正)은 완행열차를 타고 상하이까지 가야만 했다. 그는 여유만만하게 역에 도착했다. 2분 정도 늦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열차는 이미 떠났다. 그는 열차가 내뿜는 매연을 보며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내일 가야 되겠군. 오늘 가든 내일 가든 뭐 대충 비슷하니까.” 중국은 이 표현을 자주 쓰는 숱한 차부둬의 나라다. 차부둬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을 비꼴 때도 인용된다. 물론 현대판 차부둬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중국인의 또 다른 자화상이자 민낯이다. 중국의 변혁에 대한 사고가 집약된 아이콘이기도 하다. 차부둬는 고대부터 내려온 정신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인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대충대충 살아도 역사는 늘 자신들의 편이라는, (외국인들이 볼 때는) 상당히 불쾌하고도 불경스러운 디테일이 숨겨진 채 말이다. 갑자기 차부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선 정국이 뜬금없이 흘러가고 있어서다. 이 땅에 많은 시민들의 잠을 설치게 하고, 뒤척이게 만드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지대] 참외

참외는 과일이 아니다. 오이처럼 시원하고 멜론처럼 달콤한 맛이 조화로운 데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어 수박과 함께 여름 대표 과일로 알려져 있지만 채소로 분류된다. 참외는 5~6월에 50% 이상 소비되는 품목으로 연간 20만t이 생산된다. 경북 성주에서 전체의 79%를 생산하지만 여주 금사면에서 생산되는 ‘금싸라기 참외’는 당도가 높고 향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당도가 궁금하다면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은 후 참외를 띄워 보면 안다. 둥둥 뜨는 것은 달고 가라앉는다면 물을 많이 먹어 당도가 떨어진다. 참외는 굵고 노란 바탕에 흰색 줄이 특징이다. 수확 시기가 오래될수록 흰 부분은 줄어들고 노란색은 넓고 짙어진다. 물론 개구리참외처럼 녹색을 띨 수도 있으니 모두 같은 기준을 들이댈 순 없다. 어린 시절 집 뒤 밭에는 참외가 자랐다. 밭농사에서 작은 수확이라도 거둬 보려는 아버지는 밤낮없이 서리꾼들을 경계했다. 그런 아버지의 속도 모르고 낮에는 작고 귀여운 배꼽참외를 골라 먹고 밤에는 장독대 옆 참외밭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단맛을 끊지 못하고 줄기가 말라 마지막 열매를 힘겨워할 때까지 식탐은 계속됐다. 냉장고가 없던 어려운 시골살이였다. 아버지는 잘 익은 참외를 따다 펌프질을 해서 끌어올린 시원한 지하수에 담가놨다가 주시곤 했다. 오래전 농사를 접으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지만 참외를 보면 아버지와의 일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곤 한다. 어느새 아버지가 작고하신 지 30여년이 흘렀다. 곁을 떠난 가족이 더욱 그리워지는 5월이다.

[지지대] PC방의 쇠락

일렉트로닉 카페가 문을 열었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다. 대표적 게임공간인 PC방은 이렇게 탄생했다. 1990년대 전반기였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PC 확산 정책과 인터넷 인프라 확충 등이 맞물리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수십대 설치된 컴퓨터를 요금을 내고 일정 시간 이용할 수 있었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과 커피 등도 제공됐다. 그래서 PC카페라고도 불렸다. 24시간 영업이 일반적이었다.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야간이나 심야에 잠시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늦은 밤 버스 및 전철 등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숙박업소를 찾기 힘들어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수차례 크고 작은 변혁을 통해 소비자 중 10~20대가 이용하는 비율이 절대 다수인 독보적인 문화공간이 됐다. 한때는 노래방이나 만화방, 콜라텍 등을 제치고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최근 경기도내 PC방이 매년 100여곳씩 문을 닫는 등 폐업이 속출(경기일보 12일자 8면)하고 있다. 주된 이용자인 청소년들이 다른 여가 공간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어서다. 인건비 및 공공요금 부담 등의 영향도 더해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경기지역 PC방 수는 2023년 1천972곳에서 지난해 1천883곳으로 89곳 감소했다. 올해 3월 기준 1천789곳으로 이미 전년보다 94곳 줄었다. 연말까지 감안하면 올 한 해 100곳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PC방 쇠락에는 중요한 원인이 있다. 과거에는 고사양 PC와 초고속 인터넷 등이 집에 없었다. 그래서 PC방을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충분한 게임 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PC방은 ‘저렴한 공간’이라는 인식 속에 가격 인상도 어렵다.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 등은 계속 커진다. 일각에선 단순한 게임 공간을 넘어 체류형·복합형 공간으로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쇠락하는 게 어디 PC방뿐일까.

[지지대] 전곡리 유적에서 펼쳐질 미래

30만년 전 인류의 삶이 녹아든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 구석기사(史)에서 중요한 현장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1978년 미군인 그렉 보웬에 의해 발견되자 그야말로 세계사가 뒤바뀌었다. 세계 고고학계는 주먹도끼의 유무를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눴다. 주먹도끼가 출토되지 않은 아시아 지역이 유럽과 아프리카에 비해 문화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된 전곡리 주먹도끼는 이런 이론을 뒤집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고고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대중의 인식은 낮았다. 눈에 띄는 형상이 없었다. 구석기 유물을 품은 지층이 유물이다 보니 대중에게 가닿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내 학자들은 전곡리 유적과 선사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당시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유적관을 준비했다. 주변의 도움과 사재를 털어 발굴조사단의 현장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1993년 4월11일 전곡리 구석기 유적관 건립을 기념해 ‘짐승인간들의 현대나들이’란 테마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제32회 연천 구석기축제의 시작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품은 이곳이 구석기문화의 세계적 거점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전곡선사박물관서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국내외 고고학자와 전문가들은 “전곡리 유적이 대중 고고학의 출발점인 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고고학적 가치를 살려 국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천군은 ‘2029 연천 세계 구석기 엑스포’ 추진을 선포했다. 전곡리 유적은 구석기 유적을 활용해 지역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지역 축제를 넘어 세계 선사문화 축제로 매년 세계 고고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가치는 이미 입증됐고 충분하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펼쳐질 국제적 교류와 협력이 벌써 기대된다.

[지지대] 항생제 안 듣는 슈퍼세균

기침을 하거나 머리가 아프면 약국을 찾는다. 항생제를 사기 위해서다. 항생제는 다세포 생물의 생체조직 내에서 박테리아 등 특정 세균의 증식이나 생존 등을 중점적으로 방해하는 약물의 총칭이다. 이 약품이 의학에 도입되기 전에는 많은 인류가 사소한 감염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폐렴이나 결핵, 종기, 패혈증 등이 대표적이다. 등에 난 종기 때문에 임금조차 여럿 죽어 나간 기록도 있다. 작은 상처로 환부 절단, 심지어 사망 직행이었던 시절이 불과 1세기 전이다. 항생제로 치유할 수 없는 질병도 있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CRE) 감염증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은 장내세균목 균종에 의해 감염된다. 주로 의료기관서 감염된 환자나 병원체 보유자와의 직간접적 접촉이나 오염된 기구 등을 통해 전파된다.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의학계에선 슈퍼세균이라 부른다. 최근 슈퍼세균에 감염된 사례가 국내에서 지난해 4만건을 훌쩍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 감염증 신고 건수는 모두 4만2천827건(잠정)으로 나타났다. 2023년 3만8천405건에서 11.5% 늘었다.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60대 이상이 전체 감염자의 80%가 넘었다. 2017년 6월부터 전수 감시 대상에 포함돼 그해 5천717건이 신고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1만1천954건, 2019년 1만5천369건, 2020년 1만8천113건, 2021년 2만3천311건, 2022년 3만548건 등 해마다 신고 건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같은 기간 사망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 37명, 2018년 143명, 2019년 203명, 2020년 226명, 2021년 277명, 2022년 539명, 2023년 661명 등이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한 분야가 어디 슈퍼세균뿐일까.

[지지대] ‘봄 주꾸미’도 옛말?

주꾸미는 해마다 이맘때면 사랑받는 수산물이다. 길이는 24㎝ 남짓하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녀석의 몸에는 둥근 혹 모양의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다. 눈 주위에는 살가시가 몇 개 있다. 다리는 모두 여덟 개인데 2~4줄로 빨판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지느러미를 새처럼 날갯짓을 하며 헤엄친다. 물속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먹이는 작은 물고기다. 자신보다 큰 물고기가 다가오면 수관(水管)으로 땅을 파 숨거나 먹물을 뿌리고 도망간다. 서해를 포함해 국내 모든 연안에서 잡힌다. 서식지는 주로 서해이지만 동해와 남해에서도 잡힌다. 수심 5~50m의 모래나 자갈 바닥에서도 발견된다. 산란기는 3월이다. 성숙기에는 난소가 밥알 모양으로 바뀐다. 덩치가 낙지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다. 머리 양옆으로 진하게 나 있는 눈을 닮은 금색 고리 무늬가 매력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명이 1년이 안 될 정도로 짧다. 최근 주꾸미 어획량이 5년 전보다 급감(경기일보 8일자 8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늦추위로 바닷물의 저온 현상이 길어지면서다. 수협중앙회 분석 결과 어획량이 2020년 3천327t에서 지난해 1천748t으로 47.5% 줄었다. 봄에 잡히는 주꾸미 감소 폭이 더 컸다. 올해 바닷물 온도 변화를 살펴보자. 지난 2월 초순 3.6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2월 중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도 낮았다. 지난 1월부터 한 주를 제외하고 최근까지 줄곧 지난해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주꾸미 대신 소라나 수출용 가재를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심해지는 바닷물의 저온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로 겨울철 이상 한파가 기승을 부릴수록 봄 바닷물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도 강해진다. 시절이 하 수상하면서 봄 주꾸미도 이젠 옛말이 되는 건가. 내년 봄을 기대해본다.

[지지대] 동요가 사라진 시대?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새벽시간대 라디오에서 모처럼 동요가 들렸다. 가정의 달과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 편성한 방송이다. 봄이면 불렀던 ‘숲속을 걸어요’, 여름이면 흥얼거렸던 ‘여름 냇가’, 가을의 어느 날 황혼이 깃들 때 불렀던 ‘노을’, 겨울이면 절로 나왔던 ‘겨울나무’까지. 엄마가 불러준 노래, 어릴 적 귓가에 익어 따라 불렀던 노래, 동네 언니 오빠들에게 배웠던 노래들이다. 노래들은 다정했다. 산과 들, 해와 달, 구름과 비, 숲과 나무, 심지어 물고기와 시냇가, 계곡, 별에게까지 말을 걸고 함께하자 손 내밀었다. 푸른 새벽, 동요에 괜스레 마음이 뛰고 싱그러움이 깃들었던 것은 익숙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소한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덕분이었다. 흔히 동요가 사라진 시대라고 말한다. 동요보다는 트로트와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가 훨씬 더 눈에 많이 띈다. 들여다보면 동요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대에 맞춰 보급 경로를 바꾸고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사의 창작동요제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자 각 지역에선 각종 동요제와 보급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더핑크퐁컴퍼니의 ‘상어 가족’이 실린 유튜브 ‘핑크퐁 아기상어 체조’ 영상은 2020년 전 세계 조회수 1위에 오른 이후 현재 158억뷰로 압도적인 조회 수 1위를 지키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요 작곡가들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동요를 가르치고 동요의 맥을 잇기 위한 단체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좋은 동요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그 시절을 지난 어른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쉰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다시 꿈과 희망을 불끈 쥐게 하기도 한다. 동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좋은 동요가 아이들의 귓가에 더 많이 닿도록, 더 많이 불리도록 어른들의 관심이 노력이 더욱 필요할 뿐이다.

[지지대] 디엔비엔푸 전투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의 변방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오스와 인접한 소도시로 인구는 10만명 남짓하다. 이곳에서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954년 5월7일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이곳에선 프랑스와 베트남(베트민)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베트민은 베트남 민족통일전선 조직으로 월맹으로 불렸다. 외신들의 보도는 이랬다. “(프랑스) 육군이 항공기로 장비를 공수하는 동안 베트민 병사들은 몸에 프랑스 육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의 포신을 묶고 한번에 1인치씩, 하루에 반 마일씩, 3개월에 걸쳐 대포를 운반했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주요 도시와 거점들로부터 한참 떨어진 오지에 분지였다. 사실상 육상 접근로가 없었다. 평상시 보급도 쉽지 않았지만 포위 당하면 구하러 갈 방법도,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았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평정하지 못하면 전황을 타개하기 힘들다고 보고 항공 보급과 공수부대만으로 요새를 건설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베트남 화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병력 열세와 보급 등을 화력과 항공 수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은 달랐다. 베트민이 다수의 대공포를 포함한 포병화력을 동원해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또 간과한 게 있었다. 중국의 지원이었다. 중국은 1년 전 6·25전쟁에서 유엔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 대공포를 비롯한 중화기를 베트민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프랑스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군이 떠난 자리에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구호가 쓰인 베트민 깃발이 펄럭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붕괴됐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에서 해방됐다. 이후 20년이 넘는 미국과 베트남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의 변방에서 최대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인력이 우수하고 지하자원도 풍부해서다. 경제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나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 밖에도 차고 넘친다.

[지지대] 송홧가루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송홧가루가 그렇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서다. 창문을 열어 놓고 외출하면 방 안이 온통 노란색 가루로 덮인다. 길거리에 세워진 자동차에도 수북이 쌓인다. 하루 종일 닦거나 세차해야 한다. 물로 씻어내도 이리저리 번지고 튀는 데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꽃가루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송홧가루가 몸에 닿으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간지러움 증세가 두드러져서다. 목이나 콧구멍 등이 부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재채기하는 건 물론이다. 알레르기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순 있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진 않는다. 너무 딱딱하고 현실적인가. 낭만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에서지만 말이다.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송홧가루가 내리는 시점이 대부분 윤사월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영화에도 등장한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다. 주인공 송화는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혹독할 정도로 판소리 교육을 받는다. 유봉은 결국 송화를 통해 판소리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에 송화는 결국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는다. 국립수목원이 5월 초 송홧가루 날림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소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주목 등 침엽수 4종의 화분비산(꽃가루 날림) 시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침엽수 4종의 평균 화분비산 시작 시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초 5월 중순에서 지난해 4월26일로 보름 이상 앞당겨졌다. 송홧가루를 피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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