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연 문화체육부 부장
30만년 전 인류의 삶이 녹아든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 구석기사(史)에서 중요한 현장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1978년 미군인 그렉 보웬에 의해 발견되자 그야말로 세계사가 뒤바뀌었다.
세계 고고학계는 주먹도끼의 유무를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눴다. 주먹도끼가 출토되지 않은 아시아 지역이 유럽과 아프리카에 비해 문화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된 전곡리 주먹도끼는 이런 이론을 뒤집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고고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대중의 인식은 낮았다. 눈에 띄는 형상이 없었다. 구석기 유물을 품은 지층이 유물이다 보니 대중에게 가닿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내 학자들은 전곡리 유적과 선사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당시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유적관을 준비했다. 주변의 도움과 사재를 털어 발굴조사단의 현장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1993년 4월11일 전곡리 구석기 유적관 건립을 기념해 ‘짐승인간들의 현대나들이’란 테마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제32회 연천 구석기축제의 시작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품은 이곳이 구석기문화의 세계적 거점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전곡선사박물관서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국내외 고고학자와 전문가들은 “전곡리 유적이 대중 고고학의 출발점인 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고고학적 가치를 살려 국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천군은 ‘2029 연천 세계 구석기 엑스포’ 추진을 선포했다.
전곡리 유적은 구석기 유적을 활용해 지역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지역 축제를 넘어 세계 선사문화 축제로 매년 세계 고고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가치는 이미 입증됐고 충분하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펼쳐질 국제적 교류와 협력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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