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삼청교육대 피해자 보상

1979년 12·12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 5월31일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설치했다. 국보위는 사회정화를 빌미로 군부대 내에 ‘삼청교육대’를 만들었다. 8월4일 계엄포고 13호(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를 발표, 영장도 없이 6만여명을 체포했고 4만여명을 전방 부대로 보냈다. ‘삼청교육(三淸敎育)’은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기 위한 명분이었지만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이뤄졌다. 순화교육이란 미명하에 길거리에서 싸우거나 통행금지 위반자, 술에 취한 무직자, 군부정권 비판자, 노동조합 간부 등이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1981년 1월까지 6만755명을 체포해 보안사령부·중앙정보부·헌병대 요원과 검찰·경찰서·지역정화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A·B·C·D 4등급으로 분류했다. 심사위는 A급 3천252명은 군법회의에 회부했고 B·C급 3만9천786명은 4주 교육 후 6개월 복역케 한 다음 2주 교육을 하고 훈계방면했다. D급만 경찰이 훈계하고 놓아줬다. 삼청교육대 훈련은 총을 든 헌병이 감시하는 가운데 가혹하게 진행됐다. 불법 구금과 구타, 강제노역이 있었다. 1988년 국방부 국정감사 발표에 의하면 삼청교육대 관련 모두 421명이 사망했다. 정신장애 등 상해자도 2천678명에 이른다. ‘삼청교육 수료자’ 낙인이 찍혀 취업·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피해자가 부지기수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삼청교육은 전두환 정권 초기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 삼청교육대에서 벌어진 실태를 조사했다. 위원회는 2010년 활동기한 종료로 해산됐고, 밝혀내지 못한 과거사 진상조사를 위해 2020년 재출범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미해결 과제에 집중했고, 이번에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법 개정을 통해 포괄 보상해야 한다는 특별권고를 내렸다. 생존한 입소 피해자들의 치유·명예회복·보상이 필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전염되는 자살

‘베르테르 효과’라는 게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여겨 모방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18세기 괴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을 하면서 책을 읽은 독자 중 수십명이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한데서 유래됐다. 실제 1962년 배우 마릴린 먼로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이후 같은 달에만 300여명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 2003년 홍콩 배우 장국영의 투신 자살 후에도 일반인의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같은 인간이기에 비슷한 갈등과 고통을 갖고 있다. 유명인이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고 자살하면, 자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같은 방법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른다. 자살은 전염된다. 보건복지부가 며칠전 발표한 ‘2015~2021년 심리부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심리부검 대상자 10명 중 4명(42.8%)은 자살 사건으로 가족 또는 친구·지인을 잃은 유족이었다. 심리부검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것이다. 조사 결과 자살 유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는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 2020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천195명에 달했다. 학계는 가장 가까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년 7만명 이상의 자살 유족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족의 사망 위험은 남성 8.3배, 여성 9배로 높다. 특히 자살자가 남편인 경우 16배, 아내인 경우 46배 증가한다. 국내연구에서도 유족의 자살계획 경험이 일반인보다 8.6배 높았다. 자살한 사람이 주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하게, 더 오래 받는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악화, 실패 또는 상실 등 취약한 상황이면 영향이 더 크다. 한 사람의 자살을 가볍게 봐선 안된다.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 자살 사망자 주변인에 대한 심리 상담·치료 등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다크 패턴

가격 비교 차단하기, 바구니에 몰래 제품 넣기.... 온라인 쇼핑시 공정한 선택을 가로 막는 걸림돌들이다. 비대면시대의 차분한 인터넷 구매를 가로 막는 적(敵)들은 또 있다. 비용 숨기기, 해지 어렵게 하기, 주의·집중 분산하기, 감정적으로 선택 강요하기 등이 그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장된 광고와 강제 연속 결제 등을 거쳐 친구로 위장한 스팸 메일까지 등장한다. 충동 구매를 이끌어 내는 끝판왕인 셈이다. 비용 숨기기와 데이터 착취하기 등도 결국 이에 해당된다. 영국의 경제사회학자 해리 브링널(Harry Brignull)이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이 같은 악행에 대해 경고했다. ▶앞에서 언급된 사항들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눈속임이다. 의도적으로 선한 소비자를 속여 구매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이 같은 행위를 경제사회학에선 다크패턴(Dark Pattern)이라고 부른다. ‘어두운 형태의 나쁜 소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착한 소비자들에게는 몹쓸 친구이고, 비겁한 악당이다. ▶EU는 지난 2015년 다크패턴 단속법안를 통해 몇 가지 방식을 아예 불법으로 규정했다. 우리 정부도 나섰다. 개인정보 보호위원회가 소비자의 비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비대면 눈속임 구매사례를 분석, 공개했다. ▶전자상거래법도 명쾌하게 경고하고 있다.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인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표시·광고법도 거짓·과장이거나 기만적인 표시·광고법을 금지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 앱 중 97%에서 1건 이상의 다크패턴 사례가 발견됐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세했다. “눈속임 마케팅은 내용과 정도 등에 따라 정상적인 마케팅과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유형도 있다”. 구체적인 규제 대상과 방법 등에 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섣불리 금지·규제하면 기업의 정상적인 마케팅활동까지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곳곳에 매복한 적들이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청년농부, 어디로 갔나

최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년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보면 청년 귀농 가구가 역대 최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통계를 보면 지난해 30대 이하 귀농 가구는 1천507가구로 전년 1천362가구보다 145가구(10.6%) 늘어 역대 최대로 집계됐고, 전체 귀농 가구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5%에 달했다. 특히 30대 이하의 귀농 가구 증가율은 40대(3.3%)와 50대(8.5%)보다 더 큰 폭으로 늘어 농업에 종사하려는 청년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고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수치만 보면 농촌에 청년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마을에 청년 농부를 찾아 볼 수 있나. 매년 귀농했다고 발표되고 있는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농림축산식품부는 매년 귀농인 수를 발표하고 있고, 지역·규모·연령·성별 등 다양하게 귀농인들을 분석해 자료를 발표한다. 그러나 역귀농 통계는 찾아 볼 수 없다. 가장 최근 조사된 것이 4년 전 조사인데, 역귀농률은 8.6%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90%가 넘는 나머지 청년 귀농인들은 모두 농촌에서 자리 잡고 농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인가. 현장에서 이 결과를 신뢰하는 이는 없다. 청년농부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한 숨을 쉰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부지를 구해야 농사로 수익을 낼 수 있는데, 경기도는 땅값이 비싸 애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부지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농촌 물정을 모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사기(?!) 행위를 통해 수익을 얻는 이들도 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피해 유형을 정리해 예방 활동까지 나설까. 귀농귀촌하는 인구 중 청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젊은 인구가 얼마나 귀농귀촌 하느냐에 농촌의, 마을의 생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농업에 진심이라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농촌에 꿈을 갖고 들어간 청년들이 왜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는지 모를리 없다. 청년농부들이 더이상 농촌에서 절망하지 않도록 경기도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호준 경제부장

[지지대] 왕따 국가

유래(由來)가 복잡하다. 원래는 북(Drum)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남인도 지방 토속어였다. 요즘은 따돌림 받는 사람을 뜻한다. 북 제조업자와 따돌림 쟁이와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좀 생뚱맞겠지만, ‘Pariah’란 단어에 대한 얘기다. 인도 남부지방의 이른바 불가촉(Untouchable) 천민이나 미얀마의 최하층민 등을 보통 ‘Pariah’라고 부른다. 인도 등지에서 반야생 상태로 분포하는 들개의 호칭도 ‘Pariah Dog’이다. 해당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가 짙다. 꽤 공교롭다. ▶외교무대에서 이 표현이 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에서다. 기자가 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왕따입니까(Is Saudi Arabia still a pariah)”. 바이든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부 외신은 이를 비웃음(Smirk)이라고 썼다. ▶이런 질문이 나온 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미 정보국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2019년 당시 대선 경선 민주당 토론회에서 바이든 후보가 “그들을 국제적으로 왕따(Pariah)로 만들겠다며 압박했다. ▶이 같은 표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하노이담판(2차 북미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인터뷰에서 북한을 ‘A Pariah State’라고 직격했다. 2019년 2월25일이었다. ‘왕따 국가’라는 뜻이다. 진행자가 “북한으로부터 더는 핵 위협은 없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트윗을 언급하자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왕따 국가’로 남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이보다 더 속된 워딩들은 다반사다. 정상과의 만남에서도 그렇다.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격렬한 어휘들도 곧잘 사용된다. 다만 회담 등이 끝나면 언론은 “외교적인 언사였다”고 마무리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A Pariah State’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켄타우로스의 습격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시작된 코로나19는 2년7개월여 동안 수많은 변이로 진화하며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11일 팬데믹으로 선포했고, 2020~2021년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1천50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금도 매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코로나19 변이는 많지만 발생 초기 바이러스와 영국에서 발견된 알파 변이, 인도에서 발견된 델타 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된 오미크론이 대표적이다. 2020년 12월 처음 발견된 알파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대비 전염력이 75% 이상 강한 것이 특징이며 2021년 상반기까지 세계적인 지배종이었다. 2020년 10월 첫 발견된 델타 변이는 코로나19 변이 중 가장 치명적이고 감염전파력도 높았다. 오미크론 변이는 지금까지 각종 하위 변이를 발생시키는 지배종이다. 델타 대비 감염전파력이 12배나 높으나 위중증률과 사망률은 크게 낮은 편이다. 지금 한창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오미크론 변이인 BA.5와 ‘켄타우로스’ 변이로 알려진 BA.2.75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의 형상(반인반마·半人半馬)을 하고 있다. 성질이 음란하고 난폭한 것으로 표현되는데 변이가 최강의 감염전파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지난 14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오미크론 BA.5와 켄타우로스 변이의 습격으로 국내 코로나19 재유행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세기를 구분할 때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눈 표기법은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현대 인류역사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세계 감정보고서

당신은 어제 ①잘 쉬었나요? ②존중 받았나요? ③미소 짓거나 웃었나요? ④흥미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도했나요? ⑤많은 시간 즐거움을 경험했나요? 이 5가지는 ‘긍정적 감정 경험’을 묻는 질문이다. ‘부정적 감정 경험’을 묻는 질문도 있다. 당신은 어제 하루 상당한 시간 ①신체적 고통을 느꼈나요? ②걱정을 했나요? ③슬픔을 느꼈나요? ④스트레스를 받았나요? ⑤분노를 느꼈나요? 등이다. 갤럽이 2021년부터 2022년 초까지 세계 122개국 12만7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 경험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2022 세계 감정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인들에게 2021년은 어느해보다 더 슬프고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해였다. 부정 경험 지수가 33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에 달했다. 갤럽은 세계인들의 부정적 감정 증가가 전적으로 코로나19 탓은 아니라고 했다. 2020년에 이미 최고치를 기록했던 스트레스와 걱정, 슬픔과 같은 감정이 2021년에 더욱 상승했다는 것이다. 부정 경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59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고(80%), 스트레스를 받았으며(74%),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61%). 긍정 경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파나마(85점)였다. 북유럽권이 행복지수가 높은 지역이라면, 중남미는 긍정 경험 지수가 높은 지역이다.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도 모두 80점을 넘었다. 갤럽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중요한 5가지로 빈곤과 나쁜 공동체, 기아, 외로움, 일자리를 꼽았다. 갤럽의 보고서에는 나라별 정보가 없어 한국인의 부정·긍정 경험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적 추이에 비춰볼 때 걱정과 스트레스, 슬픔,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이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행지수를 낮추기 위해 사회와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우영우’ 신드롬

형이 이상했다. 호텔이 낯설어서였다. 잠이 오지 않는지 밤새 전화번호부만 들척거렸다. 이튿날 아침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주문받는 여직원의 명찰을 보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지난 1989년 개봉됐던 영화 ‘레인맨’의 명장면이다. 자폐증 환자를 형으로 둔 동생의 이야기가 얼개다. 동생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형과 가출했다. 아버지는 재산을 형에게만 물려주고 사망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자폐증을 앓는 형의 천재성에 눈을 뜬다. 베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했다. 형은 더스틴 호프만, 동생은 톰 크루즈가 각각 연기했다. 더스틴 호프만의 명품 연기가 빛났던 작품이었다. ▶요즘 자폐증을 앓는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인 국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극중 주인공의 이름을 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보통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드라마 초반 대사부터 남다르다. 장애를 밝히고 다름을 인정한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예전 작품보다 진일보한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콘텐츠는 이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 개봉한 영화 ‘말아톤’은 자폐증을 가진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몇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는 비슷한 장애를 앓는 젊은이가 대학병원 소아외과에서 천재 의사로 활약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밖에도 영화 ‘증인’(2019년 개봉)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년 방영) 등에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예전 작품들과는 다르다. 장애인이 보호가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는 독립적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도 우리와 같다는 걸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드라마는 자폐성 장애 주인공의 시선도 충실히 따라간다. ▶주변 인물들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콘텐츠들과는 차별화됐다. 종전까지는 주인공을 시샘했지만,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장애를 대하는 시선의 폭도 넓어졌다. 근사한 드라마 한편이 폭염에 찌들은 서민들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디지털 고려장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19가 최근 재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2020년 1월 시작된 코로나19 시국은 참 많은 제도를, 조직 문화를, 다양한 단어를 양산해냈다. 그 중 아마도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바로 언택트(비대면)일 것이다. 비대면 사회는 조직에서 회식 문화를 지워 버렸고, 직장인이라면 당연시 여기던 출·퇴근 문화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겠지만, 암튼 사회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것에는 두말의 여지가 없겠다. 그런데 참 씁쓸한 사회 현상도 만들었으니, 바로 ‘디지털 고려장’이다. ▶‘고려장’은 고려시대에 나이 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 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도시 전설이다. 고려장이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기 이후에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일제의 역사 왜곡설이나 단순한 루머가 확산된 것이라는 등 다양한 설이 돌고 있긴 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만든 비대면 세상에서 무인판매기인 키오스크가 보편화되면서 ‘늙는 것도 서러운’ 노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소외감을 안기고 있다. 디지털 생활권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는 노인들에게 키오스크는 넘어야 할 큰 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인 매장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영업장, 심지어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서류를 떼어야 할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기관에서도 노인들의 이같은 어려움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은 ‘디지털 격차’에 따른 소외감이 사회 전체와의 단절감과 맞먹는 탓에 ‘자식에게 버림받는 것 이상’이라는 의미로, ‘디지털 고려장’이라는 말로 대변되고 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시국 이후 일상 전반에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었지만, 가파른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들의 ‘디지털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와 디지털이 바꾼 사회지만 노인들도 조직의 구성원일 수 밖에 없다. 새롭게 시작한 정부와 민선 8기 지자체에서는 지금이라도 이들이 더욱 소외 받지 않도록 체계적인 교육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2년 7월 도시 전설인 고려장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풀컬러 우주사진

1969년 7월21일 오전 11시56분 20초. 이날을 잊지 못한다. 마침 장마철이었다. 열두살이었던 필자는 시골 도시의 전파사 앞에서 TV로 생중계되던 광경을 지켜 봤었다. 흑백이었지만 경이로웠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던 바로 그곳에서 이뤄졌던 ‘사건’이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 우주선에서 달 표면에 내렸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 당시의 모습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의 감동은 곧 지구촌 전체의 감격이었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였던 달에 착륙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2일 첫번째 풀컬러 우주 이미지 사진을 공개했다. 그때의 감동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실로 53년 만이다.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했다. 공개된 공간은 은하단 뒤에 이른바 ‘중력 렌즈’ 현상으로 관심을 끄는 천체다. ▶과학계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우주의 기원과 외계 행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 등 우주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구촌도 감동의 도가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NASA 등이 10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입해 개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망원경은 허블 및 스피처 망원경의 뒤를 잇고 있으나 성능 면에는 이를 능가한다. ▶허블은 주로 가시광선, 스피처 망원경은 적외선 기반 망원경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전례 없는 해상도로 근적외선 및 중적외선 파장을 포착할 수 있다. 근·중 적외선은 파장이 길어 우주 먼지나 가스 구름을 통과해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웹 망원경으로 태양계부터 관측이 가능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초기 우주 사이를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우주 역사의 각 단계에 대한 연구도 가능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과학기술과 인류 전체를 위한 우주탐사에 있어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경제문제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요즘 가슴을 환하게 해주는 위대한 발견이다. 세번째의 ‘위대한 도약’은 또 언제 터질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스쿨존 횡단보도 ‘일단멈춤’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인근에 국화꽃과 편지, 인형, 과자와 음료수가 놓여있다. 며칠전 이곳 횡단보도에서 굴착기에 치여 숨진 초등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시민 모두 스쿨존 사고에 분노하고 있다. 굴착기 운전자는 지난 7일 오후 이 학교 앞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운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11살의 두 여자 어린이를 치였다. 어린이들은 보행신호에 따라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굴착기는 적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주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전자는 사고 후 별다른 조치없이 3㎞가량 도주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졌고, 1명은 다쳤다. 운전자는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은 굴착기 운전자에 대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 미조치) 혐의를 적용했다. 사고 지점이 스쿨존인데도 굴착기는 자동차가 아닌 ‘건설기계’로 분류돼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민식이법은 2019년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초등 2년생인 김민식군이 차에 치여 숨지면서 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법이다.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 포함)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경찰이 적용한 법과 형량 차이가 크다. 굴착기 운전자를 가중처벌할 수 없다는 소식에 논란이 거세다. 스쿨존내 사고인만큼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며 ‘입법 공백’을 지적하고 있다. 민식이법 시행에도 스쿨존에서 끔찍한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안전 강화를 위해 12일부터 스쿨존내 횡단보도를 지나는 차량은, 신호등과 상관없이 무조건 일단 멈추도록 했다. 어길 경우 차량에 따라 6만~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이 제도가 조금만 더 일찍 시행됐더라면, 앞서 떠나간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텐데....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냉장고 파먹기

많이 채운다. 있는데도 또 채운다. 어떤걸 갖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채운다. 언젠가 사용할거라며 계속 채운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이 그렇다.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 크기도 상당히 커졌다. 두대 있는 집도 많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함께 가진 집도 많다. 정리를 잘 해놓은 집도 있지만, 상당수는 냉동실 문을 열면 쏟아질 듯 온갖 식재료가 그득하다. 깊숙하게 들어있는 냉동식품 중에는 몇년씩 된 것도 있다. 요즘 냉장고 속의 식재료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냉파’ 열풍(?) 때문이다. 냉파는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이다.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받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활용해 음식을 해먹는 것을 의미한다. 냉파는 식비도 줄이고, 냉장고 정리(또는 청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모임이나 외식을 자제하면서 냉파가 유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뜸하더니만, 최근 다시 부활했다. 물가가 겁나게 오른 탓에 장보기가 부담스런 주부들이 식비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속 재료들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일종의 ‘짠테크’다. 블로그나 SNS에는 냉파를 실천하는 사례가 많이 올라온다. ‘식비절약·무지출 일주일째 냉파 집밥’ 같은 식으로 글과 요리 사진을 게재하는 이들이 있다. 냉장고 속 재료로 음식을 하는 ‘냉파 콘테스트’도 있다. 처치하고 싶은 재료와 냉파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으면 온갖 정보가 넘친다. 쉬운 예로 얼린 잡채는 굴소스와 찬밥만 더하면 잡채볶음밥이 되고, 얼린 사골국과 냉동만두는 만두국으로 먹을 수 있다. 냉장고 파먹기로 장보러 가는 횟수나 인터넷 구매가 줄고, 불필요한 쇼핑을 자제하게 됐다고 한다. 무(無)지출로 며칠 버티는 날도 생겨 흐뭇하다는 소감도 있다. 냉장고 파먹기는 생활비를 아끼고, 음식물쓰레기가 줄어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 꽉 차있던 냉장고에 여유가 생기니 냉장 효율이 좋아져 전기료도 절약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냉장고는 가벼워지지만 서민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배려의 사회학

한 외국인 여성이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지나갔다. 옆에선 농부가 지게에 볏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 가고 있었다. 여성은 통역에게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소가 너무 힘들까봐”였다. ▶미국의 소설가 펄벅(Pearl S. Buck) 여사의 ‘살아있는 갈대’에 실린 에피소드다.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덕목 중 으뜸은 배려(配慮)였다. 이방인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일 수도 있었겠다. 외국의 농부였다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눠 지지는 않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 타고 채찍질하면서 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의 농부들은 그렇지 않았었다. 말 못하는 짐승과도 짐을 나눠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았었다. ▶이런 고운 심성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나밖에 모르는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있어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어느새 우리 사회가 이런 각박한 세상으로 변했다. 필자가 동사(動詞)의 시제(時制)를 과거완료형으로 쓴 까닭이기도 하다. ▶폭염이 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가운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이 하루를 지내는 이들이 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탓에 틀 엄두도 못내는 이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른 바 에너지 빈곤층이다.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 되는 이웃들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미흡하다는 점이다. ▶경기도가 저소득 홀몸 어르신 790가구를 대상으로 벽걸이형 에어컨, 공동 전력량계를 사용 중인 취약계층 80가구에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는 개별 전력량계 설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에도 연도별 에너지 빈곤층 비율은 감소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옆집에 에어컨이 없다면 아무리 더워도 틀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옆집으로 우리집 냉방기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에너지 빈곤층 문제를 해소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콩 반쪽도 나눠 먹던 우리 선조들의 심성(心性) 고운 덕목(德目)이 아쉬운 요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홈리스 닥터헬기

중증응급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 확보다.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지난 2019년 8월31일 대형헬기 H225를 도입해 운항하다 올해 1월 중형헬기 AW169로 교체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닥터헬기의 1분기 이송 건수는 47건에 달해 연간 200건가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같이 수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닥터헬기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닥터헬기의 집이 없는 것이다. 항공법에 따르면 헬기는 반드시 계류장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주대병원에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임시 거처인 10전투비행단 내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대학교와 병원 부지 내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행 항공법상 반드시 지상에 계류장을 설치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가능한 부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상센터는 옥상 계류장을 검토해 봤지만 이마저도 항공법 개정 등이 필요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0년 경기도는 25억원을 투입해 제10전투비행단 내 전체 면적 1천250㎡ 규모의 닥터헬기 계류장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제10전투비행단의 이전과 맞물려 공군과의 세부 협의가 쉽지 않아 계류장 건립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증응급환자의 골든아워는 중증외상 1시간, 심혈관 2시간, 뇌졸중 3시간이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연간 2천500건 이상 수술을 하며 수 많은 인명을 살려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닥터헬기가 있다. 홈리스 닥터헬기의 집을 지어주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대체 부지 마련, 정부와 자치단체의 예산 지원,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 등이다. 고단한 닥터헬기의 안락한 집이 하루 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황제펭귄의 멸종

곧추 서서 걷는다. 날개가 있다. 지느러미 모양이다. 헤엄 치기에 딱이다. 앞다리 날개는 변형됐다. 깃털은 짧고 온몸을 덮는다. 뼈는 결합 부위가 평평하다. 가슴뼈에는 낮은 용골돌기도 있다.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 부척골(跗蹠骨)이 짧다. 헤엄칠 때는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드러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장(腸)이 긴 것과 앞쪽 위(胃)에 잔돌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잠수하기도 쉽다. 호흡·순환계도 바다에 사는 포유류처럼 물에 들어 가는데 편리하다. 남극에만 산다는 황제펭귄의 이력서다. 물론 갈라파고스제도·남아메리카·남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신상을 더 들여다 보자. 펭귄목 펭귄과의 조류인 이 녀석의 성체 키는 120㎝에 수명은 약 20년이다. 몸무게는 23~45㎏이다. 현존하는 지구촌 펭귄 중 가장 크다. 보통 펭귄하면 가장 먼저 ‘까만색 턱시도 입은 것처럼 생긴 펭귄’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추워서 이를 떨치기 위해 늘 차렷 자세로 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별명도 ‘남극의 신사’이다. ▶추위에도 정면으로 맞선다. 다른 동물이 추위를 피해 떠난 남극에서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느라 지친 암컷들은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수컷은 무리를 이뤄 알을 품는다. 기온은 영하 50도를 넘나든다. 황제펭귄들은 서로 원 모양으로 무리를 짓고 바람에 저항한다. 원안에서 조금씩 이동하는 허들링을 하면서 버틴다. 성지를 순례하는 무슬림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대규모로 떼지어 있는 모습이 또 압권이다.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혹한의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도 몇십년 안에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생물학자인 마르셀라 리베르텔리 아르헨티나 남극연구소 연구원이 지적했다. 그는 “탄소중립이 지켜지지 않으면 남위 60~70도 사이 펭귄 서식지는 향후 30~40년 후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갓 태어나 수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방수 깃털도 없는 새끼 펭귄은 물을 만나면 얼어 죽거나 빠져 죽는다. 남극에 서식하는 동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황제펭귄이 사라지면 남극 생태계 전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어떤 종(種)이 사라진다는 건 생태계의 손실이고, 비극이다. 지구는 후손들에게 빌린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러브버그의 습격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 은평구·마포구 일대에 ‘러브버그(사랑벌레)’로 불리는 벌레떼가 출몰해 비상이다. ‘아파트 외벽에 짝짓기하는 벌레들이 새까맣게 붙어있다. 창문에 엄청나게 달라붙어 문을 열 수가 없다. 방충망을 했는데도 집 안까지 침투했다. 가게 안까지 들어와 쓸어도 끝이 없다. 주차한 차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징그럽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러브버그는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약 1㎝ 크기의 파리과 곤충이다.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짝짓기 하는 동안에는 물론 날아다닐 때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로 불린다. 생존 기간은 보통 3~5일 정도다. 러브버그는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지 않으며 질병을 옮기지 않는다. 인체에 무해한데다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고 환경을 정화하는 익충(益蟲)으로 알려졌지만 날파리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혐오감을 준다. 또 사람에게도 날아드는 습성 탓에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한다. 최근 러브버그가 갑자기 증가한 이유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습한 날씨 영향이 클 것이라는 추정이다.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애벌레가 빨리 자라는데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은 환경이 유지되면서 유충 발달 속도가 빨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마철이 끝나 햇볕에 노출되면 건조한 날씨에 취약해 대부분 자연 사멸한다. 하지만 당장 극성을 부려 해당 자치단체 구청이나 보건소 등에서 인력을 긴급 동원, 방역 조치를 하고 있다. 각 가정에선 파리약을 활용해 퇴치하고 있다. 러브버그가 불빛에 더 몰려들기 때문에 야간에 커튼으로 불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해충이 아니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로 벌레 숫자가 늘어나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실제 고온현상이 애벌레에서 성충, 유충으로 이어지는 곤충의 세대 순환 기간을 줄여 일부 지역에서 대벌레, 매미나방, 노린재가 창궐한 바 있다. 해외에선 무당벌레·바퀴벌레·개미떼 등이 극성이었다. 기후이상으로 앞으로 더 많은 벌레떼가 출몰할 것이라는 예측이라 걱정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무인점포시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물은 거의 ‘셀프(self)’다. 물을 영어로 (워터·water가 아닌) ‘셀프’라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요즘은 브런치 카페 등에서 소비자를 많이 부려 먹는다. 뭘 먹을지 정하고 계산을 하고나면 진동벨을 준다. 벨이 울리면 카운터에서 커피나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 다 먹은 후에는 빈 잔이나 접시를 다시 가져다 줘야 한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테이크아웃을 위주로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에는 키오스크(kiosk)가 등장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단말기로, 이 앞에 서서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고 결제를 한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취약계층은 기계 이용이 쉽지 않다. 돈이 있어도 뭘 사먹을 수가 없다. 기계로는 돈을 받지 않거나, 아예 사람이 없는 점포도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소규모 점포에선 사장이 직접 음료를 만들고 음식도 만든다. 소비자는 키오스크로 주문·결제를 하고 음식이 완성되면 직접 픽업을 한다. 대형 햄버거 업체부터 일반음식점까지 키오스크 도입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데 500여만원이 든다는데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고, 설치 비용을 비교적 빠른 시간내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처럼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사업 모델의 스타트업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로봇 팔이 치킨을 튀기는 ‘롸버트치킨’의 로보아르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로봇카페(비트) 비트코퍼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가 선보인 오프라인 무인세탁소 ‘런드리24’도 비슷하다. 모두 사람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해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점점 더 비싸지는 원자재, 인건비를 다 감당하면서 누군가를 고용해 수익을 내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무인 점포가 계속 늘고 있다. 반면 일자리는 자꾸 줄어든다. 무인(無人)시대가 그리 반갑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글루미 홍콩

한 사내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비슷한 연배의 아낙네도 입주한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다. 사내는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이들의 배우자들도 엇갈린 인연을 쌓는다.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정을 품는다. 출발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져 간다. 사내는 평온을 되찾고, 무협소설도 다시 쓴다. 요즘처럼 장마철이면 떠오르는 어떤 영화의 얼개다. ▶작품의 무대는 파스텔 톤의 한 도시였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제목이다. 여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은유한다. 아시아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왕가위(王家衛) 감독이 연출했었다. ▶영화의 배경은 홍콩(Hong Kong)이다. 19세기 중반 한 영국인이 중국인에게 “어디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광동어 억양으로 “헝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홍콩’으로 불리게 됐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 식민지가 됐지만, 1997년 반환된 뒤 중국 특별행정구로 편입됐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25년 만에 홍콩경제를 장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 제로’ 정책 여파로 금융허브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3천440억달러(약 442조원) 규모의 홍콩경제도 중국 국영기업들 손에 넘어가고 있다.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중국 정부의 궤변성 발표도 나왔다. 이 내용은 홍콩 공립고교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녹여졌다. 지난 2019년 민주화시위 이후 시진핑 주석이 가속화한 이른 바 ‘홍콩의 중국화’다. ▶오늘은 이 도시가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해야 할지, 애도해야 할지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중국 경제전략가인 사이먼 리의 고언이 귓가를 맴돈다. “홍콩이 결정적인 기로에 섰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홍콩의 사회·경제·정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임명권자 이름 빛낼 정무직

“(새 시장과) 시정운영 방침과 철학이 서로 다른.... (임명권자가 바뀌었으면) 거취가 빨리 정해져야 한다.” 최근 정유섭 민선8기 인천시장직인수위원장이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우선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당선인이 정무직 등을 등용해 시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 또 그들은 당선인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며 손발을 맞춰 함께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앞선 시장이 임명한 사람들은 나가달라는 것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소위 ‘엽관제’라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을 말하면서, 엽관제로 들어온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 달라는 뜻이다. 그동안 시간을 되돌려보자. 대부분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들은 선거 전후 알아서들 자리를 떠난다. 스스로 정무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기관장이나 고위 간부 등은 정치색도 없고 결코 정무직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스스로를 ‘전문직’이라 칭하며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이 같은 자기 합리화는 결국 대대적인 감사나, 예산 삭감 등의 보복을 부른다. 결국 죄 없는 수많은 직원들만 큰 고통을 겪은 뒤, 전문직을 주장하던 그들은 결국 불명예 퇴진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번 정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스스로 물러나 달라’고 요청한 것이 더 당당하다고 평가하고, 또는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그동안 수많은 시장의 교체 과정에서 반복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선거 후 스스로 물러난 ‘멋진’ 정무직들도 많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 들어올 정무직들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고, 임명권자의 이름을 빛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회색지대전술

국가 최고 지도자가 변방의 섬을 방문, 이렇게 지시했다. “어민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 고기도 잡으면서 돈도 벌고, 먼 바다 정보도 수집하면서 섬과 암초를 건설하라”. 어선들에 대해 군사적전 투입지침이 내려졌다. 극히 이례적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성(海南省)에 주둔 중인 부대에 내린 전략이었다. 지난 2013년 4월, 취임 직후였다. 이 장면은 중국 중앙방송인 CCTV를 통해 주요 뉴스로 전국에 보도됐다. 그동안 실체가 불분명했던 중국 공산당 전략이 시나브로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이른바 ‘회색지대전술(Gray Zone Tactics)’이다. 정규군이 아니라, 민병대나 민간 무장어선 등을 활용해 도발하는 게릴라 전술이다. ▶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이 만들어진다.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다. 경계가 불분명하다. 회색지대전술은 1949년 국민당 군대 공격을 막기 위해 창설된 해상 민병대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들은 1920년대 소련 해군의 ‘영 스쿨(Young School) 전략’을 차용했다. 잘 훈련된 소형 선박 선단으로 대형 함대에 맞서는 전법이 핵심이었다. 파란색 어선을 타고 다녀 ‘리틀 블루 맨(Little Blue Man)’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중국 해상민병대는 평소에는 고기를 잡는 등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에는 전투에 바로 투입된다. 지난 1974년에는 파라셀 해전에서 첨병에 섰다. 지난 2009년에는 미국 해군 임페커블함 해양조사활동을 저지하기도 했다.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만 언론들은 특정 지역을 분쟁지대로 만들기 위한 회색지대 전술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 침범은 6월 들어 모두 7번째다.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려면 미리 비행계획과 진입시 위치 등을 통보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 2020년 9월 이후 방공식별구역에 끊임없이 군용기를 진입시키고 있다. ▶회색지대 전술은 대만 방공식별구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닥친 위험한 현실이다. 서해바다 우리측 어로구역에 어선으로 가장, 출몰하는 중국 선박들도 해당 전술에 따른 군사행위다. 우리 영해에서도 중국의 회색지대전술은 ‘현재진행형’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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