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낭만 대신 폭설로 맞이한 첫눈

“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1960년대를 풍미했던 김수영 시인이 읊은 ‘눈’이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가 원고지에 이 작품을 쓰던 날도 오늘처럼 폭설이 내렸나 보다. 그가 시를 통해 녹여 냈던 서정은 반듯했다. 일체의 정립된 언어와 고정된 언어 등을 부정직한 것으로 여겨서다. 오늘 같은 날씨에 읽으면 제법 근사하다. 눈을 소재로 한 소설도 있었다. 이청준 작가의 ‘병신과 머저리’다. 6·25전쟁의 아픔을 안고 사는 제대 군인의 실존적 고통을 담았다. 4·19 전후에 청년기를 보냈던 젊은이의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고통도 그려졌다. 소설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해소하려는 시도나 뚜렷한 형체 없이 존재하는 정신적인 고통의 묘사가 돋보였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눈이 오는 날이 좋겠어. 그 사이에 포성이 오면 또 생각을 달리해도 될 테니까. 그러고는 금방 눈이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눈이 오고 있다, 김 일병’.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나서 다시 김 일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작품의 얼개는 6·25전쟁의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는 의사인 형과 고통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화가 동생의 이야기다.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형은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오관모와 김 일병, 나(형)는 전쟁에서 낙오된 패잔병이다. 김 일병을 죽이겠다고 하는 오관모와 김 일병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 그 잔인한 날에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린 눈이 폭설로 번진 날에 되짚어 보는 단상이 어지럽다. 2024년 첫눈은 후세에 어떻게 기억될까.

[지지대] 오빠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논에서 울고/뻐꾹 뻐꾹 뻐꾹새/숲에서 울 제/우리 오빠 말 타고/서울 가시며/비단구두 사가지고/오신다더니.’ 한국에서 동요 ‘오빠 생각’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는 없을 듯 싶다. 서정성과 소리말이 살아 있어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동요의 주인공은 최순애(1914~1998). 수원 북수리에 살던 열두 살 소녀 최순애는 1925년 오빠를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을 동시 오빠 생각에 실어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투고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화성 성벽을 따라 산길로 올라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뜸부기 울음소리를 듣다 오빠를 그리워했다 한다. 여기에 청년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였고 이내 국민 애창곡이 됐다. 오빠 생각이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수원문화도시포럼은 오빠 생각이 어린이 잡지에 실린 지 100년이 되는 내년 5월 ‘오빠 생각 노래비’ 제막을 목표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수원과 최순애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발굴될지도 기대된다. 실제 오빠 생각에는 방정환과 최순애의 남편이자 ‘고향의 봄’ 작사가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최순애가 그리워하던 오빠 최영주 등 다양한 인물이 연관됐다. 동요문화를 일으켜 어린이들에게 트로트 대신 동요를 돌려주자는 취지도 있다. 지난달엔 그림책도 출간됐다. 박상재 아동문학가와 김현정 그림작가는 동요 오빠 생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를 모티브로 한 동화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비단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오빠를 한없이 기다리는 순이와 단짝 홍이. 수원 화성과 광교산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녀의 여정은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펼쳐진다. 잊혔던 역사가, 지역의 인물이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될 때 지역의 정체성은 더욱 뚜렷해지고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지역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노래비 건립 추진과 책 출간 소식이 마침 반갑다. 최순애와 오빠 생각이 어떤 상상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지지대] ‘백인 만델라’ 브레이튼바흐

인종차별보다 더 끔찍한 인권 유린은 없다. 유색인종인 경우 특히 그렇다. 아시아계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하는 건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아직도 이 세상 곳곳에선 이런 행위가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만약 지배층 주민이 피지배층 권익 보호에 앞장선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백인이 흑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희생한다면 말이다. 브레이튼 브레이튼바흐가 딱 그런 인물이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횡행하던 지구 반대편 국가에서였다. 반인류적인 정책에 저항했던 시인 겸 소설가, 그리고 화가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떴다고 외신이 전했다. 향년 85세다. 고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서부 웨스턴케이프주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태어났다. 이후 프랑스 파리로 옮겼다. 대부분의 생애를 유럽에서 보냈다. 하지만 남아공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계속 지켰다.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도 이어갔다. 파리에 거주하면서도 자주 고국을 방문했다. 1975년 방문 시 백인정권의 탄압을 받던 넬슨 만델라의 정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벌인 반정부운동을 도운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7년간 투옥됐다. 1982년 프랑스 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돼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남아공에는 아프리칸스어라는 언어가 있다. 이 나라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이 발전시킨 토착어다. 그는 이 언어로 작품을 쓴 대표적인 작가였다. 저서로는 1975년부터 7년간 겪은 감옥생활을 바탕으로 쓴 ‘백색증(알비노) 테러리스트의 고백’ 등이 있다. 유족은 그가 작품 활동을 통해 “망명과 정체성, 그리고 정의의 주제를 대담하게 다뤘다”고 회고했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열성적인 헌신은 숭고하다. 그의 저항은 결단력이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그를 기록할 터이다.

[지지대] 은퇴

그녀는 올해 세 번째 스무살 생일이 지났다. 곧 정년(停年) 퇴직을 한다. 36년6개월을 한 회사에 다녔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은퇴를 한다. 어떻게 한 회사를 그리 오래 다녔을까 스스로 신기하다. 근무 조건이 좋다거나,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아닌데도 말이다. 무던했던 걸까. 그 일이 적성에 맞아서였을까. 두 가지가 함축된 것 같다. 정년을 앞두고 감회가 새롭다. 인생의 젊은 날들인 20, 30대를 거기서 보냈다. 시간은 흘러흘러 갔고, 인연의 끝이 왔다. 어디나 그렇지만 희로애락이 있었다. 잘 견디고 버텨냈다. 스스로에게 애썼다고 토닥인다. 직장생활 동안 얻은 여러 경험은 소중하고 감사하다. 많은 이들이 은퇴 이후를 걱정한다. 수십년간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뭔가 모를 공허함과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다. 중독된 듯 일만 했으니 쉴 줄도 놀 줄도 몰라서다. 드디어 자유다. 이젠 돈에 묶인 노동보다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며 살자 생각하면서도 싱숭생숭하다. 회사 다닐때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에 지치거나 지겨워 ‘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데 은퇴하고 계속 쉰다 하니 잘 지낼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꼭 돈이 필요하거나 일(직장)이 필요한 게 아닌데도 그렇다. 인생은 습관화된 존재여서, ‘관성’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게 은퇴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직장을 떠나야 하는 때가 온다. 은퇴를 서글퍼하거나 은퇴 이후 위축될 이유가 없다. 그동안 일하느라 아등바등 살았으니, 이제 당당하게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꾸려 나갈 필요가 있다. 직장생활에선 위에서 시키는 것들을 해내야 하거나 회사 이익을 위해 달려 왔다면, 은퇴 후의 삶은 자기 주도적으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이제 일만 하며 지낸 시간을 넘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퇴직 후 제2의 삶은 ‘일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지내는 게 좋다. 은퇴는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지지대] 늘어나는 청소년 우울증

사춘기(思春期)는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시기다. 이 기간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심리적·정서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보통 기분이 쉽게 변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한다. 기쁨과 슬픔이 극단적으로 교차하거나, 혼란스럽고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격정적인 감정 기복을 그냥 ‘사춘기’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항상 밝았던 아이들이 감정 조절을 못하고 힘들어하면 ‘청소년 우울증’을 의심해 보는 게 좋다. 입시 스트레스, 학교폭력, 스마트폰 중독,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도박, 사회성 결여 등 우울증에 걸릴 만한 요소들이 많다. 최근 10대 청소년의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0대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는 약 56.4% 증가했다. 특히 수능이 있는 11월에 환자 수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극단적인 입시 경쟁과 성적 스트레스가 심리적 압박과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4명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답하는 등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간 중고등학생들의 정신건강 지표가 악화하고 있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4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2주간의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낀다고 답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42.3%로 지난해보다 5%포인트 증가했다. 2010년(43.8%) 이후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14년 만에 최고치다. 전년 대비 증가폭으로는 2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업, 진로 등 사회적 경쟁 압박에 시달리다보니 정신건강 지표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한창 사회 활동을 할 시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간이나 사회와 단절된 영향도 있다. 청소년이 건강해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다. 단기적 상담 치료를 넘어 근본적인 스트레스 요인인 치열한 입시 경쟁과 사회적 압박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지대] 정조대왕함

주로 역대 대통령의 이름이 붙는다. 조지워싱턴함, 존F케네디함, 로널드레이건함.... 미국 항공모함 얘기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검증이 끝난 훌륭한 군주나 장군, 독립운동가 등의 명칭을 붙인다. 세종대왕함이나 충무공이순신함, 도산안창호함 등이 그렇다. 이런 가운데 조선 후기 개혁군주인 정조대왕의 이름을 딴 구축함이 오는 27일 해군에 인도된다. 진수 시점은 지난 2022년 7월이었다. 이후 방위사업청과 HD현대중공업 등의 시운전 등 성능검증 절차도 통과했다. 해군은 다음 달 취역식을 연 뒤 내년부터 1년 동안 시범 운항한다. 이 구축함의 규모는 경하배수량 8천200t이다. 해군이 보유한 구축함 중 배수량이 가장 크다. 최대 속력은 시속 약 55㎞(30노트)다. 전투수행 시스템도 탄도미사일 탐지·추적만 가능했던 기존 이지스 구축함들과 사뭇 다르다. 탐지·추적에 요격도 가능해서다. 핵심은 SM-3 함대공 미사일 탑재다. 이 시스템은 작전 환경의 ‘게임 체인저’다. 정부는 지난 4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SM-3로 결정했다. 해군은 최대 요격고도 500㎞ 수준인 SM-3 블록Ⅰ구매를 검토 중이다. 좀 더 들여다보자. SM-3 일부 버전(블록ⅡA형)은 요격고도가 1천㎞를 넘는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도 맞힐 수 있다. 한때 SM-3 도입 여부를 놓고 논란도 있었다. 북한이 한국에는 비행고도가 낮은 단거리 탄도미사일만 발사한 만큼 불필요하다거나 미국 미사일방어망(MD)에 편입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서다. 하지만 북한이 전력을 총동원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를 겨냥해 중거리급 이상의 미사일을 고각으로 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한반도 작전해역 어디에서든, 더 높은 고도에서 요격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뜬금없겠지만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군함에 대통령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미국처럼 말이다.

[지지대] 마지막 선물과 확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1천일을 맞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도대체 전쟁의 명분이 뭐지’라는 의구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북한군이 파병돼 확전의 초석을 다지더니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전술 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결국 러시아 본토 타격을 감행, 러–우 전쟁은 확전일로에 접어들게 됐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러시아는 즉각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해 우크라이나도 핵공격 대상으로 포함하는 ‘핵카드’로 맞불을 놨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여섯 발의 미사일 중 자국의 방공시스템이 다섯 발을 격추했고 나머지 한 발에도 손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그런데 공격의 성패를 떠나 이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한 첫 사례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퇴임 전 우크라이나에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마지막 선물이 확전과 핵무기 사용까지 가능한 3차 대전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한 셈이 됐다. 본토 타격으로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대한 나토 회원국의 미사일 공격은 나토의 직접 개입이라고 주장했던 만큼 에이태큼스 발사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신속한 종전’을 공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1월까지 러–우 전쟁은 더욱 가열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압박하는 휴전 협상에 대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 유리한 ‘고지 점령’이 절실함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대량살상무기로 보복 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러–우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지대] 저속노화 열풍

나이 드는 속도도 늦출 수 있을까. 학계는 음식을 통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뜨고 있는 ‘가지 닭가슴살 볶음’이 대표적이다. 누리꾼들은 한 술 더 뜬다. 중화요리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잡곡밥 등을 먹을 때 반찬으로 곁들여도 좋다고 소개한다. 노화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선 나이 듦을 촉진하는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설탕 같은 단순 당이나 흰 쌀밥과 빵 등으로 대표되는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성 단백질 등은 자제해야 한다는 제언도 그렇다. 튀김류, 버터, 마가린, 치즈 등도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 대신 푸른 잎 채소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 베리류 등의 섭취를 권유한다. 맵고 짜고 얼큰한 맛을 즐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떨떠름한 메뉴들이다. 이처럼 밋밋한 건강식이 2030의 ‘힙’한 습관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유통시장을 강타(경기일보 18일자 8면)하고 있다. 마라탕이나 탕후루처럼 자극적인 음식에 관심을 두던 젊은 소비자들이 건강한 식습관으로 저속노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MZ세대의 비정제 탄수화물, 식물성 지방, 식이섬유 등 저속노화 관련 식품 구매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저속노화는 세포 손상과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려는 건강 관리 방식으로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 충분한 수면이 주요 요소다. 신품종 가루쌀도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림축산식품부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된 신품종 가루쌀은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어 편리하고 효율적인 재료로 꼽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소비 촉진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신메뉴 개발과 보급 확산 등에 나서고 있다. 노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예방적 건강관리’.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요긴한 팁으로 부상하고 있는 까닭이다.

[지지대] 소방관

2001년 3월4일, 서울 홍제동의 다세대주택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집주인의 아들이 술에 취한 상태로 어머니와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른 것이다. 화재는 골목길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와 구조대원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소방관들은 긴 소방호스를 끌고 뛰어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단계에 주민 7명을 무사히 대피시켰지만, “아들이 집 안에 있다”는 한 어머니의 말에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노후한 건물이 무너져 구조대원 10명이 매몰됐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구조대원과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 200여명이 구조 작업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홍제동 화재 참사’를 바탕으로 영화 ‘소방관’이 제작돼 12월4일 개봉된다. 살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가 마지막 현장인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한 목표하에 활동하는 상황을 리얼하게 담았다. 소방관의 일은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타인의 목숨을 지켜내는 일은 숭고하다. 지난 17일 안산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소방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줬다. 오전 3시 6층짜리 모텔 상가 화재로 대형참사가 날 뻔했는데 현장 소방관 팀장의 기지로 전원 구조됐다. 당시 이 건물 5~6층 모텔에는 숙박객이 수십명 묵고 있었다. 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 지휘부는 대형 인명피해 가능성에 대응2단계를 발령해 인력 233명, 장비 82대를 투입했다. 투숙객들은 창문 밖으로 “살려 달라”고 외쳤으나 강한 열기에 접근이 어려웠다. 이때 안산소방서 119구조대 박홍규(소방위) 3팀장이 손도끼로 복도 창을 깨 열기와 연기를 빼며 진입하라고 지시했다. 대원들은 10번 이상 건물을 오르내리며 49명을 구조했다. 공무원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 소방관이다. 남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오는 불길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수백도의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가득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거나 화재를 진압하다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 지난 10년간 화재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이 4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소방관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경제적·사회적·정신적 보답과 예우가 있어야 한다.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를 보고 싶다.

[지지대] 증시 이민 ‘서학개미’

주식시장에서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을 ‘개미’라고 표현한다. 개미는 한 개인으로 볼때는 미약하지만, 뭉치면 큰 힘이 된다. ‘동학개미운동’이 대표적이다. 동학개미운동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식 시장에 등장한 신조어다. 코로나19로 증시 폭락이 거듭되는 가운데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1894년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표현이다. 실제 2020년 3월 들어 3월20일까지 외국인들은 10조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매도한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9조원 가까이 사들였다. 이 동학개미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동학개미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로 변신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미국 증시의 상승 탄력이 한국 증시를 앞섰기 때문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최근 1천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어섰다. 보유액이 불과 10개월 사이 50%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증시에 몰리는 이유는 수익률이 좋기 때문이다. 올 들어 나스닥과 S&P500지수는 각각 28.5%, 25.6% 급등했다. 올해 국내 개미의 수익률이 3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올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주요 20개국(G20) 중 최저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쏠림이 더 심화될 것이라 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되면서 기업 규제 완화와 감세 조치 등을 예고해 분위기가 좋다. 반면 관세 등 무역장벽 강화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해 ‘증시 이민’이 가속화할 수 있다. 우리 증시는 실적 대비 지나치게 저평가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사태를 방관하기보다 증시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 기업들도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 저평가된 증시가 헤지펀드의 멋잇감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지지대] “노래로 불의에 맞섰다”

무대에 올랐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기기타의 첫 번째 줄을 튕겼다. 금속성 음향이 배어 나왔다. 드럼도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보컬리스트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관중석을 향해 포효했다. 눈을 감고 반쯤 무릎을 꿇었다. 노래가 끝 부분에 접어들면서였다.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의 공연은 늘 그랬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1980년대부터 무려 30여년을 풍미했다. 2억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음악적으로도 숱한 성취를 이뤄냈다. 록과 디스코, 팝, 컨트리 등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 밴드가 지금까지도 주목받는 대목은 사회 모순에 늠름하게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특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선 노래로 준엄하게 맞섰다. 노래가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는 유일한 무기였다. 사회 고발을 담은 노랫말은 그래서 이들에겐 필수였다.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로도 독보적이었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보노의 영향력은 한 국가 지도자에 버금갈 정도였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보노의 자서전이 잔잔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혈기 넘치는 청소년 4명이 10대의 아이콘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밴드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았다. 그는 대표 곡인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를 기점으로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냈다. 이 노래의 모티브는 1972년 영국군이 시위를 벌이던 비무장 아일랜드계 주민들에게 실탄 사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공연으로 중국 입국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의 동료들은 빈곤과 에이즈 문제에도 관심을 촉구했다. 넬슨 만델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과도 교류했다. 보노는 “늘 우리의 명성을 활용해 줄을 서 있는 레스토랑에서 먼저 자리를 안내받는 것보다는 더 유용한 곳에 쓰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식을 지키는 게 진정한 평화라는 뜻이다. 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명쾌하다.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지대] 비트코인 1억원 시대

비트코인 1억원 시대가 열렸다. 정확히는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억2천300만원. 이 글을 독자들이 볼 때는 얼마에 거래가 되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후 비트코인 가격이 30%가량 급등해 9만달러를 넘어섰고 전문가들은 10만달러 도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다시금 가격이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에 내정한 것을 보면 당분간 강세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반면 국내 증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주가도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 당선으로 향후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증시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대통령 공약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세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기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미 수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라는 캐릭터로 인해 전 세계의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가상화폐가 이슈로 떠올랐을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3천만원대였다. 당시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국민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드는 것을 우려했다.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비트코인은 1억원을 돌파했다. 여전히 국민들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을 비난만 할 것인가. 다가오는 제2기 트럼프 시대를 앞두고 정부는 무슨 말이라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105년 만의 귀환

“수암, 그는 나의 사촌이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와 놀았다. 나와 수암은 재미있고 신비한 일을 좋아했다. 풍뎅이를 잡으면 넓고 반들반들한 돌 위에 거꾸로 뉘어 오랫동안 날개를 치며 춤추게 만들었다.”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청년 시절 그 격동의 세월을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낯설겠지만 이 작품의 저자는 이미륵이다. 물론 필명이고 본명은 이의경(1899~1950)으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소설의 주인공은 저자 자신이다. 어려선 한학을 배웠고 어른이 된 후 중국과 유럽에 대한 꿈을 키워 가다 성장을 위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이의경 지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다. 조국을 떠난 지 105년 만이다. 국가보훈부는 이 지사의 유해가 1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17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수배를 피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일을 도왔다. 1920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간 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의학, 뮌헨대에서 철학 및 동물학 등을 전공했다. 1927년 뮌헨대 재학 중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대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해 ‘한국의 문제’라는 소책자 초안을 작성하고 결의문을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 세계에 독립 의지를 알렸다. 이 지사의 저서가 발간된 시점은 1946년이다. 출판 후 독일 교과서에 실렸다. 유럽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50년 3월20일 위암으로 별세해 독일 바이에른주 그래펠핑 신묘지에 안장됐다.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은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를 모셔 온 게 처음이었다. 이 지사의 봉환은 149번째다. 가슴이 뭉클하다.

[지지대] 인류무형유산 ‘한국의 장(醬)’

시골풍경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장독대다. 집집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아 놓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인 모습이 정겹다. 한국의 장(醬)은 밥, 김치와 함께 한국 음식문화의 핵심이다. 한국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장은 그 자체로 별미이자 최고의 조미료다. 가정마다 장맛이나 만드는 방식이 달라 한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장은 가을에 수확한 콩으로 동짓달 말에 메주를 쑤고, 메주에 발효균을 피워 천일염으로 간을 한 물을 넣어 발효시키는 과정으로 만든다. 메주가 소금물과 만나 우려낸 것은 간장이 되고, 건져낸 메주는 된장이 된다. 발효가 미생물의 성장과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장소·시간·방법에 따라 장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전승돼온 전통 음식문화 중 하나로,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재료를 준비해 장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을 아우른다. 장을 만들어 먹은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장 보관 창고인 장고(醬庫)를 두고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관리할 정도로 장을 중시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의 장은 독특하다는 평가다.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중국, 일본과는 제조법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다음 해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기다림과 정성으로 빚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최근 평가기구 측으로부터 ‘등재’ 판단을 받았다. 이번에 최종 결정되면 한국의 23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요즘은 장독 하나 있는 집을 찾기 힘들다. 집마다 각자의 장을 담그는 문화가 사라졌다. 가정에서 장을 담그다가 공장 제조 장류를 사 먹는 시대가 됐고, 이제는 떡볶이 소스 등 간편 제품을 소비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아 장류 소비량이 크게 감소했다. 장 담그기 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건 기쁜 일인데, 전통 장 문화가 사라져 가 안타깝다.

[지지대] ‘아파트’ 열풍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파트’를 외치며 열광하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노래 ‘아파트(APT.)’를 따라 부르는 것이다. 중독성 강한 가사를 반복하는 이 노래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내외 주요 음악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더니, 뮤직비디오는 지난달 18일 공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기록했다. 12년 전 세계인들의 말춤을 이끌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52일이 걸린 기록을 단시간에 갈아 치웠다. 로제는 이 노래를 한국에서 유행한 술자리 게임 ‘아파트’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손을 쌓아 올리면서 특정 숫자에 걸린 이가 술을 마시거나 벌칙을 수행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놀이다. 뮤비에서도 로제와 마스는 이 게임을 재현한다. 마스가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말로 ‘건배’를 외치는 모습이 화제다.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로제의 아파트는 각국 음원 차트를 휩쓰는 등 케이팝 여성 가수로서 각종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 4일 발표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글로벌 200’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100’에서도 3주 연속 2위, 3위를 하는 등 최상위권이다. 아파트를 외치며 떼창을 부르고, ‘아파트 게임’을 따라 하는 챌린지 영상도 이어지고 있다. 노래 흥행으로 한국식 영어 표현인 ‘아파트’ 단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SNS에선 아파트가 ‘아파트먼트(apartment)’를 뜻하는 콩글리시인 줄 모르고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 ‘아파트(AP-A-TEU)’를 그대로 따라 부른다. 최근엔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까지 인기다. 1982년 발표된 이 노래 음원에는 “아파트 42년 만에 재건축 축하합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고 신분 과시용이기도 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강연에서 “로제 아파트의 인기 때문에 아파트값이 오를까 봐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농담이긴 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치솟은 아파트 값 때문에 걱정이다. 서민들도 마찬가지다.

[지지대] 늦어진 가을 단풍

나뭇잎의 엽록소가 분해되면 엽록소에 가려졌던 색소가 겉으로 나타난다. 어떤 색깔이든 그렇다. 그게 단풍이다. 하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 일조시간이 줄면서 광합성은 덜 활발해지고 엽록소 생성량은 감소한다.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면 잎으로 영양분과 수분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풍은 쌀쌀해지면 찾아 오는 ‘선물’이다. 일반적으로 단풍은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 물들기 시작한다. 기온이 낮아야 단풍색도 선명한 까닭이다. 올해 단풍이 유난히 늦다. 폭염이 원인이라는 게 기상당국의 분석이다. 특히 올해는 1월부터 10월까지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예년보다 무더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처럼 ‘참 위대한 여름’이었다. 예년에 비춰 보면 이맘때면 온 산하가 울긋불긋했다. 지난해도 그랬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단풍 명소로 떠나는 관광버스가 아침마다 도심에 즐비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썰렁하다. 발길도 예년 같지 않다. 기후 변화를 만나 단풍이 지각한 셈이다. 이제 가까스로 중부지방은 뒤늦은 절정이고 남부지방은 시작이다. 전국의 단풍 명산 21곳 중 11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월악산은 12일이고 내장산은 ‘아직’이다. 통상 중부지방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상순 사이였다. 남부지방은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였다. 올해는 이 관례마저 깨졌다. 한 논문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14년까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시기 기온이 1년에 0.04도씩 높아지며 단풍이 드는 시점도 매년 0.21일씩 늦어졌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현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 단풍이 드는 시점이 2046~2065년에는 1989~2014년보다 10.37일이나 늦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래저래 우울한 계절이다.

[지지대] 생명표 위의 아이들

생명표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 사람이 나고 죽는 일에 대해 국가가 조사해 발표하는 자료다. 조사 당시 태어난 출생아들이 앞으로 몇 살까지 살고 어떤 원인으로 삶을 마감할지를 예측한다. 통계청이 작성한 2022년 표가 최신이다. 자료를 보면 202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약 82년이다. 주요 사인은 암이다. 여러 요인 중 18%로 가장 높다. 암이 없다면 기대수명은 3년 넘게 증가한다. 2022년 사망 원인 통계만 봐도 악성 신생물, 즉 암이 사망 원인 1위다. 한창 뛰어놀 아이들을 암과 연결하는 것은 꺼림칙하다. 두 단어를 함께 배열시키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런 법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여름 경기일보 기자들이 땀나게 뛰어다니며 취재한 결과 아이들이 발암물질 놀이터 위에서 뛰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충격적이었다. 특히 부모들이 분기탱천했다. 기자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대안을 찾았고 국정감사에도 알려졌다. 그러던 11월 첫날,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안전한 어린이 놀이터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암물질 놀이터의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미래의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유치원생들은 어른들 앞에서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피켓을 들고 섰다. 아이들은 피켓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을 것이다. 암이, 발암물질이 뭔지도. 단지 놀이터에서 못 논다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사실을 깨닫는다. 발암물질 놀이터는 이제 해결해야 한다.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손을 봐야 한다. 아이들이 발암물질에서 벗어나 생명표가 보여준 수명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말이다.

[지지대] 올해도 김장 비용 올랐다

김장철이 돌아왔다. 김장은 엄동(嚴冬) 3~4개월간을 위한 채소 저장 방식으로 늦가을의 중요한 행사다. 이때 담근 김치를 보통 김장김치라고 부른다. 배추와 무가 주재료다. 부재료는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 등이다. 소금, 젓갈, 고춧가루 등으로 간을 맞춰 시지 않게 겨우내 보관한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도 등재됐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김장 비용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어김없이 오를 전망이어서다. 4인 가족 김장에 드는 비용이 41만9천130원으로 예상됐다. 물가당국이 17개 시·도 전통시장에서 김장 재료 15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다. 지난해보다 19.6% 더 든다는 분석도 나왔다. 배추와 무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특히 주재료인 배추와 무 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60% 이상 오르면서 전체 비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평균 7천50원으로 예상됐다. 당초 11월 전망치인 5천300원보다 비쌌다. 1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61.1% 비싸다. 무와 미나리 소매가격도 1년 전보다 각각 65.9%, 94.5% 올랐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지난 여름 폭염 여파다. 채소값 강세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생육이 부진해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생강 소매가격은 1년 전보다 각각 29.9%, 21.9%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가. 국내산 공급이 안정적인 데다 수입 물량도 늘어서다. 반가운 대목이다. 대형마트에서 김장 재료를 사면 4인 가족 기준으로 52만1천440원이다. 전통시장에서 구매할 때보다 10만원가량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물가의 어느 한구석에도 편한 대목이 없다. 서민들에겐 이래저래 힘든 계절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드는 쓸데없는 상념이 있다. 김장 비용이 하락하는 일은 혹시 없을까.

[지지대] K라면 수출 10억달러

한 외국 소녀가 ‘까르보불닭볶음면’을 생일선물로 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이 지난 4월 숏폼 ‘틱톡’에 올라오자 단숨에 조회수가 5천만회를 돌파했다. 삼양과 농심이 각각 ‘플레이 불닭’, ‘푸팟퐁구리’란 이름으로 댄스 챌린지를 진행해 대박을 터뜨렸다. 플레이 불닭은 영상 조회수가 7억회에 달했다. 전 세계 참가자가 5만명을 넘었다. ‘K라면’ 돌풍이 대단하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서양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K라면의 폭발적 인기로 올해 라면 수출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10월 라면 수출액이 10억2천만달러(1조4천억원)로, 작년 동기보다 30%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0억달러는 라면 20억7천만개에 해당하고, 면을 이으면 지구를 2천600바퀴나 돌 수 있는 정도다. 세계 인구 80억명 중 4분의 1은 한국 라면을 먹은 셈이다. 수출은 연말까지 1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라면의 폭풍 성장은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열풍 덕분이다. 2020년 영화 ‘기생충’에 나온 농심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섞은 짜파구리가 K라면 주역이 됐다. 농심 SNS 계정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짜파구리 출시를 기원하는 글이 이어졌고, 농심은 짜파구리 신제품을 출시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온 삼양라면의 인기도 한몫했다. BTS 멤버 정국이 라이브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모습과 미국의 유명 여성 래퍼 카디 비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도 세계적 화제가 됐다. 식품업계에선 K라면의 폭발적 인기 비결로 한류 열풍 효과, 해외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 발 빠른 생산·판매망 구축 등을 꼽는다. 특히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서양식 풍미를 가미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품절 대란을 빚을 정도였다. 요즘엔 ‘한강 라면’이 인기다. 한강 라면은 한강공원에 위치한 편의점, 마트에 설치된 즉석 조리기로 끓여 먹는 3천~5천원의 봉지라면이다. K라면 인기에 인도네시아 라면 1위 업체는 걸그룹 뉴진스를 모델로 내세워 포장에 ‘한국 라면’ 네 글자가 박힌 한국식 라면을 출시했다. 라면과 함께 만두, 김, 김치, 과자 등 K푸드도 덩달아 인기라니 반갑고 기분 좋은 소식이다.

[지지대]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우울하고 짜증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청소년과 젊은층일수록 더 심하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이 전 세계 24개국 스마트폰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스마트폰 중독률은 5위다. 요즘 교사와 학부모들은 ‘스마트폰과의 전쟁’을 치른다. 학생들이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봐 대화가 사라지고 교실에선 수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청소년의 과의존 현상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여성가족부가 초4·중1·고1 124만9천327명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습관 진단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은 22만1천29명(17.7%)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도 디지털 정보격차·웹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10∼19세)의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40.1%나 됐다.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하는 교사와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 간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도교육청 인권센터에는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민원과 진정이 많다. 인권위는 최근 기존 입장을 뒤집고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는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선 이미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 내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등교하면 스마트폰을 별도의 사물함에 보관하게 해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차단하는 ‘디지털 쉼표’ 제도다. 영국은 올해 초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도록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최근엔 모든 학교가 ‘휴대전화 없는 지대’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교육부도 법안 필요성에 동의했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과몰입으로 인한 중독에 빠지지 않게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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