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드골의 사임에서 배우자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image

“나는 공화국 대통령직 정무를 중단합니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유효합니다.”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어느 국가 지도자의 퇴임사다. 짧지만 명쾌하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얘기다. 1969년 4월28일이었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압제에 대항해 나라를 구했다. 나치 부역자들을 처형한 후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포효했다. “앞으로 프랑스가 타국의 지배를 또 받아도 민족을 배반하는 인간들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프랑스 국민은 그를 종전 후 재건을 주도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치 세력들도 철저히 배제했다. 20세기 프랑스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이 나라 최신예 항공모함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샤를드골 공항은 프랑스 최대 규모의 공항이자 유럽의 대표 관문이다.

 

1958년 집권하면서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비동맹 노선을 확립했다. 이 나라 국익을 감안하면 성공적이었다. 낙후됐던 사회보장제도도 정비됐다. 투표권도 확대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체복무도 인정됐다. 내각과 대통령의 권력 분점이 가능한 이원정부제가 채택됐다. 국회도 단순히 거수기 역할에서 입법부로 거듭났다. 비례대표제를 폐지해 제3~4공화국의 군소정당 난립을 끝내면서도 결선투표제로 양당제 한계가 보완됐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대통령에서 물러나야만 했을까. 금본위제도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묶인 가격을 두 배인 70달러로 올리고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고 주창했다. 미국이 수용하지 않았다. 통화가치가 절반으로 추락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경제성장률도 가장 낮아졌다. 학내시설 개선 요구로 시작돼 노동쟁의를 거쳐 체제 부정으로 번진 1968년 5월 위기도 그랬다.

 

하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이면서 민족주의 성향에 서유럽에서 드물게 강력한 대통령제 모범을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