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매년 이맘때 들녘에 나가면 발목에 채이는 풀이 있었다. 씀바귀다.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초다. 예부터 뿌리와 줄기, 잎 등은 식용으로 널리 쓰였다.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었다. 소만(小滿)이라는 절기 즈음의 풍광이다. 5월21일이 음력으로 딱 그렇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다. 서해안과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면 이 무렵부터 거의 여름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절기의 분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천인 쑥과 냉이 등이 씀바귀에게 자리를 내준다. 보리도 고개를 숙이면서 익어간다. 야산에선 땅거미가 지면 부엉이가 울어댄다. 이 무렵부터 보릿고개라 불렀다. 지난해 수확한 양식들은 바닥이 나고 올해 농사 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다.
신록은 우거져 푸르게 변한다. ‘농가월령가’에 “4월이라 맹하(孟夏·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해서다.
농부들은 모내기 준비로 바빠진다. 이른 모내기, 가을 보리 먼저 베기,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 등이 줄을 잇는다.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보리 싹이 성장하고 산야의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모판을 만들면 모내기까지 모의 성장 기간이 예전에는 40~50일 걸렸으나 지금의 비닐 모판에선 40일 이내에 충분히 자란다.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무쳐 먹는 것도 이때의 별미였다. 냉잇국도 많이 먹었다. 모든 산야가 푸른데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줘서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라 불렀다. 옛 성현들이 들려주는 소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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