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차부둬 이야기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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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둬(差不多)’는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심심찮게 듣는다. 굳이 따진다면 우리말의 추임새에 해당하는 군더더기다. 물건을 사면서 흥정할 때도 나온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 등을 묻는 질문에도 영락없이 돌아오는 답변이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차이가 많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대충대충 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딱히 세상 사람들이 깔아놓을 복잡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지극히 계산된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 표현이 중국인의 문화 코드를 해독하는 키워드라는 점이다. 호사가들은 이 단어만 잘 활용해도 중국어는 거저먹는다고도 호들갑을 떤다. 과연 그럴까.

 

차부둬는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의 소설 ‘阿Q正傳’에도 나온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阿Q正)은 완행열차를 타고 상하이까지 가야만 했다. 그는 여유만만하게 역에 도착했다. 2분 정도 늦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열차는 이미 떠났다. 그는 열차가 내뿜는 매연을 보며 머리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내일 가야 되겠군. 오늘 가든 내일 가든 뭐 대충 비슷하니까.”

 

중국은 이 표현을 자주 쓰는 숱한 차부둬의 나라다. 차부둬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을 비꼴 때도 인용된다. 물론 현대판 차부둬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중국인의 또 다른 자화상이자 민낯이다. 중국의 변혁에 대한 사고가 집약된 아이콘이기도 하다. 차부둬는 고대부터 내려온 정신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인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대충대충 살아도 역사는 늘 자신들의 편이라는, (외국인들이 볼 때는) 상당히 불쾌하고도 불경스러운 디테일이 숨겨진 채 말이다.

 

갑자기 차부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선 정국이 뜬금없이 흘러가고 있어서다. 이 땅에 많은 시민들의 잠을 설치게 하고, 뒤척이게 만드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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