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7·4 남북공동성명 53년...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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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일촉즉발의 남북관계가 그랬다. 한반도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이 터졌다.

 

그러다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할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이른바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이 열리고 중국과 극적으로 화해가 이뤄졌다. 소련과도 접촉해 상호 전략무기제한협정을 맺었다.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대만이 축출됐고 그 자리에 중국이 이름을 올렸다.

 

그때 한국의 한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찾았고 파격적인 선언문이 나왔다. 1972년 7월4일 오전이었다. 7·4남북공동성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이름으로 발표됐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사상과 이념, 제도 등의 차이를 초월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고도 했다. 적십자회담 추진과 서울~평양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도 합의됐다.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 개방과 신뢰 회복 등의 원칙도 담겼다. 6·25전쟁 이후 지속됐던 상호 적대도 청산하고 그동안 금기시됐던 용어들을 삽입하고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루는 단계에 이르자고도 했다. 한반도의 장밋빛 미래가 제시된 셈이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명쾌했다. 그런데 과연 그 계획은 지속됐을까.

 

선언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으로 버려졌다. 그해 7월부터 북한의 위협은 재발됐다. 남북 관계는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전보다 더욱 험악해졌다. 같은 해 10월 한국에선 계엄령이 선포됐다. 국회도 해산됐고 유신헌법이 제정됐다. 제3차 국민투표로 제4공화국이 출범됐다. 반전은 이후로도 수십년 동안 계속됐다.

 

질곡의 현대사는 그렇게 거듭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남북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양측의 뼈를 깎는 통찰과 노력이 없으면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그게 역사가 보여 주는 냉혹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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