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와 사랑을 나눈 메티스가 임신하자 예언자가 “메티스에게서 태어날 아이는 제우스보다 더 지혜롭다”라고 예언한다. 이 예언을 두려워한 제우스는 메티스가 낳은 아이를 얼른 삼켜버렸다. 곧바로 머리가 터질 듯 아파 제우스는 황급히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에게 자신의 머리를 가르라고 명령한다. 머리를 가르자 한 손에 창을, 다른 한 손에 방패를 든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가 뛰쳐나왔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지키는 이여신이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Minerva)로 불린다.
지혜를 얻으려면 자신의 머리를 깨는 만큼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이 신화가 보여주고 있다. 지혜와 철학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나)는 올빼미로 상징된다. 관념론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녘이 지나면 날개를 편다”라고 했다. 지혜를 무기로 자신을 성찰하라는 의미다. 일상으로 분주한 낮에는 잊고 지내다가 그 일상을 내려놓는 어둠이 찾아오면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장자는 지혜(道)를 나비로 상징했다. 장자가 말한 ‘오상아(吾喪我)’가 도추(道樞)며, 이 도추에서 樞(지도리)가 나비 모양으로 생겼다. 吾(오)는 지혜로 뭉친 참 ‘나’며 我(아)는 분주한 일상으로 위장한 허상의 ‘나’다. 허상의 나‘我’를 죽여야 참 나‘吾’를 본다. 밝은 낮에는 볼 수 없으나 그 일상이 사라지는 어둠이 찾아오면 비로소 참 나를 볼 수 있다. 지도리(나비)처럼 양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올바른 지혜의 눈(道)을 뜬다. 제우스의 머리를 깨고 나온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닮았다.
인간의 실존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평가받은 손창섭의 단편소설 〈인간동물원초人間動物園抄〉 (‘문학예술’, 1955년 8월호)를 보자. 매일 반복되는 원초적 본능만 존재하는 감방에 갇힌 죄수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유일한 희망은 창살로 막은 감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일이다. 변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는 감방과 달리 푸른 하늘과 매일 변하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이들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 창문은 인간에게 좁은 울(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식 변화로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이며 장자의 나비며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idea)다. 라파엘로가 그린 명작 ‘아테네 학당’ 광장에는 머리를 깨고 나온 미네르바의 올빼미들이 날고 있다. 지혜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지키고 가꾸라는 교훈이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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