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각왕사비·무학대사탑·쌍사자석등·사리탑 등 보물·유형문화재 즐비… 70여개 건물터도 눈길 박물관 들어서면 고려 말·조선 초 위용 한눈에...2층 기획전시실선 ‘세계유산을 꿈꾸다’ 특별전
쓸쓸한 절터에 서니… 화려했던 ‘왕실사찰’이 보인다
양주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위치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 들어서면 아늑한 기운과 고고한 기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2012년 10월19일에 개관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전문박물관이다.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1964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회암사지에는 약 70여개의 건물터와 주변에는 사신으로 고려에 입국해 회암사를 중흥으로 이끌었던 인도 승려 지공(?~1363), 왕사(王師) 나옹(1320~1376)과 무학(1327~1405) 세 분 고승들의 기념물인 선각왕사비,무학대사탑,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 사리탑 같은 보물 4점을 비롯해 유형문화재가 즐비하다. 회암사지의 문화재보호구역은 무려 32만3천117평방미터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회암사에 여러 차례 행차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회암사에 궁실을 짓고 주지로 주석하는 무학대사를 자주 만났다. 효령대군, 정희왕후 등 왕실 인사들이 후원하여 번영을 누리던 회암사도 열렬한 후원자이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력을 잃고 끝내 폐사되었다. 1997년부터 2019년까지 13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일반 사찰과는 달리 궁궐 건축의 요소와 13~14세기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던 청기와, 용두, 토수,잡상 같은 마루장식기와, 용과 봉황무늬 막새기와, 왕실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 등 수십만 점의 유물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
2012년 박물관 개관 전시특별전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를 비롯해 해마다 회암사를 조명하는 특별전과 기획전을 꾸준하게 열었다. <마루장식기와, 건물의 위용과 품격을 담다>, <회암사지, 그 시간의 흐름>, <깨달음의 소리, 범자梵字 - 회암사지 범자문 막새기와를 이야기하다>, <춘풍문양, 봄바람 타고 온 옛 회암사의 문양 이야기>, <도자, 옛 회암사를 빛내는 美>, <큰 고을 양주>, 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대가람의 뒷간, 厠>, <산산散散 : 부서진 뒤 알게 된 것들>, 특별전시 <절집의 어떤 하루>,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등 주제를 통해 그간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개관 때부터 근무했다는 김종임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본다.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승려 지공, 나옹, 무학 세 분 고승의 초상 앞에서 듣는 회암사의 내력이 흥미롭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로 유명한 나옹선사는 금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고려에 입국한 지공의 권고에 따라 1376년에 회암사를 262칸으로 중창하고, 목은 이색에게 부탁하여 ‘천보산회암사수조기’를 납깁니다. 이 기록과 절터와 발굴된 유물을 통해 옛 회암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요”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은 무엇일까?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 앞에 선다. 부릅뜬 눈과 포효하듯 크게 벌린 입에서 기백이 느껴진다. “처마 끝에 돌출된 목재(사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식기와를 토수라고 해요. 사래에 끼울 수 있도록 내부가 비어있는 사각뿔 모양이죠. 이무기나 잉어의 모양의 조선 후기와 달리 회암사의 토수는 보시는 것처럼 승천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용의 모습 입니다. 용두는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장식기와인데, 내림마루 끝부분에 설치하거나 추녀마루에 잡상과 함께 설치합니다”
투구인지 종인지 구분하기 힘든 유물도 흥미롭다. “투구처럼 보이지만 풍경입니다. 회암사지에서 청동금탁 4점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위치와 명문을 통해 건물 추녀 끝에 매달렸던 것으로 추정하지요. 금탁 표면에 새겨진 149자의 글자를 통해 태조 3년(1394) 왕사 묘엄존자, 조선국왕, 왕비, 세자를 비롯하여 관료들이 후원하여 금탁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탁에는 갓 건국한 조선의 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전쟁이 영원히 그쳐서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마침내 같은 인연의 깨달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갑옷과 투구를 쓴 장수가 눈을 부릅뜬 인형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것은 잡상입니다. 건물의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위에 설치하는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속신으로 구성되지요. 그런데, 회암사지 잡상은 보시다시피 사뭇 달라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혼합된 반인반수형, 말이나 새 같은 동물 모습도 있지요”
왕실 사찰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 중에서 청기와를 빠트릴 수 없다. “청기와가 귀한 것은 청색을 내는 재료가 화약의 원료인 염초이기 때문이지요. 조달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궁궐이나 왕실 원찰의 일부 건물에만 사용했습니다” 사찰에는 왜 연꽃문양을 새긴 기와를 많이 썼을까? “연꽃은 탄생을 상징하며 환생과 재생을 의미합니다. 연꽃을 기와 문양으로 채택된 것은 물에서 피어나는 것이므로 화마(火魔)를 막는 벽사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영상을 통해 왕실사찰 회암사의 위상 조명
말을 탄 무사들을 앞세우고 황룡기를 비롯해 다양한 깃발을 든 붉은 옷을 입은 군사들이 임금이 탄 가마를 에워싸고 늠름하게 행진하고 있다. 회암사를 찾은 태조 이성계의 행차장면 모형이다. 회암사 대가람 복원모형이 첨단기술로 살아난다. 아나운서와 기자를 등장시켜 각 건물의 기능과 역할 및 생활상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데, 설명에 따라 건물의 안팎까지 보여준다.
현재 2층 기획전시실에는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잠정목록 선정 기념하는 특별전 ‘양주 회암사지 세계유산을 꿈꾸다’가 열리고 있다. 9월12일까지 진행되는 기념전은 2022년 1월, 양주 회암사지가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할 수 있는 잠정목록에 선정되었음을 홍보하는 것이다.
1부는 ‘유네스코 유산’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고유적 단독유산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폐사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는 점을 부각했다.
2부는 ‘회암사의 세계유산적 가치’다. 회암사지는 14세기 동아시아 불교 선종의 수행 전통과 공간구성 체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고고유적이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건물터와 당대 고승과 관련된 부도 등 기념물이 있어 고려의 선종이 조선으로 이어진 약 200여 년간 불교 선종 문화의 전승과 발전상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3부는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지난 7년의 노력으로 마침내 잠정목록에 선정됐다. 본 등재까지 양주시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사항 등을 충실히 이행하며 회암사지의 보존 및 가치 활용과 세계유산을 향한 행보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그날을 기다리다
회암사지에는 입구의 당간 지주, 맷돌, 구름 문양이 새겨진 계단 등 곳곳에 석조유물이 즐비하다. 회암사지 맨 위에 자리한 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탑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 말의 고승 선각왕사 혜근(惠勤)의 비도 빼 놓지 말고 봐야할 유물이다. 두 마리의 용이 용트림하면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역동적 형상의 이부를 살펴보자.
비문을 짓고 글자를 쓴 이색과 권중화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무학대사탑과 쌍사자 석등, 지공선사부도와 석등, 나옹선사부도와 석등도 아름답다. 탑에 새겨진 용, 기린 등 뛰어난 조각과 치석수법도 주목된다. 박물관을 나서며 잠시 멈춰 서서 회암사지를 둘러싼 산자락을 굽어보는데 배웅하며 건넨 관계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회암사지에 한 번도 안 와 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해요.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란 뜻이죠.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올 가을에 회암사지로 놀러오세요”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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