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1. 광주 ‘닻미술관’

자연 속 둥지 튼 ‘성찰과 치유’의 공간 광주 백마산 자락 진새골에 자리 잡은 닻미술관은 예술을 통한 창조성과 영성 회복을 꿈꾸며 2010년 10월에 개관했다. 닻미술관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면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전시를 모토로 매년 두세 차례의 사진, 회화 기획전을 벌여왔다. ㄷ자 구조로 되어있는 닻미술관(관장 주상연)은 지붕이 스페인풍인데 건물 가운데 작은 정원이 있다. 중정에 있는 팔각형의 연못이 앙증맞다. 닻미술관 옆에 있는 카페의 이름은 ‘돛’이다. 산속에서 닻과 돛이란 이름을 가진 공간과 마주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름날인데도 미술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미술관이 아늑한 산속에 터를 잡은 덕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오히려 관람객이 더 모여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왜 산속에 만들었을까? “우리 집의 가훈이 ‘홍익인간’이에요.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복지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이곳은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나무를 심었어요. 맏딸로서 집안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주 관장의 작품은 성곡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샌프란시스코 카발로 포인트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 <중력과 은총>과 <물 위를 걷다>을 펴낸 중견 작가이다. 2009년에 귀국한 주 관장은 2010년에 이곳에 닻미술관을 열고 2011년에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여 올해 개관 12주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배운 주 관장은 미술관을 열면서 수제 책 제작 공방 닻프레스도 열었다. 책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 없이 예술을 전달하기 좋은 매체라 생각한 것이다. 전시장 옆에 있는 카페 돛에 가면 닻프레스에서 출판한 아름다운 책들을 볼 수 있다. 주 관장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면 책을 만들고 작품 전시를 기획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벗어나서 생동감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푸른 산속에 닻을 내려 자연을 건져 올리는 미술관 지난 12년 동안 닻미술관에서 열었던 기획전시를 살펴본다. ‘빛으로 간 사진’ ‘숲, 숨’ ‘순간의 지속’ ‘종이 위의 예술’ ‘사진풍경전 : 바람과 볕이 드는 창’ ‘Our World’ ‘일상의 생각 별과 사람’ ‘무아 경’ ‘침묵의 시’ ‘섬’ ‘어둠’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물오르다, 물만나다, 물들다’ ‘공명의 소리’ ‘예술가의 정원’ ‘지금, 여기’ ‘변화의 여정’ ‘시·象’ ‘온도의 결’ ‘다른 감각들의 공간’ ‘철학자의 돌’ ‘린다 코너 사진전 REFLECTION’ ‘물질과 상상’ ‘집- 주명덕 사진전’ ‘경계선 위에서’ ‘틀 없는 틀’ ‘대지의 기억으로부터’ 등 주제만으로도 닻미술관이 추구하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미술관에서 기획한 주요 전시를 연간 간행물 <깃>에 충실하게 기록해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자랑이다. “깊게 뿌리박힌 중심이 되고자 출판사 이름을 ‘닻’으로 삼았고, 영감을 널리 퍼트리는 매체가 필요할 것 같아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깃>을 발행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지금까지 약 80여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지난 몇 년간 아트 북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스탠퍼드 스페셜 컬렉션이 스페셜 에디션을 소장했고, 뉴욕공립도서관에서는 닻프레스가 출간한 전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에서 열리는 북 페어에도 해마다 참가하고 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발행한 책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예컨대 김수영의 시 ‘풀’을 수록한 책은 표지를 넘기면 낱낱이 풀이된 종이가 ‘바람보다 먼저’ 눕거나 일어선다. ■ 도시와 도시, 작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마당 닻미술관은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가 만나는 공간이다. 단순히 전시장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살면서 서부와 동부의 작가들과 인연을 맺은 주 관장은 닻미술관을 통해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닻미술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신진 작가들이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에 집중하거나,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다. “사진예술과 출판의 꾸준한 국제교류를 통해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적, 종교, 성별, 학력에 관계없이 국내외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있습니다” 현재 닻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은 ‘for Life, 생을 위하여’이다. 그동안 닻미술관과 함께해온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선별하여 구성한 전시인데,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1세대 작가인 주명덕을 비롯해 서영석, 이모젠 커닝햄, 론다 래슬리 로페즈 등 닻미술관이 사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주 관장의 스승 린다 코너의 작품과 주 관장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가 안긴 산과 계곡,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 역동적인 물결과 고요한 구름.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마음이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울렁거릴 때, 여기 말이 없는 사진들에 눈길이 닿는다”-주상연 바바라 보스워스의 작품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꽃과 냇물을 보고 산을 응시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슴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앤드류 골드의 파도를 담은 작품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표정과 파도의 높이, 물결의 흐름과 방향,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린다 코너의 ‘Baby Feet’은 아기의 작은 발을 감싸 쥐고 있는 손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엘라이쟈 고윈의 작품도 흥미롭다.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감동의 순간이다. 창밖으로 나무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시 공간은 작지만 닻의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한 곳이다. 전시 작품도 숲과 잘 어울린다. 물 위를 걷는 작은 소금쟁이들과 반딧불이와 같은 정겨운 생명체들이다. ■ 작가를 키우고 모으는 나눔의 공간 닻미술관은 창작과 전시 공간을 더 넓혔다. 야생 정원과 작은 3평짜리 나무집을 마련했다. 2017년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전시를 열었는데, 그때 건축도면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나무집을 지은 것이다. 이 집은 작가들을 양성하는 스튜디오로 이용할 계획이다. 오는 8월27일에 숲의 소리와 빛을 채집하여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다. 9월24일부터 크리스 맥카우(Chris McCaw) 사진전이 열린다. 닻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뿌리 같은 상징이다. 삶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주 관장의 비전을 들어본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함께 하는 제자들이 일하기에 좋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첫째 과제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생하기 힘든 내용을 펼쳐내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뜻과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0대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것은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면서 동시에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나눌 것을 궁리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 안산 대부도 ‘유리섬미술관’

‘반짝반짝’ 유리로 만든 세상... ‘형형색색’ 황홀경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되어 육지가 된 섬이지만, 여전히 섬의 낭만과 서정이 살아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대부도에 터를 잡은 유리섬미술관은 이름처럼 유리 전문미술관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1만3천평의 툭 트인 마당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유리 예술품들은 꽃을 사랑한 어린왕자처럼 어디선가 한번 쯤 보고 들었던 존재들이기에 정겹고 편안하다. 마당에 서 있는 나무들의 잎과 꽃도 유리로 만들어졌다. 다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키스를 나누는 청춘 남녀 인형이 눈길을 끈다. 건물 모서리에 놓인 커다란 통에서 흘러내린 주황색의 페인트가 벽을 적시고 있다. 철로 만든 형이상학적 구조물도 상식과 통념을 부수기는 마찬가지다. 안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닫힘과 열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유리섬미술관의 연못엔 사계절 내내 연꽃이 피어 있다. 유리로 만든 시들지 않는 연꽃은 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빛깔로 변신하고 있다. 미술관 외벽을 장식하는 작품은 열다섯 개의 사람 입술이다. 노래를 부르는 듯 도톰한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다. 유리섬미술관(관장 김동선)은 장식유리그릇 제조업의 중심지로 천년이 넘도록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섬 무라노를 꿈꾸며 미술관을 설계했다. 김동선 관장은 안산 대부도를 유리공예의 명소로 만들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테마전시장은 미로 속의 신세계처럼 흥미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자연과 유리’를 테마로 꾸며져 있는 테마전시장에서 맛보는 유리와의 만남이 특별하다. 채색 유리로 만들어진 동화의 세계는 꿈 많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신비로운 숲속과 바다 속 풍경에서 유리 공예의 매력이 한껏 발휘된다. 아름다운 예술작품 앞에서 마비되고 무뎌진 감성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는 짜릿한 시간이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리공예는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이다. 우리나라 유리의 역사도 꽤 오래되었다. 기원전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구슬이 부여에서 발견됐다. 신라 금관총에서 나온 유리잔,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그릇, 매우 독창적이라 평가 받는 금속과 조화를 이룬 사리병은 한국 유리문화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중한 유물들이다. 유리는 일상에서 친숙한 물건이지만 어떻게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지켜볼 기회를 갖기란 매우 어렵다. 특수한 시설과 까다로운 기술을 두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섬미술관은 유리가 예술작품으로 탄생하는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미술관이다. ■ 투명한 유리가 화려한 예술품으로 변신 유리섬미술관 2층에 유리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널찍한 시연장이 있다. 1천200도 넘게 뜨겁게 달구어진 유리를 블로우 파이프(Blow pipe)를 이용하여 다양한 유리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을 공연 형식으로 재현한다. 2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극장식 유리공예 시연장이다. 유리 예술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작가의 몸짓과 숨결을 느끼면서 지켜보는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유리섬미술관의 자랑이다. 2천500℃ 토치에 내열유리봉을 녹여서 나만의 액세서리를 만드는 램프워킹은 인기가 많다. 블로잉 체험은 1천200℃의 뜨거운 유리를 블로우 파이프(Blow pipe)에 말아 올려 입으로 불면서 컵, 미니화병, 크리스마스 볼, 램프를 만드는 흥미로운 체험이다. 두 가지 체험은 작가와 일대일로 이뤄진다. 글라스페인팅 체험은 유리컵에 유리전용 안료로 그림을 그린 후 오븐에 구워서 완성하는 체험이다. 컵을 오븐에서 10분 정도 굽고 30분 정도 서서히 식히면 완성된다. 샌딩 체험은 유리컵에 다양한 패턴의 스티커를 붙여 디자인 한 뒤, 고압으로 고운 모래를 뿌리면 유리컵의 표면이 깎이면서 스티커의 모양 그대로 컵에 문양을 새길 수 있다. 와인병과 시계 만들기 체험도 있다. 가마에서 녹여 납작해진 와인병에 나만의 디자인으로 그림을 그려서 시계를 만들어보거나 다양한 디자인의 색유리구슬을 자신의 생각대로 디자인하여 팔찌를 만들어 보는 체험도 재미있다. ■ 빛의 예술가 김인중과 유리미술관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유리미술관에서 김동선 관장의 소개로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김인중 신부와 마주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김인중 작가는 1990년대에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얼마 전까지 김인중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KBS에서 방영된 ‘천사의 시’는 김인중 신부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빛의 사제’ 또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작가 김인중은 누구인가? 1940년 부여에서 태어난 김인중은 서울대 미대 재학 중에 국전에 특선하고, 제1회 민전(1965)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과 파리 가톨릭대학에서 수학한 김인중은 사제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73년 파리 쟈크 마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술사가 웬디 베케트는 김인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 김 작가가 창안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조 공법은 우리 시대의 언어를 담기에 최적의 전혀 새로운 방식이다. 스위스 ‘르 마텡’지는 김인중을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가’로 선정하면서 “마르크 샤갈과 앙리 마티스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회화에서는 인상파 폴 세잔,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야수파 앙리 마티스, 도자기에서는 입체파 파블로 피카소를 계승한다”고 평가했던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드니 꾸타뉴의 발언은 김인중의 예술적 성취와 유럽에서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 브리우드 바실리카 성당에 김인중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37점을 설치하면서 별 1개의 도시에서 최고 평점인 별 3개의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상향조정되었다. 대표적 고딕건축인 샤르트르 대성당과 로마네스크 양식 브리우드 성당에도 김 작가의 작품을 설치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993년 처음으로 작품을 전시한 주인공이다. 이미 프랑스에는 김인중을 최고의 작가로 대접하고 있다. 앙베르 시립 김인중 전시관, 이수아르시에 김인중 상설전시관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인 오피시에 수상하고,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줄리앙 그린은 김인중의 작품을 “색과 선의 율동폭을 극대화한 동양화이자 서양화”라며 찬탄했다. ■ ‘김인중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 설립의 꿈 김인중 작가가 최근에 귀국했다. 유리섬미술관 김동선 관장과 김인중 작가의 만남으로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김 관장은 김 작가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작업실을 제공하고 그의 예술 세계를 전시하고 보존하는 ‘김인중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 건립을 위해 정성을 모으고 있다. ‘빛섬포럼’은 한류의 중심에 있는 김 작가를 사랑하며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는 모임이다. 포럼 변주선 회장을 비롯해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유안진 시인, 이해인 수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이사장, 수원 교구장 이용훈 주교, 이장호 영화감독, 조계종 대종사 자광스님, 조선돈 목사, 김억중 빛섬미술관 관장 등 학계와 종교계,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여든을 넘겼으나 여전히 젊은 김인중 작가는 ‘김인중 홀’이 마련된 KAIST와 대부도 유리섬미술관을 오가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노작가가 들려주는 말씀이 영혼을 울린다. “예술이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해 가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9. 안산어촌민속박물관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은 2006년 3월에 개관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2010년 1월부터 안산도시공사(사장 서영삼)가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다. 대지면적 7천500㎡, 연면적 2천569.46㎡의 지상 2층의 건물에 안산의 역사와 생태환경, 어업문화, 어촌의 민속을 주제로 한 3개의 상설전시실과 어린이상설체험전시실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대형 수족관 두 개가 눈에 띈다. 참돔을 비롯한 서해의 대표 물고기들과 등 쪽에 약 열줄 정도의 진한 갈색의 띠를 두른 커다란 까치상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로비에 위치한 ‘내가 그리는 3D 수족관’은 증강현실 컬러링 미디어 아트를 이용한 체험형 전시다. 어촌민속박물관 로비에 설치된 물고기 도안을 색칠하면, 곧바로 3D 홀로그램과 가상 수족관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만나 볼 수 있다. ‘3D 갯벌친구들’과 ‘3D 수족관’이 있다. 갯벌 친구들부터 만나본다. 크레용과 탄도항 갯벌에 사는 게와 물새 그림이 놓여있다. 게 그림을 골라 크레용으로 색칠하여 스캐너에 밀어 넣으니 대형 스크린에 방금 색칠한 게가 나타나 엉금엉금 기어 물새들이 노는 갯벌로 들어간다! 지켜보던 관계자가 설명을 덧붙인다. “증강현실 기법을 활용한 3D 체험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입니다” ■ 대부도 갯벌과 서해서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꿈꾸다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의 주제는 ‘갯벌생태계와 서식동물’과 ‘갯바탕과 어로활동’이다. 서해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꼽힌다. 대부도를 둘러싸고 있는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갯벌은 어민들의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어민들이 갯벌에서 사용했던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조개나 굴을 담는 종태기나 부게는 물론 바닷물이 잘 빠지는 재료로 만들었다.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삽과 호미는 낙지를 잡을 때도 쓰였다. 굴을 따거나 깔 때 사용하는 ‘조새’는 생김새가 아주 독특하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도구에서 어민들의 생활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대부도의 마을마다 갯바탕이 달라서 모래갯벌, 펄갯벌, 혼성갯벌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살고 있는 생물도 다르니 채집도구 또한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다. 소주병을 활용해 만든 ‘홰’는 석유가 사용되니 근대의 유물이다. 해가 진 후 썰물 때 갯벌에서 일할 때 홰를 밝혀 썰물을 따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웅덩이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잡았다. 어민이라면, 혹은 어촌의 아이들이라면 갯벌에 사는 생물들의 생김새와 습성을 잘 알아야 한다. 갯벌에 난 흔적이나 구멍만 봐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대부도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사실을 아는가? 공룡들이 살던 백악기의 대부도는 뭍이었을 테다. 화석으로 만나는 공룡발자국 앞에서 인간의 불안한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류는 10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을까? 대부도 인근지역의 조개더미인 패총, 해양방어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 대부도가 중국과 교역의 교통요충지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재현한 대부도 가옥에 전시한 다양한 민속유물을 통해 섬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서해안의 신비로운 자연현상인 물때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 안산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만난다. 풍어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어민들의 소망이 담긴 마을축제였다. 어민들이 불렀던 노동요를 들어보면 어민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서해안의 생태환경과 어업문화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상설체험전시실은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즐거운 교육마당이다. 기획전시 ‘알을 깨다, 공룡을 깨우다’도 흥미롭다. 커튼을 열고 전시실로 들어서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대부광산퇴적암층을 모티브로 재현한 미디어 벽화는 머나먼 백악기 시대로 탐험을 이끈다. 대부도를 뛰어다녔던 공룡과 중생대 백악기 지구를 상상하는 공간이다. 전등으로 벽화를 비추면 화석이 생기를 되찾는다. 알록달록한 공룡들이 떼를 지어 노니는 백악기 시대가 펼쳐진다. VR/AR 기술을 융합하여 백악기 시대 공룡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대부도는 중국과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고려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대부도에 상인집단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도 앞바다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려시대 한선이 발굴되었다. 대부도의 부속섬 ‘풍도’와 관련된 ‘풍도해전지도’는 매우 특별한 유물이니 꼭 살펴 볼 일이다.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풍도는 섬으로 안산 대부도에 딸린 섬이다. 야생화 군락지 옆으로 청나라 군사가 잠든 곳이라고 전해지는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1894년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풍도해전이 발생하는데 이를 시발점으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청일전쟁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알고 있지만, 전쟁터가 한반도라는 사실과 수많은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풍도해전지도’는 대부도의 작은 섬 풍도가 우리의 역사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 특별전 ‘어로도구의 재발견’ 박물관은 갯벌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다양한 특별전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대부도 어민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대부도의 지질, 곤충, 조류, 염습지를 탐방하는 등 주제별 생태탐험은 시민들의 참여프로그램이다. 예술과의 만남도 꾸준히 벌였다. 매년 대부도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여 현대미술 작가와 콜라보 전시인 기억프로젝트 특별전을 열었다. 대부도의 공룡, 해양, 역사 등 콘텐츠를 주제로 설치미술, 회화 및 조각, 미디어아트 등 현대미술작가의 연출을 통하여 대부도를 기억하는 전시였다. 올해 6번째 전시는 ‘어로도구의 재발견’을 테마로 부지현 작가와 함께 집어등을 활용한 설치미술 특별전이다. 2022년 경기도 지역문화 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인 특별전 ‘어로도구의 재발견’은 기억프로젝트Ⅵ 특별전으로 올 12월까지 진행된다. 고등어, 오징어, 정어리, 전갱이를 잡을 때 사용한 집어등을 활용한 ‘바다의 별_집어등’이다. 배 가까이로 물고기가 모여들도록 밤바다를 밝히던 집어등이 현대미술 작가의 손을 거쳐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였다. 작가는 집어등에 푸른빛을 비추어 환상적인 바다의 풍경을 보여주고, 어부들의 삶을 조명한다.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된 집어등은 ‘바다의 별’이다.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어부들이 보낸 세월을 216개의 집어등과 236개 LED를 이용해 바다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집어등에 집약시켜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자원보존과 녹색환경의 중요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애들아, 갯벌에서 놀자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갯벌탐방 프로그램인 ‘애들아 갯벌에 가자’는 8월 27일까지, ‘애들아 망둥어 잡으러 가자’는 9월17일부터 10월8일까지 진행된다. 유치원 및 초등학생 포함한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니 안산도시공사 누리집에서 교육신청 게시판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대부도 탄도항에 자리 잡은 박물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답다. 특히 비단실을 만드는 누에를 닮은 ‘누에섬’은 대부도에 부속된 무인도인데,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탄도와 연결된 도로가 나타나 걸어갈 수 있다. 누에섬 전망대에 오르면 서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의 약속을 들어본다. “대부도의 모습이 한 컷의 인상 깊은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온가족이 대부도를 나들이하여 갯벌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친절하게 안내할 것입니다. 대부도로 오십시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8. 화성 ‘소다미술관’

찜질방의 변신... 사람을 품다 건축을 품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디자인 건축 미술관이다. 2015년 4월 화성시 안녕동에 개관한 소다미술관은 ‘함께하는 미술관’, ‘담을 낮춘 미술관’, ‘가족 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역과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소다미술관은 개관한 해에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의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본상을 연속으로 수상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 건물주 ‘열린생각’이 만들어낸 ‘열린공간’ 푸른 잎이 무성한 자작나무가 미술관 입구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미술관에서 기발한 생각과 만난다. ‘신체건강’, ‘내가해냄’, ‘행복하자’, ‘창의력’, ‘나만믿어’, ‘거절한다’, ‘노오오력’이란 글자가 새겨진 종이 카드 중에서 ‘뜻밖의운’을 뽑아 호주머니에 넣는다. “전시를 다시 보고 싶으면, 미술관 입장권과 얼굴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두어야 해요. 사진을 보여주면 전시기간 동안 재입장이 가능합니다” 장동선 관장이 들려주는 소다미술관의 탄생기가 흥미롭다. 미술관의 건물주는 찜질방을 건축하기 위해 2009년에 공사를 시작하지만 1층 철근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를 마무리하고 공사를 멈춘다. 시장 환경이 급변해 찜질방으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 탓이다. 4년을 방치하던 건물주는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의 건축가 권순엽씨(디자인스튜디오 SOAP 대표)에게 건물의 구조 변경을 맡긴다. “층구가 굉장히 높아 전시하기에 좋은 구조라는 생각에 건축가인 남편과 건물주와 함께 미술관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건물주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었으면 탄생하기 힘든 공간이었죠” 정 관장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꺼낸 주인공이다. 찜질방으로 짓던 콘크리트 벽체는 지붕 없는 야외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불가마의 내화벽돌은 바닥에 깔았다. 널찍한 옥외주차장 공간은 설치조각 작품과 카페테리아 테이블이 놓인 잔디정원으로 변신했다. 밖으로 드러난 미술관의 천장과 벽체에 난 빈 공간에 설치 작품을 전시하고, 2층에는 컨테이너 3개를 올려 계단실, 전시 공간, 세미나실로 꾸몄다. 마침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개성적인 소다미술관이 완성된 것이다. 공사를 마무리하자 건축주는 미술관의 운영을 권 대표와 장동선 관장에게 부탁한다. 미술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바스갤러리(Bath Gallery)’는 목욕탕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메인 실내 전시 공간이다. 불규칙한 단차와 마감을 하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화이트 벽면이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 ‘지붕 없는 전시장(Roofless Gallery)’은 찜질방의 ‘방’이 가지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보를 제외하고 지붕을 잘라내어 하늘을 그대로 보이게 한 외부 전시공간이다. 2층의 ‘아트테이너(ARTtainer)’는 건축물 상부에 화물컨테이너를 덧대어 교육, 전시, 세미나, 상점 등으로 활용되는 유연한 공간이다. ■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공간 지붕 없는 전시장은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손색이 없다. 높이 설치된 파이프에서 비처럼 물이 내리는 ‘스카이 샤워(Sky Shower)’ 아래로 온몸을 감싸는 커다란 우산을 쓴 어린이가 놀고 있다. 햇살이 비치자 오색 무지개가 선다. 재미에 흠뻑 빠진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다. 개관 8년 만에 소다미술관은 화성은 물론 수도권에서 많은 관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소다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구성원들의 뛰어난 기획력 덕분이다. “소다의 자랑은 좋은 팀입니다. 개관 8년에 300여 명의 작가와 35번의 기획전을 열 수 있었던 힘입니다. 재미있는 미술관이어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지요. 다양한 콘셉트를 갖춰야 해요. 최고 수준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기획력을 총동원해왔습니다. 소다의 기획 팀원들은 독서를 많이 해요. 세상을 읽는 눈과 촉을 기르기 위해서죠” 장 관장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소다는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배치하죠.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경영 철학을 질문하자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술관에 관장의 취향이 보이면 발전은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해요. 관장은 자신의 색깔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중성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다의 철학과 입장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하여 미술관 식구들과 공유합니다” 소다미술관이 다루는 주제는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다. 장 관장은 이를 “경계 허물기”란 말로 풀어낸다. 음악공연을 비롯해 아트장터와 플리마켓 같은 이벤트도 연다.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이웃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돋보인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 화성시와 발달장애예술인의 작품들을 선보인 특별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인 셈이다. 소다미술관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넉넉하다. 코로나19로 힘들어했던 지난해에 연 ‘청년들들장’은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소다의 철학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지역 청년농부와 예술가, 시민이 함께하는 장마당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소다의 생각이 신선하다. ■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라고 외치는 곳 소다 미술관은 화성시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 후 디자인 건축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다 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건축요소의 하나인 ‘단(段)’을 주제로 현 사회의 문제와 대안을 찾고, 오늘날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 방안을 모색한다. 박지현, 조성학 건축가는 전시장 콘크리트 기둥 열에 입체적 층을 설치해, 공간의 깊이를 극대화시킨다. 층층이 결합돼 세워진 프레임을 보며 느끼는 공감각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다원적 인식을 끌어낸다. 건축가 김세진은 계층의 속성을 직시한다. 단을 구성하는 수평과 수직면을 과감히 없애고, 둥근 점을 레이어로 연이었다. 그러자 시점에 따라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견고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위치와 시선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진영 작가는 콘크리트 공간 안에 하늘색의 거대한 풍선 의자를 놓아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한 공간에서 뜻밖의 재료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함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미덕과 닮아있다. 미술관은 기획의 의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어느 때보다 포용성이 필요한 시기에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한 전시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관객이 새로운 차원에서 미술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공존을 위한 소통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했어요. 소다미술관은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개최한 전시의 특징은 ‘함께 사는 우리’라는 테마입니다. 예술가는 사회 현상을 좀 더 극적으로 느끼는 사람이에요. 미술관이란 건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를 외치고 보여주는 곳이에요” 미술관 입구에 있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니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컨테이너와 지붕 없는 야외전시장, 탁 트인 잔디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소다미술관의 자랑은 또 있다. 전시마다 전시 주제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술관과 가까운 책방을 연계해 지역과 소통한다. ‘질문하는 그림책’을 추천하고 있다. 함께한 책방은 오이책방, 서른책방, 오평 등 지역의 작은 독립서점이다. “소다미술관은 예술의 담을 없애고 문턱을 낮춰 누구나 예술을 쉽게 전달하려고 해요. 개관 당시에는 70%가 타 도시 관람객이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은 화성시민의 참여가 50%로 높아졌어요”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적극 소통해 온 소다미술관은 화성시의 자랑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7. 양평 ‘세미원 연꽃박물관’

형형색색 연꽃의 바다… 향기에 취하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마음을 씻고[洗] 마음을 아름답게[美] 가꾸는 것은 ‘물과 꽃의 정원’ 양평 세미원의 개관 철학이자 설립 목적이다. 출입문에 새겨진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란 여덟 글자에 담긴 그윽한 뜻을 음미하며 세미원에 들어선다. 세미원 입구에 자리 잡은 연꽃박물관(대표 이종승)은 연꽃의 곧은 줄기와 둥근 잎을 닮은 듯하다. ■ 연꽃에 영혼과 일상을 새기다 찻집을 겸한 세미원 작은도서관에서 차를 마시고 이가영 홍보담당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본다. “2층은 상설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운영됩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연꽃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하게 조성된 상설전시실에서 우리나라 연꽃의 역사부터 살펴본다. 강화도 백련사(白連寺)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세운 고찰로 연꽃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삼국시대에 인도 승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절터를 찾다가 강화도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했는데, 흰 연꽃이 흩날려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세웠다는 전설이다. 신라의 기와에 연꽃이 피어있다. 고구려와 백제도 연꽃문양의 와당을 즐겨 사용했다. 연꽃무늬를 양각으로 새겨진 ‘수막새’는 1천500년이 된 유물이다. 거칠고 날카로운 고구려와 달리 백제의 연꽃 문양은 부드럽고 둥글다. 화려하고 정제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에서 신라인의 개방적인 문화의 저력이 느껴진다. 실패에 하얀 무명실이 감겨 있다. 음각으로 단아하게 새겨진 복(福)이란 글자와 연꽃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듯하다. 푸른 연잎과 분홍빛 탐스러운 연꽃, 갈색 연밥 줄기 아래로 원앙새 한 쌍이 헤엄을 치고 있다. “연꽃을 화려하게 수놓은 분홍빛 주머니는 휴대용 수저주머니입니다. 아주 오래된 유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1940년대의 유물이지요” 연세가 지긋한 관람객들이나 알 수 있을 것 같은 희귀한 유물도 있다. ‘연지문인두판’은 연꽃을 수놓은 인두판이다. ‘인두’는 옷의 솔기 같은 부분을 접거나 선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다림질 도구이다. 타원형의 둥글납작한 물건은 무엇일까. “아, 이것은 연꽃 문양을 수놓은 안경집입니다. 예전에도 안경을 사용했는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 안경집에 담아 허리춤에 매달았다고 해요” 부잣집 아이들이 겨울에 머리에 썼던 장식 모자인 굴레도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유물이다. 굴레 좌우에 다섯 송이 연꽃이 피었다. 숟가락 손잡이의 장식이 연꽃봉우리다. 선비들의 붓통과 먹을 담은 연적조차 연꽃 모양이다. ‘연꽃소반’은 놀라운 유물이다. 거북이 받침에 연꽃의 대궁과 줄기로 이루어진 다리, 그릇을 올려놓는 판은 활짝 핀 연꽃을 자개로 장식했다. 이처럼 연꽃을 소재로 멋지게 만든 소반은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연잎과 연꽃이 절묘하게 표현된 비취빛의 청자베개에서 고려인의 호방하고 우아한 정취가 묻어난다. 연꽃이 그려진 ‘청자발’에도 고려인의 세련된 감각이 살아있다. 시를 즐기던 옛 선비들이 귀한 사람에게 시를 지어 전달할 때 쓰기위해 따로 종이를 만들었다. 이를 ‘시전지(詩箋紙)’라 부르는데, 연꽃박물관에서 만난 열네 줄의 ‘시전지판’에도 연꽃이 활짝 피어있다. 아마도 이 시전지판의 주인은 ‘수륙초목지화’로 시작되는 주염계(1017~1073)의 ‘애련설’을 읊조리며 품격 높은 생활을 추구했을 것이다. 연꽃 한 송이를 안고 연화대에 앉아 있는 승려의 무릎 위에는 푸른 연잎이 놓여 있다. 연꽃봉우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민불(民佛)도 만난다. 보살의 선한 눈매가 평화롭다. ■ 민화, 그림에 담은 옛사람들의 꿈과 소망 3층 기획전시실에서 민화 속의 연꽃을 만난다. 서민들의 소망과 미학이 담긴 정겨운 민화 속에도 연꽃들이 만개했다. 민화에 등장하는 연꽃들은 한결 여유롭다. 연밥에 앉아 씨를 빼 먹는 물총새 한 쌍과 커다란 연잎 아래서 짝짓기를 하는 노랑부리백로 한 쌍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연밥을 좋아하는 물총새는 물론 해오라기와 오리, 잉어와 가물치도 늘 쌍으로 등장한다. 연꽃과 어울리는 새와 물고기들의 평화롭고 느긋하며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웃음과 여유와 휴식은 민화가 우리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매력이다. 2009년 1월에 개관한 세미원 연꽃박물관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에도 열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 사업에 3년 연속 선정된 박물관은 지난 3월부터 ‘과거를 열연(熱演)하다’를 주제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를 열연하다는 연꽃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비들이 쓰던 문방사우와 규수가 사용하던 공예품을 관람하고, 세미원 정원에 복원된 과학영농온실, 사륜정, 세한정 등 조상의 정신이 느껴지는 유물과 시설을 통해 역사와 문학과 예술을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11월까지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의 대상은 초·중·고등학생으로 총 40회 25명 내외인데, 세미원 관람료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교육기관과 연대를 강화하고 프로그램 참여자에게는 조상의 뛰어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향원익청,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 위치한 세미원에서 지난 7월 1일부터 ‘연꽃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세미원에 들어서면 눈부신 백련과 매혹적인 분홍색의 홍련이 뿜는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잔잔한 물과 어울리는 수련과 노랑어리연꽃,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희귀종 가시연꽃,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의 큰 잎을 가진 빅토리아 수련, 세미원이 최근 개발해 품종 등록한 수련 ‘세미 1호’와 오묘한 빛깔로 사람을 유혹하는 수련 ‘완비사’도 감상할 수 있다. “세미원을 방문하면 진흙에 물들지 않고, 물방울이 구슬처럼 영롱하게 잎에 맺히고, 향기는 멀리 퍼지는 연꽃을 보며 여유를 되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연꽃은 여름 꽃이다. 더위를 좋아해서 더울수록 햇빛을 양분 삼아 더욱 잘 피어난다. 연꽃은 7월에 만개하여 8월이 되면 꽃과 잎이 지고 연밥만 남게 된다. 연꽃을 감상하기에는 한낮보다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저물녘이 더욱 좋다. 연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정오 무렵부터 꽃봉오리가 서서히 닫힌다. 활짝 핀 연꽃을 구경하고 싶다면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 조선홍련이 피는 ‘홍련지’,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놓인 ‘백련지’,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이 개발·기증한 연꽃이 피는 ‘페리 기념연못’, 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 ‘수련이 가득한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한 ‘사랑의 연못’에서 연꽃을 만끽할 수 있다. ‘물의 요정’이라 불리는 수련도 세미원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세미원 보유식물은 약 270여종인데, 70여종의 수생식물과 120여종의 초본식물, 80여종의 목본식물이 있다. 세미원은 팔당호 변의 수몰 지역의 하천부지를 개조해 2004년 연면적 20만여㎡ 규모로 맑은 한강을 만들기 위해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심어 조성한 연꽃·수생식물 정원이다. 설립 당시 경기도에서 103억 원을 지원하여 수질과 토양 정화 능력이 탁월한 연꽃을 심어 상수원 수질을 정화하고 생태교육과 주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다. 2019년 6월에는 경기도 지방정원 제1호로 등록됐다. 세미원을 장애물 없는 ‘열린관광지’로 조성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주도하는 열린관광지는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관광객이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지를 말한다. 사계가 아름답지만 초가을에 열리는 ‘수련문화제’는 연꽃문화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안기는 축제이다. 겨울이면 백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큰고니가 찾는다. 지난 해 겨울에는 고니 269마리가 휴식하여 세미원은 ‘백조의 호수’ 변신했다. 세미원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편안하고 넉넉한 정원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6. 용인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세계적 명차 한자리… 온 가족 다함께 차차차!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둥근 바퀴에 태엽의 원리를 결합한 태엽자동차에 대한 상상도를 그린다. 다빈치가 스케치한 상상도를 실물로 재현한 태엽자동차와 1886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벤처 특허차’는 신기하게도 서로 닮았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처 설립자인 칼 벤츠가 삼륜마차에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특허받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벤처 특허차는 0.9마력에 시속 16km에 불과했으나 자동차의 시조라는 명예를 얻었다. 최초의 자동차 벤처를 탄생시킨 독일은 2022년 현재에도 세계 최고의 명차를 생산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벤처 특허차와 포르쉐, 롤스로이스, 캐딜락 같은 명차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에 위치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다. ■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다 1998년 5월 설립돼 올해 개관 24주년을 맞이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 2만여평의 드넓은 공간에 전시장과 실내교육장인 애니카 교통나라, 애니카 공원이 조성돼 있다. 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재규어, 비틀 같은 국내외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설치 작품 ‘21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는 20세기의 하드웨어 문화가 21세기에는 소프트웨어에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예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뷰티존, 프리미엄존, 코리안존, 스포츠존 등 총 12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로비를 미로처럼 재미있게 분할한 전시장에서 136년이 된 자동차의 몸체에 들어가는 부속품과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도표를 살펴본다.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고급 자동차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뷰티존’은 이름처럼 자동차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전시 공간이다. ‘포커스존’은 자동차 역사에 빛나는 가치가 있는 모델을 집중 조명해 감상하는 전시 공간이다. 영화 ‘백 투더 퓨쳐’에서 시간여행을 했던 자동차 ‘들로리안 DMC-12’와 ‘허비’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과의 만남은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광고존’은 한국자동차의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공간으로 추억의 자동차 광고영상과 카탈로그를 전시하고 있다. 2층엔 1910~20년대 자동차 장인들이 수공으로 제작한 명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클레식존’이 있다. 자동차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시발과 포니, 한국 자동차의 출발과 성장의 이름 ‘코리안존’에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시발’과 마주한다. 미군 지프차를 기초로 만들어진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출발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발은 광복 10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해 당시 부유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1960~70년대 조립생산의 단계를 거쳐 1975년에 출시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현대 포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조랑말이란 뜻을 가진 소형자동차 포니의 성공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현대 포니는 국산 자동차 최초로 해외에 수출하여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복원존’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의 철학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소장품인 클래식카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과정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국제 시발 자동차는 아쉽게도 현재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아 1955년 산업박람회에 출품할 당시 생산에 참여했던 기술자와 가족들의 고증을 통해 박물관에서 재현했다. ■ 자동차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당시 자동차는 극소수의 상류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소유물로 부와 지위를 나타냈다. 이런 까닭에 ‘프리미엄존’에 전시된 ‘롤스로이스 팬텀vi’와 ‘ 캐딜릭v12’는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1910년식 롤스로이스의 대표 모델인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는 단아하면서 화려한 차체에 직렬 6기통이 장착됐으나 주행 중에 시계 소리만 들린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령처럼 조용하게 움직여 부유층에 큰 사랑을 받았다. ‘퍼블릭존’에서 만나는 미국의 ‘포드 모델 T’와 딱정벌레를 닮은 유럽의 ‘폭스바겐 비틀’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전설적인 제품들이다. ‘포르쉐 911 터보 카브리올레’, ‘BMW 3.0CSL’ 같은 유명 스포츠카가 전달하는 느낌은 강렬하다. 운전자의 개성과 욕망을 스타일과 빠른 성능으로 표현하는 스포츠카는 세계 젊은이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오래된 자동차 중에서도 특히 1920~30년대 장인들에 의해 수공으로 제작된 명차를 ‘클래식카’라고 부른다. ‘클래식존’에서 ‘부가티 타입 38’이나 ‘스터츠 베어켓 스피드스터’ 같은 명작과 마주한다. 1957년에 출시된 ‘캐딜락 엘도라도 브로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소비 경제가 활성화된 1950년대 미국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형의 화려한 고급 자동차이다. 전투기의 디자인이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번쩍이는 은백색의 크롬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외관이 돋보인다. 반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는 작고 효율적인 자동차가 등장한다. 당시 시장의 요구에 따라 초소형차로 디자인된 ‘BMW 이세타’는 작은 차체를 고려하여 냉장고처럼 문을 앞면에 달았다. 자동차 디자인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시대적 상황이 반영돼 있다. ■ 보존과 복원은 미래를 여는 힘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20세기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자동차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존처리와 원형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복원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복원은 손상되고 훼손된 자동차를 가능한 처음 만들어졌던 당시의 상태와 기능, 디자인으로 복구하여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작업을 말한다. 자동차 보존과 복원의 원칙은 무엇일까. ‘영구보존의 원칙’은 잠재적 위험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최대한 수명을 연장시켜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다. ‘원형존중의 원칙’은 처음 제작되었던 당시의 원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최고 수준의 원형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기능구현의 원칙’은 자동차란 본질적으로 이동수단이기 때문에 주행이 가능한 상태로 여러 가지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박물관에 소장한 100년이 넘은 클래식카도 여전히 운행이 가능하다. 입장객들을 클래식카에 태우고 삼성애니카공원을 달리는 프로그램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만의 특별한 서비스다. 이름만 듣던 클래식카를 직접 타보는 경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메르세데스 벤츠 E320이 운행하고 있었다. 유럽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오스틴 7’, 한 때 포뮬러1을 주름잡던 레이싱카 ‘마세라티 250F’를 2분의 1 비율로 축소한 어린이 자동차, 1920년대 뉴욕 거리를 배경으로 전시된 ‘뷰익 24-6-45’ 같은 당시의 자동차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아이와 함께 배우는 안전한 교통문화 교통안전교육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단체교육과 가족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개인교육으로 나눠 진행된다. 어린아이와 동행했다면 애니카교통나라에 반드시 들러야 한다. 어린이들이 당하기 쉬운 10가지 교통사고 유형을 시나리오로 꾸며,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교통안전과 질서의식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자.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 5가지 약속도 아이들에게 꼭 일러주고 다짐을 받아야겠다. 횡단보도 오른쪽에 멈춰 선다, 초록불이 켜지면 왼쪽과 오른쪽을 확인한다, 운전자와 눈을 맞추며 손을 든다, 자동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다, 건너는 동안 자동차를 보면서 건넌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박물관에 어떤 자동차가 전시되고 있고 현재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미리 살펴본다면 훨씬 충실하고 즐거운 관람이 될 것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5. 부천시립박물관

과거와 현재·동양과 서양을 만나다 부천시립박물관 외관이 둥글다. 옹성처럼 생긴 둥근 벽면에 옹기관, 교육관, 유럽자기관, 수석관이라 새겨져 있다. 옹기와 교육자료와 유럽자기, 그리고 수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면서 교육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성주산에 야생 복숭아나무가 자랐다고 하는데, 197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부천의 ‘소사복숭아’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복숭아의 전통은 매년 5월에 열리는 ‘복사꽃 축제’로 연결된다. 급성장한 공업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부천시는 민선 시장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첨단산업과 역사문화를 융합한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어느새 부천은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만화축제’를 여는 품격 높은 문화도시다. 부천시박물관(관장 김대중)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옹기와 교육, 그리고 유럽 자기와 수석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특화한 박물관이다. ■ 부천, 나눔의 정신이 빛나는 도시 “부천은 ‘논개’라는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 선생의 고향입니다. 변영로 문학관을 곧 개관할 것인데, ‘수주’라는 선생의 호는 고려 시대에 부천을 부르던 이름이지요” 김대중 관장은 역사 전공자답게 부천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부천은 고대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우휴모탁국 땅이었지요. 이후 고구려가 차지하면서 주부토군으로 불렀고, 신라가 차지했을 때는 장제군이라 했습니다. 수주라 불린 것은 고려 시대부터입니다. 고려 문종 때 부평으로 불리게 되는데, 부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부터죠.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했으니 내년이면 시 승격 50년이 됩니다. 부천은 2017년 동아시아 최초로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자산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부천시립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만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옹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옹기관과 통합관이 있다. 통합관은 유럽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유럽자기관, 19세기 서당교육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교육변천사를 보여주는 교육관, 그리고 수천 년의 세월이 빚은 수석관이 모여 있다. “통합관은 세 분의 기증품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입니다. 교육자료를 기증한 민경남 선생, 유럽 도자를 기증한 복전영자 선생, 평생 수집한 수석을 기증한 정철환 선생이 부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인 주인공입니다” ■ 자연이 빚어낸 美 ‘수석실’ 수석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일까. 전시실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석은 한자로 목숨 ‘수’(壽)를 쓰는데,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고 수석을 바라보니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내는 듯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과 소치 허련의 괴석도를 첨단기술로 구현한 영상이 흥미롭다. 그림 속 괴석과 인물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통해 조선시대의 수석문화를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섬을 닮은 ‘도형산수경석’을 바라보면 관람객이 마치 바다에 있는 듯하다. 수석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수석을 찾아내 말을 걸고,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폭포수가 콸콸 흘러내리고, 글을 읽는 선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보름달 위로 매화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 자료로 살펴보는 한국 교육의 역사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몽당 한항길(1897~1979) 선생과 소명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신성우(1893~1878) 신부는 부천에 교육의 터전을 가꾼 주역이다. 조선시대 아이들의 교과서였던 ‘동몽선습’ 대한제국 때 펴낸 ‘초등소학’, ‘조선어독본’ 등 진귀한 책과 신문, 자료들이 가득하다.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노년의 관람객에게 반가운 공간도 있다. 낡은 나무책상과 걸상, 빛바랜 태극기와 하얀 분필이 놓인 칠판, 교실 한가운데 놓인 난로 위에 도시락이 올려져 있다. 겨울날 초등학교 교실의 정겨운 풍경이다. 그 옆에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이 그려진 놀이터도 있다. 50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어떤 교복을 입었을까. 교육박물관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걸려 있고, 그 앞에 ‘학교종’이라는 악보가 펼쳐져 있다. 1961년에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 ‘사회생활 3-1’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표지에 스케치북을 든 남녀 어린이 뒤로 분홍빛 복사꽃이 핀 과수원과 멀리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보인다. 부천 소사의 명물이 봉숭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부천에 산업단지가 많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역사 자료다. 전시실에 마련된 옛날 학용품을 판매하는 문방구 속을 들여다본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 현재와 과거의 교실 풍경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부모들도 즐겁겠다. ■ 자기를 통해 엿보는 유럽의 귀족문화 자기는 본래 중국과 조선에서만 제작할 수 있는 고급기술이었다. 이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자기산업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한다. 유럽에서 중국식 백색자기를 최초로 개발한 독일의 마이센, 금채 장식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프랑스의 세브르, 본차이나를 개발해 자기역사에 획을 그은 영국의 로열 우스터, 덜튼,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등 각국의 특징이 담긴 자기와 유명 크리스털을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18세기부터 근대까지 유럽 각국의 화려했던 자기 안에 담긴 상징적인 문양들, 라퐁텐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등 유명 동화와 이야기가 표현된 유물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유물을 부천에 기증한 복전영자 관장과 유물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으면 유럽자기실은 더욱 흥미로운 공간이 된다. 세상에 여섯 점만 있다는 새도 만난다. 독일의 자기회사 마이센에서 만든 6마리의 새 중에서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나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자기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유럽자기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마련이다. ■ 부천의 역사와 만나는 옹기관 옹기관은 조선 말부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에 숨어 살면서 항아리 질그릇, 질화로, 시루 등을 만들던 마을인 ‘점말(店村)’에 터를 두고 있다. 부천향토역사관에서 부천의 역사를 먼저 살펴야 옹기가 더욱 잘 보인다. 옹기 가마터가 있던 여월동 점말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이으며 신앙을 지킨 곳으로 1980년대까지 옹기를 굽던 터전이다.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옹기의 역사, 옹기제작 과정 그리고 질그릇, 오지그릇 등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만나볼 수 있다. 옹기에 담긴 이야기도 풍부하다. 표면에 십자가를 그린 옹기가 눈길을 끈다. 천주교 신자임을 알린 표식이다. 보통 뚜껑 안에 표시했는데 대담하게도 바깥에 그려 넣은 장인의 용기가 놀랍다. 가택신을 모시는 데 사용한 옹기도 눈길을 끈다. 옹기에 하얀 버선이 그려져 있다. 장을 담글 때 해로운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흥미로운 유물이다. ■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소설 ‘대지’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 여사를 기념하는 부천펄벅기념관과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국궁을 소재로 한 부천활박물관도 부천시박물관 소속이다. 공간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세 곳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부천활박물관과 펄벅기념관도 책임지고 있는 김대중 관장의 발언에서 부천시박물관의 밝은 전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직원들은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는 박물관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 2023년은 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알리는 역사박물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4. 안산 ‘성호박물관’

실학의 거목 이익 선생 ‘평범한 일상 위대한 업적’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역사문화와 첨단산업의 도시 안산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산은 성호가 두 살 때부터 83세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을 살았던 고장이다. 안산시는 한국 실학의 거목인 성호 이익 선생의 거룩한 삶과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토사학자들과 이익의 후손인 이돈형 선생의 유물기증에 힘입어 2002년 5월에 성호공원 내에 ‘성호기념관’을 건립한다.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알리던 성호기념관은 2020년 2월에 ‘성호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02년에 문을 열었으니 2022년은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물관 입구에 동으로 조각한 커다란 책이 있다. 성호 이익의 실학 정신을 보여주는 ‘육두( :여섯 마리 좀 벌레)’란 글이 새겨진 조각상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시대의 좀 벌레는 무엇일까? ■ 성호 이익, 안산이 낳은 위대한 개혁 사상가 성호 이익은 조정에서 서인들이 남인을 몰아낸 경신환국(1680)으로 평안도 운산에서 유배를 살던 매산 이하진과 안동 권씨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이익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안산 첨성리로 낙향했다. 몸이 매우 약해 10세에 비로소 둘째 형 이잠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익은 자신을 가르친 둘째 형 이잠이 장희빈을 옹호하다가 죽임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육영재’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며 지냈다. 육영재는 ‘동국진체’를 개발한 셋째 형 옥동 이서(1663~1723)의 서재다. 미수 허목을 사숙하고 반계 유형원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은 이익은 자신도 좀 벌레와 다름없다고 자책하다가 손수 꿀벌을 치고 닭을 기르며 채소를 가꾸어 ‘사농합일(士農合一)’을 실천했다. 이익은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옛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의문을 가져라,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의 탐구에 힘을 쏟아라” 권철신, 안정복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역사와 경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 2층 상설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성호 이익 선생의 일대기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전체를 살펴보면 이익 선생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우리에게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은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가전된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실 입구에 쓰인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란 글귀가 성호박물관의 지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성호 이익의 아버지 매산 이하진이 1680년 무렵에 쓴 10첩 친필의 ‘천금물전(千金勿傳)’은 천금을 주더라도 남에게 이 책을 주지 말라는 뜻을 가진 서첩으로 보물이다. 서체도 빼어나지만, 17세기 문인들이 어떤 물건들은 아끼고 즐겼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품격이 느껴지는 거문고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된 이 거문고는 ‘옥동금’을 비롯해 무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졌다. 옥동(玉洞)은 이익의 셋째 형님의 호다. 형님이 연주하는 거문고 선율을 듣고 성호 자신도 연주해 보았을 것이니 형제의 손때가 묻은 유물이다. 거문고 아래 놓인 거울에 비치는 글은 거문고 뒷면에 새긴 글이다. “거문고의 내력이 흥미롭습니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벼락을 맞아 고사한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 장인 문현립에게 제작했다는 사연이 적혀 있지요. 거문고 위에 있는 악보는 한글로 된 것입니다. 둘째 형님 이잠은 성호 선생에게 학문을 가르친 분이고, 셋째 형님 옥동 이서는 ‘동국진체’라는 이름을 얻은 서예가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성호의 형제분들도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강민우 학예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물을 보는 흥미를 배가시켜 준다. 한 폭의 자그마한 산수화에도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이것은 퇴계가 강학한 ‘도산서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왜 ‘도산서원도’가 이곳에 걸려 있을까 궁금하시죠. 성호의 학문적 계보는 형님 이잠을 거쳐 미수 허목, 한강 정구, 퇴계 이황으로 연결됩니다. 퇴계를 몹시 존경했던 이익은 1751년 이웃에 살던 표암 강세황에게 도산서원을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도산서원도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이 성호의 부탁을 받고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왼편에는 이러한 사연을 담은 강세황이 쓴 발문이 있다. 콩죽이 놓인 작은 상이 눈길을 끈다. 콩죽, 콩나물, 된장은 성호가 즐겨 먹은 음식이다. 검소하게 생활한 성호의 모습이 그려지는 전시물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성호는 손수 닭을 기르고 꿀벌을 치고 남새밭에 채소를 길러 먹었다. 글을 읽으면서 농사를 짓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상설전시실 중앙을 차지한 것은 성호 이익의 사상이 담긴 ‘성호사설’ 세 권이다. 책 뒤에 ‘성호사설’의 내용인 ‘천지문’, ‘인사문’, ‘만물문’, ‘경사문’, ‘시문문’이 새겨져 있고, 선생의 말씀도 새겨 놓았다. “지극히 천한 퇴비와 지푸라기도 밭에서 곡식을 기르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글을 잘 보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성호는 가난한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과 고민을 저술로 남겼다. ■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 사대부가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품위가 느껴지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기증유물로 꾸민 공간에서 만나는 유물은 붓걸이와 등잔, 촛대, 안경집, 주전자, 장식함 등 소품들이지만 품위가 느껴진다. “2002년 개관 이래 2천800여점의 유물을 수집하였습니다. 그중 절반이 넘는 1천500여점이 기증유물입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좋은 박물관을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분들의 성함을 새겨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장유물전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가 진행되고 있다. 진주 유씨 가문에서 기증한 360여점의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는 400여년 전 선조대부터 안산에 터를 잡은 이 가문이 경기 남인의 명가로 발전하는 과정과 해암 유경종 등 가문의 인사들이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성호학이 후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2020년 파평 윤씨 좌찬성공파 문중에서 기증한 유물 580여점을 바탕으로 펴낸 자료집 ‘파평 윤씨, 가문의 기록’은 안산에 터전을 두었던 한 가문의 내력을 오롯이 살필 수 있다. 영상실에서 성호 이익의 학문의 세계를 살펴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영상물이라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기가 쉽다. “영상을 보고 전시관을 관람하거나,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서 영상을 봐도 좋습니다. 이곳에 잠시 쉬면서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도록 꾸몄지요” 상설전시실 입구에 있는 창문에 ‘성호선생 묘소’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유리창에 왜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곁에 있던 문화해설사가 까닭을 알려준다. “저 길 건너편을 보세요. 성호 선생님 묘소가 보이지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길 건너편 언덕 푸른 소나무들 사이로 무덤 하나가 보인다. 성호 선생이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후학들을 굽어보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 공간이다. 지하 1층의 체험전시실은 묵향 가득한 상설전시실과 달리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성호 이익과 관련한 체험전시를 하는 곳이다. 탁본을 비롯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손발, 귀와 코까지 오감을 통해 아이들이 즐기며 배우도록 구성한 것이 돋보인다. 평일이라 그런지 어린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단체로 관람을 온 모양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성호박물관은 ‘성호학의 원형과 글로벌 인문학으로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오는 10월13일부터 3일간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성호박물관은 안산을 넘어 대한민국 인문학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3. 성남 갤러리 우촌

별이 쏟아지는 숲으로 가요. 별을 바라본적이있는가? 여름밤 아이와 잔디밭에 누워 여름 별자리를 찾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별자리를 찾는 환상의 여행지는 갤러리 우촌(관장권영한)이다. 성남시 수정구 적푸리로에 터를 잡은 갤러리 우촌은 신구대학교식물원에 있다. 대왕저수지와 인릉산이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서 ‘2022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식물원 미술놀이 뜰, 별 숲’이 7월 24일까지 주말마다 진행된다.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인 ‘별 숲’은 여름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꽃과 나무로 상상하는 놀이로 ‘별을 세다’, ‘별을 따다’, ‘별을 그리다’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초등학생과 보호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의 주제는 ‘색깔 놀이’였다. 영상으로 펼쳐지는 식물원의 사계를 보니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안현정 학예사를 따라 ‘2022 기획사진전, 영국·아일랜드 식물원’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로 향했다. “이 전시는 환경부의 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신구대학교(총장 이숭겸) 구성원들이 직접 탐방한 세계의 식물원들을 소개하는 기획인데, 이번이 일곱 번째로 열리는 것입니다. 영국과 아일랜드 식물원은 시민문화 그 자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표 식물원 20곳을 전시하고 있는데, 1759년에 개원한 잉글랜드의 큐왕립식물원과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왕립식물원이 특히 유명하지요. 큐왕립박물관은 5만 종이 넘는 다양한 식물을 보유한 곳으로 지난 2003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답니다” 전시 작품을 둘러보면 자연스레 영국의 빼어난 정원문화에 감탄하게 된다. 인간이 정성을 들여 가꾼 정원은 ‘작은 에덴동산’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영국 정원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인간의 욕심으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회복을 꿈꾸게 한다. ■ 자연을 배우고 가꾸며 인재를 기르는 곳 갤러리 우촌은 신구대학교 설립자 고 우촌(于村) 이종익 박사가 1965년에 설립한 신구농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이곳 약 82만5천㎡ 부지에 나무를 심고 농장을 경영하던 이 박사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아우르는 학원설립을 목표로 세운다. 그러나 이 일대가 자연녹지보호 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농장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 신구대학교 개교한 1974년 이후 이곳은 도시원예과와 축산과의 실습농장으로 활용된다. 매년 국화전시회를 개최하고 우수한 원예 산물과 축산물을 생산하던 실습농장에 이숭겸 총장이 자동화된 대형 하우스와 유리온실을 건축(1993)하면서 성남시와 식물원의 설립을 구상한다. 오랜 준비와 정성을 쏟아 2003년 5월에 개원한다. 이듬해 6월, 식물유전자원의 증식과 재배시설을 갖춘 신구대학식물원을 학교수목원으로 산림청에 등록하고 전문인력 육성과 국내외 식물자원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야생화 심기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조경가든대학, 초등학생 대상으로 녹색체험교실을 운영하는 등 대학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이라는 정체성과 선진기법을 반영하는 교육을 진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곳에서 이론과 실기를 익힌 학생들이 전국의 식물원과 수목원에서 활약하고 있다. 식물생태연구소를 열어 식물유전자원과 정원사업을 벌이면서 멸종위기식물 11종(단양쑥부쟁이, 가시연꽃 등)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공간 2010년에 문을 연 ‘숲전시관’은 식물문화와 식물원 문화 확산의 의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식물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음악회를 비롯한 문화 행사를 열어 ‘갤러리 우촌’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숲전시관과 갤러리 우촌은 자연과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갤러리 우촌은 2016년 6월에 등록 미술관으로 재정비하여 식물원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의 식물원을 사진으로 소개하는 기획사진전, 신구대학교 학생들의 사진, 그래픽 디자인, 섬유디자인, 화훼디자인 등 다양한 창작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기도와 성남시의 지원을 받는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도 꾸준히 진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았다면 이제 식물원 곳곳에 조성된 20곳의 주제 정원을 탐방할 차례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며 관람객을 맞이하는 정원의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온실 공간인 ‘에코센터’의 독특한 외관은 나뭇잎에 맺힌 이슬방울 모양을 본뜬 것이다. 굴거리나무, 먼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와 같은 제주도와 남해 섬에 자라는 나무들이 무성하다. 새우란, 자란, 털머위와 같은 화초가 계절마다 꽃을 피워 사계절 푸른빛과 향기를 선사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이 곤충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곤충생태관’은 사슴벌레, 하늘소, 장수풍뎅이가 애벌레로부터 성충으로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옛 정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정원’은 담장과 장독대, 펌프 우물을 중심으로 봉숭아꽃, 접시꽃, 과꽃, 수국 같은 정겨운 꽃들이 피어나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여러 가지 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정원, 음식 재료와 주방기구 조형물을 이용한 미각정원, 허브향이 싱그러운 후각정원으로 이어지는 ‘오감정원’도 빠트릴 수 없다. 허브정원을 채소정원으로 바꾸면서 시각(여러 색깔의 잎), 청각(다양한 소리), 후각, 미각, 촉각까지 오감을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어린이 정원’은 이름도 예쁜 나비정원, 잠자리정원, 달팽이정원, 색종이정원, 미로원으로 구성된 식물정원이다. 나비, 잠자리, 달팽이 같은 곤충 모양으로 조성한 정원에서 색채와 다양한 포장재료를 활용하여 자연을 즐기며 배울 수 있다. ■ 두꺼비와 라일락과 별자리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식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채취 탓이지요. ‘멸종위기식물원’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과 고산식물 등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동물과 식물이 섞여서 살아가는 ‘습지생태원’도 찾아보세요. 어리연꽃, 부들, 개연꽃, 물달개비, 물옥잠화처럼 물에서 자라는 수생식물과 동의나물, 부처꽃, 분홍 바늘꽃 같은 습지 식물과 달팽이, 개구리, 두꺼비 같은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환경부인증 프로그램인 ‘습지에서 숨 쉬는 작은 생명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요” 안내에 따라 멸종위기식물원과 습지생태원을 둘러 보며 생명의 신비에 감동한다. ‘약초원’에서 감초를 비롯하여 구기자, 당귀, 지황 등 약재로 쓰이는 약초들의 생김새를 살펴보고 눈을 감고 냄새를 맡으며 이름을 기억해본다. 우리나라에 약 800여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단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나무관찰원’에서 소나무를 비롯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 가래나무, 회화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귀룽나무 등 우리가 자주 보는 나무의 특징을 비교하고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수목원 끝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라일락 품종 전시원이 있다. 수수꽃다리속(Syringa)에는 세계적으로 2천500여 품종이 육종되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전시원에는 우리나라 자생 라일락부터 300여 종류의 품종이 자라고 있다. “미술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대왕저수지는 두꺼비 서식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두꺼비들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이숭겸 총장이 에코센터 뒤편 고층습지원을 대체 서식지로 만든 것을 기념하여 두꺼비 상을 설치합니다. 식물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두꺼비와 청동 두꺼비 분수광장은 두꺼비를 지키려는 신구대학교 구성원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지요. 다행히 지금은 장마철이 되면 어린 두꺼비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이 시기에는 일부 산책로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두꺼비들이 보금자리를 찾아가기 좋도록 군데군데 통로도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식물원과 미술관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유년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아이들과 함께 꽃과 별자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2.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자연과 인간의 상생, 착한 농법 생생체험 양평은 1973년 팔당댐이 준공되면서 수도권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와 맞닿은 지역인 까닭에 여러 가지 규제를 받았다. 양평군은 대안으로 지역 전체를 환경농업지구로 설정하고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높이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이 2007년에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배경이다. 양평군은 다양한 공립박물관을 보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친환경농업박물관을 비롯하여 양평곤충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몽양기념관, 화서기념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세미원 연꽃박물관까지 모두 7개나 된다. ■ 생태와 환경,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천년 고찰 용문산 입구에 있는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관장 진유범)은 외관이 한옥이다.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리도록 설계한 모양이다. 양평군은 1996년에 이미 ‘양평향토민속관’ 건립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2006년에 이름을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으로 바꾸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물관은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과 양평의 친환경농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친환경농업실’로 구성하게 된다.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병하여 양평군이 되었다. 양평군의 상징은 수령 1200년 된 용문사 은행나무다. 2층 역사실에서도 용문사 은행나무와 마주한다. 거대한 은행나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양평의 역사로 들어가는 형식이 재미있다. 여기서 ‘용문산’을 노래한 옛 문인들의 한시(漢詩)를 만난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택당 이식은 용문사를 이렇게 노래한다. ‘사흘 동안 산행에 지루한 줄 몰랐나니/푸른 절벽 붉은 나무들 들쭉날쭉한 길/용문사는 구름 자욱한 곳 어딘지 모르겠는데/ 골짜기엔 요란하기 빗줄기 쏟아지네’ 역사실에 들어서기 전 작은 방에서 용문사 은행나무를 다시 만난다. 영상으로 은행나무의 사계를 보여주어 대자연의 위대함을 전달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양평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양평 상여 회다지 소리’와 만난다. 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중에는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꽃가마’로 불렸던 상여도 있다. 양평의 고찰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 같은 사찰의 전각과 불교 유적을 이미지와 영상물로 전달하는 공간도 있다. 이를 통해 과거 양평의 불교가 융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증국사 태고 보우가 양평을 대표하는 승려인데, 고려 말 보우가 국사로 추대되면서 양평이 군으로 승격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안내하던 김석원 학예사가 양평 의병투쟁의 역사를 소개한다. “양평은 우리나라 구국 항쟁의 본거지였습니다. ‘양평의 정신’은 바로 위정척사의 상징인 화서 이항로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한 ‘화서학파’ 인물들이 외세에 맞서 의병투쟁을 벌였던 데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 장군도 화서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분이죠. 1895년 전국 최초의 의병부대(을미의병)가 양평 출신인 이춘영과 김백선 등이 지휘한 ‘지평의진’입니다. 영국 기자 매켄지가 1907년 양평에서 촬영한 이 사진을 통해 당시에 일제와 맞서 싸운 양평 의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실려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의 현장이 바로 양평이다! ‘의로운 고장 양평’의 전통은 항일무장투쟁으로, 광복 이후에는 양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운동과 통일정부수립운동으로 이어진다. ■ 양평, 친환경농업의 중심 수레바퀴처럼 생긴 기구가 있다. ‘용골차’는 장정들이 발판을 딛고 돌려서 낮은 곳의 물을 퍼 올리는 기구다. 친환경농업실에서 지게에 실린 ‘장군’도 만날 수 있다. 장군은 오줌이나 인분을 담는 통인데, 나무 사기 백자로 만든 장군도 전시되어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료 대신 사람과 소, 돼지의 오줌과 똥을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선의 농부들이 참고했던 수백 년 된 농사 서적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에 펴낸 농사 관련 서적들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를 통해 농사를 제일로 여겼던 우리 전통문화를 새삼 확인한다. 근현대에 농법이 크게 변화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친환경농업과 화학농법을 비교하여 안전한 먹거리,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농법의 중요성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다. 하지만 땅이 병들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인간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질 원료를 이용하여 병원균 억제 미생물과 발효 미생물을 키워 농사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양평은 친환경농업의 중심에 있다. 왕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양평쌀을 비롯해 양평한우, 느타리버섯, 신선쌈채, 부추, 수박, 딸기, 참비름나물, 취나물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마당에 콩이나 메밀을 가는 맷돌, 곡식을 담는 함지박, 곡식을 빻는 절구 같은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형으로 양평의 대표 친환경 농업 마을인 ‘용문면 화전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는 조선 중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지’에 임금님 진상품으로 용문산 산나물이 최고라 기록을 바탕으로 기획된 축제다. 고사리, 고비, 취나물, 참나물은 “보약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물관도 양평 산나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도 인기가 높았지요. 이때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미래를 열어갈 씨앗을 뿌리는 곳 1층 미지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 ‘백년 씨앗 천년 틔움’전은 4월 21일부터 7월 3일까지 전시된다. ‘농부의 씨앗, 희망을 이야기하다’를 시작으로, ‘백년씨앗’ 구역과 ‘천년틔움’ 구역으로 구성됐다. ‘농부아사(農夫餓死 ) 침궐종자(枕厥種子)’라니 외세에 맞서 싸웠던 양평 의병의 각오처럼 결연하다.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봄에 뿌릴 씨앗을 먹지 않는다” 주먹이 들어갈 만큼 둥근 구멍이 난 박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 박은 소중한 씨앗을 보관하는 그릇이다. 기획전의 핵심은 토종 씨앗 중 총 234점의 공개다. 양평에서 수집된 토종 밭작물 씨앗 119점, 양평에서 수집 및 시험 재배된 토종 볍씨 115점이다. 박물관은 토종 씨앗의 가치를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하나, 기후변화에 적응한 씨앗. 둘, 깨끗하고 건강한 먹거리. 셋, 식량 안보를 지키는 생명줄. 넷, 새롭게 피어나는 맛. 다섯, 농업계의 반도체, K-토종 씨앗. 이처럼 토종 씨앗은 건강하고 맛있는 미래 먹거리이자 농업을 이끌어갈 소중한 존재다. 토종 씨앗을 지켜온 양평주민들의 자랑스러운 얼굴과 이름도 만날 수 있다. ■ 박물관, 배움과 소통의 마당 무엇보다도 반가운 사실은 박물관이 지역민들의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박물관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의 모든 학생이 박물관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은자 운영실장은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 특히 관심이 많다. “지난 4월 23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 양평문화단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어린이 양평문화단은 농업생활사 기획전시와 연계해 지역주민의 농업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올해는 토종자원과 관련된 문화체험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요. 한 기수 당 30명씩 총 90명이 수강하는데, 1회차는 박물관에서 토종 씨앗을 주제로 다룬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를 관람하고, ‘24절기 달력 꾸미기’를 진행해요. 알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24절기의 의미를 배웁니다. 2회차는 용문성당 안에 있는 ‘나자렛집 생태공동체 텃밭’을 방문해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고 토종 씨앗을 심어보는 체험이에요. 3회차는 토종 씨앗을 활용한 ‘씨앗 강정 만들기’ 체험입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지요. 참, 박물관 부설 ‘자연요리연구소’와 ‘다도체험장’의 활용도도 매우 높습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1. 남양주 ‘모란미술관’

로댕의 열정 결정체 ‘발자크’와 마주하다 남양주시 화도읍 문안산 모란봉 아래 자리를 잡은 모란미술관(관장 이연수)은 푸르름에 싸여있다. 파란 하늘빛을 닮은 미술관 대문은 페루 출신의 세계적 작가 알베르토 구즈만의 작품 ‘문’이다. 5월 19일부터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ONNATURE)’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몇 걸음을 걷지 않았는데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미술관 중앙에 초대전이 열리는 본관이 있고, 본관 왼편에 연노랑 색깔의 수장고와 ‘노래하는 탑’이 서 있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높이 27m의 이 콘크리트 탑은 고(故) 이영범 건축가의 작품인데, 2003년 미국건축가협회 뉴욕지부로부터 디자인상을 받았다. ‘노래하는 탑’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상 ‘발자크’가 전시돼 있다. 로댕은 1898년에 대문호 ‘발자크’를 완성하고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이 비웃는 이 작품,... 기를 쓰고 조롱하는 이 작품은, 나의 필생의 역작이며 미학적 동력이다. 이것을 창조한 날부터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곁에는 광화문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을 조각한 고 김세중(1928~1986)의 조각상 ‘피에타’가 있다. 탑에 새겨 놓은 고 이경성 평론가의 ‘모란탑의 존재감-시심의 영토’라는 글을 통해 탑을 비스듬히 세운 작가의 뜻을 가늠해본다. ■ 조각의 숲에서 ‘자연하다’ 본관으로 이어진 산책로에도 ‘가족’이나 ‘평화’ 같은 정겨운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놓인 최만린의 ‘태(胎)’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율동적이다. 속이 드러난 고목처럼 카페 곁에 서 있는 작품은 전국광의 ‘積(적)-만남의 장’이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녹음에 둘러싸인 미술관의 풍경에 빠져든다. 김유나 학예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를 둘러본다. “작가는 예술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전시회 주제가 ‘자연’이란 명사와 ‘하다’라는 동사를 결합한 ‘자연하다’입니다. 미국과 인도 등 세계 곳곳에 캔버스를 세워 놓고 수년을 기다렸다고 해요. 자연이 빚어낸 작품들이지요” 커다란 캔버스를 붉게 칠한 작품이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어지는 공간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온통 검은색이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표면이 거칠다. 군 당국을 설득하여 허가를 받고 사격장에 캔버스를 설치하여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긴 조각을 캔버스 위에 펼쳐 붙이고 붉은색과 검은색을 입힌 것이라 한다. 작품 옆에 부착된 작가의 말이 묵직하다. “포가 그린 그림이다. ...폭력의 역사도 자연이다. ...갈등과 야만의 역사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이다. 군 당국의 허가를 받는데 3년, 작업을 하는데 3년을 집중했다. 3년을 침묵했다. 절망을 길게 사유했다. 검정했다. 빨강했다” 작가의 작업 방식만큼이나 해설도 파격적이다. 여러 해 동안 캔버스를 바닷물 속에 담가 두거나, 바람 부는 들판에 세워 두거나, 모래밭에 묻어두었다가 꺼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말대로 ‘자연이 그린 그림’이다. 강원도 인제 숲속에, 제주도 유채밭에 캔버스를 세웠던 작가는 모란미술관 정원에도 캔버스를 세웠다. 앞으로 2년 동안 나무 그늘 밑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연수 관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김 작가는 모란미술관을 이렇게 소개한다. “삶과 죽음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곳, 있음과 없음이 같이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 삶과 죽음, 자연을 노래하는 조각 전문미술관 야외전시장은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나무 아래로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있는 정원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뒷짐을 진 노인이 염소 가족을 이끌고 장터로 향하는 모습을 조형한 백현옥의 ‘장날’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염소를 잡고 놀다가 쓰러뜨려 몇 차례 다시 세웠어요. 그래도 관장님은 울타리를 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세요”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최만린의 ‘095-9’는 대지가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추상성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한참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작품도 있다. 김영중의 ‘사랑’이 그렇다. 임영선의 ‘사람들-오늘’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떠밀려가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1990년 4월에 문을 연 모란미술관의 개관전 주제는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새 표현 전’이다. 이후 줄곧 조각의 현실을 진단하며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2020년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의 주제는 ‘조각의 아름다움’이다. 조각으로 시작해 다시 조각이다. 1992년에 열었던 ‘국제조각심포지엄’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네덜란드의 마크 브루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페루 출신의 알베르토 구즈만 등 국내외 작가 9명이 한 달 가깝게 머물면서 미술관 마당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는 행사였다. 1995년에 ‘모란미술대상’을 제정하고 1997년부터 ‘모란조각대상’으로 장르를 특정해 격년제로 2007년까지 시행하여 역량 있는 조각가를 발굴 지원하였다. 개관 25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건축과 설치, 조각을 아우르는 ‘모란 폴리 2015’ 국제공모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란미술관은 한국 조각계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며 질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일을 주도한 인물 역시 이연수 관장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30년 전 이처럼 외진 곳에 미술관을 세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결혼하고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혼자 돌아다닌 곳이 화랑이었어요. 어느 날 한 작가의 그림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지요. 그때 당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에게 나중에 돈 생기면 화랑 하나 차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관장의 남편 고 홍석웅 회장은 ‘민주화 운동가의 묘지’로 널리 알려진 한국 최초의 사설 공동묘지인 모란공원을 경영하며 부인 이연수 관장이 모란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도록 뒷받침한 인물이다. 이 관장은 지난 32년 동안 ‘돈 먹는 하마’인 사립미술관을 꿋꿋하게 지켜온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남편의 든든한 후원과 이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사랑이 지금까지 오게 한 힘인 것 같아요” ■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편안한 미술관 이연수 관장은 국내 대표 조각가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돈이 없는 작가가 외국에 갈 일이 생기면 비행기 표를 끊어주고, 차가 없는 작가에게는 남편의 중고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모란미술관은 조각계에서 어머니가 계시는 친정처럼 편안한 곳이 됐다. 고 김세중 조각가의 아내 김남조 시인,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낸 현각 스님 등 문화예술인은 물론 종교인들과도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이 관장은 15년간 모란미술관 고문을 맡아준 고 이경성(1919~2009) 평론가와의 특별한 인연에 감사한다. 스승의 역할을 해 주던 이경성 선생이 별세하자 선생을 미술관 옆 모란공원 묘지에 모셨다. 최태만·김종길·김성호 등 실력을 인정받는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이 이곳을 거쳐 갔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이 관장은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숙명여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경기도박물관협회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으로도 활동한 ‘여걸’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이 관장의 태도와 말씨는 무척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는 작품을 살 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본다고 한다. “고 이경성 선생님이 알려줬어요. 작품이 곧 사람이라고. 작품 속에 작가가 녹아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을 봐야 합니다. 3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보니 작품은 곧 작가의 인성 그 자체더군요” 미술관을 거닐며 조각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홀가분해진다. 자연의 품에 안긴 모란미술관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위로와 휴식의 공간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0. 포천역사문화관

‘포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신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명성산과 산정호수를, 광릉 국립수목원이나 한탄강을, 금수정을 비롯한 ‘영평 팔경’을, 이동막걸리나 이동갈비 또는 한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주상절리로 유명한 한탄강을 품은 ‘포천(抱川)’은 구석기시대부터 1950년 한국전쟁 전적지까지 역사문화유산이 매우 풍부한 도시다. 그러나 포천시를 즐겨 찾는 여행객은 물론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지역민들도 포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포천은 땅의 크기가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서 가평, 양평에 이어 세 번째에 속한다. 그러니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시 전체를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고구려는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는데, 물이 많은 고을이란 뜻이다. 신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 ‘견성’이라 부르다가 ‘청성’이라 했고, 고려는 개성의 배후 지역으로 관리하며 ‘포주’라고 불렀다. 지금의 지명인 포천으로 부른 것은 조선 태종때인 1413년이다. 포천의 ‘천’은 한탄강을 가리킨다. 한탄강 줄기를 중심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의 문화가 모두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의 역사유적도 풍부하다. 포천시에는 총 84건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국가지정문화재가 10건,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23건, 등록문화재가 2건, 포천시 향토유적이 49건이다. ■ 크진 않지만 알찬 박물관 “자연이 아름다운 옛 선비들의 고장” 포천을 제대로 만나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2015년 7월에 개관하여 2017년 7월에 경기도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한 ‘포천역사문화관’이다. 장보정 학예연구사의 표현처럼 포천역사문화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내용이 꽤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상설전시실은 포천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150만 년 전 포천에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돌도끼와 신석기인들이 사용한 ‘어망추’와 옷을 지을 때 사용한 ‘가락바퀴’와 마주한다. 유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것이다. 유리관에 돌조각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용암이 분출될 때 생성된 흑요석인데,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어 신석기인들에게 최고의 도구였지요. 포천 한탄강 일대에서 약 2만 점에 달하는 구석기 유물이 쏟아졌다고 해요” 포천이 아득한 옛날부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기법이 흥미롭다. 청동기인들은 고인돌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무덤을 잘라 부장품이 보이도록 전시한 것이다. 온전한 모습을 갖춘 형이상학적인 ‘그릇받침’은 원삼국 시대의 유물이다. 물론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의 유물도 있다. 기와 조각에 ‘마홀수해공구단’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구려가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에요. 백제가 경기 북부지역을 점령했던 5세기 중반 때 처음 쌓기 시작한 반월산성(사적 제403호)은 포천이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철로 만든 도끼와 낫, 그리고 숫돌은 반월산성에서 출토된 것이죠” 반월산성은 포천에 있는 10개의 산성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구읍리 군내면사무소 부근에 있는 반월산성은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백제 한성이 함락된 후 6세기 중반에는 고구려에서 활용한다. 포천에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부하 왕건과 싸우다가 패해 도망치다가 통곡했다는 명성산(울음산)을 비롯해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옆이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인물들을 여럿 배출한 고장답게 포천에는 서원이 4개나 있다. 옥병서원에는 사암(思庵) 박순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그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로 활약한 백사 이항복도 포천의 인물이다. 백사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화산서원은 1659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용연서원은 한음 이덕형과 용주 조경을 모신 곳인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의 하나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신이자 청백리이며 우정의 대명사인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포천의 자랑이다. ■ 살아 숨 쉬는 예술과 충절의 정신 “영중면 양문리에 위치한 금석문은 우리나라에 4개 밖에 없는 한글비입니다. 1686년 낭선군이 제작한 이 비석은 제작배경이 정확한 것으로 종친이 만든 유일한 금석문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비인 이윤탁의 한글영비(1536년) 이후에 제작된 이 비는 국어 발달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유물입니다” 한글비 탁본이 시선을 끈다. 장 학예사가 비석에 새겨진 글 뜻을 풀어준다. “선조의 서자 인흥군 이영이 묻힌 곳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씨인데 현대어로 옮기면, ‘이 비가 매우 영험한 힘이 있으니 어떠한 생각으로라도 사람이 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한글 비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라고 한다. 봉래 양사언의 멋진 초서를 비롯해 임금이 친히 쓴 어필도 있다. ‘인평대군치제문비’는 인조의 셋째아들이자 소현세자와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 이요(1622~1658)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고 위로하고자 신북리에 세운 비다. 효종과 숙종, 영조와 정조 네 분 임금의 글씨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점이 특별하다. 인평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두 형이 풀려나면서 대신 볼모로 가야 했지만, 돌아와서는 사은사로 4차례나 청나라를 왕래하는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박물관에서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현장에 찾아가서 비문을 마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 안목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이나 벽암 이벽(1754~1785)처럼 특별한 인물도 만날 수 있다. 포천 화현면 출신인 이벽은 처남 정약전, 정약용 형제에게 천주교와 서양의 선진문물을 전해준 인물이다. ‘토정비결’로 더욱 유명한 이지함은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며 한반도의 중앙인 포천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활동을 권장하여 부유한 고을로 만들 방안을 조정에 제시한 선각자이다. 포천에는 보수의 상징인 인물도 있다. 관복을 입은 한 사람이 정면을 응시한 초상화가 조금 낯설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부릅뜬 눈이 이 시대를 꾸짖는 듯하다. 포천면 신북면에서 태어난 면암은 ‘바른 것을 지키고 옮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다 대마도로 유배되어 단식투쟁을 하다 1906년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 최면식도 아버지를 이어 의병으로 투쟁하였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최익현은 채산사에 모셔져 있고, 영정은 청성사에 모셨다. 전시유물은 현대로 이어진다. 사진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1960~70년대의 포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 ‘사통팔달’ 한반도의 중심도시를 알리는 박물관 포천역사문화관은 2015년 개관한 후 ‘봉래 양사언과 형제들’, ‘나의 보물’이라는 특별전을 열었고, 지난 2021년에는 ‘포천 옛길, 전철로 잇다’라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조선 6대로 가운데 제2대로인 경흥대로(경흥길)를 중심으로 포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렸으나 코로나19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홍보도 하지 못했다. 옛길을 주제로 한 기획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지도상으로 보면 포천은 한반도의 정중앙이에요. 포천선(전철7호선) 철도가 건설되는데 2027년에 개통될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 맞춘 기획이죠.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포천은 일찍부터 상업의 중심지였듯이 물류의 중심지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통일시대 한반도의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릉 수목원과 한탄강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은 포천의 자랑이다. 2019년에 개관한 한탄강지질공원센터는 국내 최초의 지질전문박물관이다. 천연기념물인 대교천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와 아우라지 베개용암, 그리고 화적연과 멍우리 주상절리 협곡을 함께 둘러보면 포천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포천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포천역사문화관은 작지만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9. 포천 ‘국립산림박물관’

포천 소흘의 광릉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크낙새와 장수하늘소가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령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해 늘씬한 전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초록의 숲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림박물관이다. 산림박물관을 품고 있는 광릉숲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곳으로 500년 이상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최영태) 산하 국립산림박물관은 가운데 정원이 있는 ‘ㅁ’자 모양의 건축이다. 박물관 외벽은 화강암에 백제시대 벽화 ‘산수 무늬 벽돌’을 현대적으로 그래픽 하여 음각한 벽화로 산과 나무, 물과 바위 구름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은은한 나무 향기가 풍겨온다. 1987년 4월5일에 개관한 국립산림박물관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 특별전 ‘광릉숲 속 애벌레들’이 열리고 있다. ■ 즐기고 느끼면서 숲과 나무를 배우는 곳 “우리 산림박물관의 비전이 ‘즐기고 느끼면서 배우자’입니다. 개발 콘텐츠에 정보통계기술을 접목하고 홀로그램 등의 콘텐츠 기술을 활용하여 ‘즐기는 박물관’으로 전시의 방향을 잡았지요. 입구에서 보셨나요? 해설사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두 가지 있는데, ‘산림문화’가 5월부터 12월까지, ‘산림생명’이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됩니다. 숲과 깊이 만나도록 해설사 한 분이 관람객 5명만 안내하지요. 참, 지난해에 우수박물관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정희 실장의 말처럼 ‘관람객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박물관의 정성이 전시실 곳곳에 스며있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살아있는 숲’이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가 앉아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가가서 보니 꿩, 삵, 너구리, 담비 같은 숲속 동물들의 박제도 있다. 아래에 달린 5개의 모니터에서 들꽃과 개구리와 두꺼비 등 숲의 바닥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비친다. 나무 허리에 설치된 모니터 3개에서는 나뭇잎과 꽃과 열매, 새와 나비와 곤충을 보여준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신비로운 모습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어요. 살아있는 나무가 참 굵죠? 이 느티나무는 둘레가 6m가 넘는데, 다섯 그루가 붙어 자란 연리목으로 산림박물관의 ‘상징목’이지요. 경북 안동의 수몰 지구에서 캐낸 것인데 수령이 150년, 키가 18m나 되었다고 해요” 나이테를 활용하여 세계사와 한국사 연표, 한국 산림 연표를 소개한 것도 이채롭다. 산림문화의 전당에는 박물관 건립에 큰 도움을 준 임목육종학자 현신규를 비롯한 네 분의 얼굴과 이력, 사료를 기증한 분들의 이름을 새겼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흥미롭다. 계단 왼편은 국내 수종의 판재로 만든 난간이고, 오른편 난간은 외국 수종의 판재를 전시하여 서로 비교해 보도록 했다. ■ 나무에 새긴 역사, 나무가 만든 우리 문화 제2전시실에서 나무의 모든 것을 만난다. 씨앗들이 가득한 벽에 ‘산림과 인간 생명의 근원인 씨앗’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로 만든 삽이 눈에 띈다. 팔만대장경판은 고려 승려들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온돌모형은 왜 전시했을까? 그렇다. ‘온돌’은 나무가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 문화가 궁금하다면 검색대에서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면 된다. 일제 강점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부족한 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소나무 줄기를 파내 송진까지 수탈해간 일제는 한국인의 기상을 상징하는 백두산 호랑이까지 멸종시켰다. 해방은 되었으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무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염원은 불타올랐다. 1950년대 전후부터 산림을 가꾸기 시작하여 마침내 푸른 국토를 만들어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한 녹화 성공국가로 세계가 인정한 나라가 된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산림육성기술이 있다. ■ 나무와 친해지는 법 못을 사용하지 않고 끼우고 조립하는 방법이 흥미롭다. 나무를 결합하는 방식이 참으로 다양하다. 나비장이음, 십자걸침턱짜임, 오늬쪽매...옛사람들이 가구를 만들며 개발한 기술에 붙인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널뜨기, 통메우기, 이음·맞춤, 배뭇기 등 뛰어난 전통의 가공기술은 현대 목재 가공기술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무 표면을 다듬는 대패를 비롯해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이 정겹다. 악기는 가문비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오동나무로 거문고와 가야금을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장고의 몸통은 무엇으로 만들까? 역시 오동나무다. 특유의 색과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감나무와 느티나무는 방안을 장식하는 목가구 제작에 애용되었다. 여성들이 사용한 빨랫방망이와 베틀, 물레는 물론 남성들이 사용한 지게와 쟁기 같은 기구도 있다. 나무로 만든 물건 중에서 가장 고급 기술이 필요한 것은 역시 한옥이 아닐까. 한옥 모형은 한옥의 구조와 제작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천연색 옷감이 놓인 공간이 눈길을 끈다. “자연은 온갖 빛깔을 품고 있습니다. 식물의 열매나 잎, 껍질과 뿌리에서 자연염료를 추출하여 옷을 염색했지요. 푸른빛을 내는 쪽을 비롯해 염료로 쓰이는 다양한 재료와 염색된 천을 전시한 것입니다. 옻나무와 황칠나무는 최고급의 천연도료였어요. 옻칠은 도막이 단단하고 광택이 뛰어나 애용되었고, 황칠나무는 금색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해전파 등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해요” 새끼로 꼬아 만든 멍석 위에 나무 조각들이 놓여 있다. 목조기술 체험코너 ‘손과 마음으로 만나는 목재’다. “한옥을 짓거나 전통 목가구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목재 결구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음, 맞춤, 촉매 등의 전통방법으로 목재를 짜 맞추다 보면 옛 장인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정말 그렇다. 나무 조각을 만지며 놀다 보면 자연스레 나무도 저만의 특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람도 그렇다. 나무들이 서로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듯이 사람들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풀이나 나무처럼 자신만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사람이 멋지다. ■ 우리 500년 숲에서 놀자 제3전시실 다면영상관은 산림의 중요성과 생물보전의 중요성을 영상물로 알리는 공간인데, 주제가 ‘500년 숲에서 놀자’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놀면서 즐겁게 숲과 나무와 친해지는 곳이다. 제4전시실 산림생명관은 우리들의 무딘 감각과 생각을 깨우는 공간이다. ‘인간과 식물의 진화’, ‘생태숲 디오라마’, ‘인간과 식물’, ‘인간과 곤충’, ‘인간과 버섯’, ‘위협받는 지구’, ‘국제협력을 통한 다양한 위협에 대한 방지 노력’, ‘광릉숲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으로 급격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세계가 처한 엄혹한 현실을 만난다. 제5전시실의 주제는 ‘한국의 자연’이다. 광릉숲의 현재 모습을 디오라마와 상호작용식 검색시스템을 통해 보여주고, 광릉숲의 모습을 3D영상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광릉숲 멸종위기야생동물 증강현실로 만나요!’는 흥미 만점의 프로그램이다. 3m 높이의 잎이 풍성한 나무 두 그루와 이끼 낀 바위를 배경으로 한국호랑이와 노란목도리담비와 크낙새를 만날 수 있다. 이정희 실장이 스마트폰을 지정 마크에 갖다 대자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호랑이가 바위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하품하고. 담비가 바위 앞을 달리고, 크낙새는 부리로 나무를 두들기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의 산림문화자산이 얼마나 풍성한지 몰라요. 관람객들에게 산림문화자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시물과 연관된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숲은 역시 걸어야 제맛이다. 국립수목원은 처음 수목원을 처음 찾은 사람을 위한 ‘느티나무· 박물관길’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길을 개발하여 거리와 시간, 걸음 수, 칼로리 소모 정보까지 제공해주고 있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았다면 이제 숲의 매력에 빠질 차례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8. 용인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은 “사람이 하늘”임을 선포한 평등과 자주의 정신이다.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에서 패배했으나 그 정신은 25년이 지난 1919년 3·1운동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이때 꽃 피운 자주정신은 독립투쟁으로 건국운동으로 진화했고, 민주화운동으로 열매를 맺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인의 위대한 역사를 미술작품으로 증언하는 특별한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 ■미술작품과 역사가 만나다 “19세기, 인간의 존엄성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첫 싹이 한반도에 솟아났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면서 이번 근현대사 특별전을 개최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듯이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용인특례시 강남동로 140번길 1-6에 자리 잡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관장 정정숙)’ 입구에 새겨진 글이다. 2019년 6월에 개관한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우리 역사의 현장을 미술작품으로 증언한다. 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은 ‘한반도 평화-거대한 움직임’이라는 작품이다. 두 분 사이에 있는 ‘남겨진 기억-3’(신상철 작)이라는 태극 문양이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1층 상설전시장에서 한국의 근대를 연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3·1만세운동, 5·18민주화운동, 한반도평화와 관련된 미술작품들과 만난다.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초상(박세라 작),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대한 남아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바닥 도장 그림(상하 작)도 있다.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레오다브 작)과 오광선 장군의 얼굴을 액션페인팅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은정 작)도 인상적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땀과 피가 스민 태극기가 전시된 공간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저력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을 들려주듯 북을 맨 사나이가 왼손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엔 북채를 잡고 달려가고 있다. 전정호의 목판화 ‘북춤’이다. 민주화 투쟁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전달력이 강한 판화가 유행했다. 홍성담, 전정호, 이상호, 안한수 화백의 작품을 통해 군부가 짓밟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던 어두운 시대와 마주한다. 권총에 피 묻은 태극기가 시선을 빼앗는다. 배경이 되는 거리는 광주 금남로일 것이다. ‘5월 18일 민주주의를 쏘았다’는 글귀가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 태극기에 싸인 관이 널려 있는 흑백사진은 80년 5월 광주로 데려가 준다. 상설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미술관을 설립한 김성인 이사장이 30여 년간 수집하여 소장해 온 작품들과 일부 화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김성인 이사장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보라 바탕에 웅크린 태아 형상은 태동하는 시민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역사를 ‘담다’, 그림을 ‘담다’, 행복을 ‘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명하는 작품을 매개로 창작자와 관람객이 어울려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미술관이지요.” 담다는 역사학을 전공한 정 관장과 그림을 전공한 이사장 김성인 작가의 역사의식이 빗어낸 특별한 미술관이다. 두 사람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가 지역사회를 넘어서 전국에서 역사를 제일 잘 알려주는 미술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역사와 관련된 그림도 보고 그 자료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담다 미술관입니다. 개관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작품 구매부터 보관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으로 동학부터 촛불혁명까지 상설전시실에서 5개의 주제로 작품을 만난다. ‘태극기변천사’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의 도안을 만들어간 것을 시초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살필 수 있다. ‘태동, 동학 1860,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동학의 시작과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보다 1년 먼저 노비를 해방했다. 수운은 두 여종 중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다른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아 ‘사람은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는 동학 정신을 실천한다. ‘분출, 동학농민혁명, 1894’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으로 시민의식을 분출하는 당시 상황을 담은 홍성담과 전정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함성1, 3·1만세운동, 1919’는 3·1운동을 이끌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과 독립운동과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손의식 작가의 작품으로 만난다. 이상하 작가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을 빛나는 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줄기차게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전달한다. ‘함성2,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라도에서 독재에 항거해 일어났던 민주화항쟁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오윤, 홍성담 작가의 판화 작품은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강력하다. ‘미래, 평화! 또 다른 시작!’은 손의식 작가의 ‘하나로- 뜨거운 포옹’과 안한수 작가의 ‘무너진 철조망’이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소망을 담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시민을 대상으로 북콘서트,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한양대 윤석산 명예교수, 경희대 임형진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선 인문학 강좌 ‘동학이야기’는 담다의 지향을 보여준다. 담다에서 주관하는 독서모임 ‘용득수기’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쓴 윤영수 방송작가를 초청해 ‘21세기와 이순신의 창조적 리더십’을 주제로 한 인문학 특강을 열고, 북한문화체험 ‘꼬리떡 만들기’를 진행하여 탈북민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울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역사와 그림과 행복을 담는 열린 미술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에도 담다는 부지런히 달렸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그림, 자유와 평화를 만나다’ 특별 전시회를 열어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외침과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봄에는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특별기획전-용인, 자유와 평화를 담다’를 열었는데, 용인지역 작가를 포함해 1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정희경 작가의 ‘속삭이는 빛’ 연작은 화면에 무수히 점을 찍는 행위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서양화가 손정순 작가 초대전 ‘자연의 향연전’과 장애인 예술가가 들려주는 음악과 퍼포먼스 ‘나의 빛 나의 음악’은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박금만 여순항쟁 특별전’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처음으로 여는 여순항쟁 역사화전으로 감춰졌던 현대사의 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기획이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지역예술인들과 연대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21년 가을, 용인에 거주하거나 용인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220여 명의 전문 예술인들이 ‘용인문화예술연대’를 출범했다. 사무총장을 맡은 정정숙 관장이 비전을 들려준다. “용인문화예술연대는 음악, 미술, 도예, 풍물, 국악, 서예 등 문화예술 전 분야로 폭을 넓혔지요. 용인예술문화연대가 주관해서 매년 1~2달에 걸친 문화예술축제를 만들 계획입니다. 용인문화예술축제를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 영국 에딘버러 축제와 같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키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2년 용인 꿈의학교의 거점활동공간으로 선정된 근현대미술관 담다는 학교는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담다는 미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7.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언제쯤 자율주행 자동차가 거리를 달릴까? 드론으로 음식을 배달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이런 게 궁금한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볼 것이다. 아마도 만족스런 대답을 듣긴 어려울 것이다. 보다 실감 나고 분명하게 대답을 듣고 싶다면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92(원천동 111)에 위치한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사공호상)에 있는 지도박물관을 찾아보라.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우리나라 지도를 제작하여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 네이버, 다음, T맵, 네비게이션 등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도들은 이곳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한 지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먼 옛날에는 발로 걸어 높은 산에 올라 산줄기와 강줄기의 모습을 살피고 그 안에 있는 마을들을 그렸다. 천문관측 기술이 발전한 조선 시대가 되면 별을 보고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지도제작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하지만,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먼저, 현 위치를 선정한 다음, 비행기로 GPS 항공사진을 촬영하여 사진과 실제 지상점을 일치시켜 좌표 얻어낸다. 이어 디지털 사진을 보고 지형지물을 선과 기호로 그려 1차로 완성된 지도를 가지고 현지에 가서 직접 대조해 보고 지리조사 내용 등을 입력하여 디지털지도를 최종 완성한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마주하다 원통형의 박물관 중앙홀에 들어서면 눈에 익은 지도가 걸려 있다.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이 대형 지도는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다. 살아 꿈틀대는 산맥과 강, 고을과 고을을 잇는 상세한 도로가 경탄을 자아낸다. “사실 대동여지도는 1장의 지도가 아닙니다. 22책의 책자로 이루어져 접었다 펴는 ‘절첩식’ 지도인데, 모두 펼치면 우리나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6.7m, 가로 4m이며 축척은 대략 16만분의 1이 됩니다. 선생님은 ‘지도유설’에서 지도를 ‘위기가 발생할 때 적을 막고, 강폭한 무리를 제거하는 데 활용하며, 평상시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데 활용하는 것’이라 하셨지요. 1402년 태종 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고지도인데 세계 속의 조선의 위상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반면 1861년에 만들어진 이 ‘대동여지도’는 한반도 전역을 자세히 그린 과학적인 지도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고급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한상호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니 지도가 담고 있는 것이 지리 정보만이 아님을 분명히 알겠다. 역사관으로 들어선다. 우리나라 전도와 도별도, 도성도, 군현지도를 비롯해 서양과 일본의 고지도가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한 학예사가 전주성을 세밀히 그린 지로를 가리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선대원군은 우리나라 지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분입니다. 한동안 김정호 선생 부녀를 처형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일제가 1934년에 펴낸 ‘조선어독본’의 ‘김정호전’에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대원군은 국가의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대동여지도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두었다가 결국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판각과 지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고, 지도제작을 도운 인물들이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원군은 정밀한 지도를 제작했지요. 이것이 1872년에 대원군의 명을 받아 전국 459곳의 군현에서 제작한 지도들입니다.” ■지도에 담긴 나라사랑 현대관에서 만난 지구본의 사연도 흥미롭다. 160점의 지구본 중에서 학예사가 가리키는 지구본의 색깔이 좀 특이하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유심히 살펴보니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와 호주와 영국이 붉게 칠해져 있다. “혹 영국의 식민지가 아닌가요.” “맞습니다. 지구의 곳곳에 영국의 식민지가 있었죠. 그래서 ‘태양이 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구본에서도 제작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윤경철 박사가 2004년에 지도박물관에 기증한 것인데, 만인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기증문화의 미덕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대항해시대에 서양 사람들이 동해를 ‘SEA OF KOREA’로 표기했고, 울릉도를 ‘판링도’, 독도를 ‘천산도’로 불렀다. 일본사람들은 동해를 ‘조선해’로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표기하였다. ‘동해’와 동해에 위치한 ‘독도’를 우리 영토로 그린 서양의 고지도가 여럿 전시되어 있다. 또렷하게 ‘조선해’라 쓰인 일본의 고지도를 보며 국제사회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 강변하는 이웃에 둔 우리의 처지와 자세를 생각해본다. 현대관의 중심 주제가 ‘독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광복 이후 제작된 독도 지형도에서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한 지도제작자들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다. 독도에 20개의 이름을 가진 바위섬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작은 바위섬에도 이름을 붙인 까닭이 무엇일까. 지도는 이름, 소유권자를 분명히 인식하게 해 주는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다니는 지도를 어떻게 만들까 지도를 제작하는 기계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거리와 위치를 측량하는 것을 ‘각측량기’라 하고, 높이를 측량하는 것을 ‘레벨’이라 한다. ‘3D 지도’는 무엇일까. 2차원의 평면 지도에 높이와 속성, 색깔 등 다양한 정보를 결합하여 제작한 3D 지도는 현재 대도시 30개 지역이 구축되어 있다. 디지털지도는 ‘오토캐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야 볼 수 있으므로 접근이 어렵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PDF 형태’의 지도로 만든 것이 ‘온맵’이다. 이런 지도가 구축되면 자동주행차와 드론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올 것이다. 지도로 통일을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신선하다. 2007년부터 통일을 대비하여 북한 전지역을 1/50,000 축척으로 계속 제작하고 있다. 오늘의 북한을 볼 수 있는 지도책을 펼치며 통일의 꿈을 꾸어본다. “아직도 후진국들은 자기 나라의 지도가 없어 국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해마다 우리 국토 전역을 비행기로 사진 촬영하고 그 사진에 위도, 경도, 높이, 지명 등 다양한 정보를 입력하여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든 지도를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나 네비게이션 회사들이 구입 및 편집하여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치지형도, 3차원지도, 온맵은 무엇일까. 수치지형도는 컴퓨터(오토캐드)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지도를 말한다. 3차원지도는 영화처럼 도시 전체를 입체로 볼 수 있는 지도이며, 온맵은 쉽게 볼 수 없는 수치지형도를 PDF파일로 만들어 쉽게 보는 지도다. 이렇게 만든 여러 가지 지도를 편집하여 토양의 성질을 표시한 지질도, 관광 명소를 표시한 관광지도, 비행기, 선박이 다니는 길을 표시한 항공지도, 해양지도를 만들고 있다. 정밀도로 지도는 자율주행차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도로와 주변시설의 정보를 3차원으로 표현한 첨단지도다. 2004년 11월에 개관한 지도박물관은 1종 전문박물관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도 그리기 대회를 열고 있는데, 전시된 그림에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창의성을 엿보는 즐거움도 크다. 박물관은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에게는 지리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지도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어린이 지도여행’을 클릭하면 금방 지도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도에 관심을 가진 성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정보가 들어있다. 야외 전시장을 찾아 김정호 선생 동상 앞에 선다. 후손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심어준 위대한 선각자 앞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한다. 동상 옆에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을 표시한 특별한 시설이 있다. 지구상의 위치는 경도와 위도로 나타내는데 대한민국이 경위도 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측량한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이다.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은 우리가 보는 지도를 그릴 때 늘 기준이 되는 점이다. 평면 위치의 기준을 측정하는 삼각점과 높이를 측정하는 수준점도 확인할 수 있다. 지도박물관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운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6.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관'

우크라이나 전쟁이 웅변하듯 세상은 평화를 바라지만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은 달리 찾을 수 없다.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스미스 평화관이 있는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오산 죽미령 전투를 기억하는 까닭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의 결의에 따라 선발대로 파병된 미국 제24사단 소속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540명이 북한군과 6시간 15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 첫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반격에 나설 수 있게 한 터닝포인트였다. 한국전쟁 때 벌어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죽미령 전투를 특별히 기억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2012년에 죽미령 전투의 중요성을 인식한 오산시(당시 시장 곽상욱)에서 미국에 흩어져 있던 참전 용사들을 찾아 나선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노병들을 찾아내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며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참전 용사들도 자신의 젊음을 바친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기념물을 기꺼이 기증한다. 이러한 노력과 정성으로 2013년 4월, 마침내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문을 연다. 오산시의 혜안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일본에서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던 스미스 부대는 한시라도 빨리 한국 전선에 기동성 있게 투입하여 북한국의 남침을 조기에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대대급으로 꾸려졌다. 이 규모는 긴박한 상황에서 공중 및 해상 수송을 통해 가장 빨리 파견될 수 있는 미 지상군의 최대 규모였다. 1955년 7월 5일 죽미령에 건립된 유엔군 초전기념비는 이 전투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미합중국군대와 공산침략군 간의 최초의 전투를 개시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1982년에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를 건립하는데 국가보훈처로부터 현충시설로 지정된다. 2013년 4월에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개관하고, 5월에 국가보훈처가 현충시설로 지정하며 8월에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한다. 2020년 7월 5일에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과 스미스 평화관을 개장하면서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죽미령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첫 전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첨단 기술을 응용하여 실감 나게 구성한 전시실을 관람하고, 공원 주변에 설치한 기념물을 둘러보면 자연스럽게 ‘감사’와 ‘평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첫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 초전기념관 고아라 국장의 안내로 평화공원부터 둘러본다. 차를 타고 밖에서 볼 때와 달리 공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구성도 알차다. ‘워터커튼’이라는 이름의 철판으로 제작한 구조물 앞에 선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여기 영문으로 촘촘하게 새겨진 것은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540명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의 이름입니다. 전투가 벌어진 날에 비가 내렸다고 해요.” 전투가 벌어진 날 비가 내린 사실이 기념물에 반영될 정도로 전쟁의 기억은 참혹하다. 벽에 구멍을 뚫어 네 명의 군인이 걸어가고 있는 형상을 한 조각은 ‘거울연못’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용사들의 모습이 물에 그림자가 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시계처럼 보이는 둥근 조각의 중앙에 있는 꽃은 꽃말이 ‘감사’인 다알리아인데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더글라스 C-54 조형케이트’는 스미스 부대가 한국으로 올 때 타고 온 수송기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공원 가장 안쪽에 아주 중요한 기념물이 서 있다. 앞에 소개한 경기도 지정 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구 유엔군 초전기념비다. “스미스 부대원들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인데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1964년 기념비에 부착된 동판이 사라졌다고 해요. 고가의 청동을 누군가 떼어 간 것이죠. 그런데 1977년 미국 하와이의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한국인 지갑종 씨가 발견하고 입수합니다. 이 분이 기념관에 기증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죠.” 유엔 참전국 16개 나라의 국기를 단 평화놀이터는 편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어울려 노닐 수 있도록 넓은 부지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화성과 수원을 바라볼 수 있는 죽미령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스미스 중령의 동상도 볼 수 있다. ■유엔군 초전 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다 2013년 4월에 개관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에는 150건 249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의 주제는 6·25전쟁의 발발 과정과 UN 평화유지군의 창설, 참전과정부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죽미령전투 진행과정을 소상히 알 수 있도록 사진과 영상, 문서 및 스미스 부대원들의 기증자료로 구성된 기록 보관소이다. 죽미령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주는 영상물이 단박에 과거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6시간 15분의 죽미령 전투의 진행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한 영상을 보니 비로소 스미스 부대가 왜 이 지역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는지, 북한군의 진격 상황과 전투가 벌어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커다란 흑백사진 한 장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전투 사흘 전인 7월 2일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뒤에 있는 병사들의 얼굴까지 식별할 수 있으니 참 놀랍죠?” 엄숙한 추모의 공간이 이어진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그들을 기억합니다’라 새겨진 글귀 아래에 가득한 동판 하나에는 이름과 사진과 소속과 계급, 전사 여부를 알려주는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540명의 부대원 중에서 전사가 56명, 포로가 89명이 발생했으니 그날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된다. “기념관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참전 용사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75밀리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발사기, M1 소총, 4.2인치 박격포 같은 무기와 참전 당시 입었던 군복, 군화, 인식표, 철모, 대대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개막식에 초대된 스미스 부대원들의 표정이 담긴 사진이다. 고령이라 대부분 휠체어를 탄 모습이지만, 감사를 잊지 않고 자신들을 초대해 준 한국인들의 태도에 감동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스미스 평화관에서 전쟁을 실감 나게 체험해 볼 수가 있다. C-54 더글라스(VR) 1950년 7월 1일 일본 후쿠오카에 소재한 이타즈케 공항을 출발하여 부산 수영 비행장으로 떠나는 과정을 1인칭 시점의 VR로 체험할 수 있다. 부산의 수영 비행장에서 대전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동하며 아직은 평화로운 부산에서 대전간 열차 안에서 당시 우리나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스미스 부대가 7월 1일 아침, 이타즈케 공군기지를 떠나며 받은 임무는 ‘경부국도를 따라 북진하여 가능한 한 북쪽에서 적의 침공을 최대한 저지하라’는 것이었다. 한국 전선에 가장 먼저 파병된 스미스 부대는 ‘서부지역 지연 작전’에 최초로 투입된 부대로 기록되었다. LED 조명으로 빗발치는 총격 장면을 연출하여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체험 내용을 마무리 짓는 4면 영상이다. 이제는 90대가 된 스미스 부대원인 나. 나의 참전은 무엇을 남겼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죽미령에서 울려 퍼지는 평화의 메시지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죽미령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추모와 감사의 공간이며 전쟁 관련 소장품과 역사 연구를 통하여 선양사업을 추진하는 연구기관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의 발전과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교육공간이며 다음 세대에게 희생의 의미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죽미령 평화공원을 찾아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되찾고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 안성 ‘한국조리박물관’

가까운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은 삶에서 빠트릴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우리 시대의 음식은 영양가보다 “맛”이 가장 강력한 선택의 조건이 되었다. 양식은 맛과 분위기를 매우 중시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양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서양 요리 100년의 역사를 만나는 시간 여행 안성시 일죽면에 자리한 한국조리박물관에도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박물관 1관 입구 벽면에 새겨진 “한국 서양조리 100년의 역사를 만나는 시간여행”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조리박물관(관장 최수근)은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을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관한 1종의 조리전문박물관이다. 자국의 음식문화를 일찍부터 세계에 알려온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조리박물관을 먼저 세웠다니 놀랍다. 이 엄청난 일을 실현한 설립자의 생각과 철학은 무엇일까. 조리박물관 1관과 2관, 연회장에 세미나실까지 갖춘 조리박물관 건물 앞 벚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 최수근 관장과 마주 앉았다. 한국인 1호로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한 최수근 관장은 유명 호텔을 거쳐 식품학 박사로 영남대와 경희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학계와 업계에 ‘소스의 대가’로 알려진 최 관장은 두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들려주었다. “1983년 조리에 대한 열망을 안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요.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전 세계 조리인들에게 영감을 준 조르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의 이름을 건 에스코피에박물관을 찾았는데, 그 분의 업적과 삶을 잘 보존해 놓은 박물관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나도 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조리인에게 힘이 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84년부터 수집을 시작했지요. 현장을 거쳐 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30여 년 동안 수집한 소장품이 1,200여 점이 되었으나 실현은 요원하더군요. 단지 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던 2015년 어느 봄날, 문화와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던 ㈜HK 이향천 대표를 만났습니다. 박물관을 설립하려는 나의 꿈을 이야기했더니 놀랍게도 이 대표가 크게 반겨주시더군요. 이 대표는 저의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관한 한국조리박물관 박물관 설립이 구체화 되어가자 조리 관련 전시품들이 더욱 필요해졌다. 이때 국내 조리 분야의 원로와 명장들이 기꺼이 최 관장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박물관 설립에 대한 자문과 더불어 귀중한 자료를 기증해 주고 고증해 주었다. 2016년에 자문위원회를 조직하여 박물관 설립은 박차를 가해 2019년에 박물관 설립계획 승인을 거쳐 2020년 10월 사립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한국조리박물관은 한국 조리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선배 조리사들의 업적을 충실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수많은 자료 속에는 한 개인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지요. 한평생을 조리분야에 종사하며 조리를 발전시킨 선배 조리인들의 땀과 발자취가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 발자취는 많은 후배 조리인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한국조리박물관이 지나간 100년의 역사는 물론 다가올 100년, 그 이후의 시간까지 써 내려가는 세계 3대 조리박물관으로 도약하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조리에 꿈을 가진 청소년에게 비전을 주고, 조리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싶습니다. 물론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흥미로운 요리의 세계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박물관 전시실이 더욱 궁금해진다. 자리를 옮겨 박물관에 들어선다. 박물관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으니 해설을 요청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날은 특별히 배정민 학예사가 시간을 내주었다. ■여덟 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박물관 박물관은 국내 서양 조리역사의 발전사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시기별, 주제별, 인물별로 전시관을 구성하고 있다. 흑백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대한제국 시기 독일인 여성 손탁이 경영한 손탁호텔이다. 조리역사와 호텔의 역사는 맞물려 있다. 그 사진 앞에는 우아한 주전자와 고급 컵, 티스푼이 놓여 있다. 그 시대를 증거하는 유물들이다. 아주 특별한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탄피 깍지’는 한국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리에 특별한 관심이나 조예가 없어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동선을 재미있게 구성하였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 생각에 잠긴다. “이 맛있는 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조리사가 일하는 “주방 너머의 세계”는 무척 흥미로운 공간이다. 조리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레시피를 유물이다. 셰프가 즐겨 본 책, 사용한 칼, 국제대회에서 받은 금메달과 은메달, 청와대에 출장 갔을 때 들고 간 칼세트도 볼 수 있다. 이름만 대면 한국인 모두가 알 수 있는 대기업 회장의 메뉴판은 한국 조리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층 전시실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식음료 발전사에서 커피와 와인의 발달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커피의 원재료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볼 수도 있다. 와인관은 호텔에서 종사했던 소믈리에들이 기증한 유물로 가득하다. 붉은색 의상이 강렬한 빛을 발하는데 한국소믈리에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의 유물이란다. 한 병 가격이 1천만 원이나 되는 와인도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공간이에요. 술은 몰래 마셔야 더욱 맛있기 때문일까요? 하하, 고1들이 많이 오는데, 제발 술은 2년 기다렸다 성인이 되면 마시라고 권하죠.” 대통령은 만찬 때 어떤 음식을 먹을까. 그런 궁금함을 풀어주는 공간도 있다. “이것은 유명 셰프들의 비망록입니다. 생존했을 때는 동료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만의 비밀기록이지만 이제는 누구나 볼 수가 있습니다. 엄청난 량의 레시피 노트가 우리 박물관의 자랑입니다. 메뉴판은 작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요리는 먹으면 사라지지만 메뉴판은 남아 있거든요.” 조리도구는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프랑스에서 개발한 압력밥솥은 조리도구의 진화를 웅변해주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엄청난 크기의 채칼도 있다. 주름이 가득한 조리사의 모자가 있다. 주름의 숫자가 계란을 사용할 수 있는 개수를 나타낸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역시 가장 주목되는 곳은 한국조리박물관의 탄생의 계기가 된 프랑스의 위대한 조리사 조르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오븐을 재현한 공간이다. 배 학예사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개관했을 때 프랑스에서 우리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냐며 항의를 들었다고 해요. 그러나 사실 이곳이 처음이거든요.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와 지금은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으니 최 관장님의 높은 안목에 경탄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요리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인물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배 학예사가 여러 사람과 찍은 흑백사진을 가리킨다. “에스코피에란 분은 키가 매우 아담한 분이셨어요.” 유기로 유명한 안성은 대장간이 유명하다. 한국의 조리도구는 대장간에서 만들어졌다. 숭례문 복원할 때 못을 만든 장인이 기증한 칼은 세계적으로 한류를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에서 사용했던 칼이다. ■조리계의 원로와 명인이 힘을 더하여 더욱 빛나는 명품박물관 음식의 재료와 어우러져 맛, 향기, 영양, 색감을 더하고 식욕을 촉진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향신료와 소스를 이해하는 것은 조리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각종 향신료의 기능과 형태를 관찰하며, 동서양 음식의 풍미를 더 해주는 소스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의 최고 자랑은 ‘자문위원회’이다. 한국 조리분야를 대표하는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제과분야 원로 및 명장으로 구성된 46인의 자문위원은 박물관 설립에 뜻을 같이하고 소장품 기증은 물론 박물관 운영 전반과 향후 박물관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문과 정책제안을 해주고 있다. 한국조리박물관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관한 조리박물관답게 흥미로운 유물과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박물관이다. 앞으로 요리를 희망하는 학생이나 현재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찾아봐야 할 명품박물관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 김홍도미술관

안산이 기른 불세출의 화가, 단원 김홍도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는 한국인 누구나가 사랑하는 화가이다. 그렇다면 단원 김홍도를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그렇다. 단원구가 있는 안산시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가 안산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예닐곱 살의 김홍도가 안산에 30여 년을 살았던 표암 강세황(1713~1791)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사실이 <표암유고>에 실려 있다. 표암은 이렇게 증언한다. “단원은 어렸을 적부터 나의 집에 다녔다.”,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에 드나들었다.” ■안산, 단원 김홍도를 키운 도시 문화관광부는 1991년도에 안산시를 '단원의 도시'라 명명한다. 안산시는 단원의 도시이자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9년부터 매년 10월이면 ‘단원미술제’를 열고 있다. 2013년 4월, 노적봉 기슭에 단원미술관을 개관한 이후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예술정신과 작품을 유산으로 지역 미술 활성화에 노력해 왔다. 2016년에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한 단원미술관은 지난 2022년 3월에 ‘김홍도미술관’으로 개명하였다. 안산문화재단(대표 김미화)은 단원미술관을 김홍도미술관으로 바꾼 까닭과 장래의 계획을 이렇게 밝힌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가 소유하고 있는 고미술 23점과 고 장성순, 고 성백주 화백의 기증품을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단원 김홍도에 관한 연구기능과 자료 저장 기능을 강화하려 한다. 지역 작가의 동시대 미술을 재조명하는 사업과 안산에서 활동했던 옛 예인들과 김홍도가 교류했던 우리 미술관이 위치한 노적봉에 대한 공간 브랜딩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들이 김홍도 관련 콘텐츠와 현대미술을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전시기획을 통해 미술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단원을 김홍도로 바꾼 뜻은 다음 설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소년 김홍도가 성포리 너머 서호를 바라보고 노적봉을 찾았던 안산의 예인들을 마주하면서 세상을 담기 시작했듯, 김홍도미술관은 소년 김홍도의 이러한 자세와 안산 시민들을 스승으로 세상을 담고 그리겠다.” 김홍도미술관 1관과 2관은 전시공간이고, 3관이 ‘단원콘텐츠관’이며 4관은 ‘상상미술공장’이다. 현재 ‘호랑이는 살아있다’(1관)와 ‘동서남북 호랑이 수호전’(2관)과 ‘단원과 표암’(3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단원콘텐츠관은 김홍도미술관이 소장한 단원의 그림을 전시하고 단원의 예술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정성을 기울인 공간이다. 첨단 기기를 설치하여 단원의 작품과 안산에 살았던 예인들의 작품을 화면으로 만날 수 있도록 꾸민 것이 돋보인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은 심사정, 최북, 허필 등과 교유관계를 이어가며 조선 후기 화단을 이끌었다. 안산은 성호 이익이 은거하며 안정복, 권철신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를 기른 학문의 고장이기도 하다. ■김홍도미술관에서 만나는 단원의 마음 김홍도의 그림은 웃음과 위안을 선사한다. 그가 남긴 그림은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풍경과 문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원의 그림이 당대는 물론 2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단원콘텐츠관에서 귀한 그림 한 점을 만난다. “최근에 사들인 진본인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붙여두어 그림을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원 김홍도와 표암 강세황과의 사제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게 이어졌다. 강세황처럼 제자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긴 스승은 세계 회화사에서도 찾기 어렵다. 강세황을 스승으로 만난 것은 김홍도에게 큰 복이었다. 김홍도는 국왕 정조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500년 조선역사에서 김홍도처럼 왕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화가도 달리 찾기 어렵다. 표암은 단원에게 삶의 여유와 해학까지 물려줬다. 2021년 안산시 소장 진본전 ‘표암과 단원’은 40년 세월을 스승과 제자, 동료이자 지기(知己)로 함께 하며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두 예인을 조명한 것이다. 단원콘텐츠관에서 만나는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김상미 학예사가 그림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을 들려준다. “과거 시험장 풍경인데 시간적 배경은 새벽입니다. 과거 시험장이 ‘공원’이고, ‘춘효’는 봄날 새벽이란 뜻이지요. 전국에서 모여든 거자(擧子:수험생)들이 전날 과거장에 입장하여 우산 밑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과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입니다.” 성호 이익과 그의 제자들은 과거제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제도였기에 개혁 군주인 정조도 고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안산 학풍의 영향을 받은 김홍도는 이러한 내용을 풍속화에 아주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우산의 행렬을 서양의 원근법을 이용하여 표현한 것도 흥미롭지만 수험생과 그 일행들의 행동과 다양한 표정이 재미있다. 그림 상단을 보면 표암 강세황이 작품에 대한 화평을 적은 종이가 덧붙여 있다. 이런 형식의 김홍도 풍속화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도 있는데, 한 병풍에서 분리된 작품들로 보고 있다. 단원이 30대 초반에 제작한 ‘공원춘효도’는 정조시대 과거장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는 유일하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콘텐츠관에서 만난 문화예술교육사 정미영 선생은 단원 김홍도를 너무나 좋아하여 문화관광해설사까지 시작한 단원 예찬론자이다. 단원을 사랑하는 멋진 예술인과 만나 단원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안산에서 만난 호랑이 소나무 아래 눈에 불을 켠 듯한 커다란 호랑이를 기억하는가? 단원의 대표작인 ‘송호도’는 스승 표암 강세황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스승은 소나무를 그리고 제자는 호랑이를 그렸다. 올해 2022년 임인년은 호랑이해다. 김홍도미술관에서도 지난 3월 25일부터 ‘2022년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호랑이는 살아있다”전을 진행하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이번 특별전의 의도를 들어본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 신화’에 등 장하기도 하는 호랑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풍습과 문화, 정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원의 대표작인 ‘송호도’를 떠올리시면 우리 미술관에 호랑이를 주제로 한 그림전이 단원과 잘 어울리는 주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5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서 황종하, 김기창, 서정목, 유삼규, 오윤, 이은실, 이영주, 한주예슬, 제시카 세갈, 필립 워널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회화만이 아니라 영상과 설치미술까지 구성된 복합전시이다. 김기창, 오윤의 작품에 눈길이 쏠린다. 두 발로 서서 더덩실 춤을 추는 요절 작가 오윤의 호랑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운보 김기창의 부리부리한 호랑이가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웃음과 해학으로 고난을 이겨낸 한국인의 여유로운 품성 때문이 아닐까. 2관에서는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김규리의 “동서남북 수호전”이 열리고 있다. 금요일 4시, 작가가 미술관을 찾아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를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사연부터 자신이 주목한 주제와 표현 기법까지 아주 자세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림 못지않게 이야기 솜씨도 빼어나다. “2008년에 개봉한 ‘미인도’라는 영화 보셨어요? 제가 혜원 신윤복 역을 맡았는데, 대역이 있었지만 주연 배우로써 그림의 기초도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붓을 잡게 된 것이죠.” 혜원 신윤복은 단원과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로 단원과 짝을 이루는 화원이 아닌가. 5월 8일까지 열리는 “동서남북 호랑이 수호전”에 등장하는 김규리의 호랑이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매력을 내뿜는다. 김홍도미술관을 품고 있는 노적봉은 눈부신 꽃들과 연둣빛 새잎으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표암과 단원의 나이는 무려 32세나 차이가 났지만 서로 지음(知音)이 되었다. 노적봉 산책로는 서로에게 기쁨과 보람이 되어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귐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우정의 길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 수원광교박물관

광교신도시에 자리 잡은 수원광교박물관은 매화꽃 향기가 가득하다. 세상은 뒤숭숭하지만, 시냇가로 난 산책로를 따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평화롭다.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젊은 여성들과 수령 400년이나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몸을 풀고 있는 머리 희끗희끗한 남성의 몸짓이 여유롭다. 자연의 멋을 살린 13만㎡의 광교역사공원 안에 자리 잡은 수원광교박물관에도 봄기운이 출렁인다. 앞으로 창룡대로가, 뒤로 영도고속도로가, 옆으로 광교로가 나 있으니 수원시민이라면 대부분 수원광교박물관을 한두 번쯤 보았을 것이다. ■추억과 희망이 공존하는 마을, 광교 광교신도시를 개발하던 경기도시공사가 2011년부터 사업비 178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085㎡ 규모의 박물관을 건립하고 수원시에 기부하여 개관한 것이 2014년이다. 수원광교박물관 1층에는 광교역사문화실을 비롯하여 어린이체험실, 다목적실이 있고, 2층은 기증유물관으로 소강실과 사운실이 배치됐으며, 지하 1층에는 수장고와 보존처리실이 있다. 광교역사문화실은 광교신도시의 옛과 오늘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유물이 있다. 양반가의 안주인이 입었을 푸른 저고리에 붉은 치마 곧 ‘녹의홍상’이다. 국화문양이 정교하게 직조된 치마에서 양반사대부가의 격조가 느껴진다. 유중현 학예사에게 유물에 얽힌 사연을 청한다. “2008년에 영통구 이의동 현재 광교중학교 부근에 있던 안동김씨 선산에서 이장 작업을 하던 중에 의상이 출토되었는데 무려 32점이 수습되었습니다. 수원지역에서 복식유물이 처음으로 출토된 것이지요. 이처럼 광교신도시의 중심인 이의동은 안동 김씨라는 유력 가문이 500여 년 동안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박물관에서 자주 만나는 고문서나 도자기보다 화려한 의상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광교신도시는 영통구 이의동을 중심으로 하동과 용인시 상현동 일부가 속하는 광교산 남쪽 자락에 해당합니다. 이곳에 수원지역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여러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옛사람들의 숨결과 정신이 담긴 정취 있는 마을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어릴 적 풍경은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추억 속의 광교와 나날이 변모해가는 신도시 광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한결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곳에도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야외의 고인돌과 함께 광교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삼국과 고려와 조선의 유물을 살피다가 사연 많은 한 점의 유물과 마주친다. 태종대에 영의정을 지낸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1375~1418) 선생의 묘 앞에서 세웠던 표지석이다. 상왕 태종은 외척들이 아들 세종의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사돈인 심온을 제건햇던 것이다. 세종시대의 안정과 찬란한 업적은 아버지 태종의 무자비한 숙청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나라의 안정을 위해 희생된 심온은 문종대에 복권되었는데 묘표를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썼다. 명필로 명성을 떨친 안평대군은 둘째 형 수양대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왕좌는 동기조차 죽일 만큼 비정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유물 하나에도 이렇듯 사연이 많다. 매장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한 작은 공간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광교에서 발굴한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의동 주민들이 사용했던 지게와 절구 같은 생활 도구를 통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 광교가 한적한 농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으로 광교의 여러 마을에서 이루어지던 풍속과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광교신도시의 중심인 이의동 역시 보리밭과 고추밭이 펼쳐졌던 시골 동네였다. 1980년대만 해도 초상이 나면 꽃상여를 멨을 정도였고 1990년대까지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길마재와 독바위 사람들이 음력 1월 16일에 모여 벌인 줄다리기의 형식이 흥미롭다. 어른 남자는 동쪽 줄(숫줄), 여자와 총각, 어린아이는 서쪽 줄(암줄)을 맡았는데 항상 서쪽 편이 이기도록 약속되었다.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들고 재앙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유월이면 이의동에는 황금빛 보리가 출렁이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니 놀랍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던 시대를 보여주는 근현대유물이 더욱 궁금할 것이다. 박물관 2층 특별전시실인 사운실(410㎡)에는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이 기증한 유물 2만여 점이, 소강실(681㎡)에는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의 기증한 유물 3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객이 ‘삼국접양지도‘를 관람하고 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해당 지도는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 3국의 색채를 달리한다. 조선과 일본 사이 바다 한가운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 토임을 명확히 밝히는 유물이다. /수원 출신의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과 학창시절을 수원에서 보내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소강 민관식 선생의 기증유물을 전시해 보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조주현기자■뜨거운 열정으로 채운 소중한 역사 역사문화에 관한 사료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수원 출신의 서지학자 사운(史芸) 이종학(1927~2002) 선생 유가족이 기증한 자료는 무척 다양하다. 일제 침략사 자료, 충무공 이순신과 독도 관련 자료, 고지도 등 2만여 점이나 된다. 잠시 의자에 앉아 이종학 선생이 일본도서관에서 극비 문서를 발견하고 이를 입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관람한다. 짧지만 감동적이다. 1920년대에 발행된 수원 화홍문을 담은 천연색 엽서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그는 엽서 소장자에게 “인천사람이 왜 수원 사진엽서를 가지고 있소? 수원 건 수원으로 돌려야지.” 이처럼 화홍문 엽서는 인천의 사진엽서 6장을 주고 교환한 것이다. 선생이 수집한 독도, 충무공 이순신, 간도, 동학혁명, 일제침략사, 화성(華城) 등에 관한 사료는 국내 최고의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우리 박물관에는 7,000여 장의 엽서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풍경과 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울 자료입니다. 엽서를 활용한 전시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소강실에는 소강(小崗) 민관식(1918∼2006) 선생의 기증유물 3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국회의원 출신으로 문체부장관과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던 민관식 선생은 스포츠와 올림픽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을 수집한다. 소장품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가졌던 고 조오련 선수가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이 있다. 오륜기가 새겨진 성화봉이 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베르린올림픽에서 영광의 월계관을 쓴 고 손기정 옹이 임춘애 선수에게 넘겼던 최종 성화봉으로 까맣게 그을린 흔적이 뚜렷하다. 1991년 남북한 탁구단일팀을 구성해 최강 중국을 꺾고 세계를 재패한 선수들이 친필 사인한 탁구 라켓을 보면서 남북이 하나가 되어 펼친 감동의 역사가 재현되기를 기도한다. ■배움과 놀이, 성찰의 공간 수원광교박물관은 그동안 ‘나도 고고학자’, ‘독도에서 놀자’, ‘올림픽 스튜디오’, ‘어린이공방’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여 수원과 경기도를 대표하는 교육과 체험 및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에는 울릉군 독도박물관과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공동특별전시회를 열었다. 유물과 기록을 통해 우리의 국토인 독도를 새롭게 기억하도록 도운 특별한 전시였다. 특별전시 ‘광교, 시간을 말하다’는 사진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광교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하여 호평을 받았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10권의 책보다 더 많은 사실을 전해준다. 박물관 옆에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던 당산의 400년 된 느티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로 곁에 있는 심온 선생의 사당과 묘소, 조광조 선생의 묘소와 심곡서원까지 답사하기를 추천한다. 광교역사공원을 산책하며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 양평 ‘몽양기념관’

2022년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분열과 갈등의 틈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위대한 스승이 있다. 그분은 바로 몽양 여운형(1886~1947)이다. 몽양은 해방정국에서 외세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좌우로 갈라져 싸우는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며 좌우통합과 분단극복을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분이다. 몽양은 양평사람이다. 경의중앙선 신원역에서 가까운 곳에 여운형의 생가와 몽양기념관이 있다. ‘물소리길’이란 예쁜 이름의 언덕길 옆에 자리 잡은 ‘묘골애오와공원’을 둘러본다. 묘골은 몽양이 살던 동네 이름이며 애오와(愛吾窩)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란 뜻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대리석에 선생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러시아혁명의 주역 레닌과 트로츠키, 중국의 혁명가 쑨원,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치민, 선교사 언더우드의 얼굴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몽양이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하던 시절에 교류한 사람들이다. 물론 몽양은 일본의 정치가들과도 여러 차례 만났다. 이처럼 몽양은 조국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이념과 신분,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 익어도 새로운 몽양의 어록비를 살피며 느릿하게 걸었는데도 어느새 기념관이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몽양의 길 몽양기념관(관장 이철순) 벽면에 ‘맑은 행복 양평 2022.1.25. 몽양기념관 새롭게 개관하다’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관장께 몽양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전시관을 둘러보기 위해 일어섰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설을 개편하고 유물, 사진, 기록 등 새롭게 확보한 자료를 활용해 몽양의 패턴화와 이미지화를 시도했지요. 상설전시는 ‘평등과 애국계몽의 길’, ‘자유와 독립의 길’, ‘평화와 통일의 길’, ‘몽양 여운형의 길’이라는 4가지 주제로 여운형 선생이 지나온 길을 통해 선생이 보여준 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박경표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에 들어선다. 빛이 쏟아지는 유리 천장 아래로 하얀 천이 길게 드리워진 전시관 입구가 인상적이다. 만장으로 몽양의 일생과 사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다. 몽양의 독립과 자주정신을 관람객에게 오롯이 전달하려는 열망이 느껴지는 훌륭한 연출이다. 천에 새겨진 글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몽양 여운형 그는 누구인가? 몽양은 조선의 자주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꿈을 실행하는 삶의 길을 걸었다.’ 옆에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수인복을 입은 몽양의 얼굴과 ‘조선을 사랑한 독립운동가’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계몽을 실천한 기독교 선교사’라는 글귀에 눈길이 잠시 머문다. 아, 몽양이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로도 활동했구나! 몽양은 ‘여행을 사랑했던 모험가’이자 ‘청년과 문학을 사랑한 언론인’이었으며 ‘세계로 나아간 조선의 혁명가’였다. ‘일곱 남매의 아버지’였고 ‘사상을 뛰어넘는 사회민주주의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일대기를 한국사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과 관련 사진을 동시에 제시하여 그 시대를 통으로 이해하도록 구성하고 있다. ■평등과 자주를 향한 지도자의 한평생 몽양(夢陽)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평군 신원면 묘골에서 태어났다. 몽양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동학을 신봉하고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유배를 살았던 실천적 선비였다. 작은할아버지는 해월 최시형을 도와 <용담유사>를 편찬했던 분이다. “며느리를 사랑하라. 노예를 자식같이 사랑하라. 일체의 모든 사람을 한울로 인정하라. 손님이 오거든 한울님이 오셨다 하고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용담유사>에 실린 내용처럼 몽양의 평등사상은 동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1주제인 ‘평등과 애국계몽의 길’에서는 노비해방과 양평 고향 집에 설립한 광동학교 등 기독교 선교사 활동을 중심으로 한 계몽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광동학교’를 디오라마 모형을 통해 재현했다. 2주제인 ‘자유와 독립의 길’에서는 김규식을 파리에 파견하여 우리의 독립의 의지와 당위성을 전 세계에 알렸던 신한청년당 조직과 도쿄제국호텔연설 그리고 조선중앙일보 사장 시절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중앙일보에 천재 시인 이상의 ‘오감도’를 연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도쿄제국호텔에서의 연설을 육성으로 재현했으며, 세계를 무대로 한 외교활동을 멀티터치스크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곳곳에서 어린 관람객을 위한 속 깊은 배려를 발견할 수 있다. 3주제인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는 해방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그리고 좌우합작위원회를 통해 남북, 좌우로 분열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헌신한 선생의 노력을 풍부한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선생이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몽양이 원했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그려 볼 수 있다. 4주제인 ‘몽양 여운형의 길’에서는 선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역사로 남은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로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피격의 현장에서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상의(혈의)와 2차 미소공동위원회와 관련한 내용이 적힌 수첩 같은 소장품들을 함께 전시하였다. 특히 장례식에서 여운형 선생을 보내며 사회 각층에서 만든 만장 다섯 장을 전시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대표적인 분이다. 서거 58주기가 되는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고 61주기가 되는 2008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던 사실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 관장의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전시관을 둘러본 관람객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몽양을 빨갱이로 알았는데,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다르네. 몽양이 선교사를 지냈어?” “일장기말소사건도 몽양이 기획한 것이었네!” “이상의 ‘오감도’를 연재한 곳도 몽양이 사장으로 재직했던 조선중앙일보였네! 내가 여태 잘못 알고 있었구나!” ■평화를 이루는 몽양의 꿈 그렇다. 몽양기념관을 둘러보면 우리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왜곡되고 편협한 것이지 금방 깨달을 것이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생가를 거닐면서 이 관장이 들려주는 소식이 반가웠다. “지금 몽양기념관의 부속시설인 ‘몽양 교육관’의 신축을 준비하고 있는데 오는 12월에 준공 예정입니다. 감사하게도 유족들이 땅을 기부하셨지요. 사실 꼭 필요한 것이 교육인데, 여태 교육관이 없었습니다. 마침 군수님이 도비 25억과 군비 16억 합 41억을 확보해서 교육관을 건설하도록 지원해주셨습니다. 장차 이곳을 ‘몽양 평화공원’으로 조성하여 청소년들에게 몽양의 정신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기념관의 대중화 원년 선포했지요. 올해는 이것을 좀 더 확장할 계획입니다. 몽양을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분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몽양의 위대한 정신은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워 한국의 농촌을 변화시킨 김용기 장로는 몽양이 세우고 가르친 광동학교 출신이다. 기독교 교육단체인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설립해 청년지도자를 육성하고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강원룡 목사도 몽양의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봄이다. 물 맑은 양평에는 예술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소문난 곳이다. 물론 미술관도 여럿이다. 특히 탁월한 기획력으로 전국 미술관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양평군립미술관이 멀지 않는 곳에 있다. 몽양기념관 이철순 관장이 양평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몽양기념관의 멋진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몽양기념관과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양평군의 노력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정신이 봄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몽양 정신으로 화합하고 협력하여 상생하는 새로운 ‘삶의 문화’가 활짝 꽃피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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