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선사박물관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박물관 주변에 활짝 핀 인동덩굴 꽃향기를 맡으며 반짝이는 유선형의 박물관을 살펴본다. 아득한 선사시대를 다루는 박물관의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다. 세계 공모로 당선된 두 명의 프랑스 건축사가 선사시대로 떠나는 우주선을 상상하며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풍광이 빼어난 한탄강 가까이에 자리 잡은 연천 전곡선사박물관(관장 이한용)은 선사시대와 오늘을 잇는 흥미로운 역사 공간이다. 박물관 주변 수십만평의 드넓은 대지 위에 ‘전곡리 유적’과 ‘구석기체험숲’이 펼쳐진다.
■ 선사시대로 떠나는 행복한 시간여행
“전곡선사박물관은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으로 세계 구석기 연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역사적 현장에 건립된 유적박물관입니다. 경기도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전곡리 유적의 영구적인 보존과 활용을 위해 설립한 것이지요.” 박물관 출입구를 장식한 별자리 장식을 보며 동굴을 찾고 잠들었을 선사시대 사람들의 하루를 생각해 본다. 관람객을 원시인들이 살았던 선사시대로 데려가는 박물관은 동굴처럼 아늑하다. 상설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모니터에 이한용 관장의 얼굴이 비친다. 놀랍게도 이 관장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박물관을 소개한다. “하하,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공지능(AI)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구석기박물관이지만 가장 첨단의 매체를 활용하는 박물관입니다.” 최첨단 기술인 AI로 영어와 일본어까지 4개국어로 박물관을 소개하는 것은 선사박물관이 전국에서 최초다.
상설전시관 전체 전시의 주제는 ‘시간여행’이다. ‘시간의 선’을 따라 전시실로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는 유물이 1978~1979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최초의 주먹도끼들이다. 전곡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을 주먹도끼를 둥근 유리관에 전시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은 약 700만년 전 유인원 ‘투마이’로부터 약 1만년 전 평양 인근에서 발견된 ‘만달인’까지 총 14개체의 화석인류가 전시돼 있다. 가죽옷을 입고 창을 든 만달인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사람이다. 평양 인근의 용곡동굴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용곡인’은 만달인과 함께 북한 고고학을 대표한다. 만달인을 우리 한반도의 직접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북한 고고학계는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만달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나무에서 초원으로 내려온 ‘사바나의 최초 인류’부터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터전을 옮긴 ‘최초의 아시아 이주인’도 함께 만난다.
■ 돌멩이에 새겨진 동물과 인간의 역사
작은 동산처럼 꾸민 공간에는 어떤 동물이 숨어있을까. 나무와 바위에 몸을 살짝 가린 독수리는 박제된 것이지만 살아 있는 듯 당당하다. 성격이 예민해 망원경으로나 관찰해야 하는 두루미를 바로 곁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니 감동이다. “멧돼지와 고라니 등 연천군에서 기증한 것을 박물관에서 박제한 것입니다. 경기도에서 매년 상설전의 콘텐츠를 보강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요.” 상설전시실의 작은 변화를 찾아내는 것도 관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재현해 놓은 공간은 몇 차례 찾았으나 여전히 감탄을 자아낼 만큼 훌륭하다.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도 여럿 마련돼 있다.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고 돌멩이를 깨뜨려 돌도끼를 만드는 ‘고고학 체험실’과 약 250만년 동안 이어진 인간 육식의 증거 및 의미를 살펴보는 기획전 ‘고기’와 개관 10주년을 맞아 준비한 ‘오! 구석기’도 구석기시대의 의식주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롭고 알찬 전시다.
■ 아름답고 슬픈 멸종동물 이야기
‘아름답고 슬픈 멸종동물 이야기’에는 어떤 동물이 등장할까. 기획전시실로 연결되는 통로가 지하동굴처럼 재미있다. 8월까지 열리는 이 기획전은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많은 생명이 지상에서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성찰하도록 만든다. 평소 우리가 만나기 힘든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동물을 소개하는 그림에 동물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는 부호를 살펴본다. 현재 위기에 있는 동물들은 어떤 종일까. 사라져 가는 동물을 소개하는 그림도 수준 높은 작품이다. “46억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에는 공룡을 포함한 수많은 종이 멸종하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공룡이 사라진 마지막 대멸종이 있은 지도 어언 6천600만년이 돼갑니다. 이후에도 지구에서 멸종은 계속돼 매머드와 털코뿔소, 검치호 같은 동물들이 멸종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들이 사라졌기에 지금의 동물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라니 자연의 질서가 오묘하다. 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돌도끼를 비롯한 도구를 사용하며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기획전 ‘아름답고 슬픈 멸종동물 이야기’는 우리가 만날 수 없는 털매머드, 검치호, 네안데르탈인, 도도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전시물을 관람하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다. 매머드 상아를 전시한 곳에 붙은 안내문이다. “진짜 매머드의 상아를 만져 보세요!” 조심스럽게 매머드의 상아를 쓰다듬어 본다. 귀중한 유물을 관람객이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전시한 박물관의 결단과 배려가 고맙다.
■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의 탄생기
“1978년 전곡리 유적을 발견한 다음 해에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약 80만㎡(24만평)의 유적 일대가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됐습니다.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중요한 발견으로 세계적인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그러나 당시 전곡리 유적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은 매우 낮았고 지역 개발의 장애물로 취급받는 형편이었습니다.” 1993년 4월 전곡리 구석기 유적관(현 유적관리사무소)이 건립됐을 때 기념 공연이 펼쳐진다. 이날 펼쳐진 원시인 퍼포먼스와 석기를 만드는 행사는 어린이를 비롯한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1994년 어린이날에 구석기 축제일로 지정된다. 2000년 제8회 전곡리구석기축제부터 행사를 주관한 연천군은 2011년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축제로 발전시킨다. 축제와 함께 전곡선사박물관의 대표 교육프로그램 ‘1박 2일 캠프’의 인기는 매우 놀랍다. “개관 당시부터 진행했던 것으로 선사 체험의 종합선물 세트 같은 프로그램입니다. 모집 공고 1~2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해 올해부터는 선착순에서 추첨식으로 바꿨습니다.”
■ 선사시대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창
전곡선사박물관의 전시 방식도 실험적이며 도전적이다.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집중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박물관에서 강조하는 것은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입니다. 관람객들이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감정이입을 돕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얼마 전부터 ‘선사 차력쇼’라는 재미난 이름의 시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 불을 피우고 돌을 깨 도끼를 만드는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한용 관장이다. 관람객을 향한 박물관의 노력은 전시실과 체험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시실 곳곳에 배치돼 관람객을 안내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어르신들은 연천지역의 노인대학생들이다. 박물관의 회의 공간을 지역과 군부대 등 공공 기관에 개방하고 있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 같다. 76만㎡(23만평)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와 세계자연유산인 한탄강을 끼고 있으며 북한과 가까운 인문지리적 조건은 앞으로 강점이 될 것이다. 장래 한반도의 번영은 남북 화해와 협력으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남북 공통의 역사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를 공동 연구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용곡인과 만달인은 남북 교류의 상징적인 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분을 평양박물관에 전시해 북한 주민들이 관람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탄강이 싸고 있는 전곡선사박물관의 풍경은 사계절 모두 좋다. 무더운 여름철에 찾으면 더욱 좋은 박물관이 연천에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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