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광탄면 기산리 고령산 자락 아늑한 언덕에 자리 잡은 아트린뮤지움(관장 배일린) 마당에도 봄꽃이 한창이다.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봄날에 미술관을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평일임에도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외진 곳이지만 가까이에 둘레길이 아름다운 마장호수와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을 비롯해 야영장 같은 휴식과 충전을 하기 좋은 여러 시설이 몰려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것 같다.
■ 미술관에서 양자물리학을 만나다
마침 미술관을 찾은 중년 여성들과 함께 배일린 관장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얻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실력파 작가로 미국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배 관장은 ‘2022년 대한민국 신지식경영대상 문화인 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진 뛰어난 작가다. 2층 전시실 입구에 ‘2024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수상기념 학술발표회-미학적 접근을 통한 양자물리학-Quamtum Story Ⅰ’이라 새겨진 입간판이 서 있다. 미술관에서 양자물리학을 만나다니 사뭇 흥미롭다. 관련 자료를 통해 손대업 아트린뮤지움 대표, 홍가이 매사추세츠공대(MIT) 예술철학박사, 차문성 파주학연구소장, 이영진 파주박물관협회장 등 미술계, 과학계, 광탄기업인협의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현대 문명은 양자역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말은 맞지만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쿼크를 발견하고 그 존재를 증명해 196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물리학자 머리 겔만이 말했다. “양자역학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용할 줄은 아는 무척 신비롭고 당혹스러운 학문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먼조차 양자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는 상호작용하는 실체들의 광대한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전혀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양자 이론은 컴퓨터부터 원자력발전소까지 우리 일상 속 주요 기술의 기초로 쓰이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다. 배 관장은 양자물리학이 예술에 어떻게 접목돼 있는지 작품을 통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 실시한 미술공모전에서 회화 부문에 수상한 작품의 제목이 ‘얽힘과 자비’입니다.”
■ 위로와 격려가 되는 미술관
그림 중심을 장식한 반짝이는 쇳조각이 묘한 울림을 안겨준다. “이것은 마음 심(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지요. 환경과 조건은 같지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빛도 되고 어둠도 됩니다.” 관람하던 여성들이 “그래 맞아” 하며 손뼉을 친다. 배 관장의 작품 해설이 이어진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됩니다. 빛과 어둠은 고정값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이지요.” 마음 먹기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설명에 모두 공감하는 듯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도 덧붙인다. 그림의 바탕이 우글쭈글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질곡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는 배 관장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전시실에 수십개의 의자가 놓여 있어 때때로 이곳에서 강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현대자동차 사장님들의 강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첨단의 자동차 회사 사장들이 미술관 관장에게 양자물리학에 관한 강의를 요청했다는 사실도 무척 흥미롭다. “삶은 더러운 강물인데 바다는 더러운 강물을 다 받아들인다.” 내 자유 의지에 따라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을 해설하며 배 관장이 인용한 니체의 말이다. 꽃상여를 그린 그림 두 장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하나는 푸른 바탕이고 하나는 붉은 바탕이다. 만장을 휘날리며 상여 앞뒤를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꿈결처럼 이어진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를 그린 그림도 있다. 인(因)과 연(緣)에 대한 해설을 들으니 우리 인간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음을 알겠다.
■ 지역과 사람을 잇는 사랑방
2층이 전시실이 사색과 깨침의 공간이라면 1층 전시실은 휴식과 충전의 공간에 가깝다. 1층 전시실의 올 한 해 일정은 꽉 차 있다. 4월 현재 ‘도마산도예회원전’이 열리고 있다. 색깔이 예쁜 찻잔과 꽃을 가득 꽂아둔 큼직한 화병, 늘씬한 항아리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취미로 시작했던 회원들이 작가로 변신한 전시이다. 꽃바구니가 가득한 전시장을 둘러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지난 3월 박성빈 작가의 ‘breath’로 시작한 전시는 ‘권순창_5월의 환타지아’(5월)로 이어진다. 여름에는 ‘최바다_행복에너지의 메신저’(6월)와 ‘민화 작가_꿈, 사랑, 행복’(7월), ‘도자 작가’(8월)로 이어진다. 가을에는 ‘남송미술관 남궁 원 관장 개인전’(9월)과 ‘QUANTUM ART’(양자나노과학연구단의 큐비트미술공모작품 수상전) 전시가 예정돼 있다.
아트린뮤지움의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호응이 좋다. ‘자연의 색으로 그리는 마음의 정원’과 파주시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어울림의 화원’은 지역주민들과 문화소외계층에 활발한 소통의 창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와 KB손해보험이 함께하는 ‘KB손해보험과 함께하는 열린박물관’ 프로그램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관 관람과 체험을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을 주제로 한 체험활동도 준비돼 있다. 주 대상이 문화 소외 아동과 청소년이라니 고마운 일이다. “파주시와 인근 양주시에 소재한 10개 기관의 어린이집 친구들이 미술관을 방문해 전시를 관람하고 미술 수업을 진행해 완성된 작품은 11~12월 1층 전시실에서 전시합니다.”
■ 미술관에서 만들어가는 꿈과 사랑
2024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지역을 위한 상생과 존중’ 사업은 5회의 전시와 10회의 체험활동, 15회의 교육으로 이뤄졌다. 이 사업의 참여자가 무려 5천605명에 이를 정도로 지역주민들의 호응이 높았다. 미술관은 전시, 교육, 체험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한 것을 대표적 성과로 꼽는다. 아트린뮤지움은 다양한 체험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은 물론이고 어르신과 발달장애인, 다문화가정 어린이 같은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소통해 이들과 함께 꿈, 사랑, 희망을 키워가는 지역 문화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함께하는 꿈, 사랑, 희망을 주제로 지역주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미술을 통해 주민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이러한 공감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지역주민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할 계획입니다.”
아트린뮤지움은 지역 문화의 중심이자 지속가능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꽃을 주제로 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이 꽃의 생명력과 형태를 이해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돕습니다. 꽃이 자라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관계를 탐구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시각에서 예술적으로 표현합니다.”
미술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우울감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니 기대가 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이 함께 활동함으로써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사회적 고립감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지역주민들이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아트린뮤지움은 자연스럽게 지역 문화의 사랑방이자 치유와 회복의 쉼터로 거듭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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