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폭압에 그늘진 삶을 다뤄 온 중견작가 최윤씨가 새 창작집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문학과지성사)를 내놓았다.
영화 ‘꽃잎’의 원작인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의 작가이기도 한 그는 이번 소설집에 인간의 순수성과 일상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8편의 중·단편을 실어놓았다.
표제작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는 인간의 순수성이 물신주의와 탐욕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작품.
일상에서 소외돼 별볼일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바이’와 ‘파랑손’은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키워 나간다. 트럭을 타고 이곳 저곳을 방황하던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진 땅끝이라는 곳에 정착, ‘바람국화’라는 환상의 꽃을 재배하는데 성공한다.
바이와 파랑손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색과 향기가 가장 훌륭하게 조화된 바람국화를 탄생시키기 위해 땀을 흘리지만 바람국화의 신비에 매혹된 속물들은 저마다 ‘아전인수’ 격으로 꽃을 이용하려 한다.
식물학자들은 바람국화의 학명을 정하는데 끝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제약회사는 그들대로 바람국화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다.
결국 사람들의 욕망과 다툼속에 바이와 파랑손의 순수한 의지는 짓밟히고 신비의 꽃 바람국화도 소멸돼 버린다.
전쟁 연작 3편은 우리의 삶과 전쟁의 아픔을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전쟁들:그늘 속 여인의 목선’은 한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인 병원원장의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전쟁 불구자와 잠적해 버린 사건을 소재로 이용, 정돈된 삶의 질서에 의문을 던진다.
또 ‘전쟁들:집을 무서워하는 아이’에서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걸프전의 참상을 기억 속에 간직한 한 부부가 자살하는 과정을 통해 끔찍한 살상이 컴퓨터 게임처럼 단순하게 처리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전쟁들:숲속의 빈터’는 시골 마을에서 동거에 들어간 삼십을 갓 넘긴 동갑내기남녀 주인공의 평온한 삶이 미쳐버린 제대군인의 등장으로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5년만에 출간한 이 소설집에는 9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하나코는 없다’를 비롯해 ‘물방울 음악’, ‘창밖은 푸르름’ 등이 실려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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