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과 북한강의 수려한 경관을 끼고 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 곳곳 어느 하나에 시선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유난히도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며, 왜 이곳은 돌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멋과 낭만이 넘쳐흐르는 것일까. 흔히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하지만 이곳은 분명 다른 그 무언가가 있다.
‘한국의 바르비종’양평. 밀레와 루소를 배출한 파리 외곽의 작은 읍 바르비종이 이곳 양평에서 재현돼 화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독자적인 화풍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강줄기를 함께하는 작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어느새 280명을 헤아리는 화가 마을로 탈바꿈했다.
작가들이 이렇듯 양평으로 몰려드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작가들이 창작에 몰입하기 좋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인데다가 풋풋한 전원생활도 가능해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이 1시간 거리라는 조건 때문에 작가들에겐 좋은 장소로 손꼽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민중화가로 활동하던 민정기씨가 서종면 동녘골로 옮겨온 이후 강하면 항금리에 김강용·김인옥씨 부부, 전수리에 박동인·김동희씨 부부가 정착하는 등 작가들의 이사가 줄을 이었다. 지금은 양동면의 최석운, 지재면의 조각가 이재효, 국수역 인근에 터를 잡은 류민자씨를 비롯해 이양원 하동철 강경구 김근중 등 이름있는 작가들이 마을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와 이곳의 허름한 창고를 공동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이름없는 화가들까지 합치면 대략 3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들은 화가이기에 앞서 주변에 텃밭을 가꾸어 신선한 무공해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농부의 모습으로 거듭나 자신의 아이들이 꽁꽁 언 강변에서 얼음을 지치며 까르르 웃어대는 모습에 흐믓함을 느끼고 있다. 또 마을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여해 품앗이하고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웃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온정을 몸소 체험하면서 진정 ‘사람사는 맛’에 듬뿍 빠져있는 것이다.
작가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드니 화랑도 생겨났다. 월간 미술 편집장 출신의 이달희씨 부부가 세운 서종갤러리, 건축가 이영길씨가 설립한 갤러리 아지오,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바탕골예술관, 갤러리 창, 갤러리 사바나 등 주변 곳곳에 모두 11곳의 화랑과 6곳의 도예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이브 길에 들르는 서울 인근의 사람들이 많아져 ‘산지(産地)’개념의 중저가 작품이 제법 팔리고 있는데다 여행사에서 ‘화가마을로 떠나는 예술기행’이라는 탐방프로그램을 개발해 양평의 유명 먹거리·자연경관을 즐기면서 작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를 관람할 수 있는 문화기행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화가마을로 떠나는 예술기행’은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는 달리 작가의 삶의 모습과 열정어린 작업 과정을 직접 보면서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양평의 화가들도 해마다 1월이면 그동안의 작업성과를 보여주는 축제를 연다. 올해는 갤러리 아지오에서 강경구 나경찬 이양원 정원철 등 모두 44명의 작가들이 모여 ‘남한강 사람들의 그림 이야기’라는 주제로 9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열려 오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에는 3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작가들이 참여해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각자가 일궈낸 아름다운 감성들을 작품에 담았다.
지금쯤 그제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하얗게 뒤덮였을 그곳 화가마을에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가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0338)774-5121∼4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