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2월 문화인물로 수원출신의 한국 최초의 여류서양화가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1896-1948)을 선정했다.
‘여성도 사람이외다’를 외치며 이땅에 페미니즘의 씨앗을 뿌렸던 그녀는 근래에 와서야 비로서 근대여성운동의 선구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수원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한 후 국내 최초의 근대 여성서양화가가 된 그녀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당시 우리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후일 외교관이 된 김우영과 결혼해 유럽과 미국 등 세계를 여행하면서 일찌기 서구문물을 익힌 그녀는 결혼 당시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제안을 남편 김우영에게 하게된다.
그 제안이란 죽은 옛 애인의 무덤에 비석을 세워줄 것과 신혼여행길에 그곳을 들를 것, 또 작품활동을 위해서 시부모님을 절대 모시지 않는다는 것. 속내야 어떨지라도 그것을 당당히 조건으로 내세우기란 지금도 그리 쉬운일이 아니건만 그녀는 당시 봉건적인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을 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 여행에서 당시 천도교 교령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최린과의 염문설로 세간의 화제를 모으면서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만 그녀는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므로써 사회적 이단아로 낙인 찍히게 된다.
그뒤 나혜석은 사회의 냉대와 어려운 생활고로 심신이 피폐해져 신경쇠약증세까지 보이다 용인의 한 시립병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52살 나이로 쓸쓸히 숨져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나혜석을 소설‘경희’등을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소설가로서, 3·1운동에 참여해 화가로는 유일하게 옥고까지 치렀던 민족운동가로서 조명·연구하려는 노력이 활발해 지고 있다.
그동안 그녀의 자유연애사상에만 촛점이 맞춰져 상대적으로 묻혀졌던 문학·미술·민족사상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2월 문화인물 선정을 기념해 예술의전당과 나혜석기념사업회는 그녀의 작품 및 관련 자료를 통해 나혜석을 우리시대의 여성 선각자로 재조명하기 위한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을 지난 1월15일부터 오는 2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마련하고 있다. 또 2월1일 오후 1시엔 이 전시와 관련해 미술관 지하 1층 세미나실에서 ‘나혜석 학술강좌’가 열린다.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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