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 침묵속에/한맺힌 임진강아/신(神)의 손도 비켜간/상흔을 찍어내고/피묻힌 모반(謀反)의 땅에/둥근해를 띄워라
5일 오전 11시 20분. 파주시 임진강 망배단에서 망향경모제를 지내는 실향민들의 새천년 첫 설날엔 통일에 목메이는 한과 기대감이 잔뜩 배어있다.
동서화합의 지구촌 정세에도 아랑곳 없이 분단 반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듯 철조망 앞에 차려진 제상에는 매서운 삭풍만 불고 있다.
황해도에서 3형제가 월남했다는 이규환옹(74)은 “열흘이면 고향땅을 밟을 줄 알고 아버지가 우리 형제만 내려보내셨지 그런데 그 열흘이 50년 됐어”라며 “죽기전에 통일의 …”. 이옹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불렀다.
1·4후퇴때 북에서 두 형과 누나 한분을 두고 홀로 남하했다는 함남출신의 김기환옹(78)은 “살아서 가지못할 고향땅 죽어서 묻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분단의 아픔을 보여주기 위해 남한에서 낳은 세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같은시각 강건너 북한땅 개풍군 장단면 정곶마을이 마주보이는 파주군 탄현면 실향민 묘지인 ‘동화경모공원’. 이곳에는 50년 망향의 서러움을 안고 살아온 실향민 1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3평 묘자리에 안치됐다.
이들 원혼들은 통일이 되는 그날 고향 선영으로의 이장을 꿈꾸며 차갑게 얼어붙은 임진강가를 떠돌고 있다.
함께 월남한 부인을 먼저 묻었다는 이기철옹(75)은 “삶의 낙이없어 다만 소원이 있다면 이젠 가물거리는 어머니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싶다”며 안경넘어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경모공원에는 실향민 2세 등 7천여명이 찾아와 차례를 올렸다.
(주)동화경모공원 박명석 관리부장은 “38선을 넘을때 맨몸으로 내려왔던 실향민 1세들은 이곳에서 영혼이 되어 고향땅을 밟고 있다”며 “평소에도 주말이나 휴일에 노부부, 혹은 혼자된 이들이 쓸쓸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김창학기자 c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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