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日왕실 비(秘)문서는...' 방송

서지학자 이종학씨는 일본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학 역사학과 금병동 교수를 만나 1000쪽이 넘는 고문서 사본 뭉치를 건넸다.그러면서 일본과의 수교 협상을 앞둔 북한이 과거사를 올바르게 청산하기를 소망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금교수는 “한일합병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1차 사료를 전해줘 고맙다. 그동안 이런 문서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부끄럽다” 고 말했다.

이씨가 넘겨준 문서는 한일합병 조약이 일본의 강압과 협박으로 체결된 사실을 증언하는 최초의 일본 공문서였다. KBS 1TV 일요스페셜은 19일 오후8시 이런 얘기를 담은 ‘日왕실 비(秘)문서는 왜 북한으로 갔나’를 방송한다.

이종학씨는 92년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조선총독보고 한국병합시말’을 발견했다. 조선통감 데라우치가 총리대신 가쓰라에게 보낸 보고서 첫 구절에는 “본관은 성지를 받들어 지난(1909) 7월23일 한국에 착임한 이래 이미 확정된 방침에 따라 시기를 노려 병합의 실행에 착수코자 준비를 서두른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한일합병 조약 문서에 쓰인 내용을 근거로 순종이 제국 통치권을 일본 천황에게 자발적으로 양여했다고 강변해 온 일본 주장을 스스로 뒤엎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 딸린 ‘군사상의 관계’라는 부록 맨 마지막 구절은 “그러나 한편 군대 경찰의 위력과 끊임없는 경비가 간접적으로 상당한 효력을 나타낸 것 역시 다룰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고 했다. 일본 황실문고에 극비문서로 분류된 채 90년 동안 감춰졌던 이 기록을 1980년대 초일본 국립공문서관으로 이관됐다. 이씨는 당시 대출이 허용되지 않은 이 문서를 몰래 숨겨 가지고 나와 복사했다. 이씨는 ‘한국병합시말’이외 통감부와 내각 사이에 오갔던 전문, 8월22일 조약체결을 재가한 일본 추밀원 회의기록 등 3가지 문서를 분석했다. 이씨는 문서들을 3월중 ‘1910년 한국강점 자료집’(사운연구소)으로 펴내고 전세계 100여국에도 기증할 계획이다.

‘일요스페셜’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합병 당시의 일본 군대 배치도도 처음으로 입수해 공개한다. 이 배치도를 보면 일본은 조약 체결 당시 4대문과 경성의 주요 입구에 예외없이 군대를 배치해 놓아 명백한 군대의 위협이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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