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당(唐)나라가 관리를 뽑는 전형방법으로 이 네가지를 기준한데서 유래한다.
용모, 말씨, 문필, 판단력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이 네가지 기준은 근대사회까지 품격의 척도로 전래되어 좀 괜찮은 사람을 말할때 ‘신언서판이 반듯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번째인 문필은 글과 글씨를 말한다. 필치와 필체로 글(필치)도 좋아야 하지만 글씨(필체)를 잘 써야 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동양 삼국의 한문권 문화에서만 쓰이는 붓글씨가 쇠퇴한 것은 펜촉이 나오고 부터였다. 잉크에 묻혀가면서 글씨를 쓰는 펜이 또 자취를 감춘 것은 60년대 후반 볼펜이 등장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볼펜시대에 들어서도 글씨는 역시 잘 써야 했다. 글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했다. 달필(達筆)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았다.
한동안 타자기가 많이 쓰였다. 타자기시대에도 중요시 되던 글씨가 컴퓨터시대에 들어서서는 거의 외면돼가고 있다. 손으로 글씨를 쓰기보다는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한다. 사무를 보면서 글씨를 쓰는 예는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N세대의 한문실력은 부모이름도 못쓸 만큼 엉망이고 어쩌다 쓴다해도 쓰는 것이 아니고 그리다시피하는 것을 많이 본다.
요즘엔 초·중고등학생들 가운데서도 한글마저 글씨가 엉망인 학생이 많다고 한다. 컴퓨터 바람에 글씨쯤 잘 못쓰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조가 과연 괜찮은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컴퓨터 입력을 통한 글(글씨)보다는 육필 글씨가 더 정감을 준다. 컴퓨터의 편익도 좋지만 인간미를 기계에 아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글씨쓰는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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