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이 으레 집성촌(集姓村)이었던 시절이다. ‘한지붕 밑에 팔촌난다’는 말처럼 동네 사람이 거의 일가친척이었다. 육촌, 팔촌은 말할 것 없고 더 이상되는 촌수도 형님 아우, 아제 조카 하며 지냈다. 동네에서 뿐만이 아니다. 지금같은 교통편이 없었던 때여서 백리길도 마다 않고 걸어 일가집을 왕래하곤 했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여 엎어지면 코닿는 곳에 일가가 살아도 왕래가 뜸하다. 아니, 한해가야 한번 볼까? 몇해가도 만나보지 못한 친척들이 많을 것이다. 안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다.
못살던 때도 친척간에 인정을 내며 살았는데 전보다 잘 산다면서 친척간의 인정은 더 메마르기만 하다.
예전은 농경사회중심으로 생활이 단순했기 때문에 겨울철 농한기 같은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다. ‘저마다 바쁘다’고 곧잘 말한다. ‘먹고 살기가 바쁘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인정의 결핍을 합리화 시켜줄 수 있는 구실은 못된다. 찾아가지 못하면 전화 한통화로 물을 수 있는 안부마저 외면, 무심하게 지내기가 예사다.
그저 내집하나 아무 탈없이 지내면 그만이라는 정신적 폐쇄공간속에 일가가 멀어져가는 세태가 됐다. 이러다가는 사촌, 육촌이 길에서 스쳐도 못알아보는 세상이 되지 않겠나 싶다. 과연 사람이 산다할 수 있을는지.
새봄에 집안 어른들에게 안부전화라도 열어 겨우내 어떻게 지냈는지 여쭈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찾아가면 더욱 좋겠지만…. 문명이 발달하면 왜 인성을 잃어가는 것인지 누가 한번 연구해 볼만한 과제일 것 같다.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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