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

신라 24대 왕 진흥왕 12년인 551년 팔관회(八關會)의 개설과 함께 국가적인 행사로 열리게 된 연등회(燃燈會)는 본래 부처님전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대자대비한 부처에게 귀의하려는 의미를 지닌다.

‘법화경’ ‘삼국유사’ ‘삼국사기’ ‘동국세시기’ 등 옛 문헌에 따르면 정월 대보름에 연등으로 밤새 불을 밝히며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던 풍습이 있었다.

이 시기의 연등은 대나무와 싸리나무, 그리고 칡넝쿨을 이용해 질 좋은 한지에 기름을 먹여 각종 꽃잎이나 나뭇잎으로 장식을 했는데 종류도 5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연등행사는 국가행사로 발전했는데 지금처럼 부처님 오신 날의 행사가 아니라 정월, 2월에 행해졌다.

사월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나오는데 그 이후 궁중에서도 사월초파일 연등이 행하여졌다.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 연등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초파일 연등은 서민층에까지 확산돼 부처님 오신 며칠 전부터 집안의 자녀수대로 많게는 10개 이상을 주렁주렁 단 집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연등회는 거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가지 신기한 것은 불교를 “인민들을 기만하며 억압, 착취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의 하나”로 까지 보던 북한에서도 지금은 각지의 사찰에 연등을 단다는 것이다. 북한의 지난해 연등에는 ‘영생’ ‘충성’ 등 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기원하고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새긴 것이

많다.

또 ‘강성대국’ ‘군사대국’ ‘경제대국’ ‘자폭정신’ ‘결사옹위’ 등의 글귀도 새긴 연등도 있다고 한다.

1988년 5월 묘향산 보현사에서 석탄절 법회를 처음 개최한 북한이 불교의식을 40여년만에 재개한 것은 ‘북한은 종교가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려는 데 있는 것 같다. 북한도 이제는 서서히 변해가는 모양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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