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128호로 지정된 양주 회암사지(檜巖寺址)에 대한 2차 발굴조사에서 보광전을 비롯한 고려말∼조선초의 건물지 15개소가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발굴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박물관과 기전문화재연구원 공동발굴조사단(단장 장경호)은 29일 현장설명회를 통해 “이번 조사결과 최상급의 유물이 대량 발굴되는 등 회암사가 조선초 국찰의 면모임을 재확인 했다”고 밝혔다.
고려중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된 회암사지는 주로 고려말∼조선초에 왕실의 지원을 받아 중창을 거듭하면서 사역내 건물지가 262칸에 이를정도로 크게 번창했던 국찰로 이성계가 자주 머물렀다는 기록과 함께 무학대사가 주재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98년 1차에 이은 이번 조사에서는 회암사지 6,7단지(총면적 5,600㎡)에서만 모두 15개소의 건물지와 함께 담장지, 석축단, 배수로 시설, 굴뚝시설 등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발굴돼 여말선초 사찰건축 연구에 획기적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동방장, 수좌료, 시자료 건물지에서 완전한 상태로 조사된 구들시설은 이 시기 구들의 구조와 변화양상을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토유물은 기와류, 도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기와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용문, 봉황문 수막새를 비롯해 마루기와의 일종인 취두, 잡상 등이 다양하게 나왔다.
또한 자기 가운데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출토 예가 없는 분청향완(紛靑香碗) 3점이 출토돼 이번 발굴조사의 큰 성과로 꼽히고있다.
금속류로는 건물지의 목조결구용 철기가 다량으로 출토됐으며, 청동불두와 더불어 청동금탁(靑銅琴鐸) 2점이 출토됐다. 특히 보광전 추녀에 매달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금탁에는 제작연대(태조 3년6월:1394년)를 포함해 모두 14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명문 서두에 ‘天寶山中檜巖寺…’라고 기록돼 있어 회암사라는 사찰명이 처음 나온 발굴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금탁의 상단부에는 王師妙嚴尊者, 朝鮮國王, 王顯妃, 世子 순으로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회암사와 조선왕실의 친연관계를 입증해주는 자료로 생각된다.
향후 회암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2005년까지 연차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며, 조사가 완료되면 결과를 토대로 회암사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비·복원 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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