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국강점기 자료집 발간

일본의 1910년 한국병합은 조약이 아닌 군사력에 의한 강점이며, 실질적으로나 절차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중요 사료들을 모은 책이 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종학 사운연구소장이 펴낸 ‘1910년 韓國强占資料集’이 그것으로 필자가 10여년간 일본 현지에서 조사 ·수집한 한국강점의 증거 사료들을 모은 책으로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유사이래 우리민족 최대의 치욕인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庚術國恥)로 한민족은 주권을 상실하고 말과 글을 빼앗겼으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 일제가 일으킨 일련의 전쟁으로 한반도는 병참기지로 변해 황폐화됐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군인, 군속, 종군위안부, 노무자 등으로 강제연행돼 오늘날에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한민족이 당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는 한세기가 다가도록 치유되지 않고 있으며, 한 일 두나라의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는 일제의 한국침략 사실과 강점에 대한 시인, 사죄명시, 불법행위에 대해 분명한 손해배상조차 없었다.

한민족에게 크나큰 고통과 피해를 주고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낳은 한국강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시작돼 1910년 한국강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 세기에 이르는 지금까지도 그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종학 편저의 ‘1910년 한국강점자료집’은 데라우치 통감이 일본내각에 보고한 ‘조선총독보고 한국병합시말 부(附) 한국병합과 군사상의 관계’ ‘한국병합에 관한 서류-發電·着電’ ‘추밀원회의필기-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외(명치 43년 8월22일)’ 등 3건의 비밀문건으로 이뤄져 있으며 원본과 번역, 관련자료들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조선총독보고 한국병합시말’은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한국강점조약이 체결되고 2개월후인 1910년 11월7일 내각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에게 전말을 보고한 후 일본 천왕이 열람한 문건으로 한국강점과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중요자료다.

1994년 12월 일본공문서관에서 입수한 ‘한국병합에 관한 서류-발전·착전’은 통감부와 일본 내각 사이에 오고간 290회에 달하는 기밀전문으로 일제의 음모와 잔꾀가 수없이 담겨있으며, ‘추밀원회의필기’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안’을 비롯해 조선총독부 설치 등 13건의 안건이 수록돼 있다.

이종학씨는 “‘병합시말’이 한국강점의 종합보고서라면 ‘발전·착전’은 일일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추밀원회의필기’는 최종결정문이라는 점에서 이 3가지 문건만으로도 한국강점의 실상을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북한이 북일(北日) 과거청산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받는데 제몫을 다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3건의 중요문서를 북한측에 건네준 바 있다.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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