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0일 한빛은행 외압대출 의혹을 받아온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것은 교착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읍참마속’의 결단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직 장관의 신분으로는 공정한 검찰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여론의 압력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장관은 대통령에게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자연인의 입장에서 떳떳하게 조사를 받겠다는 결심을 말했고, 김 대통령이 이를 존중해 사표를 수리하게 됐다”고 사표수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19일 오후까지만 해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뒤 박 장관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
이는 박 장관의 결백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불법 대출에 관여했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이 김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박 장관을 사퇴시킨다는 것은 오히려 의혹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옷로비 사건이나 유종근 전북지사 자택 절도사건 등에서와 같이 의혹과 사실은 다른 측면이 많다”면서 “뇌물을 받아온 범죄자의 일방적 주장이 먹히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박 장관의 진퇴 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내에서조차 일부 최고위원과 의원들이 “박 장관이 사퇴하지 않고는 꼬인 정국을 풀 수 없다”는 의견을 잇따라 제기하는 상황이 박 장관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장관도 사퇴 발표 기자회견에서 “개인으로서는 억울함이 있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고유가 파동, 증시불안 등 안팎의 잇단 악재로 정국이 흔들리고 있고, 한빛은행 외압대출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이 김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직접 거론하고 나선 상황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장관의 사퇴가 여론에 일방적으로 밀려 취해진 것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박 장관이 이운영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의 검찰 출두를 공식 회견에서 촉구하고 나선 것은 검찰수사에서 자신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며, 이에따라 검찰 수사결과를 통해 사태가 급반전 될 수도 있다는 관측에서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도 “박 장관의 혐의 사실 수사와는 별도로 이 전 지점장을 조직적으로 보호하고 그를 배후에서 돌봐온 세력에 대해서도 범인은닉 차원에서 조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또한 여권의 전반적인 정국운영 측면에서도 박 장관의 사퇴는 대야 협상의 큰 부담을 털어버린 셈이어서 향후 여권의 운신 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대통령이 박 장관에 대한 사표 수리후 즉각 김한길 의원을 후임으로 임명한 것도 정국을 조속히 정상화 시키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