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와 대표의 차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서영훈 민주당 대표간에 새삼 격(格)을 둔 다툼이 있었다. 이총재가 김대중 민주당 총재를 정국대화의 파트너로 꼽아 서대표의 대화제의를 거부한데 대해 서대표가 섭섭한 감정을 노출한데서 비롯됐다.

어떻게 보면 치기(稚氣)같기도 하지만, 따져 말하면 여야간 경색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점도 있어 언급할 필요성을 갖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총재와 대표는 격이 같을수 없다. 이모, 서모라는 자연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조직의 위계가 그러하다.

서대표는 ‘총재가 당이 책임을 지고 처리하라고 위임했기 때문에 야당총재와 대좌할 자격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내 사정이다. 위임이라는 것도 전권행사에 사실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당수(黨首)의 상대당 대화상대는 당수이지 그 밑의 당간부일수 없는 것이 객관적 판단이기도하다. 현실적으로 어느 당이고 할것 없이 당의 기구가 독자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총재가 거의 당론을 주도하다시피 하는 국내 정당체질에서는 더욱 그렇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총재 또한 과거 야당 총재시절에 여당의 총재가 아닌 대표와 애써 격을 같이 해보이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은 것으로 기억한다. 예컨대 청와대서 가진 여야총재회담에서 배석할 자격이 없는 여당대표를 야당총재와 나란히 한자리에 함께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결례였던 것이다. 이제 집권여당이 된 마당에 과거에 당했던 그같은 불공정게임을 지금의 야당에게 강요할 생각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은 있다. 대통령의 자리와 집권 여당총재직을 행여 혼동한다면 정치발전을 위해 무익하다. 국민이 보기엔 여야총재가 만날수록이 좋고 대화는 있을수록이 좋다. 어느쪽에서든 만나자는데 한쪽이 거부하는 것은 대화정치, 상생정치의 거부로 해석할 수 있다.

여당총재가 갖는 대통령의 위치는 국민이 선택해준 별도의 국가직이다. 야당총재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여당총재이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상궤다. 많은 국민들도 실제로 이총재와 서대표간의 만남으로 꼬인 정국이 풀릴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총재끼리의 만남이 중요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여야총재는 서로간에 권능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인은 있어도 정치는 없는 이유가 그렇지 못한 대화빈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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