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산 일대 24만여평의 토양이 미군측이 버린 기름으로 30여년간 오염돼 온 사실이 드러났다.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의 발표에 자극받아 인천시는 뒤늦게 토양오염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유류저장소 주변지역에서는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톨루엔이 기준치의 34배나 발견됐다.그러나 미군측은 한미행정협정(SOFA)을 들먹이며 원상회복 의무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녹색연합 등 단체들이 SOFA 개정에
초점을 맞춰 시민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기름유출 사건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편집자>
녹색연합(상임대표 박영신)은 지난달 23일 서울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천 문학산에 지난 53년부터 70년까지 미군의 유류저장소가 있었으며, 미군이 떠난 후 이 저장소에서 30여년간 엄청난 양의 기름이 유출돼 옥련동 옥골 일대 토지가 오염됐다고 밝혔다.
인천녹색연합(대표 박창화)은 이날 현장조사 과정에서 이옥렬 통장(61) 집 앞 300여평의 밭 등 20여개 지점에 대한 시굴을 통해 시커먼 기름이 흙과 뒤엉겨 있는 토양을 증거로 제시했다.
현장조사에서 주민 이중옥씨(79·남구 옥골)는 “옥골 일대가 원래 비옥한 논이었으나 지난 60년대 초부터 미군부대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논농사가 안돼 전부 밭으로 바뀌었고 지하수도 오염돼 인천시가 이 일대에서는 최초로 상수도 시설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군이 주둔하던 당시에도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기름에 담뱃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고, 매년 유류탱크 청소를 실시한 후 오니 등 폐기물을 무단방류 해 왔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오염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겨우 밝힐 수 있는 이유는 지난 60년대말∼70년대의 경우 미군부대의 잘못을 정부측에 감히 항의할 수도 없는 군부시대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녹색연합의 발표에 따라 인천시는 지난달 25일 문학산 미군부대 주변의 흙을 채취·검사했고 이 토양이 기준치(㎏당 80㎎이하)의 34배인 2천742.9㎎의 유류성분(BTEX)이 함유된 사실을 확인했다.
항목별 유류성분은 벤젠 1천391㎎과 톨루엔 1천350㎎, 기타 1.9㎎으로 벤젠·톨루엔은 장기간 인체에 노출될 경우 혈액장애·백혈병·암·위장장애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인천시의 검사에서는 유류저장소 바로 밑 하천에서도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1천604㎎의 유류성분이 검출됐고, 저장소에서 150여m 떨어진 마을에서는 기준치의 1.4∼7.9배 까지인 113.1∼632.4㎎이 측정됐다.
시는 “토양오염 사실이 확인된 만큼 미군측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공동조사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지난 97년 인천시가 옥골 일대의 토양오염 사실을 적발하고도 그대로 방치해온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시의 무사안일한 환경행정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연수구는 지난 96년 4월 30일 민방위교육장을 건립하기 위해 미군부대가 있던 옥련동 56 일대 사유지 550여평을 5억9천760만원에 매입했다.
구는 공사과정에서 매입한 땅에 폐유 등 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 2천178㎥가 매장돼 교육장 부지 개발지로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오염사실을 인천시에 보고했다.
이에따라 인천시 보건환경연구원은 97년 이 지역의 토양오염분석 결과 토양 1㎏중에 유류성분이 319.5㎎이나 함유돼 기준치(㎏당 80㎎이하)를 3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나 일체의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연수구도 폐기물 처리비용이 6억원 이상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인천시와 함께 이를 방치하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와함께 미군부대의 유류저장소는 문학산 일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천항∼유공SK∼문학산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미군의 유류저장소 위치도면 공개와 정부의 대대적인 현장조사가 요구되고 있다.
문학산 옥골 이항렬 통장(61)은 지난달 25일 “미군의 유류저장 시설은 인천항 석탄부두에서 용현동과 문학산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저장소마다 고유번호가 있었는데 마지막 번호가 83번인 사실을 60년대 말 확인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83기의 유류저장소는 미군이 지난 71년 포항으로 이전하면서 용현동 유공SK 저장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방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공측도 “미군으로부터 인하대 주변 용현동 일대의 저장소만 인수받았다”고 밝혀 이씨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한편 미군측은 지난달 24일 “미군 유류저장소는 유공SK측에 인계했고 미군은 기름유출 사건과 무관하다”고만 밝혀 문학산 주변 오염지역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이같은 미군측의 답변에 대해 녹색연합측은 “즉각적인 오염조사에 협조해야할 행위자가 사실을 호도하면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불평등한 SOFA 협정 개정만이 이같은 무분별한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이번 기름유출 사건의 방향도 SOFA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달 24일 미군측에 대해 ▲문학산 유류저장 시설을 한국정부에 이전시 관련시설의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는 공식문서를 공개할 것▲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및 배상할 것▲전면적인 SOFA 개정을 통해 역차별을 해소하라 는 3개 요구조항을 발표했다.
한편 주한미군은 지난 98년 5월에도 매디슨 기지내의 기름유출로 의왕시 백운산 계곡 일부가 오염됐으나 의왕시 공무원의 현장출입을 막았었고, 무성의로 일관하다 1년 5개월 후에야 겨우 환경부와 공동조사를 실시했다.
또 지난 7월 평택에서 미 공군이 항공유 등을 하수구를 통해 무단방출 하고도 평택시가 사고조사를 위해 기지방문을 요구했으나 거부했다.
미군측의 이같은 태도는 기지나 시설 반환시 더욱 심해 최근 정부는 주한미군으로 부터 일부 기지와 시설을 돌려받고 있으나 기지내부나 주변의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원상회복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행정협정(SOFA) 4조에 ‘미국정부가 시설과 구역을 한국정부에 반환할때 미군에 제공되었던 당시 상태로 원상회복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국방부는 주한미군의 기름유출로 인한 환경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군측에 관련 예산증액과 양국 군간 환경협의체 운영 등 다각적인 대책을 제의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행위가 주민마찰이나 반미감정 유발 등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국군 기무사령부 보고와 시민단체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미군의 한국에서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긍정·부정적으로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하나 밖에 없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세계 모든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군의 환경오염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는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박창화 인천녹색연합 대표는 “필리핀의 경우 미군이 주둔한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어린이들이 백혈병을 앓거나 임산부들이 유산 또는 기형아를 출산했는데, 기름의 성분인 벤젠·톨루엔은 백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의학계에 보고됐다”며“미군은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반성해야 하며 최소 복구비가 3천억원이나 드는 이번 사건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호기자 s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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