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경제협력체(APEC)회의 참석차 브루나이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왕 주최 만찬에 참석하는 등 빡빡한 국빈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 정상으로는 12년만에 브루나이를 국빈방문한 김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왕궁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 볼키아 국왕과 브루나이 추밀원 인사 등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이어 한·브루나이 양국 정상과 공식수행원이 배석한 가운데 왕궁 회의실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현대건설의 브루나이 제루동 공사 미수금 3천800만달러를 조속한 시일내에 받기로 하는 한편, 유럽쪽에 집중하고 있던 브루나이의 해외투자 대상을 한국으로 상당부분 돌리도록 하는 등 내실있는 세일즈 외교 성과를 거뒀다고 외교당국자가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현대건설 미수금을 브루나이가 곧 지불키로 한 것은 사전에 우리정부와 현대측의 다각적인 노력과 함께 김 대통령이 직접 볼키아 국왕에게 이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김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브루나이측이 요구한 원유와 LNG 도입의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이어 왕궁 연회장에서 열린 볼키아 국왕 주최 국빈만찬에서는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정상들이 입장한 뒤 3분가량의 회교식 기도를 하고 볼키아 국왕이 김 대통령의 방문을 축하하는 만찬사를 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평화가 깃드는 곳’(Negara Brunei Darussalam) 이라는 국명 그대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브루나이를 방문하게 돼 더 없이 기쁘다”면서 “이번정상회의가 볼키아 국왕의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이뤄짐으로써 21세기 아·태 지역의 실질적 경제협력을 위한 거시적 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브루나이측의 김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어느 다자회의에서보다 두드러졌다는 것이 수행인사들의 평가다.
볼키아 국왕은 다리가 불편한 김 대통령을 위해 APEC 회의장의 현관 계단에 손잡이를 설치토록 특별지시를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브루나이의 영자 일간지 ‘뉴스 익스프레스’는 12일자 일요판에 김 대통령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뉴스 익스프레스는 1면 표지에 김 대통령의 사진을 싣고, APEC 특집란에 3개면을 할애해 ‘민주주의와 가족을 사랑하는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김 대통령의 저서 ‘옥중서신’을 인용, 김 대통령의 인생역정을 소개하고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앞서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20분께(한국시간)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 무타디 빌라 왕세자, 마스나 공주 등의 영접을 받았다.
지난 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브루나이는 경기도의 약 절반에 불과한 국토에 인구가 33만명인 소국으로 회교를 국교로 하는 세습왕정국가지만 석유·천연가스 자원 등이 풍부해 1인당 GDP가 1만5천달러 가량인 부국이다.
/반다르세리베가완에서 유제원기자 jwyo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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