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뜻으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비밀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서(史書)나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멸구(滅口)’다. 당사자를 죽여 비밀이 새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 스스로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소위 충성심을 보이기도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과 똑 같은 ‘사지(四知)’라는 말이 있다.

중국 동한(東漢) 안제(安帝)때의 양진(楊震)은 박학다식하고 인격도 출중하여 많은 사람의 찬사와 공경을 받았는데 동래구 태수(太守)로 제수됐을 때다. 부임 도중 창읍(昌邑)에서 날이 저물어 객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창읍현 현령인 왕밀(王密)이 찾아와 슬그머니 황금 열냥을 내놓았다. 예전에 형주 자사(刺史)로 있을 때 자신을 천거, 출세길을 열어준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자네를 잘 알고 있네만 자네는 나를 아직 잘 모르고 있구만”

“저는 단지 보은의 뜻으로 조그만 정성을 표시할 뿐 입니다”

그래도 양진이 황금을 계속 거절하자 왕밀이 말했다. “이 한 밤중에 저와 태수님만 아는 일입니다. 부디 제 정성을 받아주십시오”

양진이 다시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 둘뿐이라니?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며(地知) 자네가 알고(子知) 또 내가 알고 있네(我知). 그 무슨 소린가?”

왕밀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돌아갔다. 양진의 청렴결백한 언행을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아닌가 아니라 이 세상에 비밀이 어디에 있는가. 양진같은 사람이 우리 한국에 과연 몇명이나 있겠는가. 양진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물러간 왕밀같은 사람이라도 많다면 다행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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