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만능풍조 고쳐야 한다

다중의 힘으로 목적을 관철하려는 집단시위·집단민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민주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더욱이 일부 민원인들이 최근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제불황으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분위기에 편승 ‘민원시위’를 사회적 불만해소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려를 금치 못할 일이다.

지난 한해동안 경기도 본청에 제기됐던 민원을 보더라도 20인 이상 집단민원이 127건에서 올해는 181건으로 늘었고, 일선 시군의 민원도 작년 1천972건에서 올해는 2천100건으로 늘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87년 소위 6·29선언 이후 각계 각층에서 억눌렸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하면서 날마다 시위와 농성이 끊이지 않고 소요가 계속 돼 왔지만 우리는 이를 암울했던 독재와 권위주의통치 아래서 쌓였던 민주화욕구가 각계에서 표출할 수 밖에 없는 전환기의 한 과정으로 보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강도높은 시위와 농성이 계속돼 사회가 시끄럽고 뒤숭숭하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사회에선 누구나 그들의 주장을 개진하고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하지만 그 주장과 의사표시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며 비폭력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각종 집단행동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합리성과 합법성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행동은 비민주적인 과격한 방법으로 나오고, 자신들의 권리는 크게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의 권리는 밥먹듯 짓밟는 일이 허다하다.

집단행동의 고질화는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이 서있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느슨한 국가경영과 균형감각을 잃은 법집행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무엇이건 얻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수없이 진정·건의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행정기관들도 주민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거의 해결해주는 기민성을 보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만능’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오늘의 딱한 현실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이 사회의 갈등구조를 시정하고 억울한 사람은 누구나 적절하게 보상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목표의 달성은 다중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그 구성원의 이성적인 판단과 합법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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