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의 분녀(태현실)가 양반집 저능아 도령 영구(장욱제)와 혼인한다. 영구는 “아부지(아버지)야, 제기차자…” 할만큼 지능이 낮다. 분녀는 짖궂은 시어머니(박주아), 시누이(권미혜) 등쌀에 고된 시집살이를 한다. 분녀를 사모하는 동네건달 달중(김무영)의 추근댐, 흉계는 그녀를 가끔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게 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신랑을 감싸며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인내와 슬기를 잃지 않은 가운데 8·15 해방과 6·25 전쟁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몰락한 시댁을 분녀 혼자의 힘으로 꾸려간다. 마침내 재산을 모아 병든 시부모에겐 효부로서, “색시야, 색시야!”하는 남편에게는 내·외조를 다한 아내로서의 부덕을 보여주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1972년 4월 3일부터 그해 12월 29일까지 KTV가 방영한 드라마 ‘여로’의 줄거리가 이렇다. 이미 작고한 이남섭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그 무렵, ‘여로’가 방영되던 오후 7시부터 7시 40분까지는 택시탈 손님이 없다시피 거리가 한산했을 만큼 공전의 히트를 쳤다. 시청률이 90%를 돌파했었다. 주연을 맡은 영구역의 장욱제씨는 바보역 인상이 너무 깊게 남아 연기생활을 더 못하고 제주도 허니문하우스의 사장으로 전업했다. 벌써 29년이 지났다. 드라마 ‘여로’가 극단 세령에 의해 악극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수원공연은 2월 중순쯤인 것 같다.
그때 그 연기진들이 대부분 다시 무대에 서지만 고인이 된 달중역의 김무영씨는 손호균이 맡는다. 분녀역에 원래의 태현실과 함께 귀순배우 김혜영이 더블캐스팅된 것은 태현실의 나이때문인 듯 싶다. 시어머니역의 독신녀 박주아는 당초 20대 후반에 역할을 맡았으므로 그간의 경력에 겹친 지금의 나이가 아주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50대 후반의 장욱제가 신랑역을 하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고 연극이기 때문에 하긴 하지만 아무리 분장해도 조명에 세심한 신경이 쓰일 것이다.
‘여로’는 작품 자체가 신파조여서 신파극의 모태인 악극으로 구성하는 것은 아주 안성맞춤이다.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길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신파조이긴 하나 휴머니티가 살아 숨쉬는 현대극이나 다름이 없다. 궁금한 것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분녀를 어떻게 보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로’의 악극공연은 이 점에서 관객의 반응이 무척 주목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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