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業高 살려야 한다

도내 실업계 고교의 교육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실업계 고교들이 신입생 정원을 채우기 위한 온갖 유치작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미달 사태를 빚으면서 전통적인 실업학과를 인문계(보통학과)로 대거 전환하거나 일부 실업고교는 아예 인문계 고교로 개편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연말 2001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14개 실업계 고교의 26개 학과를 보통학과로 개편했는데도 입학원서를 접수마감한 결과 116개 실업고 가운데 29.3%인 34개교가 정원미달 사태를 빚었다. 그동안 실업계 고교들이 정원을 채우기 위해 교사들에게 책임량을 할당하고 학생들을 홍보 도우미로 동원하는 등 처절한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거듭된 정원미달사태가 급기야 실업학과를 인문계로 전환하기에 이르러 실업고의 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오늘날 실업고교들이 이처럼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가 복합된 결과지만 무엇보다 무모한 정부정책 탓이 크다. 산업구조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도 실업고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을 요하는 가공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자동화-정보화한 첨단산업구조로 급격히 전이되는 상황임에도 교육당국이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파상적인 대책이나 내놓고 있어 지식·정보화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됐던 것이다. 지식·정보화시대에 인문고·실업고를 양축으로 시작한 식민지시대 교육체계의 구태의연한 틀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교육일탈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대학문호를 대폭 개방하는 정책을 펴 실업고 기피풍조를 더욱 가속화시키면서도 학과를 정비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이제 정부는 실업고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춰 실업고 숫자를 조정해 가면서 교육과정도 전문화 특성화해야 할 것이다.

실업고 과정을 상업 공업 농업 등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예술·아동·간호·레크리에이션·호텔 및 식당·미디어·컴퓨터 등 사회의 수요가 큰 분야를 망라한다면 취업전망도 밝아질 것이다. 애니메이션고·조리과학고·인터넷고·도예고 같은 특성화 고교가 취업전망이 밝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지원자들이 몰리는 현상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사회가 첨단화해도 그것에 맞는 기능인을 길러내는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실업고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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