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행정제도 개선 및 규제개혁이 아직도 미진한 상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자치단체를 비롯 교육청과 지방국세청 및 지방경찰청 등 298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면조사 결과를 보면 이같은 현상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규정상 제한 연령이 서로 다르거나 방화시설 시정 보완명령이 행정기관과 소방기관으로 이원화 돼 있는 등 664건의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제도 및 국민편의 저해 행정제도가 드러났다.
정부가 아무리 위민(爲民)행정을 구현한다며 제도개선과 규제혁파를 부르짖어도 일선 행정기관에선 이 외침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완화는 변화된 환경에 따라 불필요하고 잘못된 법규·규정 등을 고쳐감으로써 민원인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며 동시에 이를 통해 국제경쟁력 제고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95년부터 행정쇄신위원회를, 98년부터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가동해 수만건의 비능률적 제도를 폐지하고 규제를 완화조치 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선 민원창구에서 공무원으로부터 받는 국민들의 느낌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전히 공무원이 복잡한 모순투성이의 규정을 내세워 ‘처리불가’를 주장하고, 규제철폐 사실조차 모르면서 고자세로 우기는 일도 없지 않다. 또 불필요한 구비서류를 과다하게 요구하거나 반복적으로 보완을 요구하다가 ‘처리불가’를 통보함으로써 민원인들로부터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개혁 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재량권 거머쥐기 같은 욕심이나 공직자들의 권위주의적 규제 위주 사고방식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개혁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저해하는 법령개폐와 함께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규제개혁 불이행 사례를 찾아내 중대한 잘못이 드러나면 문책하는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이 공복으로서 스스로 봉사하려는 정신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제 모든 공무원들은 그동안 민원인들의 편의를 저해하고 불편을 주던 폐습을 버리고 인허가 업무에서 자주 나타나는 재량권 남용과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잔재도 말끔히 털어버려야 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