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기부금을 규제하다니

행정자치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 개정안’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행자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 개정안은 문화예술 단체가 기업에 협찬의뢰서를 보내 지원을 요청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기부금품 모집을 꼭 해야겠다면 행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문화예술 단체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건전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일견 그럴듯한 것 같지만, 아니다. 후원회 등 기업체의 자발적인 기부는 계속 허용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반문도 그렇지만 협찬 의뢰서 등 어떠한 요청이나 권유도 없는 상태에서 기업이 주는 기부금을 받으면 된다는 말 역시 궤변이다. 기부문화 자체가 없는 나라에서 무슨 자발적인 기부가 있겠는가.

현재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금액은 현저히 감소 추세다.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조사결과 2000년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금은 626억 5천만원으로 1999년도에 비해 무려 54.7%나 감소했다. 국민과 기업에 부담이 돼 온 준조세 성격의 기부금품을 일소해서 현재 겪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시급하다. 기업과 문화예술 단체 사이에 오가는 지금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에는 물론 공감한다. 그리고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지식기반경제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 특히 순수예술은 본래 시장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정부보조금이 필요하고 거의 기부금에 의존해온 것이다.

개정안대로 기업이 매번 자발적인 기부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부금이 있어야 문화예술활동이 가능한 현실속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데 국가가 이를 제도적으로 어렵게 만들겠다고 하니 생각할수록 답답하다.기부문화가 정착된 외국에서도 문화예술단체의 기부금 모금을 정부가 규제하는 경우는 없는데 한국의 문화정책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대규모 후원회를 열어 막대한 정치자금을 버젓이 모금하는데 어째서 문화예술인들은 기부금을 모금할 수 없는지 정부는 답변해야 한다.

문화예술관계를 삭제한 기부금품 모집규제법 개정안은 백지화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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