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恩論

영국의 국호는 ‘영연방제국’이다 ‘공·후·백·자·남’의 작위를 가진 귀족이 있다. 상원 의원의 일부는 아직도 귀족으로 세습되고 있다. 민주주의 이념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영국을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영국은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왕이나 귀족제는 그들의 전통일뿐이다.

일본의 국호는 ‘대일본제국’이다. 국가수반의 상징으로 왕은 있으나 귀족제는 폐지됐다. 그러나 내각의 각료는 전통적으로 대신 (大臣)인 것이 공식 호칭이다. 흔히 고이즈미총리, 다나카외상이라고 하지만 이는 편의상의 호칭이다. 그들의 정식명칭은 고이즈미총리대신, 다나카외무대신이다. 대신은 왕의 신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은 역시 없다.

우리도 제국의 시대가 있었다. 조선왕조 26대임금인 고종30년(1897년)8월16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왕을 황제라고 했다. 직제를 고쳐 판서를 대신이라고 불렀다. 구 한국은 이 시대부터 1910년8월29일의 한일합방까지를 말한다. 임오군란때 난을 피한 민비와의 연락에 속보(速步)로 고종의 신임을 얻은 북청 물장수 출신이 친로파의 거두가돼 대신을 지내기도 했다.

1948년8월15일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대한민국의 장관은 대신과 같아 왕조시대에는 정2품의 판서반열에 해당한다. 대감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나 장관이 되는것은 일신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장관도 장관나름인것 같다. ‘(전략)대통령님의 태산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꿈만같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중략)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중략) 정권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후략)’

진위가 논란이 된 신임 안동수법무장관의 취임식전 배포자료의 몇 대목이다. 누가 쓴것인지 몰라도 정말 유치하다.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의 대한민국 장관부임 과정에서 일어난 배포자료 파문이 제국을 표방하는 영국이나 일본의 민주주의 보다 더 못한 것을 실감한다. 임금이 베푼 은혜를 성은이라고 한다. 성은이라니, 이나라가 왕국인가, 이젠 왕국에서도 쓰지않는 ‘성은’이란 말을 쓰는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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