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

부패는 인간에게 ‘지킬과 하이드’비슷한 선악 양면의 잠재 본능일까. 부(富)는 굉장히 좋은 것이며 서구사회에선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인데도 부패한 부가 서구 역시 적잖은 것 같다. 정상적 부의 축적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부가 그렇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되기는 그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지금 검은 돈 세탁이 한창이라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건축중인 호화주택을 사들였다가 이내 되파는 부동산 투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국내에서도 한동안 성행했던 미등기 전매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값비싼 보석같은 귀금속류의 사재기가 극성인 모양이다. 이로도 모자라 룩셈부르크와 접한 독일 국경에서는 돈뭉치를 빼돌리는 차량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는 스위스로 검은 돈을 도피시켜 스위스은행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것 같다.

유럽의 숨겨진 검은 돈이 이처럼 꿈틀대는 것은 유로화의 본격 유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02년1월1일 유럽연합(EU)의 단일통화가 실시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국의 화폐는 휴지화 할 것에 대비하여 드러내놓지 못할 범죄형 자금이 대거 풀리면서 고가품 사재기, 부동산 투자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U는 유럽지역 12개 국가의 경제블록으로 말하자면 유럽합중국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 달러화에 대응하는 유로화의 강세는 EU의 만만치 않은 판도를 보여 주목을 끈다. 예금실명제로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고 있지만 차명계좌 등으로 은닉된 검은 돈이 우리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와 부패에 연루된 부의 축적이 그만큼 숨겨져 있는 것이다. EU의 유로화 단일통화는 곧 화폐개혁이다. 우리에게 지금 화폐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그렇긴 하나 만약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실시하면 우리 사회의 검은 돈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가상해 본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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